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501화 (500/1,559)

제 501화

그 함정 한 번에 휘하 흑마법사만 벌써 수십이 죽었다.

이 빌어먹을 던전에서 말이다. 성자 데이비를 포함한 역겨운 라스트 위스프 기사들을 가둬놓은 것도 그런 경험에 의거한 방법이었다.

마나의 흐름도 방해받는데 아다만티움이 코팅된 거대한 바위가 입구를 틀어막는다.

나오기 위해 바위를 부수려 들면 동굴 전체가 무너진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내부의 모든 이가 죽으면 그 동굴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본래의 형태로 돌아간다는 점이었다.

마치 살아있는 던전.

조직에선 던전을 그리 칭했다.

조직의 염원을 이뤄줄 귀물이 보관된 살수왕의 비밀창고라고.

조직에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던전의 지하, 그리고 이 일대를 장악하는 지하산맥과의 연결점을 찾으라 했다.

그곳에 도달했을 때, 대도이기도 했던 살수왕이 숨겨놓은 귀물을 찾을 수 있다고.

흑색 피부의 사내, 가가오는 이것을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라 여겼다.

던전을 뚫기 위해 이방인을 끌어들였고, 신관과 성기사로 위장하여 던전의 길을 뚫고 조사했다.

던전을 뚫는 과정에서 이방인들의 자유분방한 능력이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죽는 한이 있어도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일하지 않는 이방인들이기에 가가오는 차라리 그들을 회유하고 속이는 방향을 선택했다.

사제와 성기사단이라는 웃기지도 않은 명목으로 말이다.

물론, 그들뿐만 아니라 대륙의 눈을 속이기도 했다.

하지만 타르타로스 지하산맥을 지키는 기사단과 가까워질수록 의심을 피할 수가 없었다.

결국, 가가오는 조직에 지원을 요청하여 강자들을 섭외했고 이방인들까지 끌어들여 기사단을 괴멸시켰다.

이제 조금만 더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상대가 누구이건 방해할 순 없었다.

그것이 대륙의 성자라 할지라도 말이다.

“지금까지 얼마나 고생을 해왔는데 그깟 20년도 살지 않은 애송이에게 밀릴 순 없는 노릇이지.”

가가오의 눈이 흉흉하게 빛났다.

그에게 비친 데이비라는 대륙의 성자는 대륙의 숨겨진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그저 자신의 힘에 심취한 어린아일 뿐이었다.

* * *

“와아…….”

오색찬란한 빛과 황금.

터널을 타고 들어간 곳은 정말 세상의 모든 보물을 다 가져다 놓은 듯 보물 산이 쌓인 공간이었다.

이전 뱀파이어의 은거지로 쓰이던 유적에서 놈들에게서 탈취해온 보석들과 비교해도 이쪽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좀 전까지 죽음의 공포에 떨어야 했던 녀석들은 눈 앞에 펼쳐진 황금산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리번거리기 바빴다.

“세상에……. 이게 다 금화에 보석들이야?”

“저 장신구들은 하나만 내놔도 어마어마하게 비싼 값으로 팔리겠구만…….”

멍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이들 중 그나마 가장 멀쩡한 건 사제인 루시아 쉘만이었다.

“아아…… 초대 성녀이신 다프네님이시여. 욕망 흔들리는 저를 용서하시기를…….”

물론.

“아…… 아아…….”

그녀는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손에 쥔 예쁜 반지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 여자, 황금만 보면 눈 돌아가던 여잔데.”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초대 성녀 다프네가 돈을 얼마나 밝히던 여자인데, 그걸 말해줄 수가 없으니 참 씁쓸한 일이다.

“이거…… 천 년의 눈물이잖아.”

일리나가 기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거 하나면 대체 돈이 얼마야…….”

“그녀의 눈에 순간적으로 욕심이 서렸다.

“예쁘다…….”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던 그녀는 멍한 얼굴로 손을 뻗었다.

우웅!!!!

하지만, 그녀의 등에 멘 신검, 칼디라스가 빛을 발하자 그녀의 눈에 총기가 돌아왔다.

동시에 그녀가 손에 쥐고 있던 천 년의 눈물을 휙 던지며 파르르 떨었다.

“핫?! 내가 무슨 짓을…….”

“천 년의 눈물은 유혹하는 힘이 있어. 명경지수까지 올라간 검선급이 아니면 견디기 힘들 걸?.”

내 말에 그녀는 자신이 탐욕을 부렸다는 사실에 수치심을 느꼈는지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우하하하하!!! 난 이제 부자야!”

