제 464화
부서진 아티펙트에 뭘 관심을 두냐 할 수 있지만, 일부러 부순 티가 나는 기록석은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거 봐, 이거. 일부러 부쉈다니까.”
교묘하게 숨기긴 했지만 확실했다. 안에 기록된 내용을 교묘하게 지워버린 것이다.
“본녀가 고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래?”
그녀가 천천히 몸을 본래의 크기만큼 키웠다. 그리고는 내게 고개를 까딱였다.
“비켜, 데이비.”
“싫은데?”
“뭐?”
“여기 앉아.”
의자는 크다.
나는 다리를 벌리며 빈 의자 부분을 팡팡 두드렸다. 그러자 그녀의 표정이 표독스레 찌푸려진다.
“어디서 성희롱을…….”
“예복 입고 맹세하면 그때부턴 이것보다 더한 것도 할 건데, 뭘 새삼스레.”
내 말에 그녀가 얼굴이 빨개지더니 이내 손을 휘저었다.
후웅!!
동시에 내 몸이 휙 떠오르더니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흥! 꿈도 꾸지 마라.”
토라진 얼굴로 중얼거린 그녀는 부서진 기록 아티펙트에 손을 올렸다.
동시에 그녀의 몸에서 마족 특유의 마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하며 찌그러진 마법진을 하나하나 수복하기 시작했다.
“교묘하게 사고로 위장했지만 누군가가 일부러 부쉈어. 이 안에 있는 걸 보이면 곤란했던 모양인 게지.”
그렇게 말한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기록석에 보관된 내용이 깔끔하게 복원되기 시작했다.
“됐다.”
“능력 좋은데?”
“에헴. 본녀가 이래 봬도 마법진 하나는 잘 굴린다네.”
“시동해봐.”
내 말에 그녀가 손을 가볍게 튕기자 마법진이 회전하기 시작하며 그 위로 영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영상이 기록된 부분은 다른 곳이었다.
깊은 숲 속, 한 기사의 모습이 보였다.
“하아…… 하아!!”
급박하게 달리는 그의 숨소리는 거칠기 짝이 없었다.
1인칭 시점이지만 그의 팔에 보이는 암 건틀릿이나 은빛의 그리브를 보면 기사 중 한 사람이라는 게 훤히 보였다.
주변의 풍경은 백호 흰둥이를 통해 마경의 내부로 들어갔을 때와 같은 광경이었다.
모종의 우연을 통해 마경 내부로 진입했다가 길을 잃은 것으로 보였다.
콰아앙!!!!
이윽고 거대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그를 쫓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 해답은 금방 드러났다.
숲 저편에서 거대한 초록빛의 괴물이 포효를 터뜨리며 흉폭하게 숲을 부수고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마물왕 브라가.
군단이며, 마법의 숙주라 불리는 특이한 마물이다.
녀석은 주저앉아 벌벌 떠는 기사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마치 먹이를 가지고 장난을 치듯 말이다.
“주, 죽고 싶지 않아! 살려줘!!”
처절한 비명과 함께 영상이 뒤쪽으로 밀려 나간다. 아마 이것을 가지고 있던 기사가 주저앉은 채 뒷걸음질 친 것이리라.
물론, 그래 본들 브라가의 눈에 띈 이상 그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윽고 가까운 거리까지 천천히 다가온 브라가가 그를 잡아먹으려던 순간이었다.
나와 페르세르크에겐 너무 익숙한 검은 기류가 숲 저편에서 흘러나오며 브라가의 전신을 구속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개를 뿜어내고 있는 소녀가 등장했다. 새하얀 원피스에 큰 챙이 달린 고깔모자, 그리고 품에 안은 마법서가 익숙하게 보였다.
시기는 대충 나와 만났을 때 정도로 예측되었다. 폭음이 울려 퍼지기가 무섭게 사라지더니 이곳에 있었던 건가 싶었다.
“예나 지금이나 꼬마들은 겁이 없어! 당장 꺼지거라!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다, 당신은!”
