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85화
거주지의 진입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사태의 주범이었던 바이러스 양성반응이 그 원인이었으니 직접 힘을 주입해 태워버리면 그만이었다.
물론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쉽게 믿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그 원흉인 양성반응이 사라졌으니 별다른 수가 없었다.
“정밀 검사를 할 겁니다. 그리고, 당신은…… 따라오세요.”
나를 안내하는 레유리라는 이름의 여성이 걸음을 옮겼다.
세상이 뒤흔들리고 있어도 정부는 건재하다는 건지.
제법 깔끔한 건물 내부로 들어가니 수많은 사람이 돌아다니는 게 보였다.
인종들도 다양한 것으로 보아 이제 이 대륙은 국가 간의 국경선이라는 개념이 제대로 남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극도로 쇠퇴하는 최저 마지노선까지 밀렸으니 이제 다시 번영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으리라.
“레유리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이윽고 나무로 된 고풍스러운 문을 밀고 레유리가 들어간다.
가장 먼저 검사를 받은 레온과 함께 내부로 들어서자 그곳에는 한 명의 남성과 익숙한 이가 앉아있는 게 보였다.
아직 어린 소년.
하지만 그 눈에는 단단한 결심이 굳어있었다.
“어?”
“오?”
내 말에 녀석이 벌떡 일어났다. 그래도 외형에 나이를 좀 먹었는데도 알아보는구나.
“이바노프님?”
갑자기 대화하다 말고 벌떡 일어나는 소년의 모습에 중년의 사내가 당황하여 말한다.
“형!!”
후다닥 달려온 녀석이 그대로 육탄 돌격하듯 내게 안겨왔다.
“이바 잘 지냈냐?”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녀석과 나는 면식이 있었다.
내 스승이었던 연금술의 신, 이바의 후손으로 추측되는 이바노프 반.
녀석의 정체였다.
“어떻게 된 거예요?! 그때 갑자기 사라지더니!”
“원래 인간은 자기가 돌아가야 할 곳이 있는 거다.”
“그게 무슨……”
“흐음…… 이바노프님, 면식이 있는 자입니까?”
중년 사내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이바노프는 분명 혼자 그 괴물들 사이에서 전전긍긍하며 살아남던 작은 소년이었다. 그런데 지금 보면 타인들이 녀석을 대하는 태도가 굉장히 정중하다.
“당연하죠! 제가 죽을뻔했을 때 저를 구해주신 분이에요.”
이바노프의 설명에 중년 사내가 놀랍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호오?”
“게다가…… 쌍둥이 골렘 원래 주인이에요.”
그 말에 방 안에 있던 모두의 표정에 경악이 어렸다.
“그, 그 골렘들의 주인이라 이 말입니까?!”
“세상에……”
확실히 이전에 메가로드리아를 잡을 때만 해도 차원 열쇠를 가동하자마자 보상이 들어오는 기현상이 자주 벌어졌으니 제법 일을 잘한 모양이었다.
‘이런 식이면 그냥 이곳에 두는 게 장기적으로 이득이 되겠다.’
익살스런 표정을 지어 보이던 레온조차 경악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휘유. 내가 어마어마한 존재를 데려온 모양이군…….”
“대체 당신 정체가 뭡니까. 그 빌어먹을 파라솔 코퍼레이션 놈들도 당황하게 한 게 바로 그 골렘들인데.”
발전했다 해도 마나와 연동된 골렘은 별천지일 수밖에 없다. 기술력이 아니라 하이브리드 형이니 말이다.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으니 놀랄 수밖에.
“다행이에요. 그동안 정말 만나고 싶었어요. 형.”
“그래.”
“그때…… 정말 고마웠어요. 형이 아니었으면 난 이곳에 있지도 못했을 거예요.”
“허허,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나. 레온 일병. 정말 잘해주었네.”
“쯧.”
뒤에서 레유리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레온과는 정적관계에 있는 듯 보였다.
“이 공헌을 잊을 수야 있나. 조만간 좋은 소식이 전해질걸세.”
“그렇다면 저야 다행이로군요. 보고하겠습니다. 리사 쉔 박사와 그 외에 추가 생존자들을 그 빌어먹을 너구리 도시에서 탈환했습니다.”
“그래. 그 망할 파라솔 놈들이 저지른 참상을 기억하는 유일한 증인일 테니.”
내가 떨어졌던 도시.
그곳은 아무래도 이래저래 유명했던 모양이었다.
그곳에서 조사활동이라도 했는지 레온은 그 도시의 참상을 그대로 보고해 올렸고 내부에 있던 모두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졌다.
‘데이비,’
물론 그들의 머릿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확실하게 감정해줄 이가 있는 이상 숨기는 건 의미가 없다.
‘레유리라는 저 여자, 파라솔 코퍼레이션의 소속이야.’
페르세르크의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 사정이야 어떻든 그건 관심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 하인스 영지에서 제작 중인 원자로의 주요재료인 유르기안 대륙에서만 나는 광석.