거대한 금화의 바다에서 수영을 하듯 몸을 뒹구는 필디르는 저놈이 정말 성직자가 맞는지 의구심이 들게했다.

“와…… 언니! 이거 봐! 정말 예쁘다!”

“이, 이것도!”

눈에서 빔이라도 쏠 듯한 기세를 내뿜는 렌다자매도 그러했다.

세속과 연을 끊은 기사단이다. 통상적인 다른 속세의 사람들과 다르게 금전 욕심이 극도로 적은 이 녀석들이 이렇게 변할 정도.

이래서 헤르메이샤의 보고는 남들에 보여주지 않으려 했는데.‘

그녀는 역사서에서 그렇게 말한다.

대도이자 암살자.

피에 젖은 사신이며 돈에 미친 괴물이라고.

물론 그것은 그녀에게 당한 이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이기도 하다.

실제로 암살자와 도둑 길드에선 살수왕 헤르메이샤를 거의 신처럼 떠받드는 경향이 있다.

예전 정보 길드 메아리에 헤르메이샤의 보물과 흡사한 것을 가품으로 만들어 넘겨주고 지원을 받아내지 않았던가.

고통받는 자를 위해 의적질을 하고 악랄한 귀족들을 암살하는 살수.

어느 쪽이건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보다 우선 정리를 해야겠네.

이대로 두었다간 이 녀석들이 망가질 것이다. 신성력으로 정신을 가다듬는 루시아조차 눈을 떼지 못하는 보물의 산.

단순히 보물이라는 이유로 저들이 저러는 건 아니었다.

이 동굴 자체가 탐욕을 극도로 끌어 올리도록 증폭 마법진과 특수한 흑마법진을 융합시켜놓았다.

‘애초에 지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라고 만들어놓은 거니까 당연하다만은.’

리인포스 알파의 기사단은 주로 재능있는 아이들을 데려다가 키워서 기사단으로 양성한다.

필디르도 루시아도 렌다자매도 모두 재능은 출중하지만, 이런 면에선 아직 부족했다.

“아! 그거 내 거야!”

“그거 안 놔?!”

화가 난 샤이르의 외침에 필디르가 손에 쥔 목걸이를 강하게 움켜잡았다. 투닥거리던 녀석들의 행동이 과격해지며 샤이르가 필디르에게 밀려나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니, 언니가 먼저 찜 했잖아! 언니한테 무슨 짓이야!”

“아……”

“사과해!”

펜디르의 외침에 괜히 티격태격하다 작은 상처가 난 샤이르가 울먹거린다.

거기에 루시아 쉘만이 벌써 황금으로 된 관을 머리에 쓰며 말했다.

“필디르! 이건 필디르가 잘못한 것이니 사과해요. 어서!”

이에 필디르가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그, 그런가. 쩝. 미, 미……”

미안하다는 말이 그리 쉽게 나오지 않는지 뻐끔뻐끔하던 녀석이 눈을 부릅떴다.

“미, 미친놈아 네가 먼저 잘못했잖아!”

“꺄악!! 오늘 널 죽이고 내가 신의 품에 안길 거다!”

상황이 심각해진다.

이 녀석들은 한솥밥을 먹으며 큰 가족들이다.

실제로 내가 본 녀석들은 동기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선 자신들의 목숨도 기꺼이 내놓을 만큼 훌륭한 인격을 보유하고 있었다.

물론, 몇 놈은 아니었었지만.

그중에서 필디르는 팔라딘답게 누구보다 먼저 앞에 나서서 동기 기사단원들을 보호해온 녀석이었다.

자신이 다치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여기는 놈이라는 소리다.

물론, 약간 호색기가 있어서 루시아가 고생을 꽤나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필디르의 성정은 확실히 이타적이었다.

그런 필디르가 저렇게 악담을 내뱉고 동생 같은 샤이르를 밀쳐 상처를 낸다는 건 애초에 녀석들의 정신상태가 지금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증거가 되었다.

말없이 지켜보던 나는 가볍게 손을 들어 손가락을 튕겨 묵직하고 빠른 충격파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충격파는 마나를 머금으며 특유의 파장을 만들어내 그들의 뇌리를 강타한다.

“핫?!”

“읏?!”

동시에 즐거워하던 녀석들의 표정이 한순간에 굳어버렸다.

그리고 샤이르의 동생 펜디르와 엉겨 붙어 씩씩거리던 필디르가 제일 먼저 눈을 부릅뜨고 물러났다.

“내가…… 내가 방금 무슨 짓을…….”

“말도 안 돼…….”

루시아는 좌절했고 필디르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부들부들 떨다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렌다자매는 싸우는 와중에도 손에서 놓지 않던 귀금속들을 보다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파랗게 질려 던져버렸다.

