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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470화 (469/1,559)

제 470화

싸늘하다.

차가운 공기가 뺨을 때릴 듯 스치는 기분이었다.

“으읏…… 읏…….”

바닥에 쓰러져 있던 붉은 머리의 소녀는 익숙한 공기에 눈을 떴다.

멍하니 눈을 뜬 그녀에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높은 건물과 회색빛으로 변한 하늘이었다.

“아…….”

멍하니 중얼거린 그녀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천천히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더니 눈을 찌푸렸다.

“내가 왜 여기서 자빠져있는 거야.”

깨질듯한 두통으로 인해 머리를 부여잡고 있던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다 자신이 왜 기절해있는지를 깨닫고 인상을 찌푸렸다.

피를 떠올리기가 무섭게 매스꺼운 기분이 전신을 장악했다.

“빌어먹을 혈액공포증…….”

신전에서도 치료가 쉽지 않다는 말을 했었기에 오랜 시간 그녀를 괴롭혀온 지병이었다.

피만 보면 전신에 피가 빠져나가는 듯한 싸늘한 기분이 들었으니 말이다.

어릴 적의 트라우마가 오랫동안 그녀를 괴롭히는 꼴이었다.

“으읏…….”

먼지투성이가 된 옷을 툭툭 털어낸 그녀는 자신 곁에 박살 나 있는 찌그러진 골렘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또 실패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 했다.

업적에 비해 워낙에 돈에 관심이 없던 양반이다 보니 빚이 산더미다.

현재 이 도시국가에는 수많은 연금학파가 서로를 견제하고 서로의 기술을 자랑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있었다.

그런 만큼 어지간한 발명품으로는 눈이 높아진 그들을 경악하게 할만한 작품을 내는 게 쉽지 않다.

계속된 실패.

벌써 몇 달째 실패만 거듭하니 자신감마저 추락하는 기분이다.

“그나저나 사람이 쓰러졌는데 그걸 버리고 가?! 뭐 이딴 자식이 다 있어!”

씩씩거리며 화를 낸 그녀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작고 흰 손으로 금속 골렘을 끌어보려 애쓰지만 4미터에 달하는 거대 금속 골렘이 그녀의 힘에 이끌려 움직일 리 만무하다.

“끄응…….”

한참 동안 낑낑거리던 그녀는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옮겼다.

“할아버지한테 도와달라고 해야지…….”

야단 좀 맞겠지만, 별다른 수가 없다.

“그 자식 다음에 만나면 걷어차 버릴 거야.”

자신을 버리고 간 인정머리 없는 그 소년을 향한 분노를 곱씹으면서 말이다.

* * *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녀를 헌신짝 버리듯 버리고 떠난 나는 본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도시국가의 명물인 전망대를 포함한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어차피 그 괴팍한 기술자 드워프가 공방에서 나오기 전까지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괴짜 같은 장인들은 자신들의 공방에 누군가를 들이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편이다. 그런 마당에 자신의 작업을 누군가가 방해한다면?

일단 에디손이라는 이 드워프와는 협조적인 관계를 맺을 생각인 만큼 그들의 사상에 가장 크게 문제가 될 요소는 건드리지 않을 생각이다.

그것이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나름의 존중이었으니 말이다.

“은사! 기다리고 있었소.”

신비로운 도시의 풍경을 내려다본 것으로 상당히 만족한 페르세르크를 데리고, 페리홀크(창조의 공방)로 돌아오자 나는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나를 반기는 드워프 노인을 만날 수 있었다.

골고다 장로였다.

“제가 너무 늦게 왔나요?”

“아니올시다. 방금 연락을 받고 금방 도착한 참이오. 이 까칠한 노친네, 내 이럴 줄 알았지.”

씩씩거리며 말하면서도 특유의 술병을 가지고 있는 골고다 장로를 보아하니 그와는 제법 오랜 악연이라는 느낌이었다.

“에잉! 어떤 놈팡이가 나를 자꾸 부르는 게야!”

