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487화 (486/1,559)

제 487화

도시 지하 비밀 연구시설.

그곳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미로 같이 퍼져있었다.

깊게 파인 게 아니라, 들키지 않는 자리의 맹점을 이용해 도시 전역에 넓게 퍼져있다는 소리였다.

레온이 본래 찾고자 했던 파라솔의 지하 연구시설은 이미 한차례 버려져 있었다.

“파라솔 놈들은 궁극의 연구를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소문까지 나돌았습니다. 지금 보니 그 여파가 실감이 나네요.”

레유리의 말에 나는 페르세르크를 흘끗 보았다.

‘그대의 반응을 떠보는 거야. 무시해.’

‘그래?’

“악마라, 재밌네요. 확실히 멀쩡한 사람 몸 안에 그만한 괴물을 집어처넣는 짓이 사탄도 실직할 짓인 건 맞겠죠.”

“쉿……. 조용! 이 안엔 정말 뭐가 있을지 모르니 조용히 움직여주세요.”

한 병사의 말에 레온이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이봐, 데이비. 이 자식들 아무래도 플루튬을 연구에 썼었던 모양이야. 잘하면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그건 다행인 일이네요.”

“그보다 상위 돌연변이가 한번 이외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게 천운이지. 운이 좋았어.”

물론, 가까이 오기도 전에 내가 다 처리했다는 것을 그는 모른다.

콰앙!!!!

“크아악!!!”

물론, 위협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와있는 이곳은 모종의 사단으로 인해 내부에서부터 철저하게 붕괴했다.

레온의 말에 따르면 생화학 테러가 일어났다는 말도 있고 내부의 관리자들이 반란을 일으켜 사달이 났다는 말도 있지만, 후자가 가능성이 높다는 게 레온하르트의 평가였다.

“아…… 아아아…… 내 다리!!”

숨어있던 변이체 하나에 다리를 물린 병사 하나가 죽는소리를 내며 고통스러워 했다.

“젠장! 물렸어!”

“다들 물러나!”

외침과 함께 레온이 손에 쥔 빛을 뿜는 무기로 그대로 변이체의 머리통을 으깨버렸다.

변이체에게 물려서 혈액에 타액이 주입되는 순간 기생체의 알이 산 자의 혈액을 타고 들어간다.

그리고 숙주는 생명활동을 멈추고 광포한 인형이 된다.

페르세르크와 내가 본 바로 변이체들은 닥치는 대로 생자를 물어뜯지만 딱히 허기 때문에 물어뜯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어느 정도 물어뜯어 알을 주입하고 나면 버려두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 말이다.

와들와들 떠는 그를 씁쓸하게 보던 중 레유리가 무기를 꺼내 그의 목에 걸었다.

“상처 없이……”

“비켜봐요.”

이에 나는 레유리를 밀어내고 헐떡거리는 병사의 다리에 손을 올렸다.

우우웅…….

검은 안개가 퍼져나간다.

동시에 그의 몸 안으로 스며든 에너지 덩어리가 기생체의 알들을 모조리 파괴해버렸다.

“됐어. 진통제 주사하고 지혈시켜.”

“그렇군. 데이비, 너는 저 감염원을 처리할 힘이 몸에 있었지.”

그의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엉엉 울며 내게 매달리는 사내는 물린 그 순간 얼마나 공포에 시달렸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정말 든든한걸?”

내 팔을 툭 치며 씨익 웃는 레온의 말에 나는 담담하게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런데 저건 뭐지?”

“저거? 어떤 걸 말하는 거지?”

“저거.”

내 말에 그가 조용히 내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사람 키만 한 기둥 6개가 마치 원자 폐기물 봉을 보관하듯 커다란 수조 안에 들어가 있는 모습이었다.

“자가발전 시설이에요. 아마 이 지하시설을 차단하고 있는 원흉일 거예요. 겉의 용액과 내부의 플루튬이 반응해서 동력을 만들어내니까.”

레유리의 설명에 나는 질문을 하나 더 던졌다.

“그럼 저걸 여는 순간 외부에서 들어올 수 있다는 건가?”

“우리가 들어오면서 내부로 통하는 모든 길목이 추가로 잠겼어요. 아마 저걸 끄거나 부수면 문이 열리겠죠.”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저 안에 있는 봉들이 전부 플루튬이라는 소리 아니야.

