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74화
‘저 두 사람 모두의 도움을 좀 받아야겠네.’
내가 생각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워낙에 거대하다 보니 설계도를 이해하고 작업할 수 있는 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에디손 혼자로썬 조금 불안한 감이 있었는데 저런 천재 소녀가 하나 있다면 이야기는 쉽게 돌아간다.
쾅쾅쾅쾅!!!
그때였다.
더 이상 사람이 찾아올 일 없는 공방의 문에서 인기척이 크게 들려왔다.
“에디손 영감!! 나요! 납니다! 프란시스요!”
남성의 외침에 작업을 하던 티아라와 에디손의 고개가 돌아간다.
“이 목소린…… 프란시스 아저씨?”
“에잉? 그놈이 여긴 왜…….”
짧은 다리로 뒤뚱뒤뚱 걸어 공방의 문으로 향한 그는 곧이어 문을 확 밀어 열어젖혔다.
콱!!
“으악! 내 코!!”
비명을 지르며 문에 얼굴을 맞은 사내가 바닥을 뒹군다.
댁들 지금 개그 쇼합니까?
황당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바깥을 바라보던 나는 곧이어 무슨 대화를 했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이는 에디손과 함께 들어오는 사내를 볼 수 있었다.
구면인 사내였다.
이전, 전쟁 사후 돌림병이 돌았을 때 그곳에서 만난 사내였다.
생명공학의 수석연구원이었던 페니실린을 찾아왔던 연금학파의 장로로 인형제작사라는 말이 있을 만큼 이름이 있는 사내였다.
겉보기엔 제법 굉장히 무뚝뚝하고 차가운 인상이었다.
공방에 들어서자마자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는 곧이어 나를 발견하더니 굳은 얼굴로 마치 사생 결단이라도 낼 듯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 표정에 내가 약간 경계심을 숨기며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데이비 왕자님이십니까?”
“네, 맞습니다.”
“당신을 꼭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제대로 약속 한 번 잡을 수가 없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이런 천운이 따라주는군요! 부디 제게 악수 한 번의 기회를!!”
갑자기 내게 손을 내밀며 고개를 숙여 보이는 모습에 내 얼굴에서 얼이 빠졌다.
뭐라고?
* * *
인형제작사 프란시스의 괴이쩍은 행동에 당황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어머나, 저 아재 왜 저래요?”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리는 티아라의 중얼거림에 프란시스가 눈을 번뜩이며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냐니! 티아라! 이분이 어떤 분인지 몰라서 그러느냐?! 응당 연금술을 익히는 이라면 이분의 재능을 알아봐야 하는 법이다!”
그 외침에 티아라의 곱디고운 하얀 이마가 찌푸려진다.
그러더니 검지로 머리를 빙빙 둘렸다.
“아재, 혹시 돌았어요?”
“어허! 귀족 가의 아가씨가 그런 상스런 말투라니!”
“아니, 그게…….”
기가 막히는지 티아라가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프란시스는 나를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심히 부담스러울 정도의 존경심이 비치는 눈빛이었다.
“저, 무슨 오해가 있으신 듯한데.”
“아닙니다! 저는 줄곧 당신을 찾아온 게 맞습니다! 마침 총장의 부름을 받고 이곳으로 왔다가 왕자님이 이곳에 계시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뛰어온 겁니다.”
그는 자신의 품 안에서 작은 종이 한 장을 꺼내놓았다.
꽤 낡았지만, 어찌나 소중하게 보관했는지 종이를 펼치는 그의 손이 파들파들 떨릴 지경이었다.
“이거! 이거! 왕자님이 하신 거 맞습니까?!”
그의 말에 나는 그 내용물을 확인하고 눈을 가늘게 떴다.
‘거봐, 데이비, 그대가 낙서한 게 그대로 들켰구만.’
그것은 생체 골렘에 대한 학술서 내용과 초기 도안이었다.
물론 평범한 기술력인 만큼 제대로 된 물건은 아니기에 이미 두 차례 완성된 에나벨이나 메라몽 같은 생체 골렘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저급한 생체 골렘의 설계도였다.