그때였다.

공방의 문이 열리며 먼지투성이의 드워프 하나가 천천히 걸어 나와 소리친 것이다.

갑작스런 소란에 시선이 몰릴 법도 하건만 익숙하기라도 한 것인지 그 누구도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에잉! 망할 영감탱이! 불렀으면 재깍재깍 튀어나와야지 공방에 처박혀 있는 꼬락서니 하고는!”

골고다 장로의 역정에 허리춤에 매어둔 장도리를 뽑아 들고 화를 내던 드워프 노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엥? 황색 똥자루 아니야!”

“그래, 나다 이 영감탱이야!”

이를 부득부득 갈며 서로 멱살을 잡고 싸우는 모양새에 당황한 이들이 그제야 나서기 시작했지만 말리기도 전에 싸움은 허무하게 끊어져 버렸다.

“황색 똥자루가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와!”

“그놈의 잘난 공방에 디켄티 산 맥주는 필요 없으시다?”

“누가 필요 없다고 했나!”

누가 훔쳐가기라도 하듯 주변 시선을 살피며 골고다 장로가 내민 술통을 빼앗아 든 그가 익숙하게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는 냄새를 맡더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하구만. 그런데 똥자루, 여긴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은 얼어 죽을 노망난 노친네가! 내 은사께서 자네를 찾아간다고 서신까지 보내지 않았나!”

그 말에 푸른 수염의 드워프, 에디손이 내게 시선을 돌렸다.

“커흠! 그, 그랬던가?”

“에잉! 노망이 나도 곱게 나야지!”

분한 듯 화를 내는 그 행동거지에 에디손이 황당하다는 듯 골고다를 바라보았다.

“똥자루, 자네가 인간 애송이를 이리 두둔할 줄 몰랐는데.”

“네놈은 귀가 막힌 게야? 은사를 인간 애송이라고?! 네깟놈 10수레가 와도 은사의 지식에 비할 바가 되는 줄 아느냐! 오늘 내 손에 죽어 볼테냐?!”

“뭐, 뭬야?! 오냐 이 망할 똥자루야! 덤벼! 덤비라고!”

악을 쓰며 다시 싸우는 그 모양새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대단한 양반들이네.”

싸움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대체 어디서 힘이 솟아나는지 서로의 수염을 잡아당기고 서로를 바닥에 매치는 등 아주 개싸움이 따로 없어지자 보다 못한 창조의 공방 관련인들이 달려들어 두 드워프 노인을 떼어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싸울대로 싸운 두 노인은 중재 되었고 나는 골고다 장로와 함께 그의 개인 접견실로 향할 수 있었다.

기술고문.

비록 총장은 아니지만, 총장급의 대접을 받는 그다웠다.

“커흠! 나 에디손이오.”

“데이비 올 라운이라 합니다. 대륙의 유명한 발명왕을 만나 영광이네요.”

“흥, 대륙의 영웅이라지? 그래. 그 잘나신 분이 나 같은 늙은이에게 무슨 볼일이 있나.”

시시콜콜한 잡담을 내팽개치듯 그가 말하자 역정을 내는 건 골고다 장로였다.

“에잉! 이 영감탱이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닥쳐 이 똥자루야! 여긴 네놈이 날뛰어도 될 곳이 아니야!”

“허!”

분하지만 틀린 말이 아니었는지 골고다 장로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이걸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이윽고 나는 마법 처리된 새하얀 종이 위에 그려진 극도로 정교한 물건의 설계도를 그에게 내밀었다.

내가 만든 수백 장의 설계도 중 가장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부품의 설계도였다.

동시에 그의 표정이 진지함으로 굳어졌다.

“흐음?”

“이건…….”

“아닐세, 내가 직접 보지.”

담담하게 말한 그가 설계도의 한 축부터 천천히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제법, 참신하구만.”

그렇게 한참 시간이 흘렀을까.