“왜 그러지?”

나는 혀로 입술을 슬쩍 핥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 * *

레온은 전문가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깔끔한 일 처리를 보여주었다.

기이한 장비를 이용해 팀을 나눈 그는 선발대로 지하를 향해 목표물을 구해온다는 결정을 내렸다.

“레지, 당신은 데이비와 함께 이 근처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해줘.”

“플루튬 격납창고입니까?”

“오는 길에 도면을 봤어. 예상대로 그곳으로 이어져 있더군. 실컷 부려먹고 대가를 주지 않는 건 말이 안 돼. 변이체의 습격이 없을 때 필요한 것들을 챙겨온다. 나로선 무슨 방법으로 그것을 가져가겠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애초에 당신이 그렇게 해달라고 했으니 거기에 초점을 맞추겠어.”

더는 아무 말 없었다.

레지와 나, 그리고 륀느는 곧바로 일행과 떨어졌고 근처에 가동된 화물 수송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을 시작했다.

물론 저들이 함정에 빠지기 전에 이쪽도 준비를 해두어야 했다.

지금의 나는 거의 소풍을 나온 기분이다. 레온을 포함한 이들은 목숨을 건 작업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페르세르크, 레온의 곁에 붙어있어. 내가 신호를 보내면 그때부터 날뛰어도 좋아.’

‘두통 관리인 게야?’

‘적당히 날뛰어줘.’

그 말에 페르세르크는 인비저빌리티 상태를 유지한 채 나를 떠나 레온의 머리 위에 올라섰다.

작은 손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내게 보여주는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어주자 레온이 인상을 찌푸렸다.

“음…… 그 미소는 조금 거북한걸? 나는 동성애 취향은 아닌데.”

“헛소리할 만큼 여유가 있나?”

내 말에 그가 유쾌하게 웃어 보였다.

“나는 아직도 이해가 안 돼. 데이비, 당신 정말 그걸로 괜찮은 거야?”

대답 자체는 간단했다.

이후 나는 레지와 함께 다시 이동을 시작했고 근처의 시설문을 열어 화물 수송용 엘리베이터를 찾을 수 있었다.

“정말 으스스하네요. 감염체는 없다지만.”

고요한 소리를 내며 이동하는 엘리베이터의 창밖을 보며 레지가 중얼거렸다.

“그런데 정말 어떻게 가져가시려고 그러는 겁니까. 1톤이라면 절대 간단히 이동시킬 수 있는 양이 아닌데.

“보면 압니다.”

내 말에 그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후 나는 엘리베이터의 한쪽에 비치된 녹빛의 보석을 바라보았다.

티오니스의 영상 기록석과 매우 흡사한 물건이었다.

아마 저 속이 비치지 않는 보석이 빛을 흡수하는 물질이리라.

레지는 품 안에서 작은 종이를 꺼내 들었다. 거기엔 레지로 보이는 사내와 함께 키가 작은 여성이 그려져 있었다.

“제 동생입니다. 이제 15살이 되었죠.”

“예쁘네요.”

“하하, 그렇죠? 사실 이번 임무가 끝나면 은퇴를 할 생각입니다. 동생을 더 걱정시킬 순 없어서요. 다행히 이번 임무의 보상이 쏠쏠해서 이번 일만 마치면 레지나와 함께 살만한 작은 집을 구할 수 있지요. 식량 배급 걱정없는 그런 집 말입니다.”

꿈에 젖은 그 목소리에 나는 빙그레 웃어 보였다. 보통 저런 말은 죽는 이들이 자주 하던데.

키이이이이잉…… 취이익!!

증기가 뿜어지며 이동을 마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도착했습니다. 다행히 이곳에도 감염체는 없나 보군요.”

그가 중얼거리며 지도를 꺼내 이리저리 확인했다.

“멀지 않아요.”

그의 말대로였다.

길게 뻗어진 지하 복도를 타고 5분 정도 걷자 커다란 창고가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수배는 돼 보이는 거대한 높이로 쌓인 박스들이 가득한 창고였다.

레지는 곧바로 상자 안의 물품을 확인했고 이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전부 순수 플루튬입니다. 세상에 이만한 양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네요.”

