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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504화 (503/1,559)

제 504화

검은빛으로 된 목제 찬장의 내부에 고급스러운 상자들.

본래대로라면 이곳에 상자는 단 하나만 있어야 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상자의 수는 총 네 개.

게다가 하나하나가 천년환에 버금가는 영약들이다.

자박자박 소리를 내며 다가온 그녀가 조심스레 열린 상자 안의 작은 환단에 손을 뻗었다.

“헉?! 프리아님 맙소사!”

그리고는 기겁한 얼굴로 소리쳤다.

“세상에……. 이게 대체 뭐야?!”

“천년환. 동굴에서 떨어지는 이슬 중에서도 극히 희박한 확률로 마나를 머금은 것들이 한자리에 고이거든.”

“그게……”

“그것과 500년 이상 된 영초들을 배합해서 만들고 수백 년 숙성시킨 환단이야.”

가격이야 당연히 부르는 게 값일 수밖에 없다.

“와아…… 이게 그 동화나 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전설의 묘약…….”

일리나의 눈이 반짝거렸다.

내가 그녀에게 해준 혈맥 타통의 경우 그녀는 그런 사실을 거의 몰랐기에 별로 와 닿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영약의 경우 그녀도 알고 있는 만큼 내 설명을 듣고 이게 얼마나 막돼먹은 물건인지를 잘 인지하고 있다.

“황궁에서도 비슷한 묘약은 많이 봤어. 하지만 많아 봐야 100년 단위인데…….”

“보통 영약은 100년을 넘어가면 관리가 거의 불가능하니까.”

100년과 천 년은 다르다. 그만큼 이 환단의 가치는 거대했다.

“소설이나 동화에서나 보면 천 년 된 환을 무슨 간식 먹듯이 발견하고 먹는데 그게 얼마나 헛소리인지는 직접 보면 알겠지.”

어림도 없는 소리라 할 수 있다.

재료도 극히 희박한 확률로 얻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들을 모아 배합하는데에도 상당한 도박이다.

그렇게 완성하고 나서도 그것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일까.

어림도 없는 소리.

“그러니까…… 이걸 내게 주겠다고?”

“받기 싫어?”

“아, 아니야! 그건 아닌데…… 이렇게 귀한걸…….”

“난 저걸로 효과를 못 봐.”

어차피 짱박아놓거나 남을 줘야 하는데 당장 바리스나 윈리의 경우 이걸 먹여본들 사실 일리나 만큼의 효율을 뽑아낼 가능성이 작다.

물건은 필요한 사람에게 넘기는 법이다.

무엇보다 저런 불친절한 영약의 경우 혼자서 먹는 것이 불가능하다.

“혼자 먹는 게 불가능하다고?”

“곁에서 마나를 이끌어줄 인간이 필요하거든. 문제는 그걸 가능하게 하려면 못해도 8서클 이상급의 실력은 되어야 해.”

그렇지 않고 그냥 먹으면, 반불구의 식물인간이 되거나.

“아니면?”

“미쳐서 다 때려 부수는 미치광이가 되거나.”

어느 쪽이건 득보다는 실이 많다.

“결국, 넌 절대 못 먹는다는 소리네…….”

8서클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기겁하며 혀를 내두른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그럼 여기서…….”

“기다려봐. 손해는 최대한 감소해볼 테니까.”

담담하게 말하며 아공간에 손을 밀어 넣은 내가 백색으로 염색된 잉크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칠색조의 깃털로 만들어진 고급 붓까지 꺼내 자리를 잡았다.

“이제 여기에 마법진을……”

말을 하다 멈추고 시선을 돌리는 내 모습 때문일까.

천년환의 향에 취해 헤실거리던 일리나가 의문스레 나를 바라보았다.

“데이비? 왜 그러……”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네놈들을 지옥의 끝 심연에 던져주마!]

갑작스레 들려온 상당한 힘을 지닌 목소리가 공동 전에를 감싼다.

“윽?!”

정체 모를 목소리에 담긴 힘에 일리나는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인상을 대뜸 찌푸렸다.

마치 말에 강제하는 힘이 담긴 듯 짓누르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말에는 힘이 담기는 법이다.

그리고, 이렇게 유형화된 기세를 말에 담을 수 있는 이는 실질적으로 많지 않다.

[너흰 아직, 준비가 안 됐다! 블랙홀에 휩쓸려 꺼지거라!]

동시에 무언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빠르게 들리며 바닥에서 새카만 소용돌이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늪과도 같으면서도 우주의 블랙홀을 보는 듯한 그 느낌이지만 빛까지 모조리 빨아들이는 진짜배기 블랙홀과는 다른 느낌이다.

