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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486화 (485/1,559)

제 486화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이바노프였다.

“형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일반적으로 플루튬이라는 금속은 가볍기 그지없다. 게다가 단단하기도 상당히 단단한 편에 속하며, 현재 이곳에 있는 인간들의 뒷목에 심어진 칩을 만드는 주원료가 된다.

그거야 이 세상의 일이고.

내게 그 플루튬이라는 광석은 하인스 영지에서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필수 소재였다.

강도야 미스릴이나 아다만티움, 혹은 오리하르콘과 비교할 수 없지만 플루튬은 여러 가지 특징을 가진 신비한 금속이기도 했다.

“순수한 플루튬 1톤이면…… 저희가 감당할 수 없는 양이군요. 지속해서 제공한다 해도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고 너무 양이 과하게 많습니다.”

중년 남성 오쉔이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봐, 그만한 양이면 거의 한 개 도시의 분기 사용량에 필적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수지타산이 애초에 맞질 않잖아.”

“압니다. 가벼운 금속이라 그 정도 양이면 엄청난 부피가 되는 것도, 그리고 수지타산 안 맞는 것도요.”

내 대답에 오쉔이 물었다.

“그걸 알면서 묻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비록 이 거주지의 지하에 플루튬 채굴지가 있지만 거기서 채굴되는 양은 하루에 많아야 500에서 800그램 정도입니다.

거주지 단위로 채굴하는데 1키로가 되지 않는다. 그만한 양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것도 오는 길에 들었습니다.”

“허면 결국 협상은 결렬이군요.”

“이야기는 끝까지 듣고 가시죠.”

내 말에 오쉔이 나를 바라본다.

“애석하게도 남는 게 튼튼한 몸이라서 말입니다. 없는 걸 강탈하는 취미도 없고 애초에 이곳에 있는 플루튬을 내놓으라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윈윈 전략을 쓰도록 하죠.”

내 말에 오쉔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항생제. 제가 나왔던 그 너구리 도시의 지하에 있다고 했던가요.”

내 말에 오쉔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 감정은 경계였다.

“극비내용이라 말하지 않았을 텐데……”

“눈치가 있으면 알게 됩니다. 중요한 건 기회를 잡느냐 놓치느냐.”

그렇게 말한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주사위를 가지고 장난치듯 던졌다가 받아냈다.

“도와드릴게요. 그 항생제를 가져오는 거. 안 그래도 그 임무 때문에 이들을 부른 거 아니었습니까? 나와 함께.”

내 말에 그는 침묵했다. 정곡이니 당연했다. 길을 아는 레온, 척 봐도 특수부대처럼 보이는 장비를 지닌 사내들. 그리고 감염 직후 치료가 가능한 나의 존재.

“이런 멤버만 봐도 멍청이가 아닌 이상 알 수밖에요.”

“당신…… 눈치가 너무 빠르군요.”

“그래서, 어쩔 겁니까. 오는 길에 들었습니다. 그 너구리인지 라쿤인지 하는 도시가 사실 플루튬 최고 채굴장이었다던데. 듣자 하니 방치된 격납 창고에 플루튬이 상당량 잠들어있다고요.”

“확실히…… 그곳의 채굴장 지하에는 아직 버려진 플루튬이 다량 정제되어있을 겁니다. 순수한 물량이니 더없이 완벽한 조건이죠.”

그렇게 말한 그가 나를 의심하는 눈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가져나가실 겁이니까. 1톤이면 개개인이 가지고 나올 수 있는 양이 아닙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플루튬은 특수한 정제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수송할 때도 그런 장비를 써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불순물이 끼이게 되죠.”

그 말이 사실이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합니다. 선택은 오쉔 경장님의 몫이지만.”

내 말에 그가 굳었다.

“레온이라 했나요? 항생제의 여부는 확인되었습니까?”

내 질문에 레온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로 내려가는 길은 잠겨있었지. 리사 쉔 씨도 확신하지 못했고, 하지만 이곳에 와서 암호 파일을 해독해본 결과 반드시 있을 거라는 결론이 내려졌어. 이 빌어먹을 생화학 바이러스를 만든 건 엄연히 그놈들이니까.”

레온 하르트는 리사 쉔이라던 그 여성과 그곳에서 은밀한 자료를 수집해온 모양이다.

“그리고 그 정보에 따르면 파라솔 놈들도 그 항생제를 구하기 위해 한 차례 병력을 투입했다가 방어 시설에 몰살당했던 모양이야.”