“빨리 꺼지란 말 못 들었느냐! 이 괴물에게 먹히고 싶은 게냐? 아니면! 이 마경의 주인이신 마녀인 내 손에 푹 고아져서 잡아먹히고 싶은 게냐?!”
말은 그렇게 하면서 그녀의 몸에서 뻗어져 나온 검은 안개.
심연의 힘의 편린은 브라가를 구속하고 있었다.
브라가를 구속하고 있는 그녀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상당히 표정이 찌푸려진 것이 무언가 그녀를 제약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크르르릉!!!
“이 건방진 것이!”
브라가가 난동을 부리자 그녀는 잔뜩 날이 선 얼굴로 소리쳤고 이내 새카만 도형이 사방에 드러나며 브라가를 한 차례 압착하듯 짓눌러버렸다.
“어서 꺼져!”
차가운 외침과 함께 사내는 기겁하며 돌아섰고 도망쳤다.
“이런, 잊어버릴 뻔했군.”
그리고 헐떡거리며 달려가는 중 피곤한듯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콰직!!
그것을 끝으로 검은 기류가 흘러나오며 아티펙트가 부서져 버렸다.
페르세르크와 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무 많은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저 몇 마디 대화였지만.
그녀와 나이기에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데이비, 이게 대체……”
“……”
나는 침묵으로 일관한 채 아티펙트를 노려보았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바로 그것이었다.
“이 년이 나를 속여?”
* * *
브라가의 존재는 마경 밖에서도 확인될 만큼 이동하고 있었다.
수도에서 멀지 않은 평야의 한 중앙에서 앉아 잠을 청하고 있는 브라가는 군단이라는 별명을 가진 존재답게 수많은 마물을 주변에 포진시켜놓고 있었다.
“세상에…… 숫자가 보통이 아니네요.”
“브라가는 약해져 있어요. 분명해요. 녀석이 본래의 모든 힘을 발휘할 땐 전신에 검은 오라가 피어오르니까요.”
그렇게 말한 레이나의 목소리에 모두가 침묵했다.
그 정보를 어디서 얻었냐 물어본들 사실 레이나는 현재 대륙에서 신의 선택을 받은 용사라는 타이틀을 지니고 있으니 새삼 놀라울 것도 없었다.
“어떻게 된 건지 예상보다 훨씬 약해져 있어요.”
그렇겠지.
“지금이 기회에요.”
그녀의 말에 마법사 병단이 천천히 다가왔다.
“율리스 6급, 영광입니다. 메인 포격마법을 준비 중입니다.”
“대단한 분들과 함께하여 영광입니다. 최선을 다해보죠.”
메인으로 나서는 이들은 6서클 마법사인 율리스와 소드마스터 일리나. 그리고, 레이나를 포함한 몇몇 상위기사들이 있었다.
상대는 보통 때라면 8서클 마법을 남발하는 상위 마물.
그렇기에 모두의 표정엔 긴장감이 가득했다.
“괜찮겠죠?”
윈리가 조심스레 내게 물어왔지만 나는 전날 본 영상 때문에 한참 동안 상념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오라버니?”
“어? 음…… 그래. 레이나의 말대로 많이 약해져 있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범인이 누구인진 알고 있다.
“와! 쩐다. 괴물.”
“쫄지 마. 어차피 우리가 직접 레이드 하는 거 아니야. 상위 NPC들이 잡는 거 숟가락만 얹는 퀘스트 같은데 뭐.”
“세상에 저런 괴물 레이드하려면 레벨이 몇이나 돼야 하는 거야?”
익숙한 단어, 이곳에선 들려올 리 없는 단어에 내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브라가의 토벌에 참가한 용병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유별나게 눈에 띄는 복장을 한 이들이 보였다.
척 보기에도 아직 어린 소년과 소녀들이다.
“뭐, 조건이 되니까 참가한 거겠지. 보니까 x라 쎈 NPC들 다 참가한 모양이던데?”
“적당히 공헌도 채우면 보상도 빵빵하게 준다고 퀘스트에도 나와 있고. 우린 지급용 활만 죽자고 쏘면 되는 거여.”
