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482화 (481/1,559)

제 482화

147. 파밍하러 왔다

“결론만 말하자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지경이오.”

한 배를 탄 입장에서 에디손에게 세세한 내용을 숨길 순 없다.

나는 미리 계획해두고 만들어둔 수백 수천 장의 설계도들을 모두 그에게 보여주었고, 그는 짧은 시간 안에 그것들을 모두 본 뒤 내게 평가를 내렸다.

“기술발전에 시간은 필수 요소이되 필수요소가 아니오. 난 그것을 알고 있소.”

기술 발전에 필연적으로 필요한 것은 시간이다.

실제로 오랜 시간 데이터가 쌓이고, 노력과 실패가 쌓여 새로운 성공이 나오는 것이니 말이다.

예를 들어 마인드 맵이라는 말이 있다.

한 가지 물건이 나왔을 때 그 물건을 보고 파생되어 여러 가지가 나오면 그것이 곧 기술의 발전이다.

그렇다면 에디손의 말은 모순인가.

그건 아니었다.

결국,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직 밝혀내지 못한 새로운 것을 알아가기 위한 실패의 과정이다.

그런데 그 실패의 과정이 미리 준비되어있다면?

아니면 천문학적인 계산으로 모든 실패를 넘겨버렸다면?

이도 아니면, 새로운 기연을 통해서 새로운 기술의 일면을 보았다면?

시간은 의미가 없게 된다.

“솔직히 섬뜩할 지경이오. 지금 이 공방에서 개조되고 있는 [둠]과는 감히 비교도 안될 만큼의 상위 기술…….”

침묵하던 그가 조용히 물어왔다.

“데이비 은사, 솔직히 말해주시오. 이 기술…… 대체 어디서 난겁니까.”

수많은 빅데이터.

그는 알고 있었다. 단순히 천재라서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이걸 보시오.”

그는 수많은 설계도들 중 일부를 내게 보여주었다.

동력 원자로의 핵심부품의 설계도였다.

“이것을 구성하고 있는 합금. 이건 티오니스 대륙 어딜 가도 볼 수 없는 새로운 것이오. 아니 그렇소?”

“맞아요. 애초에 여기의 재질로는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다른 곳에 가서 구해올 생각입니다.”

내 발언에 그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구해온다? 허허, 마치 이 티오니스 대륙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것처럼 말하시는군.”

“그러게 말입니다.”

애초에 이 설계도의 원형은 유르기안 대륙에서 발주된 것들이 많다.

나는 거기에 티오니스 대륙의 기술과 티오니스 대륙의 자원인 마나라는 것을 메인으로 고쳐 쓴 것뿐이니 말이다.

그러니까.

필요한 재료는.

티오니스 대륙이 아닌, 이전에 만났던 자그마한 소년이 있던 아포칼립스 같은 세상.

연금술의 대륙인 유르기안 대륙에 있다.

* * *

유르기안 대륙으로 향하는 방법은 사실상 하나뿐이었다.

차원열쇠.

문제는 이놈의 열쇠가 굉장히 까칠하다는 점이었다.

목적지를 정할수도 없고 설사 원하는 곳으로 간다 해도 제한시간이 고작 2시간 정도뿐이다.

그 외에 마나같은 것이 없는 세계인데, 하필 아포칼립스 같은 세계관을 가진 대륙이라 힘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힘을 사용하면 시간이 빠르게 줄어든다.

그뿐만이 아니다. 거래가 내려올 때 거래를 완수하기라도 해버렸다간 남은 시간과 상관없이 강제퇴장 조치.

그야말로 단기 출장 서비스가 따로 없다는 느낌을 준다.

“하…… 이걸 어쩐다.”

원하는 곳까지 가는 것도 문제고, 가서 원하는 물건을 구하는 것도 2시간으론 부족하다.

“하다못해 며칠정도만 여유가 생기면 좋겠는데.”

말없이 손바닥만한 열쇠를 쥐고 이리저리 굴리던 도중이었다.

“데이비. 혹시 그대의 힘이라면 해결이 되지 않을까.”

“해결이 된다고? 무슨 힘?”

“금기의 업.”

그녀의 말에 내가 침묵했다.

금기의 업이라…….

확실히 금기의 업은 처음 발현할 때부터 무식한 짓을 했었다.

데이비 올 라운에게 무력 사용을 금한다.

신의 힘으로 내려진 제약을 단번에 박살내버렸으니 말이다.

세상의 규칙에서 해방되어 멋대로 날뛰는 심연의 힘과 다르게 금기의 업은 그 원리 구조가 심연의 힘과 비슷하면서도 더 위협적이다.