그의 말에 나는 플루튬 주괴 하나를 꺼내 들었다.

묵직해도 이상하지 않을 무게이지만 직접 들어본 플루튬 주괴는 마치 플라스틱 장난감처럼 가볍기 그지없었다.

“일대에 있는 플루튬을 전부 회수해야 1톤 정도의 무게가 나올 겁니다. 제가 말씀드렸죠? 인간이 개인의 힘으로 옮길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레지의 말대로였다. 1톤이라는 무게도 인간이 들 수 없지만, 그 부피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크다.

물론, 그 사실을 몰랐다면 애초에 내가 플루튬에 대해서 알리도 없었을 것이다.

“상관없어요.”

담담하게 말하자 륀느가 다가왔다.

“데이비님. 소음을 감지.”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좀이 쑤시나?”

“무슨……”

콰아앙!!!

그 말과 함께 근처의 문이 뒤틀리듯 열리며 검은 복장을 한 이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그리고는 특유의 무기를 들이민다.

“헙?!”

깜짝 놀란 레지가 자신의 무기를 그들에게 겨누었다.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데이비님! 제 뒤로 오십시오!! 파라솔입니다!!”

그의 외침대로 사내들의 검은 복장 한쪽엔 특이하게 생긴 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파라솔의 문장이에요. 대체 이놈들이 어디서 어떻게 들어온 거지?!”

경악한 얼굴로 소리치는 레지였다.

“어디로 들어오긴요, 입구로 들어왔겠지.”

“그럴 리가요! 아까 보셨다시피 플루튬 제어봉이 꽂혀있어서 이 시설은 외부로부터 완전 차단……”

말을 하던 그가 굳은 얼굴로 나를 본다.

“아, 미안해요, 그거 내가 뽑아서 날름 빼돌렸습니다.”

“미, 미쳤습니까!? 우리도 갇힌 꼴이었지만 반대로 외부의 적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주던 물건을 빼돌렸다고요?! 그게 어디 있는데요!”

“아아, 거 진정 좀 하시고. 잘 숨겨놨으니 걱정 말아요.”

내 말에 그가 복장이 터지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적이 들어오게 문을 열어버렸다니 그의 입장에선 기가 막힐 수밖에 없다.

물론, 내가 빼돌리지 않았어도 어차피 열렸겠지만 말이다.

우리를 포위한 사내들은 당장 공격할 의사는 없어 보였다.

대신 무언가 대화를 하기 위해서일까.

그들 사이에서 한 사내가 작은 수정구 같은 것을 가지고 나와 내게 굴렸다.

마치 맹수를 보는 것 같은 경계심이었다.

“통신 도구?”

그것의 정체를 깨달은 레지가 조용히 중얼거리자 나는 그 구슬을 집어 들었다.

티오니스의 마나 통신 수정구와 비슷하지만, 재질은 달랐다.

치직…….

이윽고 구슬에서 옅은 빛이 흘러나와 그 안에서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음……. 아아, 잘 들리나?”

처음 듣는 노인의 목소리였다.

“흠흠, 나는 닥터 프라운이라고 한다네.”

수정구 속에서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프라운?”

“뭐, 다들 그렇게 부르고는 있지. 소속은 자네가 보다시피 자네를 포위한 그 병사들과 같은 소속일세.”

그 말에 레지가 눈을 크게 떴다.

“프라운 박사!!”

“호오, 나를 아는 이가 있나?”

“이 빌어먹을 기생체를 만든 놈을 모를 수가 있나!!”

“워워 진정하게. 자네와 나는 전기신호를 두고 멀리서 대화하는 것뿐이야. 비록 이 몸이 내 몸뚱이이지만 자네가 보는 건 허상일 뿐이지.”

“닥쳐!”

레지가 격분하며 수정구를 향해 소리 질렀다. 그냥 두면 당장에라도 수정구에 화풀이를 할 것처럼 보였지만 주변에서 무기를 들고 있는 이들 때문에 쉽사리 움직이진 못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으로 외부와 내부를 막는 장치를 비활성화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진입이 쉬웠네.”

“별말씀을.”

내 말에 그가 만족스레 웃어 보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네를 예의주시하는 것도 알았겠군?”

프라운 박사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녹색 보석들.”

“호오. 알고 있었나? 보통 은밀하게 숨겨놓은 그것들을 구분하기 쉽지 않은데 말이야.”