숨 막히는 침묵 끝에 필디르가 조심스레 내게 말했다.

“데, 데이비 이거 대체……”

“이 동굴은 탐욕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흑마법이 설치되어있어. 워낙에 정교하고 은밀해서 정신 강화를 하지 않은 소드마스터급도 쉽게 넘어가지, 왜일 거 같아.”

“이곳을 찾아온 놈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게 하려고.”

일리나가 정확히 답을 짚어내자 필디르가 파르르 떨며 이를 악물었다.

“내가…… 내가 무슨 짓을…….”

“흑……”

자신의 추태에 서러움이 몰려왔는지 펜디르가 울먹거리자 필디르가 어찌할 줄 몰랐다.

“저, 저! 미안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흐흑…….”

본인들의 의지를 넘어선 무언가에 홀린 듯한 상황, 자칫하면 유대가 끊어질 수 있는 상황 속에서도 나는 담담함을 유지했다.

“세상에 이런 함정도 있다. 보물을 보고 아무런 경계 없이 달려가는 건 이런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무슨…… 말이야. 그리고 애초에 넌 이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필디르가 심각한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며 물어왔다.

그의 얼굴에는 혼란스러움이 가득했다.

“살수왕의 보물창고는 나도 들은 적이 있어. 대륙 곳곳에 숨겨진 살수왕 헤르메이샤의 보물창고가 있는데 그곳에는 어마어마한 보물이 잠들어있다고. 지금까지 단 한 곳도 제대로 알려진 곳이 없어서 그저 동화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왜 내가 알고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확실히 내가 말해준 것, 내 행동들은 이곳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행동들이었다.

이윽고 펜디르가 울먹거리다가 나를 올려다보며 심각하게 물어왔다.

마치 오랫동안 고민한 것처럼 말이다.

“혹시…… 살수왕의 환생이세요?”

“떽!”

“꺅! 아파!”

그녀의 순진무구한 말에 가차 없이 이마에 딱밤을 가해준 내가 혀를 찼다.

그 여자와 같은 취급하지 마라.

그 성질 나쁜 여자.

나를 통해 정신을 가다듬은 녀석들은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다.

그중 가장 침울하게 있는 필디르의 어깨를 툭 쳐준 내가 물었다.

“어때.”

“태어나서 이렇게 격하게 죽고 싶은 기분이 드는 건 처음이다.”

“그래?”

그런 모습을 보면 장난기가 생긴다.

나는 반사적으로 이곳의 마법진을 활성화했고, 이내 그 내용물을 뒤틀었다.

“읏?!”

“하악!”

동시에 일리나를 제외한 모두가 숨을 헐떡거리기 시작한다.

따악!!

그리고, 내가 손을 다시 튕기자 녀석들의 표정이 일순간 본래대로 돌아왔다.

“데이비……, 방금 뭘 한……”

“감각 증폭.”

심연의 공주 베르샤의 저주와는 급이 다를 정도로 저급하지만, 효과가 없진 않다.

“……”

“내가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알 거 같아?”

내 물음에 필디르는 조금 불만스런 표정을 지어 보였다.

펜디르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샤이르는 울먹거리던 얼굴을 들며 내게 정확한 답을 던져왔다.

“혹시…… 지금 우리가 추적하던 게 흑마법사라서?”

“정답이야.”

그렇게 말한 나는 근처에 있던 반지 하나를 집어 들고 그녀에게 던졌다.

“보호의 반지야. 하루에 4서클 이하 마법 2번을 막아줄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어.”

“세상에……”

기겁하는 샤이르의 중얼거림을 무시한 채 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흑마법사든 사령술사든 그 근본은 사람의 육신과 정신을 연구하는 학문이야. 흑마법은 정신, 사령술은 육신을.”

내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그런 그들을 무시한 채 아공간을 열어 금화를 다량 쓸어 넣으면서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기사단 하나가 괴멸당한 시점에서 아마 기사단 상층부는 너희들의 정보를 알고 있는 흑마법사들과 끝을 보려 할 거다. 무조건 싸우겠지. 문제는 흑마법사들이 정신을 꽤 잘 다룬단 말이야.”

육신이 아무리 강해도 머리통이 장악당하면 끝장이다.

“그러니까 그놈들하고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으니 너희 안전을 책임질 요소 정도는 짚어놔야겠다.”

리인포스 알파와 나의 유대를 잇는 것은 같잖은 정의감이 아니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같이 모여 밥을 먹고 웃고 떠든 동기 견습생들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위치에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며 대륙의 평화를 지키겠다고 내게 말했었다.