“금기의 업은 내 육신에 한정되는 정도로 밖에 사용 못해. 상대에게 영향을 주는 것도 내 몸 안의 마나만 변질시켜서 방출시키는 정도고.”

“그거지.”

그녀의 말에 내 눈이 살짝 크게 뜨여졌다.

그렇구나.

애초에 이 열쇠가 보관되는 곳은 아공간이 아니다.

내 의지에 따라 입자가 되어 내 육신 안에 보관되고 있다.

그 말인 즉.

이 차원열쇠는 엄연히 내 육신의 범위 내에 존재한다.

쿠웅!!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전신으로 검은 기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페르세르크는 금기의 업이 내비치는 서늘하고 차가운 감각에 파르르 떨어보였다.

방식은 간단하다.

신의 힘으로 조율된 열쇠를…….

금기의 업을 활성화하고 내 멋대로 개조한다.

검은 힘이 전신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자 온몸에서 매스꺼운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이 정도 배덕이라면 주신 프리아 여신의 제제가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으련만.

놀랍게도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았다.

물론, 주신 프리아 여신의 힘을 너무 우습게 본 대가로 상당한 시간을 잡아먹을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 * *

“이건 좀 생각 못했는데.”

주신 프리아 여신은 내가 금기의 업보를 발현하여 멋대로 열쇠를 개조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태창에 아주 짤막한 글이 쓰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원열쇠 변형을 허가]

짧은 문장이지만 그 내용은 간단했다. 열쇠를 금기의 업으로 개조하는 것을 허락하겠다는 계시나 다름없었다.

“자. 이제 보도록 해.”

페르세르크가 심연의 힘을 이용해 열쇠의 내용을 구현하고 내게 공유했다.

삐릭.

명칭 : 차원열쇠

상태 : 변이중.

형태 : 금빛 열쇠.

길이 : 18cm

너비 : 3cm

소유자 : 데이비 올 라운

세부사항. :

-현재 장소에 위치를 고정한 뒤 차원을 넘어 대상을 도약시켰다가 회수하는 힘을 보유.

-제한시간 존재, 현재 제한 시간(%$#%#$%)

-해당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힘을 사용 시 시간 소모 %^$%%^$%^#

-차원도약 목적지^%$#^$%^#%.

문자가 깨져있다.

분명 열쇠는 심연의 권능으로도 제대로 출력이 되지 않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이전에 내가 사용했던 혼과 육신의 완전 동기화 능력을 부여해주던 보옥과 동일하다.

하지만 금기의 업으로 한 차례 변형된 탓에 어느 정도는 열쇠의 성능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남아있네.”

목적지 고정. 시간제한. 그리고 힘 사용의 제약.

세 가지 목록의 공통점은 모두 문장이 완성되기도 전에 기이한 문자로 깨져있다는 점이었다.

개조가 제대로 되었는지의 여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느낌은 이미 성공을 부르짖었다.

열쇠를 손에 쥔 채 숨을 짧게 들이켜자, 언제 눈치를 챘는지 옆으로 다가와 내 다리에 찰싹 달라붙는 륀느의 모습이 당장이라도 떠날 준비를 마친 것처럼 보였다.

짧게 숨을 들이켠 나는 열쇠에 의지를 불어넣었다.

타 차원은 좌표 개념이 소용없으니 가능한 것은 오로지 의지뿐이다.

시간제한을 뒤틀고 목적지를 고정하는 것에 이미지를 확정시킨 나는 곧이어 묵묵히 열쇠의 끝 부분을 허공에 뻗었다.

쩌엉!!

동시에 열쇠의 일부가 금기의 업의 힘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안개와 같은 색으로 물들며 서서히 힘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검은 스파크가 수차례 튀었고, 이내 커다란 균열을 만들어내자 페르세르크가 몸을 축소시킨 채로 내 어깨에 올라앉았다.

“가자. 파밍하러.”

균열을 넘는 내 시야가 일순간 변하며 거대한 도시의 외관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 번쯤 본적이 있는 건물구조였다.

지구의 아파트와 비슷하지만 구조나 건축양식이 다른 세상.

내 연금술 스승이었던 이바의 고향이자, 내가 가진 연금술의 근원지인 유르기안 대륙이다.

다만 이전과 같이 생화학 아포칼립스가 터진 상태라는 건 여전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수많은 사람이 있어야 할 이 커다란 도시에 보이는 것은 사방 곳곳에 널린 시체들뿐이었으니 말이다.

“다른 세상…….”