그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완벽하진 않지만 제법 정교해. 보아하니 마나석을 이용한 에너지를 끌어내는 시스템 같은데…….”

“완벽하지 않다라…….”

내가 말끝을 흐리자 그가 설계도를 탕탕 두드리며 물었다.

“애송이, 그래서 이걸 내게 보여주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걸 만들려고 합니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손이 많이 가지만 푸른 바위 드워프 분들의 도움이 필요해요.”

손이 많이 가니까…….

뒤이어 이어지는 내 말에 그가 눈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내게 푸른 바위 놈들을 소개해달라?”

“틀린 말은 아닙니다.”

“이 설계도는 누가 만든 거지?”

“은사님이 직접 만드셨다! 이 노망난 노친네야!”

“똥자루는 빠져있어!”

진지하게 말한 그가 나를 바라본다.

“이걸 네 녀석이 직접 만들었다고?”

“예.”

“이봐, 애송이……. 아니, 이런 걸 만들 정도라면 애송이라 부를 수도 없겠군. 어지간히 허파에 바람 찬 똥 덩어리들보다 훨씬 나아.”

담담하게 말한 그가 조용히 말했다.

“우리 푸른 바위 놈들을 찾는 건 아마 드워프 중에서 이처럼 정교한 것을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이가 푸른 바위 드워프뿐이라서겠지?”

“예. 서신에 보낸 대로 흥미로울 거로 생각하는데요. 어떤가요.”

푸른 바위 드워프나 에디손은 황색 바위 때와는 사정이 다르다. 그렇기에 마냥 갑의 위치에서 누를 계제가 아니었다.

“아직 상황을 모르나 본데, 미안하지만 푸른 바위 드워프들은 지금 이런 작업에 매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닐세.”

그 말에 골고다 장로가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말인고?”

“다 뒤져나자 빠졌거든.”

그 말에 주변에 분위기가 차갑게 식었다.

“다 죽었다고? 대체 무슨…….”

“말 그대로네. 벌써 몇 년 전에 역병이 나돌아서 모조리 죽어버렸지. 내 손녀딸의 친부모도 그때 마을의 병을 치료하겠답시고 갔다가 다 죽어 나자빠졌으니.”

혀를 쯧쯧 차는 그의 말에 나는 한숨이 나왔다.

가장 중요한 인적요소가 이렇게 모두 사라진 것이다.

돌림병에 의해 전원 사망이라니, 웃기지도 않는다.

“미안하지만 그들을 소개해줄 순 없겠어. 뭐, 묘비 정도는 소개해줄 수 있지만.”

죽은 이들의 도움을 받을 순 없다. 결국, 시작부터 삐걱거린 셈이다.

“그럼, 에디손 기술고문께서 도움을 주실 순 없는지요.”

“뭐? 하하하. 이봐, 애송이 왕자님.”

“이, 이 영감탱이가?!”

격노한 골고다 장로가 뭐라 소리치건 말건 에디손은 무시한 채 내게 말했다.

“내가 왜 자네에게 이게 완벽하지 않다고 말했는지 아는가.”

그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어르신의 식견은 제가 쉽게 파악하기 쉽지 않네요.”

“이것 보게.”

그는 느긋한 어조로 내가 만들어둔 설계도 일부분을 가리켰다.

모두가 현재 이 대륙의 기준으로는 구현 불가능한 기술이나 소재들이다.

“내가 말하는 뜻을 알겠는가. 자네 제법 재능이 있다는 것에 놀랍긴 하지만 이건 공상에 지나지 않아.”

그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흥미로운 것을 보여줘서 나름 유익했구만. 그 외에 시도 자체는 좋았네.”

“이, 이 노친네가! 지금 은사가 만드신 설계도를 무시하는 게야?!”

“쯧쯧, 나이를 먹더니 현실과 공상도 구분 못 하나?!”

“할 수 있다면요?”

내 질문에 그가 킥킥 웃어 보였다.