물론, 나의 경우와 다르게 아직 일리나는 그것을 대처할 능력이 부족한 듯 보였다.

반응할 새도 없이 일리나와 내 몸이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 * *

순식간에 주변이 일변한다.

‘블랙홀이라…….’

이 사기꾼, 이건 블랙홀이 아니라 준비된 마법진을 통해 대상을 지정해둔 공간으로 단기 이동시키는 마법이다.

겉보기엔 새카만 블랙홀과 같아서 속일 수 있지만, 사령 마법도 결국은 마법이다.

그래도 놀라운 점은 마법의 정순함이나 그 궤도가 8서클정도는 아니라도 7서클 급은 된다는 점이었다.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많다더니.

아직 지하산맥의 아래에 있는 괴물들도 만나지 못했는데 이런 존재를 만날 줄은 생각지 못했다.

“꺄악!”

허공에서 열린 균열 너머로 튕겨 나온 일리나가 인상을 찌푸렸다.

주변에 보인 것은 어둡고 축축한 감옥 같은 공동이었다.

출구라곤 보이지 않는 그 공간에 빠진 일리나는 곧바로 시력을 강화하고 칼디라스의 빛을 뿌려 주변을 옅게 밝혔다.

반대로 사령술사의와 흑마법사의 기초마법 중 하나인 어둠에 익숙해지는 안구에 관한 마법을 펼친 나는 어둠 속에서도 주변이 훤히 보였다.

[이곳은 지옥이다. 네놈들은 평소에 자신의 삶에 충실하지 않았지. 네놈들의 욕심이 너희를 지옥으로 이끌었음이니. 참회하라. 참회하면 신께서 너희들을 보살펴주리라.]

그 외침에 일리나가 이를 부득 갈았다.

“뭐?! 지옥?! 웃기지 마!!”

그녀는 칼디라스를 뽑아 주변을 밝히며 언제라도 찾아올지 모르는 적을 대비했다.

“됐어.”

“꺄악!”

그런 그녀의 뒤로 슬금슬금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자 그녀가 기겁하며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딱히 감각증폭을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아, 기척을 지웠었구나.“

“노, 놀랬잖아!”

“재밌네.”

“재, 재밌긴 무슨!”

울먹거리며 소리치는 그녀를 보니 어지간히도 놀란 듯 보였다.

“앉아. 천년환 흡수하게 도와줄 테니까.”

뭐 그녀가 당장 검선급 경지에 오를 거라곤 생각도 하지 않지만 적어도 그녀의 마나량을 두 배 가까이 늘릴 수 있다면 충분히 효능을 본 셈이다.

“무슨 소리야! 지금 적이 어딨는지도 모르는데!”

[크흐흐흐! 그렇다! 어서 참회하라! 이곳은 지옥일지니, 너희들의 참회가 이어지지 않는다면 따끔한 교육을…….]

“알아서 하고. 우리 중요한 거 할 테니까 거기 꼼짝 말고 처박혀있어.”

목소리가 하는 말을 끊어버린 나는 백색 잉크와 칠색조의 깃털로 만든 붓을 사용했다.

보통 새의 깃털을 가지고는 이런 붓을 만드는 게 쉽진 않은데 이놈들은 깃털이 동물의 털과 비슷하면서도 극도로 부드러웠다.

“무슨 소리야? 여긴 적진……”

칼디라스에 손을 뻗어 빛을 꺼뜨린 내가 한 손을 가볍게 튕기듯 들어 올린다.

동시에 수십 개의 광구가 번뜩이며 이내 넓디넓은 공동을 가득 메웠다.

“세상에 이런 무난한 지옥이 어디 있나.”

공동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한쪽 구석에 놓인 작은 곡식 자루와 물주머니들이 가득 보인다.

명백히 먹고 버티라고 가져다 놓은 느낌이었다.

“이봐. 우리 여길 얼마나 가둬놓으려 했나?”

[참회도 살아서 하는 것이다!]

“아, 예.”

웃기는 새끼일세.

저 웃긴 놈과 장단을 맞출 필요도 없기에 나는 주머니에서 메가트론이 변형된 큐브를 던져둔 뒤 칠색조의 깃털 붓으로 바닥에 마법진을 그렸다.

처음엔 아무런 힘도 없는 마법진이지만 몇 가지 시약과 마법 반응을 통해 마법진을 반응시킬 수 있다.

달의 꽃을 갈아 만든 가루와 수은액체, 그 외에 자잘한 것들.

내가 마법진을 설치할 때 이렇게 번거로운 작업을 하는 것을 처음 보았는지 말없이 지켜보던 일리나는 내 시선을 발견하고 나서야 뜨끔했다.