문제는 내가 장난삼아 낙서하듯 써 갈겨놓은 지적과 피드백이었다.
그 외에 추가로 낙서하듯 그려놓은 것들까지 보인다.
“저는 그때 새로운 세상을 보았습니다! 당신 덕분에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어요!”
그의 외침에 티아라가 양손으로 제 팔을 끌어안고 파르르 떨었다.
“할아버지, 저 아재 이상해……”
“저놈 이상한 거야. 어디 하루 이틀 보느냐.”
그런 주제에 그쪽 두 사람도 정상인이라고 보긴 좀 그렇지?
굳이 입 밖으로 그 사실을 꺼내진 않았다.
“이건……”
“괜찮습니다. 이미 페니실린을 통해 이야기를 다 들었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괜히 장난을 쳐놓은 게 나비효과가 되어 돌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다 알고 왔다면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다.
“뭐, 그러해요.”
“역시!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토록 새로운 방식의 시도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는 대단한 연금술 실력가다. 하지만 그래 봐야 유르기안 대륙의 기술력, 그리고 연금술사 스승이었던 이바의 지식이 뒤섞인 그런 장난스런 간단한 코멘트 조차 경악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에잉! 쓸데없는 소리나 하려면 냉큼 나가버리게! 지금 은사는 매우 바쁜 몸이라 이 말이야!”
언제부터 은사가 되었습니까?
“쯧쯧, 저 노망난 영감탱이. 언제는 애송이니 뭐니 하더니 언제부터 은사가 되었다고.”
내 그런 심정을 대변하듯 골고다 장로가 혀를 쯧쯧 찼다.
“새로운 것을 깨우쳐 준 존재라면 존경받아 마땅하지!”
에디손의 외침에 프란시스가 눈을 번뜩였다.
“영감님! 영감님도 드디어 알아내신 겁이니까?! 이분이 범상치 않은 분이라는 걸 말입니다! 내 이럴 거라 생각은 했습니다! 비록 분야는 다르지만 이만한 지식을 가진 분은 대접받아 마땅하지요!”
마치 신을 영접한 광신도 마냥 무릎을 꿇고 양손을 들어 올리는 그의 행각에 에디손이 한심하다는 듯 바라본다.
하지만 그런 그를 제지하진 않았다.
“대접받아 마땅하지, 암!”
그러면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도 프란시스와 똑같이 내 앞에서 똑같은 행태를 취하고 있다.
멍하니 두 사람을 바라보던 티아라는 한참 동안 복잡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슬쩍슬쩍 다가와 에디손의 곁에 착 달라붙어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할아버지, 이렇게 하면 돼?”
“암! 그렇게 하면 된다! 티아라!”
“우와, 나 할아버지가 이렇게 사람을 인정하고 따르는 거 처음 봐…….”
그러면서도 티아라 또한 마찬가지로 기이한 행각을 취하고 있으니 그걸 지켜보는 내 입장에선 황당함만이 다가온다.
연금술사들은 하나같이 제정신이 아니라더니…….
* * *
연금학파의 장로 프란시스는 그 후로도 떠나지 않고 내게 이것저것 말을 걸어왔다.
주로 내가 남겨놓은 코멘트를 그만의 방식으로 해석한 것이 맞는지 물어보는 게 대부분이었다.
“이 미치광이 놈이?! 냉큼 꺼져버리게! 뭐하는 겐가!”
“아, 아니! 잠깐만요! 이것만! 이것만 더 확인하고…….”
그 열정이 놀라울 정도로 순수하기에 나는 그를 배척하기보다는 간단하게 그의 질문에 대답해주는 대처를 보였다.
“꺄악! 세상에 프로탄 합금이 이렇게 가벼워도 되는 거야?!”
“아직 가열요소가 남았다고 판단. 륀느가 그것을 이리 가져오라 명시해.”
공방에서 이리저리 작업하는 이들을 뒤로한 채 옥신각신 투닥거리던 중이었다.
“역시 경합은 애초에 결과가 정해져 있었군요. 아직 뼈대도 완성되지 않았지만 이런 식의 시도에 이 속도라면 결과는 안 봐도 뻔합니다.”