“야 이건 기회야. 이 맵에 넘어오는 게 어디 쉽냐. 진짜 극소수 운이 좋은 사람만 히든 피스 발견해서 오는 건데, 좀 지나면 죄다 이곳에 넘어와서 여기 하나도 남는 게 없을걸?”
“우선권을 취해야 랭커도 되고 돈도 벌지.”
“데이비. 저 아이들은…….”
“그 망할 가상현실을 타고 넘어온 놈들이겠지.”
살인마 그림 이후 처음 만나는 지구인이지만 나는 그들에게서 관심을 끊어버렸다.
지금 중요한 건 넬타리드나 그와 관련되어 지구에서 넘어온 저놈들이 아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녀는 대체 왜 이런 일을 한 것일까. 왜 그런 모습을 보여준 것일까.
마녀라는 이름으로 마법서를 끌어안고 있던 소녀.
그녀가 베르단데가 맞다면 6대 미녀라는 호칭을 구했을 때부터 그녀는 이곳에서 살았다는 소리였다.
그때 난리를 부렸다면 이 티오니스 대륙은 빛을 보기도 전에 무너져 내렸을 텐데.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의문점이 너무 많아 제대로 된 답변을 내리는 것조차 쉽지 않다.
애초에 대체 그녀는 무엇인가.
심연의 공주는 수억의 사념이 모인 만큼 영악하기 그지없다. 분명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꾸미고…….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그르릉…….
잠을 자고 있던 브라가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수백 수천에 달하는 마물 군단을 이끌고 진격하기 시작했다.
“옵니다! 궁수대! 전원 장전! 기병대는 거창! 성문을 통해 돌격을 준비하세요! 신호를 하면 성문을 열고 쐐기 형태로 진격합니다! 목적지는 마물 브라가가 있는 곳까지! 길을 뚫어요!”
레이나는 삼제국과 성국의 공인 아래에 이런 중요한 일에 총지휘권을 양도받을 권리를 지니고 있다.
그녀의 무력이 어느 정도인지, 그녀의 전술지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이미 퍼질 대로 퍼져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물론 지휘권 자체를 무조건 양도하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왕태자 그레이드 말론 브리우크는 한 명의 병사라도 더 안전하게 귀환시키는 게 옳은 일이라며 레이나에게 흔쾌히 지휘권을 양도했다.
실제로 레이나는 한때 인류 최후의 저항군 지휘관이었던 만큼 전투만 시작되면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저는 뭘 하면 되죠?”
일리나의 질문에 레이나가 복잡하게 그녀를 바라본다. 동일인물이지만 이제는 다른 인물이 된 그런 관계.
서로의 관계는 복잡하기 그지없다.
“당신과 저는 브라가와 직접 부딪힐 겁니다. 마물에게 둘러싸여선 놈을 잡지 못해요. 그리고……”
말끝을 흐린 레이나가 나를 바라본다.
“데이비님은 멀리서 병사들과 기사분들을 보조해주세요. 당신이 나선다면 피해는 극미하게 그칠 테니까.”
“……”
“데이비님?”
“음? 아아 그래. 그게 효율적이겠지.”
생각 이상으로 약해진 브라가는 레이나와 일리나로도 충분해 보였다.
그런 만큼 굳이 내가 나설 필요는 없다. 내게 주어진 일은 병사들을 보조, 이미 세상에는 내 버프 마법이 얼마나 깡패 같은지 알려질 대로 알려져 있다.
레이나는 효율적인 지휘를 내렸고 나는 지금 복잡한 생각 때문에 그녀의 결정에 이렇다 할 의견을 내놓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아아아아앙!!!
이윽고 전열의 마물들이 포효를 터뜨리며 수도 성벽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하자 나는 그 자리에 선 채로 한 손을 휘저었다.
치이잉!!!
동시에 내 몸에서 방대한 신성 마법이 터져 나오며 병사와 기사 할 것 없이 전원의 몸에 대량의 버프 마법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데이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
“페르세르크.”
전쟁이 시작된다.
