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05화
152. 악! 뼈 맞았어! (1)
한참 동안 침묵하던 일리나는 30분 정도가 지나서야 눈을 떴다.
[이봐, 일리나 몸에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무슨 짓을 하긴, 혈도에는 세 가지 길이 있어. 하체 혈도, 복부 혈도, 마지막으로 흉부 혈도. 그 외에 뇌도 건드릴 순 있지만 그건 일리나가 익힌 중검하곤 맞지 않아.”
나와 같은 기괴한 케이스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한번 죽는다 생각하고 한다면야 어찌어찌 가능할지 모르나,나는 내 몸을 개조했던 미친 4인조, 오딘, 히포크리아, 로 아이아스, 다프네 급으로 혈도 확장실력이 뛰어나진 않다.
[너 미쳤구나? 그거 조금만 뒤틀렸어도…….]
“그 정도는 문제가 안 돼. 뇌 부분을 건드리기 시작하면 나도 손도 못 쓰고 쟤를 죽였을걸?”
[그 말은 너는 뇌를 건드렸다고 말하는 거 같은데?]
칼디라스의 질문에 나는 쓰게 웃음을 던졌다.
[으아아아아악!! 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
[가만히 있어! 이 호랑 말코 같은 x끼야! 등짝만 본다니까?!]
[죄송해요. 데이비, 아파도 조, 조금만 참아주세요!]
[아니, 그러니까 안 한다고 했잖아!!!]
[그 입 다물어. 뇌에 직접 헬파이어를 꽂아버리기 전에. 우리가 설마 널 죽이겠니?]
[죽일 거지?! 죽일 거잖아, 이 미친……]
[됐다! 일단 잠시 마취시켰으니까 빨리 진행해!]
다프네가 나에게 윽박지르고, 로 아이아스가 울상을 지은 채 필사적으로 내 육신을 제어한다. 그리고 오딘이 두 사람을 보조하며 마나의 폭주를 강제로 짓눌렀다.
신의 히포크리아의 경우 직접적인 간섭보다는 약재를 통해 내 몸을 안정시키다 장침을 통해 내 육신을 순간 마취한다.
몇 달 몇 년에 걸려 작업을 이룬 그 무식한 행각에 회랑의 남성들은 기겁한 얼굴로 근처에도 오지 않았고 후에는 내게 그런 말을 남겼다.
[안 그래도 그 미친년 네 명이 그걸 연구하더니…… 네가 대신 임상 실험체가 되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끅! 그러니까 오늘은 내가 한잔……. 끅! 내가 뭐라고 했더라.]
굉장히 고압적인 성격을 지닌 독고준조차 고생했다며 등을 두드려주고 아끼던 독주를 내어주던 것을 생각하면 그 당시의 일이 얼마나 막장이었는지 알 수 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작업?
그저 애들 장난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거 좀 예상 이상인데.”
일리나의 마나량이 늘어날 줄은 알았는데, 그 마나량이 늘어나면서 그녀의 몸 안에 있던 재능이 또 한차례 눈을 떠버렸다.
잘하면 몇 년 안에 그녀는 현재 대륙에서 단둘밖에 없는 경지.
완전한 검선에 이를지도 모를 일이다.
그 둘이 누구냐고?
레이나와 나.
이기어검을 흉내 내는 건 불여우 대공 카트린느 카라벨라도 가능하지만, 그녀는 그저 검선의 경지에 발을 걸친 것이지 넘어서진 못했다.
아마 평생 가도 그것을 넘지 못할 확률이 높으리라.
물론 레이나의 경우도 검선의 초입이기에 그 이상의 정교한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는 건 사실이지만 말이다.
좋은 예로 이기어 검을 흉내 내도 두 자루 정도가 한계인 레이나와 다르게 나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피하려고 수천 자루의 무기를 제어해야 했다.
“으, 으윽…… 무슨 냄새……”
그렇게 중얼거리던 그녀가 눈을 부릅뜨고 자신의 옷가지를 내려다보았다.
제법 수수하지만 고급스러운 재질로 만들어진 옷이었다.
“세상에……”
“깼냐?”
“……데이비,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되긴. 노폐물을 죄다 빼고 혈도를 강화했지. 덕분에 냄새가 보통이 아니더라.”
내 말에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그녀가 끈적끈적하게 흘러나온 노폐물을 손으로 쓱 닦고는 울상을 지었다.
“이거 마음에 들던 옷이었는데…….”
“그래. 옷을 좀 벗겨놓고 할 걸 그랬다.”
“데이비!”
“소리 지르지 마. 귀 울린다.”
담담하게 말한 나는 손을 가볍게 튕겨 흑마법의 마나를 끌어 올렸다.
그리고는 주변을 감싼 뒤 물주머니들을 가져와 허공에 뿌렸다.
그러자 물방울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허공에 분산되며 흩어졌고 뒤이어 내 손을 타고 모습을 드러낸 물의 중급 정령 운디네가 눈을 감은 채 양손을 펼친다.
“옷은 버려야 돼. 한번 찌들어서 약품 없이는 빠지지도 않을 거다.”
“끄응…….”
