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7화
갑작스런 왕의 서거.
왕이 홀로 있던 석탑에서 발견된 것은 차갑게 식은 왕의 시신뿐이었다.
떨어진 촛대의 날카로운 끝이 그의 심장을 꿰뚫었다.
사고사였지만 말이 안 됐다.
“아…… 아아, 아바마마!!!!”
시신을 붙잡고 절규하는 왕태자를 바라보던 나는 굳은 얼굴로 시신을 보는 리나 성녀 후보를 바라보았다.
그녀를 부른 이유는 간단했다.
마녀에 관해서 가장 전문적인 존재는 성국이다.
따라서, 성국이 하는 말은 엄청난 입지를 지니게 된다.
다른 이도 아니고 대신관급의 존재인 성녀 후보의 말이니 그 무게감은 소국이 버텨낼 수준이 아니었다.
“데이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국왕님이…… 국왕님이 어째서?!”
그가 성군이라는 건 이미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이들을 지켜주고 보호해주었으며 더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려 노력해온 왕이라는 소리였다.
비록 마녀의 일로 최근 입지가 많이 흔들리긴 했지만 말이다.
“아, 아바마마. 제발 눈을 떠보세요! 제발요! 아버지!!”
처절하게 절규하는 그레이드의 몰골은 꼴이 말이 아니었다. 갑자기 아버지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으니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은 대단했던 모양이었다.
아들은 아버지를 너무 사랑했고.
아버지는 아들과 어머니를 너무 사랑했다.
아들은 할머니를 증오했으며.
할머니는 아들에겐 관심이 없었지만, 아버지를 위해 아들조차 지키고자 했다.
퍽 웃긴 관계다.
“이게…… 이게 대체……”
한참을 절규하던 그레이드 왕자는 숨이 넘어갈 듯 헐떡이며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 멱살을 잡으며 소리쳤다.
“말해주십시오! 왕자님!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그의 외침에 나는 조용히 말했다.
“마녀가 왜 순순히 잡혔다고 생각하세요.”
내 말에 그가 멈칫 굳었다.
“마녀의 힘은 기존의 힘과는 다릅니다. 그 저주의 잔향이 남아요. 그리고, 지금 이 브리우크 왕국 내엔 오래전부터 마녀의 잔향이 남아 사람들을 서서히 죽여가고 있습니다.”
그 말에 그레이드의 얼굴에 증오와 복수심이 치밀었다.
“어딨습니까? 그 빌어먹을 여자!! 죽여버릴 겁니다!!”
“죽여요? 죽이는 건 자유인데, 죽일 수나 있습니까?”
내 물음에 그가 굳었다.
“데이비니임……”
곁에서 슬픈 얼굴로 왕의 시신을 바라보던 리나 성녀 후보가 나를 바라본다.
“그렇게 죽였다고 칩시다. 마녀의 잔향은 어떻게 정화하실래요. 상위 마녀가 뿌린 잔향은 그냥 마녀를 죽인다고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본인이 힘을 거두거나.”
신성력으로 그 힘의 구조를 파헤쳐 정화하는 것뿐.
내 말에 그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국왕께서 서거하셨으니 다음 대의 왕은 당십니다. 선택하세요. 왕국민 다수를 더 죽일 겁니까? 아니면, 우리에게 넘겨서 한 명이라도 더 살릴 겁니까.”
내 말에 그가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꽉 쥐었다.
이가 부서질 듯 강하게 물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그가 표독스런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가능합니까?”
“……”
“브리우크 왕국민!! 살릴 수 있냐 이 말입니다!”
“성자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죠.”
내 말에 그가 바들바들 떨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답했다.
“데려가세요.”
그 결정은 쓰디쓴 고통 속에서 진행되었다.
마녀의 처형식 날 생긴 끔찍한 사고.
왕의 서거에 브리우크 왕국은 그야말로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가 그동안 얼마나 정치를 잘 펼쳐왔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갑작스레 서거한 왕도 왕이지만 그냥 왕의 자리를 비워둘 순 없었다.
왕태자 그레이드는 곧바로 대관식을 거행하여 왕의 자리에 올랐고. 젊은 왕으로서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국왕의 장례를 치렀다.
그것으로.
국왕이 범한 금기는 땅속 깊숙이 사라졌다.
“제 일은 여기까지인가요?”
“고마워요. 성녀 후보.”
“헤헤, 아니에요오. 왕자님께서 도와달라고 하셨을 때 얼마나 기뻤는 데요오. 나머지는 걱정 마세요. 성국에 돌아가는 즉시 보고서를 써서 공표할게요오.”
그녀가 헤실거리며 마법진 위에 올라섰다.
“하지만…… 왕자님 말대로면 정말 심각한 상황 아닌가요?”
마녀가 잔향을 뿌려 왕국민 전원을 죽이려 하고 있다니.