나는 성벽에 서서 빠르게 전진하는 마물과 그 마물들을 향해 화살을 쏘아 보내기 시작하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두 세력의 충돌까진 아주 잠깐의 시간이 남았다.
“네가 보기에 뭘 꾸미고 있는 것 같냐.”
그녀는 심연의 공주였다.
그것은 영상 기록 아티펙트에서 확실한 증거로 내게 드러났다. 이제 와서 본인이 아니라고 한들 그건 내게 거짓말밖에 되지 않는다.
그녀가 브라가를 제압할 때 사용했던 힘은 약하긴 하지만 엄연히 심연의 힘이었다.
그것도 보통 수준을 넘어선 상위 위계의 힘.
같은 힘이라도 위계가 높으니 그 효과부터가 남달랐다.
“당장 동전의 앞면을 박살 내지 못해 안달 난 그놈들은 일반적인 존재라고 여기면 그건 그것대로 말이 안 돼.”
수억의 사념이 한가지 목적을 가지고 모여든 괴물이 심연의 공주다. 그런 공주가 이곳에 와서 인간을 지키고 녹아들어 산다고?
웃기지도 않은 소리.
“진짜로 그럴 수도 있잖아? 단순히 이 세상에 마음에 들어서 이곳에서 그냥 살고 싶었을 수도……”
“말도 안 되는 소리.”
실제로 울드나 슬리지아는 자신의 목적에 기반을 두어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상식이 안 통하는 일면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무엇인가.
“데이비. 차라리 단순하게 생각하면…….”
“심연에서 기어나 온 놈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뭐냐.”
“우리는…… 하나다.”
“그런데 개인감정? 하! 오히려 이렇게 황당한 상황에 놓이니까 더 알다가도 모르겠네.”
차라리 대놓고 흉계를 꾸미면 그 속내라도 금방 눈치챘을 것이다.
“본녀가 보기에 그대는 그냥 너무 생각이 많아.”
내 말에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콰앙!!!
그때였다.
어디선가 날아온 광선이 내 바로 옆을 후려쳤고 성벽 일부가 부서지며 무너져 내렸다.아니 부숴지다 못해 녹아내린 모습이었다.
“으아악!”
사상자는 운이 좋게 없었지만, 상념에 빠져있던 나는 광탄을 막을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다.
집중해야 하는 전투에서 미련한 짓이었지만 쉽게 그 상념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페르세르크의 말마따나 단순하게 그녀가 정말로 인간을 지키고 싶고 이곳에 녹아들어 살고 싶어서 그랬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심연이 지금까지 해온 짓이 너무 기상천외하지 않던가.
지금까지 만난 심연은 두 가지 반응밖에 보이지 않았다.
페르세르크를 향해 자신들의 여왕이라 부르짖으며 주변을 파괴하는 멍청이들.
그리고 페르세르크에겐 관심 없고 닥치는 대로 동전의 앞면 세상을 파괴하는 멍청이들.
그런데 이제 와서 평화주의적인 심연의 괴물이 있다니 말이 될 리가 없다.
“데이비. 일단 집중을……”
“아니. 지금 저딴 놈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심연의 공주가 누구냐, 머릿속에 파괴밖에 없는 그 미치광이들의 집단이야.”
내 말에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데이비.”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아주 큰 그림을 그리고 있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환심을 사고 있다고 보는 게 더 맞지 않나?”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럴 거면 마녀로서 행동하며 사람들에게 공포로 자리 잡고 있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어.”
“또 옵니다!!!”
그때 내 곁에서 성벽에 몸을 밀착하고 떨어지지 않게 버티고 있던 사제 하나가 급히 소리쳤다.
고개를 돌린 그곳에는 인간들을 향해 적의를 드러내던 마물, 브라가가 초록빛의 광탄을 마구잡이로 쏘아대고 있었다.
아마 그중 하나가 내 곁으로 날아온 것이리라.
버프 마법을 받고 마물들과 싸우고 있는 이들도 보였다.
시끄러워 죽겠네! 진짜.
“아니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단서나 행동을 미뤄볼 때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유추하기가…….”
콰앙!!!
