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07화
153. 악! 뼈 맞았어! (2)
신의 섭리를 거부하고 불사자가 된 주제에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처박고 기도를 올리는 리치.
일리나도 기가 막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본다.
아주 잠깐이지만 허공에 휘날리는 깃털과 그의 육신에 깃든 빛은 착각할 수 없는 상위 신성력이었다.
신의 힘을 흉내 내 만들어진 신성력과 다르게 신의 신성력은 그 위계부터가 높디높다.
당연히 이 힘은 주신 프리아 여신 이외에 사용할 수 있는 이가 없기에 거짓이라고 보긴 힘든데.
“어떻게 신이 리치를 비호하지?”
상식적으론 설명하기 힘든데.
그렇다고 상식에 얽매여서 사고를 한쪽으로 치우치는 건 멍청이나 할 짓이다.
그렇다면 그가 모종의 수단을 가지고 있다고밖에 볼 길이 없다.
말없이 내가 놈을 바라보고 있자 신의 기적을 받은 녀석이 벌떡 일어나며 내게 안광을 번뜩였다.
“자! 하찮은 필멸자여! 신의 은총을 받은 나, 대신관 이오가 네놈들을 참회시키겠노…… 커헉!”
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를 들어 올린 나는 한 손에 주먹을 쥐고 웃어 보였다.
“아, 그래?”
말이 안 통하는 놈은 일단 쥐어팬다. 죽이는 것이야 쉽지만 그는 보기 드문…….
실험체였다.
“눈빛이 불순하구나!”
“그건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고.”
[마왕 유르그 식(式) 군중제어기]
[혓바닥 깨물기]
콰작!!!
순식간에 쳐올려 진 일격이 그의 턱이 높게 올라간다.
그리고 자세가 무너진 그놈의 갈비뼈를 정확히 노리고 힘을 끌어모았다.
[명치 존나 쎄게 치기]
콰드득!
“끄아아악!!! 잠깐!! 잠깐 뼈 맞았어!”
비명을 지르는 그를 무차별적으로 구타한다.
신의 기적을 받은 놈이지만 실질적인 차이는 거의 없었다.
그래도 생명력 하나는 질긴지 계속 맞으면서도 비명을 쉬지 않고 질러대는 이오였다.
“또 잘나신 여신에게 부탁해보지그래? 어?!”
“끄으…… 끄으으으!! 못 참는다!! 경전에선 살생을 금하라 했지만 신을 모독하는 배교자에게 천벌을!!”
그렇게 말한 그의 손을 따라 검은 바람이 사방에 몰아친다.
사령 마나가 분명한데, 신의 축복이 깃들어 제법 거슬린다.
성자 앞에서 신성력을 논해?
심지가 비비 꼬이기 시작하자 나도 모르게 신성력이 잠에서 깸과 동시에, 내 등에 남아있던 거대한 성흔이 덩달아 반응하며 주변을 신성력으로 가득 메워졌다.
순식간에 신성력의 폭풍을 몰아붙여 저놈만이 유리하던 상황을 동일하게 바꾼다.
이후 놈을 다시 쥐어패려던 순간.
“흐어어어어어어……”
녀석의 턱이 빠질 것처럼 크게 벌려졌다.
그 모습에 나는 하던 것도 멈추고, 서서히 기세를 사그라지게 했다.
동시에 리치 이오의 표정이 본래대로 돌아온다.
이것 봐라?
다시 신성력을 끌어올리자…….
“흐어어어어어어……”
턱이 빠질 듯 입을 쩍 벌리고 경악하는 그였다.
스르륵…….
다시 감추자 표정이 본래대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시 활성화하자,
“흐어어어……”
이 놈, 알기 쉽다.
“야.”
“……”
“야.”
“예…… 예?”
“너 성자라고 아냐?”
내 물음에 그의 안광에 혼란이 서린다.
* * *
“아아…… 여신께서도 무심하시지. 어찌 저런 불량한 한량에게 신의 흔적을……”
빠악!!!
“끄아악!! 잠깐…… 잠깐! 뼈 맞았습니다!”
“데이비. 어떻게 된 거야?”