조용히 중얼거리는 페르세르크는 거의 폐허가 된 도시의 형태를 두리번거리며 바라보았다.

“데이비님. 이전과 데이터 일치. 이곳을 유르기안 대륙이라고 판단.”

“알고 있어.”

연금술의 땅 유르기안 대륙은 분명 이전에 갔을 때 종말과 싸우고 있었다.

거대한 생체 바이러스.

그것에 감염된 존재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끔찍한 괴물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때 당시엔 우스갯소리로 니들 부산 가냐? 라는 말을 했었지만, 티오니스와는 다르게 연금술만 어느 정도 발전한 이 세계에서 그런 바이러스는 그야말로 지옥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바닥에 쓰러진 시체를 툭툭 걷어차 뒤집자 피부 여기저기가 물어뜯긴 듯 참혹한 상처들이 보였다.

“웁…….”

그 모습을 보다 못한 페르세르크가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참혹해…… 대체 이게 무슨…….”

“좀비야.”

“보통 좀비와는 달라! 이건 좀더…….”

그녀는 나와는 다른 것을 보고 있던 모양이었다.

“몸 안에 거대한 기생체가 자라고 있어. 표현하자면…….”

파리해진 얼굴로 그녀가 중얼거렸다.

“연가시…….”

곤충에 기생하다 알을 낳을 시기가 되면, 그 곤충을 물가로 이동하도록 유도하여 결국 자살하게 만드는 기생충 연가시.

그 말인즉슨, 이 변이된 좀비의 몸 안에 있는 기생체가 숙주를 장악하고 인육을 탐하게 만든다는 뜻이었다.

“어쩐지. 본능밖에 없더라니.”

기생체가 이성이 있을 리 없으니 감염되어 장악당한 인간은 본능만 남은 괴물이 된다.

티오니스의 흑마법으로 만들어진 좀비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유가 이것이었다.

그때였다.

-캬아아아악!!!!

가만히 누워있던 시체가 눈을 부릅뜨더니 곧바로 나를 향해 덤벼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녀석의 갑작스런 기습공격은 륀느가 작디작은 흰 손으로 머리통을 으깨버리는 것으로 막을 내렸지만, 그 생존력은 가히 놀라울 지경이었다.

“뇌가 반 이상 날아갔는데도 움직인다는 건 그냥 숙주의 육신이 있으면 어디든 움직일 수 있다는 거겠지?”

“아마도.”

륀느의 맨발에 짓밟혀 고깃덩이가 되어가는 좀비 사체를 보며 페르세르크와 의견을 조율하던 나는 근처의 노점으로 보이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물건을 버리고 떠났는지, 마치 사람이 살던 도시에서 인간만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바삭…….

완전히 썩어버린 과일하나를 집어 들자 수분이 사라져 바스러져버렸다.

“제대로 된 먹거리를 보기도 힘들겠네.”

애초에 느긋하게 먹거리를 찾아다니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좀 전의 좀비가 내지른 괴성 때문일까.

갑작스레 사방에서 수많은 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으으으으…….

-그어어어어…….

휘적휘적 걸어오는 시체들의 상태는 하나같이 참혹했다.

살점이 찢긴 건 예사 수준이고 썩은 이들, 아예 한 부분이 없는 이들도 더러 존재했다.

좀비 자체가 원래 그런 식이니 애초부터 놀랄 요소는 아니었지만…….

“수가 생각보다 많네.”

그 수가 이전의 열차에서 쏟아져 나오던 좀비들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많다는 게 새삼 놀랍기는 했다.

이전엔 부산가는 놈들이 득실거리더니.

이번엔 너구리 도시에 떨어진 모양이다.

아니, 라쿤이었나?

“무시하고 지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

하나 둘도 아니고 수백 수천에 달하는 좀비떼의 모습에 그녀의 의견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나는 륀느에게 눈치를 준 뒤 륀느와 똑같은 크로우바를 손에 쥐었다.

“가긴 어딜 가. 자원 채취해야지.”

“자원?”

내 연금술 스승 이바는 말했었다. 자신의 고향에 있는 인간들이 어떤 것을 쓰고 있는지.

시간이 많이 흘러 혹시 바뀌지 않았나 했는데 좀 전의 좀비 사체에서 필요한 것이 묻어나왔다.

“그래. 좀비라고 했지? 여기 인간들은 말이야. 연금술이 발달한 덕분에 몸 안에 하나씩 칩을 넣고 다니거든.”

그게 좀 필요하다.

이리 와. 안 아프게 적출해 줄 테니.

순간적으로 좀비들이 움찔한 것 같았지만, 기분 탓이라 여겨 그냥 넘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