플루튬의 대량확보이니까.
“그리고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레온이 나를 흘끗 보며 말했다.
“이 사람. 저희 몸에 있던 변이 기생체 바이러스를 지우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말에 주변에 침묵이 깔렸다.
“그게 무슨…… 사실인가?”
중년 사내가 레유리를 향해 질문을 던지자 그녀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 레온 일병을 포함한 생존자들의 몸에 기생체가 존재했지만 기이한 연기를 내뿜더니 그 반응을 음성으로 바꿔버렸습니다. 정밀 검사 중입니다만 중간 검사에서는 기생체의 활동이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그가 눈을 크게 뜨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내게 다가와 손을 잡고 소리쳤다.
“설마…… 감염을 치료할 수 있는 겁니까?!”
“아뇨. 안됩니다.”
이미 감염된 이들은 숨통이 끊어졌다. 그들의 기생체를 처리해본들 돌아오는 건 침묵하는 시체가 전부라는 소리였다.
“이미 죽은 시체에서 기생체를 제거해본들 남는 건 시체뿐이에요.”
“그, 그럼 이들은……”
“저들은 조금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감염되었지만 감염진행이 안 되죠. 보균자라는 뜻입니다.”
내 말에 중년 사내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저 말이 사실인가.”
“실제로 생존자 중 한 소년이 변이체에 물렸습니다만……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레온의 말에 그가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건 큰 발견입니다. 적어도 감염 직후 치료는 가능하다는……”
“어떻게 하시게요.”
내 물음에 그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무슨 말씀……”
“치료가 가능한 건 저뿐입니다. 단순히 약물치료가 아니에요.”
“그, 그러고 보니 기이한 연기를……”
보통 사람이 손에서 검은빛이나 연기를 뿜어내는 게 가능한가.
“그렇군……. 당신, 파라솔 코퍼레이션의 희생자였군요. 후우…… 결국 항생제를 찾는 수밖에 없나.”
중년 사내가 씁쓸한 한숨을 내뱉었다.
“파라솔 코퍼레이션의 희생자?”
“이 참상의 원흉인 파라솔 코퍼레이션에서 과거 생체병기를 만들겠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다수 납치했었어요. 그리고 유전자가 변이된 이들이 나타났죠. 보통 인간보다 훨씬 강한 힘이나 속도를 구사하는 이들도 있고 조금 괴이쩍은 힘을 사용하는 이도 있어요. 형처럼 그 영향력이 큰 이들도 있구요.”
이바노프의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마법적인 힘을 모르니 유적적으로 변이된 무언가라 여기는 게 그나마 말이 통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 힘 덕분에 저는 살았죠. 형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어요.”
이바노프의 말에 나는 녀석의 머리를 푹푹 눌러 쓰다듬었다.
“그래. 하려던 것은 잘되고 있냐?”
“아직은 그렇다 할 진전이 없어요. 하지만 언젠가 이 기생체 문제를 해결할 거에요.”
결심이 선 이바노프의 표정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신원보증을 이바노프가 해준 이상 나와 륀느의 체류를 방해할 요소는 없었다.
나와 오랜만에 다시 만난 이바노프는 신이 나서 나와 륀느를 데리고 자신의 거주지로 향했다.
본래 그는 각 거주지를 돌아다니며 필요한 기술을 제공하는 식으로 인류의 존속에 손을 보태고 있는 모양이었다.
저 어린 소년이 쟁쟁한 이들도 발견해내지 못한 것들을 만들어 기여를 하고 있다니.
이바노프를 두고 프리아 여신이 두 번째 희망의 별이라고 했던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이곳이에요.”
이곳으로 오는 길에 본 난민들의 거주지는 그리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피난 온 이들이 가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판잣집에 매끼 배급되는 식량을 아끼고 아껴서 살아남는 게 전부인 것을.
이놈의 대륙도 본래는 번창한 세계였지만 지금은 황폐해진 세상일 뿐이다.
이바노프의 거주지도 마냥 좋은 편은 아니었다. 비록 쓰러져가는 거주지에 비하면 상당히 양호한 금속 박스였지만 그래 본들 주요인물의 숙소치고는 허름하기 그지없었다.
“누추하지만 들어오세요. 다들 고생하는데 저만 좋은 곳에서 살 순 없으니까요.”
“그래.”
내 뒤로 따라 들어온 륀느가 날카롭게 주변을 스캔했다.
“데이비님. 의심되는 장치는 없다고 판단.”
“그래.”
금속박스, 즉 이바노프의 거처엔 여러 장비가 가득했다. 그리고 한쪽에는 수많은 약병이 놓여있었다.
“……포르말린?”
“포르말린? 아니에요. 그건 루티스 용액이에요.”
이곳에선 포르말린을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다.
“사실 이곳에 정착한 지는 조금 됐어요. 이곳은 다른 거주지에 비해 시설이 굉장히 열악했으니까요. 그냥 두고 떠날 수가 없었어요.”