“아 그거 말입니까?”
내가 미소 지어 보였다.
“걱정 마세요.”
그 말과 함께 리나 성녀 후보가 사라졌다.
이후 나는 굳은 얼굴로 내게 다가온 백발의 여성에게 고개를 돌렸다.
“데려왔어요. 헌데, 그 말 사실이에요?”
“당연히 구라지.”
“네?”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짓는 레이나와 그녀가 데려온 로브를 뒤집어쓴 두 인영이 후드를 넘겼다.
“헐.”
동시에 그 얼굴을 확인한 레이나의 얼굴에 경악이 띠었다.
한 명은 브리우크 왕국의 국왕, 그리드 말론 브리우크였고.
또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이 사태의 원흉이었던 마녀였다.
“……”
조용히 침묵한 채 나를 보는 두 사람에게서 등지고 서 있던 나는 조용히 말했다.
“금기와 관련된 모든 것을 불태웠습니다.”
“자네……”
“어디서 그딴 걸 익혔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담담하게 말한 내가 고개를 돌린다.
“다시는 그딴 짓 할 생각하지 마세요. 금기가 선을 넘기 전에 잡았으니 망정이지 선을 넘었으면 나는 정말로 당신을 죽이고 왕국 전체를 정화했을 겁니다.”
그 정화과정에서 얼마나 죽어 나갈지는 나도 모른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는 베르단데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그렇지?”
내 물음에 그녀가 코웃음을 쳤다.
“흥, 죽일 거면 어서 죽이렴.”
“뭔 소리야. 받아.”
나는 왕궁의 보고에 있던 마법서를 그녀에게 꺼내 던졌다.
“읏?!”
이에 그녀가 놀라 마법서를 받아 끌어안았다.
“그건……”
“왕국 보고에 봉인되어있던 네 마법서다. 지금 거기에 있는 건 비슷한 레플리카고.”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넌 나를 죽여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녀의 질문에 나는 어깨만 으쓱였다.
“한번 지켜보게.”
변수니까.
내 말에 국왕 그리드가 허탈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털썩 무릎을 꿇더니 내게 머리를 숙여 보였다.
“미안하네……. 그리고…… 고맙네…….”
“아들에겐 미안하지도 않습니까? 아들 가슴에 대못을 박았으면서.”
비슷한 경험 때문일까. 유별 날 정도로 차가워진 내 목소리에 그가 침묵했다.
“이 못난 과인이 살아있었다면, 그 금기를 시행한 실험이 들키는 건 시간문제였겠지. 그레이드는 현명한 아이일세. 이 못난 아비를 원망하고 미워할지언정…… 국민들을 버리진 않을걸세.”
국왕이면서, 오랜 시간 성군으로 군림해왔으면서.
왕의 자리를 가장 많이 후회한 남자였다.
이제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이 되었지만, 그의 모습은 마치 어린아이를 보는 것처럼 편안한 표정이었다.
“어머니……”
“흥. 찰거머리가 따로 없구나.”
베르단데는 마법서를 끌어안은 채 무릎 꿇고 있는 그를 내려다보면서도 코웃음을 쳤다.
“냉큼 일어나거라. 목이 아프다!”
보통 올려다보면 목이 아프다고 말할 텐데, 그녀는 반대로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할겁니까.”
내 물음에 그가 조용히 말했다.
“속죄해야겠지. 이곳의 깊은 숲 속으로 갈 생각이네.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조용히 살아갈 생각일세. 이번엔 어머니를 모시고.”
과거 복수심에 눈이 멀었던 한 소년은 어머니였던 소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복수를 자행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피가 흘렀고, 그때부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자신이 한 일로 인해, 자신이 꾸민 일로 인해 왕이 될 수도, 왕국의 존망을 흔들어버릴 수도 있는 사태에 몰린 그는 궁지로 몰렸고.
그때 나선 그의 어머니였던 소녀는 자신이 모든 죄를 뒤집어썼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슨 문제로 인해 그녀는 오랜 시간 잠들었다.
이후?
젊었던 자신의 치기로 인해 어머니가 깨어나지 않게 된 사내는 금기를 어겨가면서까지 어머니를 다시 깨우고자 했지만 실패했다. 때마침 내가 환골탈태를 하면서 그녀가 깨어나지 않았다면 그녀는 영원히 잠들어있었으리라.
이후 깨어나 아들의 잘못을 확인한 흑발의 소녀는 또다시 미련하게 자신이 모든 죄를 뒤집어쓰려 했다.
“고작 마나로 강화한 불에도 죽을 정도로 약해진 게 심연의 공주라니. 웃기지도 않네.”
“흥, 네깟 녀석에 그런 말을 들을 성싶으냐.”
금기를 어긴 자에게 내려지는 대가, 지금의 그녀는 심연의 공주라 부르기도 참 모호했다.
