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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475화 (474/1,559)

제 475화

“꺄악! 조, 조금만 천천히! 미친! 놓칠 거 같아요!”

륀느의 신들린 오함마질에 새빨갛게 달궈진 금속을 집게로 잡고 있던 티아라가 비명을 지른다.

“누가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그 말에 프란시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런 어리석은 판단을 하지 않았으면 하지만, 공공연한 비밀이지요. 경합의 끝이 다가오는데 골렘의 뼈대도 제대로 만들지 못할 영감이 아니니까요. 본인은 아무 말 안 하고 있지만 아마 굉장히 방해를 많이 받았을 겁니다.”

이번에도 하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그래야지요. 조력이라는 건 여러 의미로 써먹을 수 있으니까요.”

문자 그대로 작업을 돕는 건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다. 방해하는 놈을 쳐 잡아버릴 명분이든, 그 끝에 있는 원흉을 작살내던 말이다.

“자, 이 정도면 어떤가요.”

내가 적당히 코멘트와 지적사항을 남긴 설계도를 그에게 건네주자 그는 마치 신물이라도 받은 신도처럼 눈을 크게 뜨고 내게 무릎을 꿇어 보인다.

“아니 그러니까 무릎 좀 그만 꿇으시라고.”

“아아……, 이것은 이것은 은총이 아닌가!!”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니 괜히 신경 쓰는 내 위가 아파질 지경이었다.

연금술사들은 하나같이 미치광이들이라더니.

* * *

총장과 손을 잡은 듀란 왕자는 손에 쥔 포도주잔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가 바라본 침대엔 잔뜩 죽은 표정을 한 채 나신으로 누워있는 두 명의 여성이 보였다.

두 사람 모두가 왕성에서 일하는 하녀들이었다.

제법 반반해서 데려와서 거사를 치른 것은 좋은데, 영 집중할 수가 없다.

“역시 그냥 넘길 수 없겠어.”

총장은 겁이 너무 많아졌다.

과거엔 겁이 없을 정도로 대단한 양반이었는데 요즘에 와서는 에디손이나 그와 관련된 일을 할 때 상당히 소극적인 면모를 보여주곤 했다.

그래선 곤란하다. 근본 모를 천한 이종족에게 밀려서야 왕족의 근엄함이 살지 않는다.

포도주잔을 내려놓은 그는 천천히 걸어가 침대 위에 늘어진 한 여성의 뺨을 툭툭 건드렸다.

역시 별로다.

그의 마음에 꽉 들어찬 것은 오로지 한 소녀뿐이었다.

활기찬 미소에 사고를 몰고 다니는 것으로 왕성에 소문이 자자한 사고뭉치.

대륙 6대 미녀 중 한 사람인 남작가의 아가씨이자 현재 기술고문 에디손의 양손녀 티아라.

그녀는 너무 아름다웠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부터 다른 여인을 안아도 마음이 동하질 않았다.

처음 그녀를 만난 것은 연회장이었다.

붉은빛 드레스가 영 익숙지 않은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던 그녀를 처음 봤을 때, 듀란 왕자는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가히 나라를 기울 수 있게 할 정도의 미를 지닌 여인.

어떻게든 그녀를 자신의 부인으로 만들어 매일 밤 침대에서 귀여워 해주고 싶은 검은 욕망이 넘실넘실 올라왔다.

상황은 그의 편이었고 이래저래 다되었는데.

이제 쐐기만 박으면 끝나는 것인데 하필 방해꾼이 나타났다.

데이비 올 라운.

대륙의 성자.

영웅이면 영웅이지 왜 이곳까지 와서 제멋대로 군단 말인가.

기분이 상한 그가 쓰러진 하녀의 뺨을 가볍게 쳐올렸다.

“윽…….”

“꺼지거라. 흥미가 동하지 않으니.”

듀란의 말에 하녀들은 멍한 얼굴로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옷가지를 쥐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래, 모든 것은 이렇게 되어야 한다.

모두가 곧 이 나라의 왕이자 연금학파의 고위직에 있는 자신을 따라야 한다. 다른 곳도 아닌 이 나라에서만큼은!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총장은 겁을 잔뜩 먹었지만, 세상에 어디 정직한 일로만 먹고 사는 게 가능할 리 없지.”