문제는 그 지하 시설의 방어가 너무 굳건해서 아직 침입 흔적은 없다는 점이었다.

“항생제는 구원 줄이자 희망입니다. 그들이 손에 넣기 전에 반드시 찾아와야 합니다. 비록 방어 시설이 위험하긴 하지만 할 수 있습니다. 아니, 해야만 해요.”

레온의 의견에 오쉔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니까 도와드릴게. 안전하게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 주겠습니다. 다만, 그 대가로 나를 그 채굴장 지하 격납 창고로 안내해주세요.”

내가 길을 모르니 안내를 받아야지.

“어때요. 어차피 주인 없고 당장 쓸 일 없는 플루튬인데, 남는 장사 아닙니까?”

내 미소에 그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게 말처럼 쉽게……”

“할지 말지는 본인이 선택해요. 어차피 감염된 이들을 바로 치료할 힘을 지닌 건 나뿐이니 그 힘만 빌린다 해도 문제는 안 될 테고.”

사람을 흔들어놓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단순하게 주둥이만 잘 놀리면 중요한 걸 뒤로 내팽개치고서라도 충동이 들게 할 수 있으니까.

슬슬 쐐기를 박아보자.

“그 정도면 수지타산이 제법 맞죠? 격납 창고까지만 안내해주면 그 이후엔 저를 보호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이렇게까지 제안했는데 거절하면 그걸로 거래는 끝이겠네요.”

내 말에 이바노프가 말없이 내 옷깃을 잡고 올려다본다.

“형……”

“……레온, 자네의 의견은 어떠한가.”

“애초에 데이비 저 사람이 없었으면 저는 항생제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나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중간에 한 번 돌아가는 정도의 수고라면 별문제가 없어요. 다만……”

대체 개인이 어떻게 그 큰 양의 플루튬을 챙길 건지가 의문인데…….

말끝을 흐리며 중얼거리는 그 모습에 나는 손사래를 쳤다.

“그건 신경 안 써도 됩니다. 다 방법이 있으니.”

“정말…… 당신은 파라솔 코퍼레이션의 일원이 아닌 게 확실합니까?”

“적어도 내가 당신들의 적이고 당신들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파라솔인지 파닭인지하는 곳의 일원이었다면 말입니다.”

내 말에 모두가 침묵한다.

“복잡하게 굴 것 없이 당신들을 모두 여기서 죽이는 게 마음이 편해요.”

쩌억.

그 말과 함께 오쉔의 앞에 놓인 철제 컵이 쩍하고 갈라졌다.

“저렇게요.”

그들의 눈에 나는 대체 무엇으로 비칠까.

그것은 사실 상관없었다.

“하, 하지만 파라솔에서도 항생제를 원합니다. 당신은 그 항생제를 얻어야 하기에 이쪽을 이용한다고 여길 수도 있지요.”

쯧, 이래서 눈치 빠른 것들이란.

나를 노려보던 레유리의 싸늘한 일갈이 쏟아져 왔다.

그녀는 페르세르크가 본대로 파라솔의 일원이다. 아마 이곳을 감시하고 있었겠지만, 갑자기 나타나 정신병자처럼 자신 있게 말하는 내 제안에 불안함을 느꼈으리라.

“게다가 그런 자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요인원을 투입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오쉔 상급 경장.”

레유리의 반박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항생제의 존재를 숨기고 천천히 신중하게 가져오는 게 이득일까요. 아니면 변수를 품에 안고 당장 그 항생제를 구하는 게 이득일까요.”

“당연히 자신 소속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그렇게 인도주의적인 새끼들이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놨습니까?”

내 물음에 레유리가 침묵했다.

“애초에 무엇으로 증명할래요. 방법 있어요? 없죠? 믿기 싫으면 그냥 관두죠. 나는 당장에라도 다시 그 망할 도시로 돌아가면 그만이니.”

“혼자서…… 가겠다는 겁니까?”

“굳이 같이 누군가를 데려가야 합니까?”

마치 산책이라도 나가는 듯한 내 말에 모두의 표정에 오묘함이 어렸다.

* * *

결론적으로 거주지의 지도자인 오쉔 상급 경장은 내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모로 가든 일만 해결되면 되는 법이다.

물론, 주 임무에 방해가 되면 본말전도나 다름없어서 나는 채찍과 당근을 번갈아가며 사용했다.