그가 잠시 침묵한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지. 자네, 정말 인간이 맞는가?”

“질문의 의도가 뭐야.”

“속일 생각 말게. 나는 분명 자네를 포함한 그 빌어먹을 레온하르트를 죽이기 위해 변이체를 다수 보냈네. 그런 놈들이 단 한 번도 자네들을 만나지 못했지. 왜일 것 같은가.”

그 말에 레지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이곳까지 오면서 그들이 본 변이체는 골리앗급 거대한 개체 하나를 제외하곤 하나도 없었으니 말이다.

“왜긴, 내가 오기 전에 다 머리통을 깨버렸으니까 없지.”

“그러네.”

“데이비 씨, 대체 무슨……”

설명을 요구하는 레지의 말에 나는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우리가 연구한 슈퍼솔저도 인간을 벗어난 힘과 속도를 보이지만 자네 같은 무식한 짓은 못 하지, 자네는 그것들과도 다른 이질적인 존재야. 마치…… 그래, 이 기생체 바이러스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준 그자처럼 말이야.”

“그거 흥미가 가는데, 혹시 본인이 심연의 공주이니 심연의 존재이니 하던가?”

“호오? 그걸 어찌 알았나.”

그 말과 함께 나는 수정구에 아주 미약한 전류를 흘려보냈다.

구조방식은 다르지만, 전류 신호는 똑같다.

“그래서, 내게 연락을 한 이유는?”

“뭐, 별거 없네. 목숨은 살려줄 테니 그들과 함께 이곳으로 오게.”

“거절하면?”

“죽는 수밖에. 제아무리 신기한 힘을 지닌 자네라도 수십 명에게 집중포화를 당하면 살아남을 수 없지.”

그의 말에 검은 복장의 사내들이 일제히 무기를 내게 겨누었다.

분명히 총과 비슷하게 생겨서 빛을 내뿜는 금속탄환을 쏘아내는 이 세계 특유의 무기다. 기본적으로 옛날의 머스캣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탄환이 상당히 발전되어있다.

“설사 저들에게 살아남아도 내 명령 한 번이면 도시 전체를 파괴할 수도 있네. 도망칠 길은 없다 이 말이야, 어떻게 하겠는가.”

그 말에 나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 보니 우리랑 같이 온 여자 하나가 그쪽의 끄나풀이 같던데.”

“호오, 거기까지 알아냈는가? 놀랍군. 맞네. 레유리는 우리 조직의 충실한 일원이지 자네에 대한 보고도 그녀가 올렸네. 아마 지금쯤이면 그들을 모두 제압하여 사살하고 항체를 탈취했을 것일세.”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보지.”

“음?”

“당신을 도와준 그 악마인지 뭔지 하는 이 말이야. 남자야? 여자야?”

내 물음에 그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으음? 조금 특이한 질문이로군. 여성일세.”

심연의 공주 쪽으로 봐도 무방해 보인다.

애초에 심연의 공주는 다수 존재한다. 내가 파악한 이는 울드와 베르단데, 그리고 이미 내 손에 아작난 슬리지아. 그 외에도 여러 심연의 공주가 있지만 직접 만나본 건 앞의 셋이 전부였다.

“대화 고마워.”

“별말씀을 자네가 협조적으로 나온다면 저자는 내 살려주지.”

그 말에 나는 빙그레 웃어 보였다.

“협조라니, 그 말은 내가 해주고 싶은데.”

“뭐?”

“쓸데없는 대화를 오래 해준 덕분에 그쪽 위치를 찾았거든.”

담담하게 말한 내가 쥔 수정구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프라운이라는 노인의 얼굴에 금이 갔다.

“무슨 소릴…….”

“간단해. 이놈의 세상도 전기신호를 쓰더라고. 내가 컴퓨터도 아니고 그냥 찾을 순 없지만, 마법을 통해서 전기신호를 위장 탐색하면 가능해.”

이해 못 하겠다고?

이해하라고 말한 게 아니니 상관없다. 요지는 그러했다. 마나를 통해 전기신호를 위장시켜 길게 늘어뜨리고 수정구를 통해 수신되는 전기신호를 역으로 따라간다. 그리고 대화의 장소를 찾아낸다.

