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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496화 (495/1,559)

제 496화

콰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내 몸이 허공으로 부웅 뜨며 밀려났다.

하지만 이전과는 확실히 달랐다.

‘데이비!! 여기서 싸우면 영지가 날아갈 게야!’

‘프리아님 맙소사, 큰일 날뻔했네.’

나는 페르세르크의 외침에 서서히 전신에 힘을 부풀리더니 섬뜩한 오한이 온몸을 스쳐 지나갔다.

아니 될 말이다.

심연의 공주는 강하든 약하든 평균적인 무력만 봐도 단신으로 세상을 뒤흔들어놓는 괴물이다.

하나하나가 상성의 차이만 있을 뿐 위험성만 따지면 지금의 나와 비교했을 때 파괴성능으로는 더욱 특화되어있다는 소리였다.

싸워서 못 이길 만큼 상황이 안 좋은 건 아니지만, 그녀와 내가 작정하고 맞붙었을 때 그 여파를 생각하면 이 영지가 어떻게 될지 뻔하다.

어떻게 만든 영지인데.

어떻게 만들어놓은 보금자리인데.

이곳에 사는 각 종족이 몇 명인데!

“하늘에 설치해둔 수관 하나가 얼만지는 알고 있냐!”

영지의 하늘을 수놓는 거대한 물줄기.

미적 감각을 살리기 위해 만든 조형물이기도 하지만 이 영지를 돌리는 거대한 동력원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실제로 영주성의 지하 연구실에선 대량의 동력을 사용 중이니 말이다.

투명한 관 하나 설치하는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갔다.

지하엔 비슷한 자금을 처먹은 지하수로와 하인스 영지의 비밀 연구시설이 존재한다.

그거 하나하나 피땀 흘려 만든…….

‘그대의 욕망 결정체.’

페르세르크는 정확히 그 사실을 짚어냈다.

그래, 내 욕망과 취미의 결정체.

내가 말이야, 언젠가는 이놈의 영지 전체에 어마어마한 시스템을 설치하던지, 아니면 아예 하늘로 띄워버릴 거다 이 말이야.

“다른 생각을 할 만큼 여유로운가 봐?”

푸확!!!

그때였다.

조용히 들려오는 목소리와 함께 내 복부에서 아릿한 통증이 퍼져나갔다.

그 원흉은 내 복부를 뚫은 그녀의 팔이었다.

맨손으로 사람의 복부를 뚫은 그녀는 내가 반격하기도 전에 잽싸게 다시 거리를 벌리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이, x친년 보게.

“피부 강화에 근골 강화만 몇 중첩을 했는데 그걸 뚫어?”

“쿡쿡, 인간의 몸은 연약하디 연약하니까.”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평가하자면 이쪽이 단단한 터미네이터라면…….

저쪽은 초고성능의 액체 인간이다.

그 차이는 제법 컸다.

물론.

푸확!!!

“언니!”

그녀를 눈앞에 두고 내가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았을까.

순식간에 피를 뿌리며 허공으로 튕겨 나가는 울드의 왼팔을 보며 나는 홍단이와 청단이를 빙글빙글 돌렸다.

“어이쿠, 팔 한쪽 날아가셨네.”

그녀는 압도적인 하드웨어를 지니고 있다.

단순히 지금까지 만나본 그 어떤 심연의 공주보다 더 단단한 몸이라는 소리였다.

그 탓에 금기의 업보로도 그녀에게 순간 치명상을 입히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울드의 장점은 압도적인 하드웨어 스펙과 잠식능력.

물론 잠식능력은 내게 현재 통하지 않는다지만 그녀의 육체 능력은 굉장히 위험하기 짝이 없다.

반대로 그녀의 단점도 두 가지 존재한다.

놀라울 정도로 부족한 실전 경험과 너무 강한 탓에 다가오는 안전불감증.

그런 그녀를 베어버리기 위해선 살을 주고 뼈를 깎아버리는 전투방식이 가장 효율적이었다.

“너…… 일부러 공격을 허용했구나……”

복부에 손을 올려 빠르게 외상을 치유하는 나를 보며 그녀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마나를 고갈 직전까지 사용하는 방법으로 나는 빠르게 힘을 회복해왔다. 게다가 환골탈태까지 겪었으니 그 용량은 이전 그녀와 만났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나 있는 상황이다.

이쯤 되면 사실상 평행선 세계에서 얻었던 혼과 육신의 완전동기화가 극도로 그리워질 수밖에 없다.

