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81화
146. 경합, 압도적인 골렘의 차 (2)
변이된 육체는 상당히 단단했다.
어지간해선 머리통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공격인데 듀란의 머리통은 멀쩡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내부가 멀쩡하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륀느의 빠루를 포함한 타격무기들은 그녀의 힘에 연동되어 진화했다.
주로 진동영역으로 말이다.
초고진동을 순간적으로 육신에 가해 파괴력을 증폭시킨다.
단순히 그런 것만으로 저만한 폭음과 연기를 일으키는 건 말도 안 되지만 일차적으로 그런 능력이 있을 뿐 추가적인 능력에 대해선 나도 밝혀낸 바가 없다.
나름대로 신사적인 제압법으로 놈을 제압한 륀느가 손에 쥔 슬랫지해머를 붕붕 돌리더니 어깨에 척 올리고 나를 바라본다.
“륀느, 임무 완수를 보고해.”
“그래.”
“와, 왕자님!”
아직 주제 파악 못 하고 나대는 귀족은 있다.
급히 그에게 뛰어가는 한 사내를 보며 내가 조용히 말했다.
“선택 잘하고 가까이 가시죠.”
“읏…….”
“눈앞에 있는 게 당신의 사리사욕을 채워줄 왕위 계승자 중 한 명인지, 아니면 엮였다간 좋은 꼴 못 볼 뱀파이어의 변이체인지.”
“와, 왕자님께선 희생되신……”
“희생은 그런데 쓰라고 있는 말이 아닙니다.”
“……”
“보통 뱀파이어의 변이체는 스스로의 의지 없이 강제로 변이될 시 의지를 잃게 됩니다. 이성이 남아있었다는 건 스스로 그것을 받아들였다는 것이고요.”
이 말뜻.
아시겠습니까?
내 말에 주변이 침묵에 휩싸였다.
파랗게 질린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총장에게 시선을 돌린 내가 서늘하게 웃어 보였다.
“할 말 있습니까?”
내 물음에 그가 바들바들 떨며 고개를 떨구었다.
더 할 말이 있을 리가 없지.
* * *
남의 나라에 가서.
그것도 연금학파의 중요직인 기술고문을 빼돌려 하인스 영지로 오는 건 서류 차원에서도 국가 차원에서도 쉬운 일이 아니다.
총장은 결국 패배했다.
그럼에도 그는 듀란과는 달랐다.
마치 새로운 것을 발견한 것처럼 말이다.
그간 있었던 비리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물고 덤벼드는 하이에나 무리에게 갈기갈기 찢기듯 드러나 그는 결국 총장의 자리에서 사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 후임으로 총장 선출이 이어졌지만, 그것은 단시간에 정해질 만한 문제는 아니었다.
조용한 감옥, 그 안에서 나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던 총장과 대면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해주시지요. 데이비 왕자.”
“뭡니까.”
“그 설계도. 일부러 놔둔 겁이니까.”
뭔가 초연해진 듯한 그 질문에 나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그럼…… 그 이상도, 에디손 기술고문이 만든 골렘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런 기술의 극치를 보았습니까.”
그 질문에 나는 조용히 곁에 있던 륀느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륀느가 한쪽 팔을 들어다 가볍게 팔 부분을 조작했다.
아무것도 없던 새하얀 팔에 균열이 생기며 붉은빛과 푸른빛이 가득 들어있는 선들이 팔의 내부에서 드러났다.
“하……”
눈앞에 그 어떤 골렘보다도 압도적인 기술력을 지닌 결과물이 있었는데.
그 사실을 몰랐다는 듯 허탈하게 웃어 보인 그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후 에디손은 나와의 약속에 따라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하인스 영지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에디손은 티아라에게 타지 생활이 쉽지 않을 거라며 그녀를 놔두고 가려 했지만, 티아라는 당장에라도 울고불고 소리를 칠 것처럼 질색하며 그에게 따라붙었다.
애초에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페르세르크와 이미 눈치를 챈 후였으니 말이다.
“어서 오세요. 하인스 영지에.”
공간을 넘어 하늘을 환하게 비추는 환한 물줄기들이 보인다.
투명한 관을 통해 이동하는 물줄기는 영지의 한편에 있는 거대한 구체에 물이 담기며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지하수로에 이어 수질을 개선하고 일대 영역을 조절하는 거대한 수질 시스템이었다.
“세상에…… 너무 아름다워.”
연금학파의 본산인 포고스 왕국에서조차 볼 수 없는 그런 별천지 같은 모습에 티아라는 숨김없이 감탄을 내뱉었고 에디손은 허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 좁은 땅덩이 안에 이런 곳이 존재하는 줄 알았다면 더 빨리 왔을게요.”
“에헴! 내 말하지 않았나, 이 영감탱이야! 은사께서 어떤 분인데 노망난 노친네가 그걸 판단하려 들어!”
“에잉 성질 고약한 똥자루 같으니.”