마법 요소가 없기에 그대로 노출된 그들은 영혼 끝까지 내게 해킹을 당한 꼴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난 볼 수 있었다.

전기신호를 왜곡시키는 기이한 마법적인 힘의 존재를.

마나가 없는 이세상에서 비 물리 법칙에 의거한 힘을 사용하는 이가 있다?

그 정체는 뻔하다.

파라솔인지 나발인지 하는 놈들의 거점은 내가 위치를 모르니 직접 찾아내기 위해선 이 방법이 전부였다.

“가서, 그 심연의 공주에게 전해.”

“……”

“내가 찾아간다고.”

땅따먹기 좋아합니까? 이 땅은 이제 제 겁니다.

콰직!!!

악력을 못 이기고 수정구가 박살 난다.

동시에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이 나를 공격할 준비를 했다.

사실 파라솔인지 뭔지 하는 단체가 레온에게 접촉해올 줄 알았다.

아니면 레유리가 깔끔하게 배신을 하던가. 뭐가 되었건 그런 낌새는 있었기에 그녀를 예의주시하느라 페르세르크까지 붙여놓았는데.

정작 파라솔이라는 이놈들은 저쪽이 아니라 내게 관심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엎드리세요!!!”

그때 가만히 있던 레지가 몸을 날리며 나를 밀쳐냈다.

본래대로라면 나를 뒤에서 덮쳐 나를 보호하듯 감싸고 엎드릴 생각이었겠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행동에 나는 밀려나지 않았다.

결국, 레지도 나도 그대로 멀뚱멀뚱 서 있는 꼴이 되어버렸다.

핑!!! 지이이잉!!!

동시에 검은 옷을 입은 이들의 집중포화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굳어있던 레지는 비명을 지르며 홀로 엎드렸고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채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한참의 포격 끝에 공격이 멈추었고.

모두 볼 수 있었다.

“뭐라 해도 화약방식은 비슷하구나.”

허공에서 멈춰버린 빛을 내뿜는 탄환.

그리고 그 탄환 중 하나를 잡아 장난치듯 이리저리 돌려보는 나를 말이다.

이후 나는 검지와 중지를 귀에 붙이고 조용히 말했다.

“페르세르크. 나야. 그쪽은 이제 볼일 없으니까 깡그리 정리하고 이리로 와. 아 참, 그리고 그 항생제인지 나발인지는 기왕이면 챙겨.”

느긋한 내 말에 레지를 포함한 모두가 황당한 얼굴로 나를 본다.

“대체 무슨…….”

위협적인 무기의 탄환이 내게 닫기도 전에 모두 멈춰 있는 상태.

눈앞의 현실을 믿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에 나는 느긋하게 손을 휘저었다.

투두두두두둑!!!

동시에 허공에 뜬 금속 덩어리들이 모조리 추락했다.

마치 영화나 소설에나 나올법한 장면에 레지는 찢어질 듯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흡사 귀신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서려 있었다.

“뭐해요. 돌아가면 여동생이 기다리고 있다면서.”

“네…… 네?”

“거참.”

나는 담담하게 말하고 돌아섰다.

공격을 퍼붓던 이들은 내 행동에도 추가적이 공격을 가하지 않았다.

“나가서 엘리베이터 작동시켜요. 플루튬만 챙겨서 나갈 테니.”

본래 목적이었던 플루튬을 그냥 두고 갈 수야 있나.

미안하지만 이번 심연의 공주는 서브 목표일 뿐이다.

내 말에 황당한 표정으로 그가 물어왔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아직 놈들이 건재……”

“건재해요?”

그의 말을 끊은 내가 엄지손가락으로 내 뒤편에 굳어있는 검은 복장의 사내들을 가리켰다.

“누가?”

쩌억……

동시에.

우리를 포위하고 있던 사내들의 몸에 붉은 실선들이 생겨나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쪽에는 륀느가 손등에 생긴 라이트 세이버를 깔끔하게 털어내고 있었다.

“세상에 맙소사…….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야.”

기겁한 레지의 중얼거림에 심드렁한 얼굴로 륀느가 중얼거렸다.

“륀느가 데이비님을 공격하는 이들을 낮게 평가. 감정회로가 빠르게 가열 중. 이것을 분노라 판단.”

담담한 목소리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