그 힘만 가지고 돌아올 수 있었다면 애초에 심연의 공주를 상대로 위험하다는 발상 자체가 필요 없어질 테니까.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것을 알기에, 나는 지금 내가 가진 힘으로 그녀를 상대할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줄 건 주고.

받아올 건 받아오마.

그 과정에서 영지로 향하는 여파를 최소화하는 게 가장 큰 관건이다.

문제는 이놈의 위치가 영지의 한복판이라는 것.

스쿨드라는 저 심연의 공주가 합류하지 않는 이상, 또 그녀가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어떻게든 해볼 수 있다.

“왜 그렇게 이 인간을 지키려는 거지? 어차피 네게 필요도 없는 인간 아니야?”

“화장실 변기 커버 하나라도 너희들에게 빼앗기면 내가 잠을 못 자요. 알아먹었나?”

내 도발에 그녀가 재밌다는 듯 쿡쿡 웃어 보였다.

“우리와 정면으로 맞붙을 셈이야?”

“그럼, 우리가 언제 하하 호호 웃으며 와인이나 짠하는 사이는 아니지.”

“계속해서 그렇게 저항하면 심연에 존재하는 우리 동족 전원이 넘어올 수 있어. 아무리 네가 슬리지아를 죽인 한 수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동족 전원을 네가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녀의 말에 나는 코웃음을 쳤다.

“개수작 부리고 있네. 어디서 장난질이야.”

그게 가능했으면 그녀가 이렇게 단둘이서 나타났을 리도 없다.

예상이 맞는다면 한세상에 심연의 공주가 출현할 수 있는 수는 많아야 하나에서 둘 정도.

티오니스 대륙은 이미 셋에 달하는 심연의 공주가 있지만 다른 세상에선 절대 둘 이상이 같이 있는 사례를 본 적이 없다.

그뿐일까.

나는 이미 베르단데를 구슬리고 살살 협박해서 몇 가지 정보를 얻어낸 후였다.

심연의 공주가 한세상에 가하는 부하의 양을 생각하면 티오니스 대륙을 제외하고 심연의 공주가 둘 이상 존재하는 세상은 극도로 드물다고 말이다.

나는 빙그르르 도는 검신을 고정한 뒤 청단이를 허공에 던진 뒤 양손으로 홍단이를 틀어쥐었다.

동시에 내 전신이 검은 연기처럼 흩어졌다.

본래 이름은 고스트 스탭.

하지만 이름이 영 껄끄러웠던 내가 멋대로 바꿔버린 내 최대의 보법이다.

[월령보]

[귀기개방]

살수왕 헤르메이샤와 천마독고준이 알려준 무공을 병합해 만든 보법.

상대의 눈을 어지럽히고 내 속도를 극대화한다.

복부의 통증이 가라앉자마자 울드에게 파고들자 그녀가 급히 잠식의 힘을 이용해 내게 반격을 가해왔다.

카앙!!!! 카가가각!!

하단과 중상단을 노린 빠른 회전 이격에 그녀는 꽤 당황한 듯했지만 침착하게 막아냈다.

순식간에 홍단이의 검신을 막아낸 그녀가 놀라울 정도의 완력을 보이며 나를 밀어낸다.

물론.

여기까지는 내가 노린 바였다.

카가가가각!!!

공중에서 불똥이 튀기며 그녀의 팔을 빗겨낸 나는 그녀의 힘을 태극 공으로 역이용하여 그대로 허공에서 공중제비 돌 듯 한 바퀴 돌아 그녀의 뒤를 점했다.

한순간에 뒤를 잡힌 그녀가 깜짝 놀라 반격을 가한다.

역시 경험이 부족한 탓에 무식하게 힘으로 몰아붙이는 그녀다운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녀보다 더 빠르게 내 신형이 허공에서 연기로 흩어지듯 사라지며 빠르게 쏘아져 들어갔다.

울드가 아닌, 그림을 둘러메고 사라지려 하는 스쿨드를 향해서 말이다.

아주 찰나의 회전 도중에 홍단이의 검신 끝에 가볍게 검지와 중지를 가져다 댄 나는 미련 없이 손을 움직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검 끝을 향해 손가락들을 주욱 밀며 전신에 기류를 폭사시켰다.

“안돼!”

늦었어.

내 시선과 마주친 스쿨드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확장된다.

하지만 제대로 된 반응은 없었기에 허공에 먼저 던져둔 청단이를 빠르게 회수하며 홍단이와 검신을 부딪혔다.

우웅!!!

동시에 두 검이 내 막대한 힘과 반응하며 변화하기 시작했다.

아주 잠깐이지만 두 아이를 융합하는 게 가능해진 것은 천운이다.

