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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489화 (488/1,559)

제 489화

빛은 빛으로.

도시 하늘을 녹빛으로 감싸던 빛은 도시 지상에서 하늘로 날아오른 거대한 흑룡, 메가로드리아가 쏘아 보낸 광선에 그대로 집어삼켜졌다.

먹어치우라니까, 그걸 받아치고 있네.

결국, 브레스가 융해탄을 집어삼킨 건 맞지만 이건 말 그대로 말장난에 불과하다.

하늘에 쌓인 어둑어둑한 구름이 일제히 원 형태로 갈라지며 찢겨 나가고 공기를 찢으며 거대한 브레스가 하늘을 수놓았다.

녹빛의 광탄은 마치 백린탄이 떨어지는 것처럼 수천 갈래로 나뉘어 낙하했지만 메가로드리아는 하늘을 찢어발기는 브레스를 멈추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려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든 빚덩어리들을 모조리 불태워버렸다.

-크아아아아아아앙!!!!

주변을 어둑어둑하게 만들었던 두꺼운 구름이 모조리 찢겨 나가고 도시에 오랜만에 빛이 내리쬐자 레온이 허탈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기절한 레유리는 상황을 보지 못했지만, 그는 어느 정도 보호를 받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윽고 날아올랐던 그가 거대한 네 쌍의 날개를 펄럭이며 천천히 착륙하자 나는 아공간에서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꺼내 그에게 던졌다.

“방사능 듬뿍 넣어놨다. 맛은 꽤 자극적일 거야.”

[흥! 이딴 걸로 나를 만족시키려 들지 마라!]

“그래서, 안 먹을 거냐?”

[먹는다!]

그러면서도 내가 던진 고깃덩어리를 놓치지 않고 모조리 씹어 삼키는 메가로드리아였다.

“데이비님, 방사능은 생명체에게 치명적.”

“저놈 입맛이 좀 까다로워.”

“……륀느가 폭풍 용왕의 특이한 먹성을 메모.”

그렇게 답하며 륀느는 어디서 꺼낸 건지 모를 작은 종이와 펜을 이용해 무언가를 끄적였다.

어처구니없게도 한 녀석의 주 간식은 마그마이며, 한 녀석의 간식은 극도로 차가운 얼음이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망할 놈의 하늘 도마뱀 녀석은 방사능을 매우 좋아하는 입맛을 가지고 있다.

[계약자. 다수의 접근 신호가 느껴진다. 도시 전역에 퍼져있던 지독한 시체 냄새로군.]

그랜드마스터급 환수인 메가로드리아가 나선다면 놈들이 문제일까.

하지만 나는 녀석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놔둬. 마침 사령 마나를 깡그리 쓸 일이 있으니까.”

그것은 약속이며.

맹세이다.

공포를 느끼지 못하고 본성만 남은 것들이 움직인다.

메가로드리아의 존재감도 존재감이지만 이 도시에 수많은 수작질을 해놓은 파라솔에서 나를 지워버리기 위해 이 도시 안의 모든 생체 병기들을 움직인 게 분명했다.

이에 나는 조용히 페르세르크에게 손을 뻗었다.

페르세르크는 자신의 손에 쥔 초월의 종언을 다시 돌려준다는 사실이 영 아쉬운지 입을 삐쭉였지만 결국 내 손에 건네주었다.

“흑…… 조금만 기다리려무나. 본녀가 널 찾으러 갈 터이니.”

“이산가족도 아니고.”

마법사답게 지독하게 스태프에 대한 집착을 보이는 그녀였다.

거, 그 집착을 나한테 좀 보여주면 더 좋으련만.

문득 페르세르크를 쉽게 다룰 방법이 떠올랐지만, 이내 나는 그것을 무시하고 머릿속 한편에 잠재웠다.

속으로 혀를 차며 받아든 초월의 종언을 빙그르르 돌린 나는 몸을 가볍게 띄운 뒤 근처의 파괴된 건물의 파편 위로 올라섰다.

폐허가 된 도시를 둘러보던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한 손을 땅에 짚은 뒤 몸 안의 사령 마나를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이 도시는 내게 중요하다. 필요한 플루튬을 모두 챙긴 와중에 무슨 소리냐 할 수 있지만.