그거 해본들 아무런 명예도 오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런 녀석들인 만큼 무작정 나를 보고 따르겠다며 실실 웃던 동생 바리스 녀석이 생각난 건 틀림 없는 사실이었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

백 번 들어본들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

가장 순식간에, 그리고 효과적으로 적의 무서움을 새겨주는 데엔 이것만 한 게 없었다.

나는 보고에 활성화된 마법진을 모두 소등시킨 뒤 보물들 사이에 보이는 허름한 검 하나를 필디르에게 던졌다.

“이건 네가 써라. 보니까 프로스트가드 같은데. 아마 네가 쓰기엔 좋을 거야.”

낡은 검을 검집에서 빼낸 필디르는 눈을 크게 떴다.

“세상에……, 낡은 검이 이가 하나도 안 빠졌어.”

“자가 수복기능이 있는 검이거든. 재질도 미스릴이라 신성력도 잘 받아들일 거다.”

이후 나는 목걸이 형태의 보석인 천공옥이라는 보물을 루시아에게 주고 펜디르에겐 샐러맨더 스킨이라는 붉은 로브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론 조용히 침묵한 채 주변을 둘러보던 일리나에게 목걸이를 내밀었다.

“천 년의 눈물.”

일리나가 처음 발견하고 얼굴을 붉히며 손을 뻗었었던 그 목걸이였다.

“이걸 왜…….”

“그놈 좋은 놈이야. 가지고 있어.”

“사람을 멋대로 유혹하는 건 저주받은 물건일 뿐이야.”

순간적으로 흥미가 동했지만, 그녀는 미련 없이 그걸 내게 다시 내밀었다.

이에 나는 천 년의 눈물을 풀어 그녀의 목에 강제로 걸어버렸다.

“가지고 있어. 그래 봐야 목걸이가 가진 유혹능력은 그리 크지 않으니까. 게다가 네 힘은 신성력이 약간 뒤섞여있기 때문에 중화도 가능해.”

“예쁜 것만 따지면 의미가 없잖아?”

새파란 빛을 띠는 블루다이아몬드를 보며 그녀가 중얼거렸다.

“그거. 메디테이션 마법이 인첸트 된 아티펙트니까.”

“……”

내 말에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수련한다고 마나 뭉텅이로 쓰다가 언제 한번 골로 가는 날이 올 거다.”

“너…… 어떻게 알았어?”

“척 보면 척이지.”

이 여자가 나를 뭐로 보고.

그녀처럼 무식하게 수련을 해대는 수련광에겐 마나 회복량을 바로잡아주는 아티펙트만한게 없다.

“선물이라 생각해.”

“하, 하하…… 살수왕의 보물창고에 와서 선심 쓰듯 줘본들.”

“받기, 싫다고?”

“아니 뭐. 누가 싫다고 했나. 유적에서 발견한 보물 챙기는 거야 누가 뭐라 할까.”

필디르가 어색하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런데 이게 뭔지 알고 주는 거야?”

일리나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대충 끄덕였다.

“내가 기억력이 좀 좋아.”

“완전…… 기억 능력이라고 했나?”

“그래. 기사단 시험 도중에 안마받고 뻗어있던 네 표정도 아직도 훤히 기억한다.”

“꺄악! 잊어! 잊으라고!”

거침없이 걷어차는 일리나를 무시한 채 나는 벽면을 돌며 손으로 쓰다듬듯 더듬었다.

그놈의 완전 기억 능력 때문에 이곳에 들어온 이후로부터 내용물을 모조리 기억하기 시작했다.

이곳의 넓이가 얼마나 넓고 그 정교함이 얼마나 소름이 끼치는지.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해? 보물창고까지 들어온 것도 웃기긴 하지만 어쨌든 들어오긴 했는데. 나가는 출구가 저렇게 막혀버려서야…….”

아다만티움으로 코팅된 바위를 가리키며 샤이르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젠장…… 추격하러 왔다가 오히려 갇혀버리다니……”

본래 목적은 기사단을 습격했던 이들을 추적하는 것이다. 멜베크를 이용해 이들의 위치를 찾아낸 것까진 좋은데 추적 도중에 놓친 건 절대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오히려 내게는 조금 의문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왜 이곳에 있었을까.

지하산맥으로 들어가는 길 중 가장 큰 곳이 바로 이 지하 보물창고이다.

본래엔 지하산맥으로 통하는 동굴이었지만, 살수왕 헤르메이샤가 개조를 함으로써 이곳은 사실상 지하산맥으로 통하는 길목 중 가장 험난하고 복잡한 길목이 되었다.