투닥거리는 골고다 장로와 에디손 기술고문의 말을 들으며 걸음을 옮긴 나는 두 사람을 영주성으로 안내했다.
그 과정에서 티아라는 드워프에 이어 엘프, 수인족까지 다양하게 존재하는 하인스 영지가 마음에 들었는지 이리저리 둘러보며 즐거워했다.
“할배! 할배! 저길 봐! 엘프야 엘프! 꺅! 나 엘프 처음 봐!”
“에잉! 호들갑 떨지 마라!”
“우와. 예쁘다……. 엘프는 미인들이 가득하다더니.”
정작 본인은 그런 엘프들조차 질투할 미모를 지니고 있다는 감각이 많이 부족해 보였다.
“커흠! 누구 손녀딸인데 비교가 될성싶으냐? 이 할애비 눈에는 네가 제일 곱디곱다.”
“와, 할아버지. 나 속이 좀 메스꺼워.”
“에잉 고얀 것!”
투덜거리듯 고개를 돌려버리는 그 모습에 티아라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헤실거리며 그에게 다가가 애교를 피워댔다.
“영주를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는 영지민들이라……, 제법 인망이 두터운가 보군.”
“에잉, 이 망할 영감탱이가 또!”
“똥자루는 좀 빠져있어!”
티격태격하는 두 드워프였지만 에디손의 말에는 뼈가 담겨있었다.
“마냥 두려워한다고 영지가 잘사는 건 아니지요.”
그렇다고 너무 풀어지면 사공이 많아지니 조율은 중요했다.
“대답이 되었습니까?”
내 물음에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잘 보기 힘든 군상이로고.”
“그보다 기술자는 기술로 말해야지요.”
나는 티아라와 에디손을 데리고 곧바로 영주성의 지하 공방으로 향했다.
삐릭. 디셉티콘 편대 격납 공방으로 이동합니다.
마법 수정구에 손을 올리자 미리 저장된 소녀의 청명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동시에 커다란 철문이 뒤틀리더니 다른 문양이 드러났고 짧은 연기를 내뿜은 뒤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우와……”
생각 이상으로 세련된 공방의 모습에 티아라가 탄성을 흘린다.
반대로 에디손은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으로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이것들 말이오……. 은사.”
에디손이 나를 향해 물었다.
“전부 은사께서 만드시게요?”
“여기 드워프 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기술력을 물었소.”
“네.”
담담한 대답에 그가 허탈한 숨을 내뱉었다.
“기가 막힐 지경이군. 우물 안의 개구리가 따로 없으이…….”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공방의 안으로 들어갔다.
말없이 나를 따라 성큼성큼 걸어들어온 티아라와 에디손은 곧이어 넓디넓은 공방의 내부에 있는 것을 보고 입을 쩍 벌렸다.
“하, 할아버지, 저거……”
“으음……”
경악성을 숨긴 신음이 흘러나왔다.
디셉티콘 편대는 엄연히 말해서 둠과 비슷하지만 알만한 이가 본다면 반드시 눈치를 챌 만큼의 성능변화가 있다.
실제로 공방 내부에선 저거노트와 스나이퍼가 서로의 팔을 잡고 춤을 추고 있고 메가트론과 탱커가 팔씨름을 하고 있다.
날렵한 체격의 퓨마는 동물의 형태를 취한 채 당장에라도 튀어나갈 것처럼 몸을 풀고 있었다.
도저히 골렘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는 자율적인 행동들이었다.
“이, 이보시오, 데이비 은사……. 대체 이것들이……”
“정확히는 둠의 선배들이죠. 둠은 냉정하게 말하자면 다운그레이드된 버전이고요.”
그 상위 버전에 대한 정보를 내가 풀 리가 없다.
둠의 경우 이미 알려져 버렸으니 그 기술력의 일부가 어쩔 수 없이 누출되겠지만 디셉티콘 편대의 경우 외부에 유출할 생각이 전혀 없는 녀석들이었다.
“우와…… 세상에……”
기가 막힌다는 듯한 표정으로 춤을 추는 두 골렘을 바라보는 티아라였다.
그녀도 나름대로 골렘 제작에 일가견이 있는 연금술사였지만 그녀가 만든 것은 이들에 비하면 정말 말 그대로 고철이라 여겨질 만큼 수준의 차이가 극심하게 드러났다.
“저거…… 외부에서 조종하고 있는 건 아니죠?”
“정확히 말하자면 자율 행동이야.”
여러 방면에서 쌓은 빅 데이터를 이용한 움직임. 디셉티콘 편대는 이런 방식을 통해 문제점을 보완하고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었다.
“오오, 은사 오시었…… 에잉! 누군가 했더니 시퍼런 영감탱이잖아!”
“똥자루가 둘이구만!”
골고다 장로도 그러했는데 골다장로라고 다를까.
만나자마자 대뜸 욕설부터 내뱉는 두 드워프들의 모습에 티아라가 어색하게 웃음 지었다.