[천마공]

[마령검 79초식]

[귀신빙의 개(改)]

[신(新) 참수하살법(斬首遐殺法)]

순식간에 청적의 빛깔이 머금어진 장도로 변한 검, 초단이를 쥐고 파고든 내 뒤로 옅은 소녀의 형상이 나타난다.

초단이의 영령이지만 이전과는 조금 달랐다.

귀신 가면을 쓴 초단이었다.

‘가자 초단아, 어디 마음껏 날뛰어봐라.’

[네, 아버지.]

부드러운 소녀의 목소리와 함께 내 뒤편으로 상반신만 환영을 만들어낸 초단이의 검이 번뜩인다.

동시에 내 손에 쥐어진 초단이의 본체에 청적색의 화염이 일렁였다.

천마공과 초단이의 힘이 뒤섞인다.

거기에 나는 심연의 존재들에게 압도적으로 치명적인 힘.

금기의 업보를 발현하여 마나를 변질시키고 그것으로 오러블레이드를 만들어냈다.

아직 그 상위 단계인 소울블레이드를 뽑아낼 만큼은 회복되지 않았으니 무리는 하지 않는다.

스쿨드는 그런 내 공격을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반응할 만큼의 반사신경은 없는 것으로 보아 스쿨드라 불리는 이 소녀는 베르샤와 비슷한 정도의 육체 능력이 분명했다.

“스쿨드!!”

깜짝 놀란 울드가 급히 몸을 돌려 내게 파고들었지만, 그녀보다 내 검이 더 빨랐다.

“아……”

멍하니 중얼거리는 그녀의 목에 초단이의 날카로운 검기가 순간적으로 파고들었다.

촤악!!!!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피가 허공으로 튀었고 스쿨드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내게서 튕겨 나가 수십 미터를 굴렀다.

콰드드득!!!

어마어마한 충격파에 주변 일대가 모조리 박살 난다.

안돼! 이게 얼마짜리들인데!

싸움을 지속할수록 영지의 상태는 최악이 된다. 울드나 스쿨드가 혹여라도 광범위 공격을 가할 수 있기에 그쪽도 신경을 써야 하는 만큼 사실 이쪽도 마냥 적극적으로 몰아붙일 순 없었다.

망할 년들, 이라는 욕설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렷다.

“커헉?! 끄륵……”

바닥에 쓰러진 스쿨드의 표정엔 경악이 어려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 전 이곳에서 공간을 뛰어넘어 사라지려던 그녀를 강제로 끄집어내 공격한 꼴이 되어버렸으니 놀랄 수밖에.

이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바리스와 윈리의 영지. 오르뎀에서 공간이동으로 내게서 벗어나려 했던 링튼 백작의 경우와 비슷하다.

물론, 공간 점프의 심도는 이쪽이 압도적으로 높기에 단순 청단이로는 이런 결과를 내기 힘들지만 초단이는 달랐다.

엄연히 청단이와 홍단이의 힘이 합쳐지면서 강제로 성장한 형태가 되니 말이다.

그녀는 오른쪽 어깨부터 왼쪽 사타구니까지에 이르는 큰 검상을 입었다.

하지만 그 정도 공격으로 쉽게 죽진 않는다. 인상을 찌푸릴 뿐 크게 고통스러워 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이미 형체가 반쯤 사라진 그녀가 강제로 끌려 나왔으니 당연한 일이다.

“어째서 공간 전이가. 아, 아아!! 모, 몸이 회복되질 않아! 쿨럭?!”

“시건방진 인간 같으니!”

스쿨드를 급히 부르며 울드가 나를 향해 위협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한 차례 도망을 실패한 이상 당분간은 내게 주도권이 있다.

영지가 반파되고 있다면 절대 가벼이 여길 일이 아니다.

지저분하더라도 일단 둘을 제압하고 보자.

그쪽으로 생각이 미친 나는 곧바로 최근에 얻었던 힘을 발현했다.

그래, 좀 지저분한 전투방식이니 나머지는 내가 정정당당하고 깔끔한 방법으로 싸워주마.

변화가 풀린 청단이와 홍단이를 이기어검으로 띄워날린 나는 양주먹을 모아 정확히 찔러낼 듯 힘을 끌어모았다.

무식한 두께의 권강이 서리자 나는 망설임 없이 베르샤의 힘을 이용했다.

같은 심연의 공주에게 제대로 먹힐 거라곤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심연의 공주끼리도 세력다툼을 한다고 했으니 효과가 아예 없진 않으리라.

저주의 주체는 감각증폭.

심플하지만 효과는 발군이렷다.

“윽?!”

