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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493화 (492/1,559)

제 493화

오로지 밀피유에게 집중하게 된 학생들은 당연히 수업에 대한 집중도가 압도적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다.

영혼들에게 듣기로는 그나마 밀피유는 나은 편이라는 모양이었다.

다른 교수진들은 이론 수업에 지독하고 악랄한 방식으로 학생들을 빠르고 완벽하게 성장시키고 있다는 모양이니 말이다.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창대하니 그걸 두고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애초에 내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지 않았던가.

이년도 이거 정상은 아니야.

‘그대가 누굴 비꼬는 게야.’

‘내가 뭘 했다고.’

‘뭘 해? 심연의 공주 힘을 가져와서 자신이 수만 가지의 저주가 걸리는 걸 알면서도 욕망에 충실한 그대가? 하! 지나가던 고블린이 웃겠군!’

그때 당하면서 쌓인 게 많았는지 페르세르크는 대놓고 내게 툴툴거렸다.

“아, 아저씨!”

뒤이어 나를 발견한 작은 하프 엘프 소녀가 나를 향해 후다닥 뛰어오자 내 품에 안겨있던 청단이 홍단이도 잽싸게 내게서 뛰어내려 그녀에게 뛰어갔다.

“와아! 뮤우! 뮤우!”

“청단이 홍단이야! 정말 반가워!”

“홍다니는 막막 뮤우가 보고 싶었어!”

“뮤우도 홍단이 청단이 전부 보고 싶었어!”

헤실거리며 즐거워하는 세 아이의 모습에 슬쩍 미소를 지어 보인 나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밀피유와 함께 강당을 벗어났다.

그녀의 개인 연구실로 들어서자 약품 냄새가 지독하게 코를 찔러왔다.

“연금술사의 개인 공방은 늘 그래.”

“알고 있으니 변명하지 마.”

담담하게 말한 내가 몬스터의 눈알이 보관된 시험관을 들어 이리저리 흔들어본 뒤 말했다.

뒤따라 들어온 뮤우와 청단이 홍단이는 조막만 한 작고 흰 손으로 코를 움켜쥐고 울상을 지었다.

“으앙……. 냄새애!”

“으으, 청단이 이 냄새 시러!”

울상을 짓는 아이들이 급기야 문밖으로 후다닥 도망가버리자 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고는 본론을 꺼내놓았다.

“넌 알고 있지?”

“뭘 말하는 거야.”

“내가 이전에 보냈던 그 뱀파이어 변이체.”

이름은 카노스라고 했던가. 연금학파에서 듀란 왕자가 대동하던 그 변이체들 말이다.

“파괴의 마왕인지 나발인지의 힘을 부여받은 놈들.”

“공허 에너지?”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어디론 가로 걸어가더니 찬장을 열어 작은 시험관 하나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울드가 사라졌는데 굳이 도망치지 않나?”

“어찌 되었건 이 대륙은 이제 희망이 없으니까. 차라리 목숨을 부지하고 내 목적을 이루는 게 나아.”

“그래서 날 이용하시겠다?”

“그만큼 나는 당신에게 많은 것을 제공해. 틀려?”

그렇게 말한 그녀가 나를 흥미롭게 본다.

“또 신기한 걸 몸에 품었네. 정말 볼 때마다 흥미로워. 고대의 골렘과 당신. 전부 연구해보고 싶어.”

“꿈도 꾸지 말아!”

듣다 못한 페르세르크가 현신하며 으르렁거리자 밀피유가 입을 삐쭉였다.

“아쉽네. 어찌 되었건 그 변이체의 몸 안에 있던 공허 에너지를 추출한 거야. 당신이 원하는 건 그거 아니야?”

세상 어떤 연금술사보다 이런 분야에 관해서 밀피유 이상의 지식가는 없다. 그녀는 상위 뱀파이어면서도 마족과 깊게 연관된 적이 있는 유일한 생존자이니 말이다.

물론, 나와 대화가 통하는 이들 중에.

그녀가 건넨 시험관은 전체적으로 투명한 액체가 깃들어있었지만, 그 중앙엔 보랏빛과 검은빛이 뒤섞인 구체가 마치 항성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치직…… 치지직…….