“데이비님? 저는 이해가 가지 않는데요.”
레이나가 떨떠름한 얼굴로 말하자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 이제 어머니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제가 죽는 순간까지 어머니의 곁을 지키면서 어머니를 보필할 겁니다.”
한때 한 왕국의 군주였던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성실하고 소박한 효자가 되어있었다.
“제가 어머니를 힘들게 한 모든 것을 해결할 때 까지요.”
“흥, 네 녀석의 말썽은 이 내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해. 어허! 떨어지래도!”
“어머니……”
소녀를 끌어안는 중년이라.
겉보기엔 정말 위험한 장면 같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아는 레이나나 나의 시선에는 다르게 비쳤다.
짜증을 내면서도 그리드 말론 브리우크를 끌어안고 토닥여주는 소녀와 그런 그녀에게 안긴 채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중년 사내.
한참 동안 그렇게 있던 그리드 전(前) 국왕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그녀를 안아 들었다.
“가시죠, 어머니.”
“어허, 가긴 어딜 갑니까.”
그때였다.
모든 게 훈훈하게 풀릴 것 같은 사태를 다시 막아선 건 나였다.
“데이비 왕자?”
“누가 그냥 보내준답니까? 미안하지만 당신은 금기의 유일한 흔적이고 저 여자는 이 대륙 자체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존재인데.”
내 말에 그의 표정이 굳었다.
“허면……, 어찌하겠다는 건가. 여기서 어머니와 나를 사이좋게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한번 죽였으면 두 번은 흥미 없습니다. 예정에 변함없이 두 사람은 죽은 것으로 되었고, 지금 두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내 말에 베르단데와 그리드가 침묵했다.
“다만, 그 시체라도 그냥 둘 순 없네요. 따라오세요.”
당신들을 감시하고, 당신들이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곳이 딱 한곳이 있으니.
* * *
“그래서, 저 둘을 데려온 이유가 그것이라고?”
세계수.
알이 자신의 이마를 꾹꾹 누르며 내게 물어왔다.
“빈집 있잖아요? 거, 감시만 해주세요.”
이 세상에서 심연의 공주를 가장 잘 감시할 수 있는 존재.
그건 다름 아닌 세계수 뿐이다.
현재의 베르단데가 울드나 슬리지아처럼 위험요소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녀의 근본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닐 테니까.
“하아……, 아무리 그래도 인간이라…… 이 숲의 아이들은 아직 인간과의 삶에 그리 익숙하지 않은데도?”
“거짓말하고 계시네.”
세계수와 신목의 성녀의 한마디에 목숨까지 내거는 골수 광신도 성지에서 아직도 세계수의 말에 번복하는 엘프가 있다?
어림도 없는 소리.
내가 피식 웃자 그녀가 발치에 있던 과일을 내게 걷어차 날려버렸다.
“에잉, 못난 것. 시한폭탄도 이런 시한폭탄이 없구나.”
다른 이도 아니고 영역 내에 심연의 공주를 들이는 일이니까 제아무리 세계수라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녀가 걷어차 날린 것을 받아 챈 나는 심드렁하게 몸을 돌렸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그리고는 그녀가 던진 과일을 냉큼 베어 물었다.
음, 이거 생각보다 맛있네. 향도 좋고.
“하아…… 잠깐! 네 녀석! 지금 뭘 집어 먹는 거냐!”
알의 질문에 과일을 베어 물던 내가 의아하게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녀가 표정을 미묘하게 굳힌 채로 물었다.
“그거…… 먹는 게 아니래도.”
“먹는 게 아니라고요?”
꽤 달콤한데?
알의 말에 내가 의아하게 바라보자 그녀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거…… 저 아이의……”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아름다운 외형을 지닌 사슴과 비슷한 동물이 멀뚱멀뚱 서 있었다.
넌 뭔데 시선을 피하냐.
“쟤의?”
“저 아이들이 장기 갈이를 하면서 토해낸 위장이니라.”
동시에.
굳어버린 내 곁에 있던 레이나가 흠칫 놀라며 한발 두발 물러났다.
그리고 내 어깨에 앉아있던 페르세르크가 슬쩍 떠올라 물러났다.
“페르세르크…… 레이나.”
“다가오지 마라.”
“저, 어지간한 건 다 먹어봤지만 역시 이건 좀…….”
이 더러운 배신자들.
나는 손에 쥐고 있던 것을 어찌할까 고민하다 미련 없이 한입 더 베어 물었다.
“맛있는데?”
새로운 먹거리는 언제나 환영이야.
내 행동에 주변인들의 표정이 파랗게 질린다.
“그걸 먹는다고요?!”
“맛있는데? 한번 먹어봐.”
곤충 다리도 철근같이 씹어먹던 내가 아닌가, 내가 비위가 좀 많이 쌔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