이번엔 직격탄이었다.
녹빛의 광탄이 나를 정확히 공격했고 나는 이렇다 할 반응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광탄에 휩쓸려버렸다.
아주 짧은 침묵, 녹빛의 연기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내가 멍하니 손을 내려다보았다.
폭발의 여파로 검정이 여기저기 묻어있다.
“괘, 괜찮으신 겁니까?”
성벽을 녹여버릴 정도의 파괴력을 지닌 광탄이다.
좀 전 한차례 성벽이 날아간 것을 보았기에 그 위력을 잘 아는 이들은 내가 아무런 방어마법도 펼치지 않은 채 맨몸으로 그것을 맞고도 멀쩡히 있자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아이씨, 짜증 나게 진짜.”
인상을 찌푸린 내가 주먹으로 허공을 후려쳤다.
쩌엉!!
동시에 푸른빛의 균열에서 십자가 형태를 지닌 신창 롱기누스가 빠져나왔다.
“이 xx끼가 사람이 생각하고 있는데 자꾸…….”
자고로 예의 없는 놈은 파리채로 날파리 잡듯 혼을 내주라 하였다.
[9위계 최후 성마법]
[신의 손바닥]
후우웅 콰드득!!
하늘에서 떨어진 순백의 빛이 마치 거대한 손의 형상으로 내리 찍히며 초록빛 광탄을 쏘아 보내던 브라가를 짓눌러버린다.
마치 날파리를 손으로 내리쳐서 잡아버리듯 말이다.
비록 프리아 여신의 힘이 약해져도 9위계 최후 성마법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다.
압도적인 압력에 짓눌린 브라가가 발버둥 치지만 나는 복잡한 생각을 하던 찰나였기에 놈을 보지도 않고 짓눌러 끝장을 내버렸다.
평소보다 과하게 신성력을 쏟아부은 것도 사실이었다.
안 그래도 힘이 약해진 신성 마법이니 자연스럽게 그 힘을 멋대로 상향 조정해서 사용한 게 화근이었다.
갑작스런 사태에 당장에라도 활을 들어 접근하는 마물들을 저격하고 있던 모두가 멍하니 이 사태의 원흉인 나를 바라본다.
게다가 본능만 남은 마물까지 굳어서 진격을 멈추고 이 사태의 근원인 나를 멍하니 바라본다.
“뭐요. 왜들 봅니까.”
“데이비…… 방금 그대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알아?”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상념에서 빠져나오며 브라가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새하얀 깃털만이 내가 방금 저지른 짓의 여파를 보여줄 뿐이다.
“미친. 저 NPC 딜 실화냐?”
“세상에…… 방금 내가 뭘 본 거야? 레이드 몹 원콤?”
“야, 잠깐만, 저 NPC 어디서 봤는데? 아! 그래! 이벤트 대회 때 랭커들 쓸어담았던 그 미친 유저…….”
“NPC가 아니라고?”
“미친, 뭐야? 저 사람 그럼 어디 국가 사람이야?”
활을 쏘다 말고 멈춰버린 용병들 사이에서 소년·소녀들이 떠드는 소리도 들려온다.
어?
내가 언제 저걸 사용했지?
손에는 언제 꺼냈는지 모를 신창 롱기누스가 십자가 형태를 취하고 있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결국 자포자기하는 심정까지 이른다.
“그렇구나. 이 빌어먹을 심연의 공주가 내 힘을 측정하기 위해서 이딴 짓을 한 거였어.”
이미 한 차례 심연의 공주가 내 손에 죽었으니까.
얼마나 위험성을 지니고 있는지 확인한 것이다!
환골탈태 이전엔 이만한 출력을 내지 못했기에 내 힘과 현 상황을 알고 있던 이들은 더욱이 경악한 모습이었다.
“이건 그대가 그냥 멍청하게 집중을 못 한 탓이야! 대체 뭐하는 게야! 그냥 이런 건 단순하게 생각하라고! 왜 이렇게 베베 꼬인 게야, 이 멍청아!”
페르세르크가 내 뺨을 사정없이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