“중앙에 가서 앉아. 넌 걱정하지 말고 몸 안에 들어온 마나만 신경 써. 나머지는 전부 내가 해줄 테니.”

“미안해서……”

“선물이라 생각해.”

어차피 나는 못 쓰고 나머지는 제대로 효율을 보기도 힘들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건 빛의 용사라 불리는 레이나라 할 수 있다.

오히려 환단의 힘은 레이나가 더 효율이 높을 수도 있지만 나는 결국 일리나를 선택했다.

“……”

말없이 상자 안에 보관된 환단을 바라보던 일리나는 침을 꿀꺽 삼킨 뒤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눈을 꼭 감은 채 그것을 입에 털어 넣었다.

“아, 참고로.”

동시에 내가 기억났다는 듯 놀리며 말한다.

“그거 더럽게 맵다.”

이전에 하인스 영지에서 먹었던 울트라 바이올런스급 매운맛을 자랑하던 꼬치와는 급이 다를 정도로.

눈을 부릅뜨며 그것을 순식간에 뱉어내려 하는 그녀였지만 나는 그대로 뒤에서 끌어안듯 그녀를 감싸고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뱉지 마! 그게 얼마짜린데.”

“우웁…… 우우웁!!!”

눈물을 주룩 흘리며 버둥거리는 그녀를 강제로 붙잡는다.

어차피 맵다는 건 통각, 그리고 그 매움은 한순간이다

버둥거리는 그녀를 제압한 채 한참이 지났을까.

어차피 고통 자체는 짧고 강렬할 뿐이다.

서서히 힘을 뺀 그녀는 이제는 몸 안에서 날뛰기 시작하는 마나를 잡기 위해 필사적인 저항을 시작했다.

육신은 가만히 있지만, 정신은 극도의 집중상태에 빠져들며 식은땀을 흘렸다.

[뭐, 뭐하는 거냐! 참회하라고 했지 그런 불순한 행각을 하라 한 적은……]

“시끄러워. 좀 닥치고 있어.”

짧게 일축한 나는 한 손을 일리나의 어깨에 나머지 한 손을 그녀의 등 언저리 가까이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는 마치 무언가를 뽑아내듯 천천히 끌어당긴다.

쿠웅!!!

어마어마한 굉음이 울려 퍼진 것처럼 느껴진다.

‘마나 서클이 아니라 혈도를 확장해야 해.’

몇 차례 그녀의 육신이 경련할 때마다 거대한 마나의 물줄기가 그녀의 혈도와 심장을 회전한다.

내가 부드럽게 만들어놓은 혈도는 마나의 흐름에 따라 격렬하게 찢어지고 확장되었고 다시 아물며 단단하고 탄성이 강하게 굳는다.

상상 이상의 아픔이 가해질 텐데도 그녀는 이를 악물고 비명 한번 내지 않았다.

서서히 마나 회전의 여파로 생긴 혈도 속의 노폐물들이 빠져나온다.

골밀도가 단단해지고 그녀의 몸 안에 있던 불순한 것들이 죄다 끌려 나오기 시작했다.

코를 찌르는 강렬한 악취가 몰려오지만, 솔직히 놀라울 정도로 노폐물의 양이 적었다.

한 차례 환골탈태의 여파일까.

“으읍…… 읍!”

격렬하게 요동치는 마나량을 강제로 짓누르며 잠재운다.

내 몸 안에 있던 마나는 상당히 말을 안 듣는 새침데기 기질이 있지만 한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제법 칼 같은 모습을 보이곤 한다.

[얌전히 움직여. 찢어버리기 전에.]

이렇게 말이다.

성질머리가 한 원류에서 나온 마나답게 원소마나든 사령마나든 그놈이 그놈이라는 건 변치 않는다.

내 몸에서 흘러들어 간 마나가 일리나의 흉폭해진 마나를 강제로 제압하고 인솔하여 혈도를 회전하고 심장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서서히 안정되기 시작한 것이다.

계속해서 노폐물이 빠져나오고 있는 것은 그녀의 상태가 상당히 좋다는 청신호이기도 했다.

이제 남은 것은 폭주할 상황을 염두에 두어 주변을 지키고 완전해질 때까지 곁을 지켜주는 것 정도.

오랜만에 고된 작업을 한 탓일까?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짧게 한숨을 내쉰 나는 말없이 앉아있는 일리나를 보다 인상을 찌푸렸다.

“아. 옷을 안 벗겼구나.”

노폐물로 인해 완전히 못쓰게 되어버린 그녀의 복장을 보며 나는 아공간을 열어젖혔고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여성용 의상이 하나도 없네…….”

이를 어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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