프란시스의 거의 광신도 같은 믿음에 에디손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건 또 무슨 소리여.”
그 말에 프란시스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렇군, 따로 이야기하지 않았군.”
담담하게 말한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총장, 그 인간이 나를 불렀습니다. 정확히는 듀란 왕자가 저를 찾았지요.”
그는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경합에 내가 에디손을 조력한다는 것을 빌미로 프란시스를 불러 자신들을 돕게 하려 했다는 웃기지도 않은 내용이었다.
“천하에 때려죽일 놈들! 제 잘못으로 페널티를 받은 주제에 몰래 뒤에서 반칙을 쓰려 들어?! 그래서! 자네는 그것을 받아들였나?!”
그 외침에 프란시스가 고개를 돌린다.
“처음엔 흥미가 좀 갔지요. 영감님과 경합하는 게 어디 쉽게 오는 기회인가.”
“에잉! 빌어먹을 놈!”
“물론, 거절했습니다. 데이비 왕자님이 이곳에 있다는 걸 들었거든요.”
그가 나 잘했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단순 호승심 때문에 반칙에 손을 거드는 것보다 왕자님을 만나 뵙고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게 훨씬 백배 천배 더 유익하지요. 암!”
분명 그를 처음 만났을 땐 이러지 않았다.
그는 무겁고 중후한 인상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모습을 보면 단순 푼수 같은 기술광의 모습이었다.
“자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여기 와서 해도 괜찮은가? 총장이 적이 많다지만 듀란 왕자와 총장을 대놓고 적으로 돌리면…….”
“까짓거 연금학파에서 위치가 흔들리면 그만두면 되지요. 연금술이 어디 장소와 직위에 구애받아서 한 일입니까? 나가라 하면 나가면 됩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 그는 다시금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던 설계도 대신 다른 설계도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데이비 왕자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것에 대한 피드백도 부탁드릴 순 없겠는지요.”
“글쎄요.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올지는.”
“하하하하! 겸손이 지나치십니다! 간단한 것이라도 좋습니다. 부디 그 금 같은 지식 일부를 제게 보여주십시오.”
그 말에 나는 그가 내민 설계도를 바라보았다.
금속 골렘을 다루는 에디손이나 총장과는 다르게 그는 인간과 흡사하면서도 금기를 어기지 않는 범위의 골렘을 만드는데 일생을 바치는 장인이었다.
확실히, 내가 남겨놓은 코멘트 덕분인지 이전보다는 확연히 발전한 것들이 보인다.
“처음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은 것들도 있었습니다. 솔직히 불가능하거나 틀렸다고 생각한 것도 있었지요. 헌데, 직접 실험을 해보고 깨달았습니다.”
당신이 옳았다는 것을요!
부담스러울 정도로 나를 찬양해대는 모습에 외려 내 표정이 오묘하게 찌푸려진다.
이런 분위기에 익숙하진 않은데…….
괜히 머쓱해진 기분에 나는 그가 내민 설계도를 바라보다 눈을 가늘게 떴다.
“뭐, 시간이 마냥 촉박한 것도 아니니 잠깐 정도는 봐 드릴게요.”
내 말에 그가 눈을 크게 떴다.
“감사합니다! 데이비 왕자님! 허면, 저는 그동안 영감님의 작업을……”
“아뇨, 손대지 마세요.”
내 말에 그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네? 아 물론 왕자님의 입장에서 저 같은 비루한 기술자는 별로 눈에 차지 않으실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제가 이래 봬도 장로직에 있는 연금술사입니다. 시키는 것이라면 해낼 자신이 있지요.”
“그게 아니라 빌미를 주게 될 겁니다. 저야 합의된 내용이니 이렇게 참가해서 도와주는 것이지만 프란시스 장로님은 아니잖아요?”
내 말에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군요.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헌데, 시일이 나흘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 정말 괜찮을는지요. 더 늦기 전에 한 손이라도 거드는 것이……”
“충분해요.”
그때였다.
륀느의 잔뜩 흥분한듯한 외침이 들려온다.
“륀느가 오함마를 높게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