우선, 항생제를 구한다면, 그 후 그 항생제를 먼저 진동 수송기에 실어 보내고 난 후에 창고로 안내해줘도 상관없다고.

실제로 양성 반응을 보이던 생존자들이 모두 음성이 된 것과 변이 감염자에게 물려 죽어가던 이를 내가 치료해준 덕분에 결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가장 위협적인, 물리면 끝장이라는 문제를 해결한 이상 그냥 쉽게 버리기 힘든 카드로 다가왔을 것이다.

“저도 갈게요.”

“넌 여기 남아.”

어린애는 그런데 가는 거 아니다.

“저도 싸울 수 있어요! 무기를 다루는 법도 배웠고, 몸이 작아서 여기저기 숨을 수도 있죠. 게다가 쌍둥이도……”

“아니. 네가 있으면 귀찮아진다고.”

내 말에 이바노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여의찮으면 도시 전체를 날려버릴 거다.”

내 말에 녀석이 침묵했다. 녀석은 이미 한차례 내가 심연의 괴물을 날려버릴 때 무슨 힘을 썼는지 본 바 있다.

물론 그 사실을 오쉔이나 레온의 앞에서 발설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형은 조금 기이한 능력을 사용하셨죠. 기술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그런……”

“나는 이곳에선 이방인이니까.”

내 말에 녀석은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꼭 항생제를 전해주세요. 반드시 사람들을 살리겠어요.”

녀석의 결심에 나는 머리를 헝클어뜨리고는 진동 수송기로 걸음을 옮겼다.

“데이비님. 방법을 인계 요청해.”

“일단 이동해보자. 세상을 뒤엎을 미치광이 단체면 뭔 짓인들 못 할까.”

내 말에 륀느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 * *

“빌어먹을, 이곳을 또 오게 될 줄이야……”

레온이 욕설을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현장에 투입된 인원은 총 12명이었다.

나와 륀느, 레온을 제외한 9명.

그중에는 파라솔의 첩자였던 레유리도 있었다.

물론, 그녀의 존재는 변수이기에 처리해두는 게 좋겠지만, 굳이 그것을 증명할 수단이 없는 이상 건드리진 않았다.

아마 필요할 때 알아서 드러내 줄 테니 말이다.

나는 이곳에서 이방인이다.

내가 간섭하는 것은 좋지만, 그 뒤처리를 할 자신이 없으니 함부로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좋았다.

‘데이비, 헌데 이 대륙은 심연이 손을 대지 않았던 걸까?’

‘글쎄. 지금까지 정황을 보면 그렇긴 한데……’

솔직히 파라솔 코퍼레이션의 기술력이 조금 많이 이질적이지 않나 싶기도 했다.

“다들 조용히 하고 신속하게 이동한다. 목적지로 향하는 동안 보이는 변이 감염체는 최대한 자극하지 않도록.”

마치 사람이 바뀐 것처럼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운 후 레온 일병이 조심스레 말했다.

일병이면 꽤 낮은 직급인데 거주지의 분위기를 보면 레온의 입지가 보통 높은 게 아니다.

-그으으으으……

퓩!!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빨간 탄환 같은 것이 허공을 한번 가른다.

순식간에 날아간 광탄에 맞은 감염체는 곧 그 자리에 우뚝 굳더니 온몸이 돌덩어리가 된 것처럼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제법 흥미롭다.

“대 감염체용 석화탄이라는 거야. 몸이 돌처럼 굳어버리거든. 위협적인 무기이지만, 감염체의 특성을 연구한 이바노프 그 꼬맹이 박사님이 만든 탄환이지.”

레온이 실실 웃으며 설명해준다.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과정은 놀라울 정도로 평온했다.

어둑어둑해진 도시 내부는 빛이 거의 없었다.

그 탓에 길이 잘 보이지 않지만 감염체들도 일행을 쉽게 찾지 못한 게 큰 변수로 작용했다.

퓩!! 퓩!!

마치 특수부대원처럼 감염체를 처리해나간다. 이대로라면 정말 아무런 저항 없이 목적지까지 도달할 것 같았다.

물론, 그렇게 될 리 없다는 건 나와 페르세르크 둘 다 아는 사실이었다.

“이대로 가면 문제 없이 임무를 완수하겠는데요.”

긴장감으로 가득한데 대원들이지만 보이는 감염체가 극소수이다 보니 긴장이 풀리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괜한 소리를 내뱉는 병사에게 한마디 하려는지 레온이 이죽거렸다.

“이봐. 그런 말은 현장에서 함부로 하는……”

콰아앙!!!