지하산맥에 볼일이 있어서 진입하는 놈들이 하필이면 가장 위험한 이곳을 고른다?

‘아니, 애초에 이놈들이 뭘 하려는 건지 답이 섰잖아.’

경지가 높고 많은 것을 안다는 것.

그것은 많은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게다가 그 심증에 확신을 주는 것은 놈들이 이곳 보물창고의 기관장치에 대해 알고 있다는 점이다.

어지간해선 알 수 없는데 알고 있다는 건…….

이미 이곳을 돌파하기 위해 많은 시도를 했다는 것이다.

“이곳에 있는 보물창고는 이게 전부야. 그런데 살수왕 헤르메이샤가 왜 이런 거대한 시설을 만들었게?”

내 질문에 말없이 내가 하는 행동을 보고 있던 일리나가 눈을 반짝였다.

“이곳에 중요한 게 있어서?”

“반쯤은 맞았어.”

담담하게 말한 나는 벽면을 밀어 눌렀다.

그러자 그그극! 소리와 함께 벽이이 열린다. 필디르를 포함한 녀석들이 멍하니 내가 하는 양을 지켜본다.

이에 나는 자루 하나를 꺼내 그들에게 던져주었다.

“금화 채워. 기사단에서 필요한 물자를 구하는데 보태라고 해.”

내 말에 필디르가 귀엽게 손을 번쩍 들었다.

“데이비 선생님! 뭘 하시려고?”

“사제 위장까지 하면서 이놈들이 여기서 활동하고, 방해되는 기사단을 괴멸시켰어. 시간을 들여서 이곳을 조사해야 했다는 거야. 지하산맥 내부도 아니고 바깥과의 경계 부분을.”

“세상에……. 그게 그렇게 해석이 되네.”

놀랍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주제에 다른 곳도 아니고 이 지하 보물창고 근처를 탐색한다면 답이야 뻔하지.”

여기 지하창고 가장 안쪽에는 중요한 물건이 하나 잠들어있다.

헤르메이샤는 그 내부에 든 힘이 심상찮아 보관해두었다고 했지만, 이놈들은 그 사용법을 아는 듯싶었다.

그렇게 말한 내가 내부에 있는 장치를 주먹으로 가볍게 두드리자 거대한 마법이 발현되며 홀로그램 같은 영상이 출력되기 시작했다. 개미굴처럼 얽히고설킨 거대한 지도에는 대여섯 되는 붉은 점들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저 점은…….”

“흑마법사들.”

그리고.

이어지는 내 말에 녀석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지금부터 저놈들은 내가 지옥을 보여줄 거다.”

굳이 내가 손을 대지 않아도 이곳의 기관장치는 저런 흑마법사 몇몇쯤은 손쉽게 으깨버릴 위험천만한 함정들이 가득하다.

나는 열린 벽면에 드러난 공간 쪽으로 마나를 손가락에 모아 튕겼다.

될지는 모르겠는데, 해보자고.

튕겨 나간 마나 구체는 빠르게 회전하며 사라졌고 이내 한 점의 빛이 되어 지도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날아간 마나의 구체와 연결된 마나실은 나와 완벽하게 동화되었고 나는 그 구체가 붉은 점이 있는 곳에 도달했을 때 그것을 그대로 활성화 시켰다.

목소리도 결국은 파장의 일종이다. 내 몸에서 파장을 만들어 그곳에서 퍼뜨리면 그게 내 목소리가 된다는 거다.

물론 언령 같은 고위 언어는 이딴 식으로 할 수 없지만.

상대를 놀리고 괴롭히기 위해 하는 말이면 파장으로 충분하다.

아아, 마이크테스트 마이크테스트.

“헤르메이샤 표 종합 지옥 어트랙션에 온 걸 환영한다.”

쾅!!

동시에 내가 벽면에 있는 마석을 강하게 때리며 마나를 불어넣었다.

저들이 있는 곳엔 함정이 제법 많이 설치되어있다. 그것들을 전부 파훼했는지 비활성화되어있지만.

그거야 다시 활성화하면 되는 일이 아닌가.

그그그그그그그극!!!!

거대한 지하 공동 전체가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가면 큰일 난다는 것도 못 배웠나? 시작은 요단 강 익스프레스로 먹여주마.”

시작부터 그들이 있는 복도가 순식간에 좁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나 구체를 던진 뒤 내가 보낸 메라몽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액체처럼 뒤틀리며 거대한 구체로 변한 녀석은 좁은 동굴 통로를 걸어가고 있는 그들을 깔아뭉개 쥐포로 만들겠다는 듯 더더욱 속도를 올리며 굴러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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