“흥미로운 힘이야. 마나나 혈기를 불어넣으면 아주 미약한 반응에도 연쇄반응을 일으켜 굉장한 에너지를 방출해.”

그렇게 말한 그녀가 시험관을 받아들고 혈기를 흘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라운 양의 에너지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지속시간도 길고 안정적이야. 당신이 만들고자 한 게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동력원으로 쓰고 싶다면 충분해.”

“마계로 가는 길.”

내 말에 그녀가 나른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족들이 있는 마계는 정확히 타차원이 아니야, 대륙 어딘가를 통해서 이어지게 되어있겠지, 넌 어디 있는지 알고 있지?”

조용한 침묵 끝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려던 찰나, 나는 문득 재밌는 생각이 들어 그대로 밀피유의 목덜미에 손을 올리고 그대로 심연의 공주 베르샤의 힘을 발현했다.

“흐끅?!”

동시에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밀피유의 눈이 부릅떠지더니 그대로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자잘하게 연습했는데 효과가 점점 좋아진다.

“아이고…… 이 화상아…….”

페르세르크의 말이 들려오지만 나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더욱 만족스러웠다.

“아…… 아아……”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아버린 밀피유의 표정은 혼란 그 자체였다.

일말의 감정도 느껴본 적 없을 것 같은 뱀파이어에게도 통한다.

마음 같아선 홍단이나 청단이에게도 써먹어 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그렇게까지 이상 성욕자도 아니고 굳이 그 아이들에게 이런 짓을 할 이유는 없었다.

“대체…… 무슨……”

“아니 이번에 간 곳에서 재밌는 걸 얻어와서 말이야. 협조 고마워. 마계로 통하는 길은 조만간 떠날 거다. 그때 알려줘.”

“……”

말없이 나를 올려다보던 그녀가 바닥에 손을 짚었다.

그리고는 손에 묻은 투명한 물기에 천천히 인상을 찌푸렸다.

“흥미롭지 않아.”

* * *

요시아 프랑소스는 현재 샤쿤탈라에서 나와 그녀를 만나러 온 F반 동기와 함께 지내고 있었다.

비록 외향은 평범한 인간 소녀이지만 속내는 대륙의 최강자 중 하나인 뱀파이어 로드라는 어마어마한 정체를 지닌 이가 바로 그녀였다.

“요시아. 정말 이렇게 보니까 어엿한 마법사가 다됐구나?”

“어때. 끝내주지 않아?”

세상만사 관심 없어 하던 요시아 프랑소스였지만 이제는 제법 활기차게 웃을 줄도 알게 되었다.

“그나저나 하인스 아카데미는 정말 신기한 곳이야. 곳곳에 돌아다니는 웃긴 유령들하며…….”

“맞아. 유령주제에 데이트하는 걸 보고 있으니 배가 아플 지경이더라.”

알리사 요스포그의 말에 모리 사엘른과 셀비스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인다.

뒤이어 렌다르고 공작가의 자제인 티미가 킥킥거렸다.

“솔직히 데이비 그 인간이 하면 뭘 해도 정상은 아닐 거라 생각했지. 난 그보다 자동으로 움직이는 마차가 더욱 끌리더라. 그 속도감에 조용함, 운전하는 걸 봤는데 그렇게 재밌어 보일 수가 없더라고.”

“선생님께 말해서 한 대 정도 만들어달라고 해볼까?”

“아, 그래 주면 고맙지! 제작비는 내 용돈 선에서 지급해볼게.”

데이비의 동생인 에오니샤 올 라운과 드워프들이 만든 자동 마차.

그곳에 꽂힌 티미였다.

“그래도 여기서 일하는 거 별로 힘들고 그러진 않아?”

“이곳에 온 지 얼마나 됐다고. 처음 여기 들어오기 위해서 선생님하고 얼마나 실랑이를 했는지 몰라.”

요시아의 말에 티미의 표정이 음흉하게 변했다.

“요시아. 너 선생님 좋아하냐?”