이바노프는 씁쓸하게 말하며 창고에서 작은 비스킷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차린 건 없지만 드셔주세요.”
“고맙다.”
빙그레 웃으며 말하자 녀석이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하, 형을 다시 봐서 정말 좋네요.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어디 가서 객사할 팔자는 아니지. 그보다 골렘들은?”
“아 골렘은 현재 제 명령에 따라서 외부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어요. 아마 조만간 돌아올 거에요.”
녀석의 설명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나는 짐짓 모르는 척 이바노프를 통해 현재 이 대륙의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파라솔 코퍼레이션이라는 국제 기업에서 비밀리에 생화학 병기를 만들기 위해 유전자 제어 프로젝트를 했다는 모양이었다.
생체병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튀어나온 실패작이 바로 지금의 좀비 같은 그 기생 괴생물체들이고 말이다.
“본래 저도 저것들이 자연적으로 생긴 줄 알았죠. 하지만 그동안 정보를 모아온 바에 따르면……”
벽에 걸린 종이들을 꺼내 내게 펼친 녀석이 씁쓸하게 말했다.
“형이 탈출했던 그 도시. 그곳의 지하에 파라솔 녀석들의 비밀 연구실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거기서 기생체 바이러스가 유출되면서 큰 도시가 한 번에 아작이 나버렸죠. 지금도 파라솔 코퍼레이션은 어딘가에 숨어서 계속해서 못된 짓을 꾸미고 있어요.”
내가 봤던 가시 돋친 혓바닥을 철퇴처럼 휘두르던 괴물이나 거대한 체격의 근육 괴물들도 그 생체병기의 일환이었던 모양이었다.
“무력으로 제압하는 데엔 한계가 있죠.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 전엔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없는 게 현시점이에요.”
“도와줄까?”
내 물음에 녀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도와준다고요?”
“그래. 결국, 이 일의 원흉은 그 망할 놈의 파라솔인지 파닭인지 뭔지 하는 놈들이잖아? 놈들을 처리해줄까?”
내 물음에 이바노프는 옅게 웃어 보였다.
“하하. 농담이라도 고마워요.”
가능하긴 한데. 사실 나로서도 시간이 그리 많지 않기에 확답을 주진 않았다.
“그보다 원하는 게 있다고 하시던데. 레온 일병은 이 거주지를 포함해 여러 연합 거주지에서도 유명한 사람이에요. 그가 이번에 그 도시에 들어갔던 것도 사실 극비 임무 때문이었죠.”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뭐, 사람도 탈취할 겸 항생제라도 찾으러 갔나 보지?”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그 말에 이바 녀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중년 남자가 하는 말을 들었잖아. 뭐, 항생제야 그냥 때려 맞춘 거지만.”
항생체를 찾을 수밖에 없나…… 라는 말.
“맞아요, 현재 생존자들에게 리사 쉔 씨는 중요한 인적 자원이죠. 하지만 그보다 항생제는 구원의 상징이에요.”
이 끔찍한 생화학 테러를 종식할 수 있다면 그 누가 구원이 아니라 여길까.
“항생제는 형체 없는 결과물이에요. 있는지도 알 수 없죠. 레온 일병은 리사 쉔 씨를 보호하고 그 항생제의 여부를 찾기 위해서 도시에 잠입했던 거죠. 당연, 이 일의 주요원흉인 파라솔은 그것을 원치 않을 테니 방해를 받아 부대가 괴멸되었다는 소식은 들었어요.”
“결과는 나왔나?”
“그건 직접 들어야겠죠?”
녀석의 미소에 나는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 * *
나는 다시 중년 남성이 있던 방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그를 포함해 레유리라는 이름의 여성이 있었다. 그 외에 레온과 처음 보는 남자 몇몇이 있었다.
“오셨군요.”
이윽고 나와 이바노프를 반긴 중년 남성이 조용히 말했다.
“데이비, 당신은 이바노프님이 신원을 보증해주었으니 믿고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괜히 귀찮아질 것 같은데 말입니다.”
“당신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대충 끄덕여 보였다.
“뭐, 수지타산만 맞으면 도와드리죠.”
“어떤 걸 원하십니까.”
그의 질문에 나는 대뜸 내가 원하는 것을 불렀다.
“순수 플루튬 1톤.”
내 말에 중년 남성의 눈이 찢어질 듯 크게 뜨여진다.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던 레온도 놀랐고 내 곁에 있던 이바노프도 놀란 얼굴을 해 보였다.
그 정도는 돼야 원하는 마나 융합 원자로를 만들 수 있으니까.
세상을 구하는 거창한 목표나 선행도 선행이지만 자기 실속을 못 챙기면 그건 호구일 뿐이다.
“걱정 말아요. 확실하게 도와드릴 테니.”
범 대륙적 재앙을 일으킬 수 있는 전력을 고용할 기회를 버리지 않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