데이비 왕자라는 그놈은 너무 겁이 없었다.

호랑이굴에는 호랑이의 법칙이 있는 법.

세상에 100퍼센트와 0퍼센트 따윈 없다는 것을 보여주리라.

제아무리 뛰어난 자라도 경합에 내야 할 작품이 사라지면 별수 없는 법이다.

물론 그를 무력으로 어떻게 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듀란도 소식을 들어서 알고 있으니 말이다.

괜히 잘못 건드려서 피를 볼 이유는 전혀 없었다.

“알카에다.”

그 말에 어둠 속에서 검은 복면을 쓴 사내가 스르륵 나타났다.

“늘 그렇듯 한 번 더 절망을 안겨줘라.”

이전에도 그랬다.

쓸데없이 겁을 먹는 총장 때문에 듀란 왕자는 암살자 길드를 고용하여 기술고문 에디손이 만들던 작품을 한 차례 박살 낸 적이 있었다.

당연 에디손이 역정을 냈고 그를 찾아와 항의했지만, 증거도 없는데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건 본래 총장의 방식이었다.

늘 그렇게 해왔듯 이번에도 그러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불가합니다.”

갑자기 충실한 심복인 알카에다가 그의 명령에 불복한 것이다.

“뭐라?”

잔뜩 싸늘해진 얼굴로 듀란이 그를 노려보자 복면을 쓴 알카에다의 눈이 번뜩였다.

“지금 그 명령을 받아들였을 때 자칫하면 저희 정보길드 전체가 날아가 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그 말에 듀란의 얼굴에 황당함이 어렸다.

“뭐라고? 언제부터 네놈이 내 명령에 토를 달게 되었지? 돈을 받았으면 받은 만큼 일하면 되는 거다!!!”

열이 뻗친 그가 포도주잔을 그에게 집어 던졌다.

씩씩거리는 소리와 유리잔이 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머리에 잔을 맞고도 묵묵히 부복하고 있던 알카에다의 눈에 서늘함이 어렸다.

“이 사안은 저희 암흑가의 공통 규칙입니다.”

담담하게 말한 그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어째서 하지 않겠다는 거지?”

“건드리면 안 되는 인물이 있으니까요.”

그 말에 듀란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돈만 주면 부모·자식 간에도 칼부림을 일으키게 하는 악랄한 놈들이 설마 영웅이라고 감싸는 건가 싶어 헛웃음이 났다.

“네놈들이 얼마나 더러운 놈들인데 설마 대륙의 영웅이라는 이유로.”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담담하게 말한 알카에다가 서늘한 눈빛으로 듀란을 바라보았다.

이에 듀란의 몸이 의미 모를 한기에 움찔거렸다.

“그를 건드리면 저희 길드 전체가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는 소리입니다. 제아무리 돈만 받으면 뭐든 하는 것이 저희라지만 그렇게 되어선 아무런 의미가 없지요.”

그 대답에 듀란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니 하고 싶으시면 직접 하십시오. 이번 일에 저희는 더 이상 도움을 드릴 수 없습니다.”

“네, 네놈이!”

“저희 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전해지는 말이 있습니다.”

차라리 드래곤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밀고 말지.

그 말 그대로였다.

듀란의 표정이 분노로 붉으락푸르락 찌푸려졌다.

* * *

경합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다급해야 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에디손은 평소와 같은 모습이었다.

아니, 외려 평소보다 한층 편해진 표정이었다.

더러운 이 종족 주제에.

그렇기에 속이 비틀리는 건 오로지 듀란 왕자의 몫이었다.

정작 같이 두려움에 떨어야 할 총장은 벌써 작업실에 들어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 모든 게 프란시스 장로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그건 경합이 아니라, 그냥 찍어누르는 일방적인 싸움에 지나지 않는다는 그 말.

허언을 잘 하지 않는 프란시스 장로의 인간 됨됨이는 듀란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불안한 기색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올랐다.

총장도 아마 그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불안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는 것일 테고 말이다.

만에 하나 혹여라도 경합에서 패배한다면?

그땐 정말 상황이 곤란해진다.

자신의 입지는 물론이고 총장 또한 거센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다음 총장 선출이 시작되기도 전에 그의 잘못을 빌미로 총장의 자리에서 끌어내려 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듀란은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차기 국왕의 자리도 멀어질 것이고 그를 지원하는 세력기반도 힘을 잃게 된다.