“몽상가는 싫어하지 않지. 하지만 가끔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도 있네. 자네가 내민 이 설계도가 대체 어디에 쓰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루어지기까지 수십 년이 걸릴 물건이라면 실현 불가능과 다를 게 없네.”

“흠…….”

“게다가 자네는 푸른 바위의 도움을 받으려 한 거 아니었나. 내게는 인정을 받아봐야 무슨 의미가 있나.”

“어르신께서 도와주시면 더 좋을 수도 있지요.”

“내가? 하하하하, 미안하네. 흥미가 가는 건 사실이지만 지금 거기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어.”

그 말에 골고다 장로가 눈을 가늘게 떴다.

“영감쟁이, 또 빚더미를 뒤집어쓴 게냐?”

“뭐, 내가 어리석었지. 빚이 상당해. 그래서 이번 경합에서 이기지 못하면 내 손녀가 곤란한 상황이라서 말이야.”

그의 목소리엔 묘하게 씁쓸함이 어려있었다.

“경합이요?”

“그러네. 겉으로는 내가 총장급의 대접을 받느니 뭐니 하지만 진짜 총장의 입장에선 내가 아주 때려죽일 놈인 게지. 게다가 빚이 상당히 많이 쌓여서 어쩔 수 없이 경합을 받아들였네.

에디손이 이기면 도시국가에서 빌려준 돈을 변재해준다.

반대로 총장이 이기면 빚을 갚을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그의 기술고문직을 파한다.

“그뿐만은 아니네요.”

내 말에 그가 나를 들여다본다.

“자네, 혹시 독심술도 하나?”

“아뇨. 딱히 자리에 얽매일 분은 아닌 것 같아서요.”

자리에 얽매이지 않는 양반이 이토록 필사적인 걸 보면 뭔가 더 있다는 소리다.

“이 도시국가의 왕에겐 아들놈이 둘이 있네. 세력이 약해빠진 2 왕자 놈과 총장을 등에 업고 세력이 강한 첫째 놈이 있지.”

그렇게 말하던 그가 떨떠름하게 몸을 일으켰다.

“이런, 내가 쓸데없는 이야기나 했군. 그래, 자네가 보여준 건 제법 흥미롭네만. 공상은 공상으로 치부하는 게 맞아. 게다가 설사할 수 있다 해도 지금은 불가능하네.”

그때였다.

덜컥!!

“이보게, 에디손 있는가.”

접견실 문이 벌컥 열리며 희끗희끗한 수염을 가진 노년의 사내와 젊고 덩치가 큰 소년이 걸어들어왔다.

“애송이들.”

그 모습에 에디손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손님이나 맞이할 만큼 여유가 있나 봅니다? 경합까지 며칠 남지도 않았는데.”

그 말에 에디손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아직 네깟 애송이놈들에게 일인자의 자리를 내놓을 만큼 늙지 않았다. 썩 꺼져라!”

그 외침에 노년의 사내가 낄낄 웃었다.

“이쪽은 이미 거의 다 완성했지요. 하지만 그쪽은 뭐 별거 없지 않습니까. 기본 뼈대조차 만들긴 했습니까?”

“큭…….”

“경합은 나흘 뒤입니다. 패배하고 기술고문직에서 박탈당해 연금학파에서 축출될 모습이 기대되는군요. 껄껄.”

노인에 이어 덩치가 큰 소년이 자신의 비대한 몸을 이끌고 그에게 닥가와 손을 내밀었다.

“뭐, 경합은 그저 구경하는 거지만 결과는 뻔해 보이니 별말 안 하겠습니다. 에디손 기술고문, 티아라 남작영애와의 혼사.”

그 말에 에디손의 얼굴에 불이 튀었다.

반사적으로 골고다가 그의 어깨를 잡아 짓누른다.

“으억?!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영감탱이야!”

“내가 자네를 모를 줄 알고?!”

“혼사?”

“음? 그쪽은 아직도 남아있었나?”

마치 없는 사람 취급하는 그 행태에 나는 느긋하게 소년을 바라보았다.