본래 확보하려 했던 플루튬의 양이 내 예상보다 조금 부족할지도 모르겠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데이비, 그냥 솔직히 심연 때문에 멀쩡한 사람이 죽어 나가는 걸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게 어때.”

고통받는 망자를 못 본 체하지 않겠다는 맹세이며.

신을 모시는 성자의 의무다.

주신 프리아 여신은 오로지 티오니스에 한정된 신이 아니니.

어느 세상의 생명이건 그녀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조용히 해! 멍청아.”

짧게 쏘아붙이자 페르세르크가 마치 재밌는 장난감이라도 얻은 것처럼 키득거렸다.

파라솔은 이미 도시 곳곳에 감시 장비를 설치해뒀을 테니 지금 내 모습을 보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얼마든지 이곳으로 시선을 돌려라.

“정말 보기 힘든 광경을 보여줄 테니.”

감염된 변이체든 돌연변이든 결국은 시체다.

시체놀음을 하는 놈들에겐 시체로 답해주는 게 예의렷다.

[9서클 초월계 사령 마법]

[데스로어]

솨아아아아아아!!!!!

동시에 몸 안의 사령 마나가 요동치며 어마어마한 두통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힘의 사용량과 경지에 비례한 두통.

하지만 이번엔 공간 전이마법처럼 실패한다고 가볍게 넘길 수 있는 페널티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초월의 종언을 사용한다.

초월의 종언이 마냥 마법의 크기를 조정하는 능력만 있었다면 사실상 추가 아티펙트일 뿐 메인 스태프는 될 수 없다.

스태프의 주목적은 마법 사용의 보조, 마나량의 보조 등등 여러 분야.

혹여 내가 놓칠 수 있는 범위의 마법을 보조하기엔 이것만 한 게 없는 게 현실이다.

이윽고 내 몸에서 뿜어져 나온 사령 마나는 곧 거대한 칼날 같은 안개로 변하며 내 주변을 원 형태로 감싸기 시작했고, 이내 거대한 악귀 같은 형상을 만들어내며 거대한 포효를 울리기 시작했다.

충격파를 일으킬 정도의 거대한 악귀의 포효가 도시 전역으로 퍼져나가자 주저앉아있던 레온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이봐, 저 친구 왜 저러는 거야!”

척 봐도 마치 악귀에게 잡아먹히는 듯한 모양새이니 레온으로선 상당히 불안했던 모양이었다.

이미 곁에 내려앉아 위용을 뽐내고 있는 메가로드리아만으로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데 그와 비슷한 위압감이 그대로 전해지니 섬뜩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그런 그를 등 뒤에서 무릎으로 받쳐 지지하고 있던 륀느가 푸른 눈동자로 낭랑하게 말했다.

“데이비님의 전술은 단순하지만 효과적. 물량전엔 물량전으로.”

그 말과 동시에, 도시 전역에서 모여드는 수많은 감염 변이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거대 도시의 인구 대부분이 변이되어버린 만큼 그 수가 모조리 몰려오면 그 여파는 섬뜩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보면서도 조용히 침묵하던 나는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뜨며 목소리를 냈다.

[임퍼펙션 데스로드의 이름으로 명한다.]

[육신을 잃고 방황하는 망령이여, 왕의 명령에 따라 일어나라.]

너희들이 영혼을 잃은 껍데기를 쓰겠다면.

이쪽은 육신을 잃고 구천을 떠도는 망령을 부려주마.

내 말과 함께 검은 기류가 일순간 원 형태의 안개처럼 퍼져나간다.

그리고.

그 짧은 침묵 끝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던 땅 아래에서 새카만 손들이 뻗어져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각각의 형체를 지닌 망령들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수는 내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많았다.

어마어마한 수의 망령들이 일어나고 내 힘에 영향을 받아 실체를 가진다.

망령에게 실체를 주는 건 그야말로 미친 짓이나 다름없다.

하나하나도 아니고 다수 저항능력을 지닌 그 많은 수의 망령에게 초과하는 힘을 주입하여 실체를 부여하는 것이니 말이다.

내가 성장하는 방식은 단순하기 그지없다. 한계치까지 힘을 사용하여 그 한계용량을 늘린다.

깨달음의 경지는 어차피 마나통이 회복되는 대로 서서히 돌아오는 법이니까.