한차례 비겁한 공격을 가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이후부터 정정당당하게, 그녀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마왕 유르그 식(式) 군중제어기]

[명치 존나 쎄게 치기]

쩌엉!!!!

“컥?!”

정확히 두 주먹이 마치 하나의 주먹이 된 것처럼 그녀의 명치에 내리꽂혔다.

무식하게 단단한 몸 덕분에 공격을 피할 필요도, 굳이 반격할 필요도 없던 그녀가.

제 방어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공격을 받았을 때 보일 반응은 뻔하디뻔하다.

그 짧은 시간 안에 경험이 쌓이는 건 쉽지 않다.

순시간에 튕겨 나가는 울드를 향해 파고들면서 나는 페르세르크를 향해 전음을 전송했다.

‘페르세르크. 잠깐만이라도 저 여자, 도망 못 가게 막아. 할 수 있지?’

직접적인 저지는 필요 없다. 심연의 힘을 조금이라도 다룰 줄 아는 그녀이니 멀리서도 방해는 할 수 있으리라.

대답은 듣지 않았다.

튕겨 나가는 울드를 향해 빠르게 접근한 뒤 곧바로 한발을 강하게 들어 그녀의 왼발을 강하게 밟아 세웠다.

겉보기엔 남성이 여성을 폭행하는 보기 좋지 않은 형태로 나타날 테지만 그녀가 어디 보통 여성이던가.

그리고 나는 내 목숨과 내가 지켜야 할 이들의 목숨. 그리고 영지를 걸고 위협해오는 적이라 판단된 이들에겐 남녀를 가리지 않는 편이다.

“한 번 더 간다. 갈비뼈 악물어라.”

갈비뼈를 어떻게 악무냐고?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마왕 유르그 식(式) 군중제어기]

[명치 존나 쎄게 연타]

투쾅!!!

이전보다 더 강해진 공격이 연달아 꽂힌다.

퍼버버벅!!

“커헉!”

연타로 들어간 공격과 별개로 울드의 반격도 가해진다.

순식간에 내 몸에 두어개의 큰 바람구멍이 생겨났지만, 추가타를 마치 뱀처럼 빗겨낸 나는 부상을 무시했다.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베르샤의 저주를 추가로 쑤셔 박아 그녀가 가진 기존의 저항력을 끌어내린다.

그리고 그녀의 저항력이 내 기준만큼 떨어졌을 때.

일대 전역을 모조리 마법진에 가두었다.

그녀에게 치명상을 먹이기 위해서. 시간이 무조건 내 적인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선 싸움의 여파가 영지에 닿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디로 이동해야 하는가.

심연의 힘을 순간적으로 억누를 수 있는 신의 힘이 가장 많이 머무르는 장소.

티오니스 대륙 내엔 성스러운 땅이 다수 존재한다. 9위계 최후 성 마법들이 발현된 곳은 대개 오랜 시간 신성력이 남아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것은 심연의 존재들이 유일하게 멋대로 날뛰지 못하는 신의 힘이 깃든 땅이다.

그리고, 그런 장소는 이 대륙 내에 딱 한 곳만 존재한다.

그리고, 여파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곳.

그런 장소가 딱 한곳이 있다.

생각을 마친 나는 다차원으로 변형되는 마법진을 그대로 발현시켰다.

대상은 나와 울드, 그리고 처음 본 심연의 공주인 스쿨드를 포함한 일대 영역 전부.

[8서클 전이 마법]

[워프게이트]

워프가 아닌 공간 전체를 도약시키는 마법 워프게이트를 발현하자 일순간 공간이 뒤틀렸다.

대량의 마나가 사용되었지만 충분하다.

마나가 움직이며 덩달아 신성력과 사령 마나, 그리고 새로이 자리 잡은 마기와 고요함을 지키던 정령 마나까지 움직이지만, 지금 사용할 것은 정확히 두 가지 힘뿐이다.

움직여라, 게으름뱅이야.

마치 새침데기처럼 쉽게 움직이지 않던 마나는 내 상태를 파악한 듯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흥분한 종마처럼 맹렬하게 산화했다.

뒤이어, 자신을 쓰라고 악을 쓰듯 존재감을 과시하는 사령 마나가 그 뒤를 따른다.

순식간에 공간이 뒤바뀌고 숨이 막힐 정도로 농밀한 신성력이 머금어진 땅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이럴 거 같아서 좌표를 따놨다 이 말이야.

“아악!!!”

공간이 뒤바뀌며 전신을 압박하는 신의 힘에 울드의 얼굴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고통이 서렸다.

영향력이 약해져도 신은 신이라는 소리이리라.