“으어어어어어억!!!”

갑작스레 지면을 뚫고 튀어나온 팔이 긴장을 풀며 말하던 병사의 몸을 낚아채 이리저리 흔들다 벽에 처박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콰앙!!!!

“골리앗이다!!!”

동시에 사방에서 기다렸다는 듯 감염체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고 그들 사이사이에 다수의 돌연변이와 압도적인 크기의 괴물이 나타났다.

크기는 대충 8미터에서 10미터 정도 되어 보였다.

양팔이 사람의 몸체 세 개 정도에 달하는 거대한 덩치에 눈이 달리지 않은 괴물은 전신이 피처럼 새빨간 색이었고 흉측한 근육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꾸으으어어어어어어어!!!!

이윽고 거대한 괴성을 내지른 골리앗이라는 괴물의 행동에 모두가 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자 레온이 재빠르게 나섰다.

그는 자신의 가슴팍에서 작은 초콜릿 같은 것을 꺼내 빠르게 비틀어 놈의 입안으로 던져넣은 뒤 소리 질렀다.

“뛰어!!”

콰아앙!!!

굉장한 폭음이 울려 퍼진다.

뒤이어 허겁지겁 달리는 그들의 얼굴에는 공포가 어려있었다.

확실히, 저만한 크기의 괴물이 성큼성큼 달려오면 두려울 만도 하다.

게다가 방금 레온하르트가 던진 초콜릿 바 같은 폭발물질을 먹어치워 내부에서 폭발을 일으켜놓고도 놈은 멀쩡히 쫓아왔으니까.

파장을 계속해서 도시 전체로 보내고 있는 탓에 두통이 점차 심해지지만 하던 일을 멈출 생각은 없었다.

나설 수 있는 것에 나서지 않아서 굳이 멀쩡한 생명을 죽일 이유는 어디에도 없으니 말이다.

나는 느긋하게 목표를 이루려고 온 거지. 괜히 사람을 괴롭히는 변태 사디스트가 아니다 이 말이야.

‘아니라니, 지나가던 고블린이 웃을 소리로군.’

‘시끄러워.’

짧게 일축한 나는 손에 쥐어진 돌멩이를 흘끗 보고 가볍게 튕겨 올렸다가 잡아냈다.

뒤도 보지 않고 필사적으로 달리는 그들을 따라가며 나는 다른 이들이 보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손목에 스냅을 튕겼다.

[살수 투검]

[은밀 탄환]

살수왕 헤르메이샤의 암살기술 중 투검 기술이다.

순식간에 내 손목을 떠난 돌멩이가 순간적으로 충격파를 일으켰다.

우웅…… 파앙!!!!

챙그랑!!!

순식간에 일대의 유리창이 모조리 박살 나며 거대한 소닉붐을 일으켰고.

이내 맹렬하게 날아간 돌멩이는 골리앗이라 불리는 거대 근육질 괴물의 머리통에 그대로 작렬했다.

아무리 단단한 생체병기라도 머리통이 날아갔는데 살아있을까.

그대로 무너지는 골리앗의 모습에 겁을 집어먹고 달리던 이들이 멈춰 섰다.

“방금 무슨 소리가……”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보지 못한 이들은 거대한 소닉붐의 여파와 머리통에 거대한 구멍이 나 쓰러져 버린 골리앗을 보며 어안이 벙벙한 듯 굳어버렸다.

“뭐합니까. 구경만 할 거예요? 뛰라면서요.”

그 모습을 심드렁하게 구경하던 내가 묻자 레온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이…… 일단 달리세요!”

그들의 외침에 나는 미리 주워두었던 돌멩이들을 가볍게 던졌다가 받아냈다.

‘몇 번째지?’

‘스물일곱.’

저들은 모를 것이다. 방금 난동을 부린 괴물, 혹은 그와 비슷한 것들이 인지 범위에 다가오기도 전에 얼마나 쓰러졌는지 말이다.

적의 첩자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 있는데 굳이 경계심을 심어줄 필요가 있나.

이 세상은 심연의 괴물이 몇몇 튀어나온 전례가 있다. 하지만 정작 담당하는 심연의 공주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쩌면.

파라솔이라는 작자들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니 일단은 최대한 기척과 정체를 숨기고 미끼를 던져보는 게 좋으리라.

그래도 꼭 파라솔이 심연의 공주와 관련이 있었으면 싶은 기분도 들었다.

그래야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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