내 말에 그녀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천천히 옷을 벗기 시작했고 나는 그녀에게서 등을 돌렸다.
“몸을 씻는 건 어렵지 않을 거다.”
그렇게 말하며 아공간에서 비누를 꺼내 운디네에게 건네주자 녀석이 코를 쥐고 울상을 짓는다.
하지만 곧 비누를 작은 손에 쥐고 입을 쩍 벌리더니 그것을 집어삼키고는 일리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알몸이 된 그녀의 몸을 통돌이 세탁기 돌리듯 돌리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에 달라붙은 끈적끈적한 노폐물은 운디네의 갖은 고생 끝에 완전히 사라졌고 뽀얀 살결을 지닌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펄럭!!
뒤이어 아공간에서 꺼낸 남성용 셔츠 하나를 그녀에게 던져주자 그녀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셔츠를 쥐고 천천히 입었다.
“저기…… 아래가 좀 허전한데…….”
“남자용 속옷이 있긴 한데. 그거라도 입을래?”
“……부탁할게.”
어지간해선 싫다고 하겠지만, 셔츠 하나를 제외하고 모두 알몸인 탓에 수치심이 상당했던 모양이었다.
내가 건네준 검은색 남성용 속옷을 받아 입은 그녀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보면 몹쓸 짓이라도 당한 줄 알겠어.”
“몸은?”
“너무 상쾌해. 마나도 늘어났고, 무엇보다…….”
그렇게 말한 그녀가 손을 들어 올리자 저 멀리서 칼디라스가 달그락거리기 시작했다.
“네가 말한 그 이기어검이라는거…… 어쩌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마나량을 늘인다고 이기어검을 못쓰다가 쓸 수 있게 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 말인 즉, 마나량이 부족해서 이기어검을 시도해보지 못하고 있다가 마나가 늘어나면서 가능해졌다고 보는 게 맞았다.
“생각 이상으로 재능 괴물이네.”
“풉…….”
내 말에 그녀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귀엽게 웃어 보였다.
또 한차례 노폐물을 빠져나간 탓일까.
안 그래도 희고 뽀얗던 피부가 더욱 환한 느낌을 주어 그 미소가 만면에 피어오른 꽃 같았다.
그녀가 괜히 6대 미녀 중 한 사람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리고는 그대로 다가와 뒤돌아 있는 내 등에 머리를 파묻으며 조용히 말했다.
“고마워 데이비. 정말 큰 도움을 받았어.”
“쓸데없는 소리.”
뒤이어 로브를 꺼내 그녀에게 덮어주자 그녀가 급히 로브로 몸을 가리며 물어왔다.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나갈 거야?”
그녀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가진 않을 거야. 잡으려고 했던 흑마법사 놈들이 데스나이트에게 죄다 죽어 나자빠졌으니 이제 내 할 일을 해야지.”
“네가 할 일?”
“그래. 지하산맥의 끝에 이어진 통로를 통해서 마계로 갈 거다.”
대답이 꽤 놀라웠던 모양이었다.
황당한 얼굴로 나를 보던 그녀가 헛웃음을 흘렸다.
“저기, 내가 뭐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제대로 들었어. 마계로 갈 거다.”
“너……, 진짜 가지가지 하는구나?”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리는 그녀였다.
“대륙 그 어떤 인간도 너처럼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진 못 할 거야.”
“못할 것도 없지 않나.”
키득거리며 흑마법의 안개를 거둬들인 나는 우리를 보고 있을 목소리를 향해 경고했다.
“너무 오래 방치했어. 너 거기 기다려라.”
내 말에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계속해서 이곳과 연결된 기이한 사령 마나의 존재를 눈치챈 이상 더는 볼 것도 없었다.
한 손을 가볍게 들어 벽면을 겨눈 나는 놈의 마법을 굳이 디스펠하지 않고 방치했다.
그 이유는 역추적하기 위해서.
순식간에 놈의 위치를 파악한 나는 그대로 그 방향을 향해 겨누고 손을 뻗었다.
[7서클 원소마법]
[템페스트 불릿]
마치 폭풍이 한점에 모인 것처럼 모여들고 나는 그것을 손가락 끝에 머금어 미련 없이 발사했다.
공격마법을 반격하기 위해 검은 결계가 활성화되었지만.
템페스트 불릿은 거침없이 결계를 찢어발기다 못해 단단한 지하의 암반을 모조리 박살 내버렸다.
콰르르릉!!!!
무식한 소음과 함께 벽면이 무너지고 내부가 보이기 시작한다.
거대한 동굴 내부였다.
“세상에……”
그리고 그 동굴의 일부에는 새빨간 마그마가 쉬지 않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여기가…… 지하산맥의 내부……”
“아래층인 거 같은데.”
하층으로 갈수록 괴물들이 득시글거린다.
척 봐도 익스퍼터 최상급, 혹은 마스터급에 달하는 괴물들이 득시글거리는 것으로 보아 아마 굉장히 아래쪽이리라.
결과적으로 헤맬 것도 없이 곧바로 이곳까지 와버린 나는 벽면을 닥치는 대로 부수며 지나간 마법의 흔적을 따라 가볍게 걸음을 옮겼다.