“뭐, 관계가 없진 않아서 말입니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건지도 모를 놈이…….”

짧게 침묵한 그가 손에 쥐고 있던 공구를 내게 집어 던졌다.

“내가 감히 누군 줄 알고!!”

빠악!!

묵직한 타격음이었다. 소년의 행동에 깜짝 놀란 에디손이 뭐라 소리치려던 찰나.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쓰러진 것은 내가 아닌 소년이었다.

이마에 커다란 붓기가 돋아난 것을 보니 그가 던진 게 내가 아니라 자신의 머리를 때린 모양이었다.

겉보기에 그렇게 보이는데.

사실 나는 그가 던지는 공구를 낚아채 역으로 던져준 게 전부였다.

“혼사라는 게 혹시 그 두 번째 이야기입니까? 이야기는 오는 길에 들었습니다. 손녀분이 계시다고.”

“아…….”

짧게 침묵이 오간다.

“와, 왕자님! 왕자님 정신 차리십시오!!”

다급한 얼굴로 소리친 노년의 사내. 그리고 기절한 듯 초점을 맞추지 못하던 소년이 천천히 일어났다.

“감히…….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격노한 소년이 허리춤에 검을 뽑아 든다.

동시에 륀느가 손을 뻗어 그의 검을 맨손으로 낚아챘다.

“무슨?!”

챙캉!!!

동시에 륀느가 손을 비틀어 그의 검을 맨손으로 부순 뒤 라이트세이버를 소환해 그의 목에 겨누었다.

“데이비님, 처리를 요청해.”

“됐어. 내버려둬.”

담담하게 말한 내가 그에게 다가간다.

“이봐. 누군지 알고 건방지게 말하냐고?”

“윽?!”

뭔가 심상찮음을 깨달은 소년이 눈을 부릅뜨고 나를 바라본다.

“반대로 묻지, 네놈은 내가 누군지 알고 건방지게 공격을 가했나?”

“뭐, 뭐라?”

“연금학파 본산이 있다고 겁을 잃었나? 상대가 누구이건 확실히 알기 전엔 조심했어야지.”

담담하게 말한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봐요, 연금학파 총장님.”

내 말에 노년의 사내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하인스 영지와 거래 중단하고 싶어요?”

내 말에 그가 눈을 부릅떴다.

연금학파는 말이다.

달의 풀 사업 이외에도 에오니샤가 만든 여러 발명품의 저작권, 혹은 판매권을 일정 사들여 대량의 수익을 올리는 중간 판매를 하고 있다.

어떤 의미로건 현재 하인스 영지가 상당히 갑이라는 소리였다.

“그 외에 하인스 영지에서 연금학파에도 상당량의 자금을 지원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정확히는 에오니샤의 발명에 도움이 되라고 여러 물자를 지원받을 겸 지원금을 보내고 있었다. 그 양이 마냥 적진 않다.

그뿐일까. 연금학파는 여러 분야에서 나와 친밀히 지내는 국가와 거래 중이다.

문제는 그 국가들이 내게 빚을 지고 있다는 것.

더럽다고 해도 나는 이 세상에 속해서 살아가는 일부분이다.

인맥이란 말이다.

이렇게 써먹는 거다.

“거래 그만둘래요?”

그제야 내가 누구인지 깨달은 노년의 사내가 파랗게 질렸다.

“데, 데이비 올 라운 왕자!”

“알면 지금 뭐가 문젠지 알겠네.”

거대한 거래처 대표이사의 얼굴에 폭언한 것도 모자라 소국의 왕자가 대놓고 타국의 왕자에게 면박을 주고 공격을 가했다.

“그리고, 타국의 왕족에게 흉기를 휘두른 사건이 퍼져나가면 퍽 재밌겠네요.”

담담하게 말하며 나는 얼어있는 비대한 체격의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렇지? 개자식아.”

억울하면 국제사회에 엄청난 입지를 만들어놔. 그게 아니면 함부로 덤비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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