“티미 렌다로그, 돌았어? 나랑 싸우고 싶어?”

단호한 말에 티미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아니면 아닌 거지 정색질은…….”

“선생님은 남자로선 영 꽝이지. 어떤 여자가 그런 사고 치는 미치광이 사디스트 사이코패스를 좋아하겠어?”

의자에 앉아 한숨을 내쉬는 요시아의 말에 다른 학생들이 침묵한다.

“아니, 생각해봐. 내가 여기 처음 왔을 때. 여기 자리를 잡고 나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내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그녀는 그동안 데이비라는 인물에게 당한 수많은 고초를 하나하나 제 동기들에게 알려주었다.

하지만 티미를 포함한 모두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요, 요시아?”

“아, 있어 봐! 아직 할 말 많아!”

그녀의 외침에 학생들의 얼굴에 식은땀이 흘렀다.

“나, 난 여길 나가야겠어!”

급기야 참지 못한 셀비스가 벌떡 일어나 벗어나려던 찰나.

요시아는 갑작스레 어깨에서 느껴지는 단단한 감촉에 우뚝 굳었다.

“앉아라. 셀비스.”

부드러운 남성의 목소리였다.

젊은 소년이었지만 환골탈태 이후 더욱 남자다움이 강조된 듯한 인간.

바로 자신의 선생님인 데이비 올라운이었다.

“서, 서서서서…… 선생님?”

“내가 재밌는걸 보여줄 테니 다들 잘 봐.”

빙그레 웃는 미소지만 그 미소가 얼마나 섬뜩한지 아는 F반 출신의 학생들은 귀신들린 것처럼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

스르륵.

“흐꺅!!”

요시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당혹스러움으로 물들더니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아아, 아아아악!! 서, 선생님 잠깐만요 이건…… 이건 아니…… 꺄아악!!”

바닥에 주저앉은 채 온몸을 버둥거리며 벗어나려 하지만 데이비의 손은 그녀의 어깨를 놓아주지 않았다.

“하아…… 하아…… 제……제발…….”

급기야 애원하는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침을 흘러가면서까지 애원하는 그 모습에 데이비가 빙그레 웃어 보였다.

“미치광이 사디스트 사이코패스에게 정을 구걸하니?”

“저, 저 그게……”

“걱정 마. 선생님은 다 이해할 테니.”

그렇게 말한 데이비가 검지로 그녀의 뒷목을 찔렀다.

“하윽!? 끼아악!!”

결국, 감전된 개구리처럼 바닥에 추욱 늘어져 버린 그 모습에 데이비는 만족스러운 듯 손을 털었다.

“좋아 요시아에게도 통하는 것도 확인했고. 다음 상대는……”

뭘 하고 싶었던 건지 속이 후련하다는 표정으로 돌아가는 데이비를 보며 티미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진짜 미친놈은 맞나 보다……”

신은 공평하다.

그에게 수많은 힘과 재능을 주고 인성을 앗아가 버렸다.

그곳에 있는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 * *

하인스 영지와 이어진 달의 숲.

그곳의 수장인 유리아는 현재 눈이 보이지 않는 ‘현’국의 맹인 공주 마리아와 타냐를 데리고 신목의 성지에 와있었다.

다름 아닌 신목의 주인.

세계수 [알]과 그녀의 신녀인 에밀리아의 초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정령의 축복.

그것을 받기 위해 찾아온 마리아와 타냐는 피부에 직접 닿는 청명한 기운에 매우 기분이 좋아져 있었다.

“정말 대단한 숲이네요. 타냐.”

“그러게요.”

마리아의 손을 꼭 잡고 초목이 우거진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가자 수많은 엘프들이 의식장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 타냐의 눈에 보였다.

그리고 그 의식장의 중앙에는 작은 엘프 소녀가 엄숙하고 아름다운 예복을 입은 채 녹빛의 기운을 뿜고 있었다.

“어서 오거라.”

이윽고 유리아가 천천히 고개를 숙여 보이자 타냐는 반사적으로 그녀를 따라 몸을 낮추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

“세계수님을 만나 영광이에요.”

“여, 영광입니다.”