지금까지 이런 느낌 못 느껴봤을 거다.

아주 죽을 걱정 없이 여유 부렸는데 상대가 어느새 자신보다 강해져 있다면?

보통 경험이 없는 이들은 당황해서 될 일도 꼬아대는 습성이 있다.

뉴비와 고인물의 차이가 무엇인가.

기본적인 피지컬도 있지만, 임기응변에서 차이가 가장 크게 벌어진다.

그녀가 나를 저지하기 위해 손을 뻗어 내 입을 틀어막았다.

마법사를 상대할 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입을 틀어막는 것이지만, 애석하게도 그녀의 판단은 어리석었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영창을 하지 않는 체질, 지금까지 어지간한 마법 중 영창을 통해 마법을 발현한 적이 없다.

[9서클 초월 마법]

[라그나로크]

주홍빛을 띠는 수백 개의 광기둥이 지면을 부수며 튀어 올라오기 시작하며 공기가 급속도로 가열된다.

그 범위는 들어간 마나에 따라 수십 미터에서 수백 킬로미터까지 달하는 마법사의 신, 오딘의 재앙급 최상위 마법.

수만 도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열기가 일대 공간에 퍼져나갔다.

물론, 이게 그대로 터지면 어디 불지옥이라도 만들어질 수 있으니 거기에 대고 추가로 사령 마나를 닥치는 대로 끌어냈다.

내 장점은 힘의 사용이 굉장히 다채롭다는 점.

그것은 그 어떤 회랑의 영웅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나만의 장기라 할 수 있다.

[9서클 초월 흑마법]

[로드 오브 나이트메어]

내가 만든 악몽을 잠시 현실로 바꾸는 흑마법이 동시에 발현되어 주변 공간 일대를 정확히 제약하고 격리했다.

그리고, 곧이어 주홍빛 기둥에 영향을 받던 공간 전체가 지독한 고열에 의해 완전히 녹아내렸다.

아무리 하드웨어가 깡패 같은 심연의 공주라도 신의 힘이 가득 내려 제약이 가해지는 이곳에서, 천체 파괴 급의 고열을 얼마나 버티는지 한번 보자.

이곳이 어디냐고?

성국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북동쪽 최상부 신성한 땅, 바로 성역이다.

* * *

성국의 성녀 후보로서 성녀가 되기 위해 수행 중인 존재는 이제 단 한 명이다.

리나 성녀 후보.

본디 앨리스 성녀 후보와 경합을 하던 입장인 그녀였지만, 앨리스 성녀 후보가 한 차례 신을 배신했다가 돌아온 이후로 성국에서 유일하게 남은 성녀 후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일이 있었다 해도 제대로 알려진 바 없기에 앨리스가 그렇게 쉽게 물러날 이유는 되지 않는다지만 그 일을 계기로 앨리스는 딴사람처럼 욕심을 내려놓았고 급기야 성녀 후보라는 자리까지 내려놓아 버렸다.

그 덕분에 경쟁자가 사라져 버린 리나 성녀 후보는 자연스레 성녀의 시험을 받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물론, 성녀가 되는 과정이 쉬울 리 없다.

오늘도 성역에 찾아와 기도를 올리러 온 그녀는 멍한 얼굴로 눈앞의 재앙을 바라보았다.

“성녀 후보님! 물러나십시오!”

“위험합니다!!”

다급한 성기사들과 상급신관들의 외침.

그들 모두 눈이 있으니 모를 수가 없다. 눈앞에 벌어진 거대한 재앙을 말이다.

마치 신의 격노가 떨어진 것 같은 거대한 여파에 마나를 다루는 이들은 신성력 마나 할 것 없이 온몸이 진탕되는 듯한 울렁증과 공포를 느꼈다.

성역에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갑작스런 사태에 놀란 이들이 급히 리나 성녀 후보를 데리고 도망치려던 그 순간.

멍하니 주홍빛 기둥을 보던 리나 성녀 후보가 배시시 웃어 보였다.

“아아, 데이비님이 오셨네요오?”

헤실거리는 그녀의 목소리엔 천진난만함만이 가득했다.

급기야 그녀는 재앙과도 같은 그 현장으로 걸어가려 들었다.

“데이비니임~ 맛있는 쿠키를 구웠는데 같이 드실래요오?”

성기사들은 앨리스가 그녀를 두고 하던 말을 절실히 실감했다.

[저 망할 꽃밭이 진짜!!]

이타심과 순수한 마음 때문에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는데 하는 짓이 너무 엉뚱하다는 이유에서 붙어온 그녀를 칭하는 별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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