무엇보다.

그가 눈여겨보고 있던 티아라를 손에 넣기가 어려워진다.

아직 약혼자가 없는 소녀이지만 그녀는 듀란 자신을 극도로 경계하고 싫어했다. 워낙에 밝고 사교성이 좋아 왕국의 명물이라 불릴 정도로 발이 넓은 아가씨다.

평민 귀족 가릴 것 없이 대부분 사람이 그녀의 엉뚱함과 활발함에 그녀를 좋게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정복욕.

그녀를 손에 넣고, 침대 위에서 그녀를 깔아뭉개는 건 그런 입장에 대한 메리트도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모든 것을 뒤로 제쳐놓고서라도 단순히 그 아름다운 소녀를 취할 수 있고 소유할 수 있다는 검은 욕망이 가장 컸지만 말이다.

‘이제 거의 다됐는데. 조금만 더 하면 그 년을 아래에 깔아뭉개고 앙앙 우는 꼴을 볼 수 있었는데!’

그 빌어먹을 놈이 모든 것을 흔들고 있다.

단순 존재만으로 이렇게 사람을 뒤흔드는 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총장.”

작업실에서 나온 총장을 발견한 듀란은 곧이어 피곤한 표정을 짓고 있는 총장을 발견했다.

“듀란왕자님.”

“작업은 어찌 되었습니까.”

“거의 마무리단계입니다. 솔직히 에디손 기술고문의 기술력이 못하진 않지만 지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그의 말에는 자신감이 어려있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그 왕자가 걸리는군요. 그가 만약 변수를 만들어낸다면……”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듀란이 음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골렘은 파괴될 것이고 그 빌어먹을 두 작자는 우리에게 무릎을 꿇을 겁니다.”

“어떻게 하시려고……”

“늘 그렇게 해오듯 해야지요.”

비록 심복 알카에다가 의뢰 착수를 거부했지만 그렇다고 두손놓고 있을 듀란이 아니었다.

“쓸모없는 손발이 말을 듣지 않으면 직접 나서는 수밖에요.”

나서서 놈들의 작품을 망가뜨리고 그들이 숨긴 히든카드를 훔쳐오면 된다.

증거를 남기지 않을 방법은 많았다.

“만약 데이비 왕자가 제가 모르는 요소를 가지고 기술고문에게 그것을 건네주었다면……, 그것만 막는다고 해도 경합은 충분히 압승이 가능하겠지요.”

“총장은 작업에만 몰두하세요. 그 외에 일은 내가 할 테니.”

서늘하게 중얼거린 듀란이 스르륵 움직였다.

빌어먹을 돈에 움직이는 정보 길드놈들은 믿을 게 못 된다.

기회는 기회였다.

마침 그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눈의 말에 따르면 데이비 왕자가 무슨 일로 인해 이 나라를 잠시 떠났다는 이야기였다.

그만 없으면 어려울 것도 없었다.

그러니.

고이 숨겨둔 자신의 히든카드를 꺼내 들 때가 왔다.

그는 자신의 서랍에 있는 작은 아티펙트를 꺼내 들었다.

고대 유적에서 용병들이 발견한 물건으로 꽤 비싼 돈을 들여 사들였던 물건이었다.

이거라면 그놈도 별수 없으리라.

* * *

어두운 창고.

에디손 기술고문의 작업 공방은 며칠 동안 불이 꺼지지 않았다.

계속된 작업이 이어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예 숙식 자체를 그곳에서 해결하는지 나오지도 않고 있다.

게다가 자신들을 배신한 프란시스 장로 그 빌어먹을 인간도 심심하면 그곳을 찾곤 한다는 움직임을 보고받은 바 있었다.

그가 손을 거들었다. 라는 명분을 내세워 경합을 취소시킬 순 있지만 그건 최후의 수단이다. 자칫 중립의 입장인 프란시스 장로까지 적으로 돌릴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어둠 속에서 투명한 형체가 스르륵 나타났다.

에디손 기술고문의 공방의 뒤편에 있는 커다란 창고.

그곳에 도달한 희끄무리한 형체는 곧이어 작은 움직임을 보였고 모습을 드러냈다.

다름 아닌 목걸이를 끼고 있는 듀란 왕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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