“데, 데이비?! 이 아래 용암인데?!”
“걱정 마시고 따라와.”
그 말과 함께 일리나의 팔을 잡아 그대로 용암의 바다로 뛰어드는 나였다.
“나, 나 아직 죽고싶지 않은…… 꺄아아아악?!”
소드마스터도 보통 용암에 빠지면 죽는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손은 눈보다 빠른…… 이게 아니지.
순식간에 그녀의 마나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그녀의 몸을 보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천년환은 화속성과 수속성에 극도의 내성을 지닌 환이야. 그걸 제대로 복용한 인간은 일반인도 한서불침. 음, 그러니까 여기 말로 냉기와 화기에 거의 완벽한 저항을 이른다.”
“뭐…… 뭐?!”
물론, 어느 정도 수준까지일 뿐 완벽하진 않지만 말이다.
“참고로 마나 회전 잘하는 게 좋을 거야. 한서불침이라곤 했지만 완벽한 게 아니거든. 지속해서 마나가 줄어들 테니 관리 잘하라고.”
“데, 데이비이이이이!!”
마그마는 주로 밀도가 굉장히 높은 편에 속한다.
마그마에 발이 닿기가 무섭게 충격파를 응축시킨 내가 일리나의 손을 잡고 그대로 잡아당기자 그녀는 자신의 발이 용암에 빠졌다가 나왔어도 멀쩡한 것을 보고 놀란 눈을 부릅떴다.
아, 그러고 보니 몸은 한서불침인데 옷은 아니네.
순식간에 그녀가 입은 로브의 밑자락이 타들어 가자 그녀가 허둥지둥거리며 한 손으로 용암의 화염을 꺼뜨렸다.
“수, 수치스러워!”
발목과 종아리를 보여주지 않는 풍습을 지닌 그녀로선 불에 타오르며 그대로 드러난 자신의 발목과 종아리를 마치 치부가 드러난 것처럼 부끄러워했다.
“거참. 다리 본다고 누가 뭐라 하나.”
“네가 이상한 거야!!”
“내 눈엔 이 세상의 풍기가 이상한 거다.”
등은 시원하게 파는 주제에 종아리는 안 된다니. 그토록 어처구니없는 게 또 있을까.
“륀느를 좀 보고 배우라고.”
“이익!”
벽면을 박차며 그녀를 이끌고 튀어 올라가자 기다렸다는 듯 용암 속에서 붉은 눈동자가 번뜩였다.
동시에 거대한 물고기 같은 생물체가 입을 쩍 벌린 채 나와 일리나를 한입에 삼킬 것처럼 점프해왔다.
“마그마 피쉬가 뭐 저렇게 거대해.”
보통 마그마 피쉬는 커봐야 2미터 정도인데.
지금 보이는 저놈은 못해도 10미터에서 15미터 정도는 되어 보이는 거대 물고기다.
“데이비! 뒤에!”
“너도 방사능 먹고 왔냐?!”
순식간에 접근하는 놈을 향해 다리를 벽에 붙여 흡착시킨 나는 일리나를 품에 끌어안았다.
그리고 벽을 박차듯 튕겨 나가 그대로 놈을 걷어차 날려버렸다.
[마왕 유르그 식(式) 각권]
[유성각]
마치 유성이 떨어지듯 낙하하며 놈의 머리통을 걷어차자 단단한 놈의 피부가 그대로 일그러지며 우그러진다.
순식간에 머리를 잃은 놈이 멈추자 나는 거기에서 놈의 머리를 지지대 삼아 다시금 몸을 튕겼다.
아주 잠깐이지만 이 용암의 강 넘어 하늘로 향하는 천장에 누군가가 보였다.
새카만 로브에 검은 힘을 발현하는 흑마법사.
바로 그놈이다.
마치 포탄처럼 쏘아져 들어간 나는 용암의 강을 벗어나 벽에 팬 동굴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일리나를 한쪽에 던졌다.
“뒤로 빠져!”
그리고는 나를 보고 잽싸게 도망가는 흑색의 로브를 입은 놈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명치 간수 잘해라.
콰직!!!
묵직한 소리와 함께 살점이 일그러지는 소리가 아닌 단단한 무언가가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커헉!! 자, 잠깐만! 뼈 맞았습니다!”
그대로 무너진 그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웅크렸고 나는 그대로 놈의 로브의 후드 부분을 잡아당겼다.
“리치?”
내 시야에 보인 것은 뼈를 맞았다고 징징 울고 있는 뼈만 남은 리치였다.
응?
뼈 맞았다고?
“……”
말없이 침묵하던 내가 다시 주먹을 들어 올렸다.
“헉?! 자, 잠깐만요!!”
기겁한 그가 안광을 번뜩이며 버둥거리지만 미련 없이 나는 놈의 어깨를 또 한 번 강하게 후려쳤다.
“끄아아악!! 뼈!! 뼈 맞았다고요!!!”
악을 쓰며 괴로워하는 놈의 행태에 일리나도 기가 막히는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뼈만 남았으니 뼈만 맞을 수밖에.”
그녀의 중얼거림에 나는 극히 공감했다.
“너 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