이때가 아니면 무리하게 마나를 활성화할 기회가 없는 것도 사실인 만큼 나는 절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과할 정도로 무리하게 사령마나를 모조리 끌어다 쓰는 것에도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몸 안의 힘 하나가 모조리 비어버리는 느낌이 들지만 어떠하리.

다시금 회복될 땐 미약하더라도 그 양이 늘어있을 텐데.

-끼이이이이이이익!!!!

귀가 찢어지는 듯한 포효와 함께 일어난 산발 망령의 신호를 시작으로.

쿠구구구구구구궁!!

산자를 향해 맹렬하게 번식욕망을 드러내던 감염 변이체들을 향해 망령의 파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여긴 내 차원 무역의 거점이 될 거다.”

나는 이곳의 특산 합금이나 원료들을 받아가고.

이곳에서 필요한 생필품이나 식량 물자를 지급한다.

하인스 영지에서 그만한 식량 물자를 어디서 구하냐고?

차원 열쇠는 이 유르기안 대륙만 이어진 게 아니거든.

어차피 무역을 위해 이동이 가능한 건 나와 몇몇이 전부이지만 무슨 상관이랴. 이곳에서 얻는, 이곳에서만 생산되는 재료들은 전부 내가 쓸 것들이거늘.

콰드드득!! 쾅!!!

어마어마한 속도로 쏟아져 들어가는 망령들은 이미 한 차례 죽은 자들이다. 게다가 저 감염 변이체를 향한 맹렬한 증오를 가진 만큼 절대 물러섬이 없었다.

쾅!!!

물론, 감염 변이체들 사이에서 거대한 덩치를 지닌 돌연변이들도 대거 모습을 드러낸다.

실체를 가진 망령이라도 그 정도 되는 돌연변이들의 난동을 막아서는 건 쉽지 않다.

“빌어먹을 골리앗에 타이탄이잖아!”

비명을 지르는 레온의 모습에 나는 손을 휘저었다.

동시에 망령들의 다수가 뭉쳐지며 거대한 형태의 늑대로 돌변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검은 그림자의 늑대는 맹렬하게 타오르는 듯 일렁이는 검은 안개를 퍼뜨리며 거대한 돌연변이 변이체들을 물어뜯고 마구잡이로 흔들었다.

순식간에 압도되는 감염체들의 공격은 타액을 통해 상대의 혈액과 접촉하고 혈액에 기생체의 알을 심어 넣는 것으로 번식한다.

문제는 망령에게 피가 있을 리 없다는 점이다.

당연, 기생이 불가능하니 평소 놈들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장기는 무력화된 셈이니.

싸움의 결과는 뻔하다.

순식간에 달려들어 변이체들을 물어뜯고 찢어발기는 망령들은 그야말로 끔찍한 한의 덩어리였다.

“데이비…… 저게 대체……”

“저 육신의 주인들. 억울하게 죽어간 망령들이 윤회에 들지도 못하고 이곳에 묶여서 지박령이 되고 서서히 원령이 되어가고 있던 것들.”

아마 이 세상엔 그런 것들이 차고 넘칠 것이다.

“약속이 있어서 이런 게 보이면 그냥 둘 순 없어.”

원령이든 망령이든 그들을 성불시키는 방법은 간단하다.

한을 풀어주고.

성불시킨다.

“만약, 욕심을 부리는 망령이 존재한다면? 하…… 내가 말하고도 어처구니가 없군. 영혼이라니. 사람이 한을 품고 귀신이 된다고? 싸구려 영화보다 현실이 더 흥미진진하구만!”

“대게 망령들은 그래. 말을 잘 듣는 놈은 적당히 돌아가지만 그렇지 않은 놈도 있지.”

그렇게 말한 나는 망령들 사이사이에서 더더욱 어두운 기운을 풍기는 망령 하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당연, 내 제압에 망령은 자신을 왜 막느냐며, 악을 쓰듯 내게 저항해왔다.

이게 위아래를 몰라보네.

“적당히 하랬지, 넌 아웃이야 인마.”

그런 놈들은.

쩌억! 끼이이이이익!!!!

강제로 성불시키는 수밖에.

신라국의 위인이라 불리는 처용이 이런 말을 남겼다. 말 안 듣는 역귀 놈들은 쥐어패야 한다고.