“오라버니, 오셨어요?”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작고 앙증맞은 안경에 백의를 입고 있는 10대 초반의 소녀가 내게 다가왔다.
에오니샤 올 라운.
티아라와는 다른 방식을 추구하는 희대의 천재로 세간에는 시계의 왕녀라 불리는 작은 소녀였다.
고작 10대 초반 나이에 대륙의 저명한 연금술사들도 생각지 못한 발명을 해내는 게 바로 그녀였다.
“다들 모여줬네.”
내 말에 에디손과 으르렁거리던 골다 장로가 나를 바라보았다.
“푸른 바위 부족은 벌써 만나보신 게요?”
“사정이 있어서 그들을 만나진 못했습니다. 대신 에디손 기술고문님과 티아라 영애를 데려왔어요.”
“흐음…… 뭐, 성질머리 저래도 기술력은 좋은 노친네이니 말이오.”
골고다 장로가 자신의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다들 모여주었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게요.”
이윽고 내가 조용히 말했다.
“지금부터 하인스 영지의 북서부 쪽에 있는 거대 공방에서 대형프로젝트를 할 생각입니다. 에디손 기술고문님과 티아라 영애는 벌써 손을 보태주기로 약속이 되었으니 나머지 분들의 의견도 필요합니다.”
“은사께서 시킨다면 뭔들 못하리오!”
“내 벌써 새로운 것을 배울 생각에 몸이 근질근질하외다.”
“좀 씻고 다녀. 이 망할 영감탱이야!”
“뭬, 뭬야?!”
다혈질 종족답게 당장에라도 멱살을 틀어쥐고 싸우기 시작하는 드워프들을 중재시킨 나는 벌써 몰려있던 다수의 드워프와 기술자들을 향해 말했다.
“지금부터, 영지 수호 최종방어 프로젝트를 만들 겁니다.”
“최종방어? 좀전의 골렘만해도 이미 자동방어시스템은 완벽한 수준 아니었소?”
“틀려요. 그 정도론 부족하죠. 어중간한 작업이었으면 굳이 여러분들을 모두 모아놓고 이런 말을 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이번엔 시간과 노련함이 동시에 요구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압도적인 재능도 필요하다.
다수의 손이 필요하다는 소리였다.
“대체 만들고자 하는 게 무엇이오.”
그동안 나는 두루뭉술하게 대답을 회피해왔었다. 그렇지만 이제 필요한 요소를 찾았고 정리한 이상 숨길 것도 없었다.
“창공 요새를 만들 생각입니다. 거대한 마나 코어와 연금술을 기반으로 한 창공 요새요.”
들어는 봤나? 데이비의 움직이는…… 이 아니고, 날아다니는 요새라고.
과학이 발달한 지구와 연금술이 극도로 발달했던 유르기안 대륙, 그리고 마법이 발달한 아트렐리아 문명과는 다르게 연금술과 신성력 마법이 적절한 비율로 섞인 이 세계에선 다른 세상의 구상품을 만들 수 없다.
재료를 공수하는데에도 한계가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이쪽 세상에선 이쪽 세상에 맞게 만드는 수밖에.
압도적인 시간과 자금이 필요하지만, 그 또한 상관없었다.
내가 가능하게 만들 테니 말이다.
나는 미리 준비해둔 몇 장의 설계도를 꺼내 그들에게 내밀었다.
“이건 그 동력 핵인 원자로의 일부 설계도입니다. 준비가 되었으면 한 발 내딛어주세요.”
그리고, 감당할 자신이 없으면 지금이라도 기권 선언하시면 됩니다.“
내 말에 그곳에 있는 장인들 모두가 침묵한 채 기다렸다는 듯 한발 앞으로 내디뎠다.
그만큼 내가 내민 설계도는 모두의 눈을 사로잡을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그 시작으로 우선 100m에 달하는 초거대 원자로를 만들 겁니다. 재료는 충분합니다. 촉매도 충분해요.”
어떻게 만드냐고요?
그건 이제 당신들이 생각해내야지요.
파랗게 질리는 그들을 향해 내가 장난스레 웃어 보였다.
“물론 장난입니다.”
“전혀 장난 같지 않았는데요. 오라버니……”
에오니샤가 파랗게 질린 채 중얼거렸다.
그녀는 이전 내가 했던 짓을 잊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커다란 정원과 연못의 아름다움을 상상시키게 하더니 이내 뭐하냐고, 당장 만들라고, 만드는 방식은 네가 생각하라고.
그렇게 떠넘겨버렸던 일을 아직도 마음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오니샤. 이 오라비를 전혀 못 믿니?”
나름대로 상처받았음을 어필하듯 내가 씁쓸하게 중얼거리며 물어보자 녀석이 눈을 게슴츠레 떴다.
“네. 못 믿어요.”
너무 당당한 한마디에 할 말을 잃은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