놀란 마리아도 뒤따라 말하자 알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님이 찾아왔음에도 실체를 보이지 못하는 걸 용서하거라. 현재의 나는 정원을 벗어날 수 없는 몸이라.”

“괘, 괜찮아요!”

손사래를 치는 타냐의 말에 알은 만족스레 유리아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이구나 유리아.”

“신목의 어머니시여.”

“그래. 취미활동은 잘 되어가고 있니?”

부드럽고 자애로운 목소리에 유리아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화답했다.

“네. 이번엔 사마귀의 눈알을 우려내서……”

“거…… 나는 네 취향을 알다가도 모르겠지만……, 어떤 의미로 유리아 넌 데이비 그 녀석과 입맛이 비슷하구나.”

알의 말에 유리아가 환하게 웃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분은 먹을 수 있으면 다 먹는 것뿐이랍니다. 전 미식을 추구하니까요. 물론, 살생을 통한 육식은 엘프의 소양이 아니라지만…….”

“그런 고리타분한 과거의 관습은 이제 개개인의 자유를 존중할 뿐이니.”

엘프는 육신의 특성상 고기를 먹는다고 마냥 살이 찌는 체질이 아니다. 유독 엘프들이 슬림한 몸매를 지닌 것도 사실은 그 때문이기도 했다.

물론, 몸이 슬림한 만큼 가슴의 크기도 작은 편에 속하기에 한때 신목의 성지 내에선 지방질이 가득한 고기를 섭취해 가슴 크기만을 노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 이런 중요한 행사에 네 오라비는 왜 오지 않는다고 하니?”

타냐의 녹빛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알이 조용히 물어보았다.

그러자 타냐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오라버니는 대륙의 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시니까요. 굳이 말씀드리지 않았어요.”

“흐음……, 그래. 바쁠 만도 하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알의 말에 타냐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구요?”

“별거 아니란다.”

옅게 웃어 보인 그녀가 타냐의 등을 떠밀었다.

“네 몸은 자연과 매우 친숙한 느낌이 드는구나. 세계수의 이름으로 너희들을 축복해줄 터이니 자, 저리로 올라가 보거라.”

그렇게 말하는 알의 말에 타냐가 마리아의 손을 소중하게 잡고 걸어 들어갔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그녀들의 호위인 단궁은 그저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그때였다.

엘프들 사이에서 녹빛의 로브를 입은 누군가가 슬쩍 나타나더니 신목의 신녀, 혹은 성녀라 불리는 에밀리아에게 다가간 것이다.

엘프들이 입는 로브와는 조금 다른 복장에 모두의 시선이 에밀리아에게 닿았을 즈음.

놀란 얼굴로 로브의 인영과 대화하던 그녀의 어깨에 하얗고 단단한 손에 올려졌다.

“꺄악?!”

그리고 잠시 후. 숨을 거칠게 몰아쉬던 에밀리아가 비명을 내지르며 펄쩍 뛰었다가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무슨?!”

깜짝 놀란 이들이 경악했다. 갑자기 나타난 괴한의 행동에 엘프 가디언드링 무기를 겨누려던 찰나.

로브를 입고 있던 사내가 천천히 후드를 넘겼다.

“이야. 세계수의 가호를 받는 신목의 성녀에게도 먹히나 본데? 역시 심연의 힘은 사기적이야. 잘하면 [알]에게도……”

데이비였다.

그런 데이비의 중얼거림이 끝나기도 전에 알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지더니 그대로 손을 휘저어버렸다.

휘리리릭!!!!

동시에 숲을 이루는 거대한 나무의 줄기가 뻗어져 나와 데이비를 꽁꽁 묶어버리더니 그대로 빛으로 바꾸어 사라지게 해버렸다.

그녀의 힘으로 그를 강제 추방해버린 것이다.

세계수 알의 힘은 이전 데이비에게 소멸했던 이그드라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정도의 위치에 있으니 말이다.

“정말 방심했다간 뿌리 끝까지 빨아 먹을 사내로구나…….”

세계수 [알]의 표정에 어린 감정은 조금의 당혹스러움과 안도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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