[6급 성마법]

[턴 언데드]

6급까지 진화한 턴 언데드의 효과는 굉장하다.

과하게 폭주한 망령들은 신성력을 쏟아부어 강제로 성불시킨다.

레온은 기가 막힌 듯 헛웃음을 흘렸다.

순식간에 도시 전역으로 퍼져나가는 망령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한다. 한을 풀고 사라지는 원혼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한 것이다.

검게 변질되었던 망령들은 다시금 실체를 잃었지만, 영혼의 본질이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새하얀 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아저씨…… 아저씨가 저를 구해주신 건가요?]

작은 소년이 그보다 더 작은 조그마한 소녀의 손을 꼭 잡고 내게 다가왔다.

새하얀 빛으로 물든 소년의 얼굴엔 처음 볼 때의 악귀 같은 비통함이 아닌 환한 순백의 미소가 걸려있었다.

“많이 아팠냐?”

심드렁하게 물어보자 소년은 헤헤 웃어 보였다.

[많이 아팠어요. 레이첼은 엉엉 울었고요. 어둡고 축축하고 무서운 곳에 갇혀있다가 아저씨의 목소리를 들었어요.]

소년이 고개를 까딱였다.

[엄마가 도움을 받으면 감사합니다 라고 꼭 말하라고 했어요. 레이첼. 고마운 아저씨께 인사드려야지.]

[고, 고맙씁미다…….]

약간 어눌한 말투로 앙증맞게 고마움을 표하는 레이첼이었다.

이에 나는 천천히 몸을 숙여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이름이 뭐야.”

[레이킨이라고 해요.]

“그래 레이킨, 어른들이 미안하다. 순수하게 자라야 할 너희들이 어른들의 싸움에 휘말렸네.”

대답을 들려오지 않았다.

“더 좋은 세상에서, 행복한 부모를 만나 태어나길 기도하마.”

[고마워요.]

레이킨의 대답과 함께 두 남매가 완전히 빛으로 휩싸여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하나하나 이 도시에서 희생된 수많은 이들이 새하얀 영혼이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성자의 이름으로, 그대들,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을 축복한다. 윤회의 고리에 올라 그대들의 앞날에 빛이 함께 하기를.]

짧게 중얼거리며 축복을 퍼뜨리자 영혼들이 서서히 흩어졌다.

을씨년스럽고 공포의 분위기가 가득하던 도시는 메가로드리아가 뚫어버린 두꺼운 구름을 지나 빛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후 나는 레온의 어깨를 잡아 다시 공간 전이를 발현하며 말했다.

“이바노프에게 가서 전해 레온.”

“말만 하라고 친구.”

“이 도시로 돌아와. 이곳에 삶의 터전을 다시 만들어. 이미 한번 부서졌지만 그래도 거주지보단 나을 테니까.”

도시 전역의 감염체와 그 근원들을 모조리 날려버린 이상 이곳에 더는 위험성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아직 남은 감염체들이……”

“그건 내가 처리할 거다.”

“데이비, 넌 어떻게 할 생각이지?”

“이곳의 일은 스스로 해결하는 거지만 딱 하나 너희들의 손에서 벗어난 게 있으니까.”

그년을 지금부터 처리하고 가려고.

그 말과 함께.

메가로드리아의 등위로 가볍게 점프한 나는 나를 따라붙는 륀느와 페르세르크가 녀석의 등에 올라앉기가 무섭게 손가락을 튕겼다.

“레유리 경장이라는 저 여자는 알아서 처리해. 내 알 바 아니니.”

스팡!!

그 말과 함께 레온의 육신이 레유리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이후 나는 녹빛 보석을 쥐고는 섬뜩하게 웃어 보였다. 이 대륙 어딘가에 숨어있을 파라솔 코퍼레이션에 이질적인 존재.

심연의 공주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직감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멀지 않은 곳에서 부서진 음성 송출 장치의 노이즈가 들려왔다.

치직…… 치지지직……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지만 무슨 방식을 쓴 것인지 송출 장치를 통해 내게 그 의지가 전해져 왔다.

심연의 힘이 뒤섞인 구역질 나는 살기였다.

“보고 있지? 거기서 기다려.”

지금 만나러 갈 테니.

네가 죽건 내가 도망치건 어디 한번 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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