바닥을 구르며 엄살을 피우는 이오를 무시한 채 일리나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걸 알면 나도 당황스럽진 않겠지.”
신을 배덕한 존재에게 신이 축복을 내린다니.
이것만큼 어처구니없는 일이 또 있을까.
문득 나는 궁금증이 생겨 그를 불렀다.
“이오라고 했나?”
“예? 아아……, 예. 그렇습죠.”
“대체 뭔 생각으로 우릴 그 공동안에 가둔 거야.”
내 물음에 이오는 잠시 침묵하더니 안광을 슬쩍 빛내며 말했다.
“대부분 침입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장시간 갇혀있으면 정신이 흔들리기 마련이지요.”
그의 말에 내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서? 그렇게 정신이 무너진 놈들을 장악해서……”
“그래서 내보내는 겁니다. 다시는 못 오게요. 아 물론, 좀 질긴 놈들이 있어서 버틸 식량이나 물 정도는 가져다 놓았지요.”
의외의 답변에 내가 침묵했다.
“사실, 당신이 있던 그 공동은 오래전부터 제가 지켜온 곳이라 말입니다. 그 안에 있는 위험한 물건인 붉은 보석이나 영약을 지키고 있었지요. 아, 아가씨 죄송합니다만, 혹시 빵부스러기라도 있습니까?”
느긋한 어조로 일리나에게 부탁하자 일리나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자루 속에서 작은 빵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반대로 나는 그의 행동엔 관심 없다는 듯 질문을 이어나갔다.
“영약들이 아니고?”
“아…… 그거 나머지는 제 겁니다. 아이고 고마워라. 잘 먹겠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손사래를 친 녀석이 무릎을 꿇고 앉아 일리나가 건네준 빵을 받아들었다.
“저기 말이야, 당신. 뼈밖에 없는 해골이 빵을 먹을 수 있는 거야?”
“저도 일단은 이 육신을 유지하지요. 먹지 않으면 골 손실이 납니다. 먹어야지요.”
낄낄낄 웃으며 빵을 으적으적 씹어먹자 먹은 빵조각들이 빛의 가루로 변해 부서지듯 그의 몸에 스며들었다.
“이야. 정말 맛이 있네요.”
친절한 어조지만 놈의 모습이 뼈밖에 남지 않은 리치인 터라 기괴하게 보일 뿐이었다.
“세상에. 음식을 먹는 리치라니……. 오늘 몇 번을 놀라는 건지 모르겠네.”
“그 천년환에 버금가는 것들이 전부 네 거였단 말이지.”
“제가 그래도 리치화 전에는 이런 영약을 만드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어흠. 뭐, 어찌 되었건.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적색 보석과 영약을 돌려주실 순 없으신지.”
그의 말에 내가 놈과 눈을 마주쳤다.
“선문답해줄게. 세상 모든 속세의 물질은 신의 아래에 있고 신의 뜻은 세상 만물에 있으나 그를 알 수 있는 이는 신의 뜻을 받고 행하는 자뿐이다.”
“프리아 교단의 주궤 기도문 3장의 내용이군요. 그리워라. 그런데 제 머리로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는데, 해석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그의 질문에 나는 자애롭게 답했다.
“반환 불가라는 뜻이다.”
“크……. 하, 하지만 영약은 둘째치고 적색 보석은 인간계에 나가면 안 될 텐데요. 보물창고의 주인은 그것이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는 문구를 남겨놓았지요.”
확실히 헤르메이샤는 레드드래곤 아이를 세상에서 완전히 격리할 생각으로 이 지하창고를 만들었다. 그가 무슨 수를 써서 최하층까지 도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그것들을 가지기보다는 던전을 조금 더 개조해 자신의 방식대로 그것을 지킨 모양이었다.
“웃긴 놈이네. 주인 있는 창고에 와서 알아서 보안시스템 설치해줬냐?”
“주인 있는 창고? 처음 듣는 소리입니다.”
“내거라고 거기 창고가.”
“허허허, 농담도 잘하시는…… 끄아악! 끄악!”
거침없이 놈의 어깨뼈를 정확히 노려 구타하기 시작하자 놈의 비명이 처절하게 울려 퍼졌다.
“아,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가져가세요. 가져가!!”
결국, 백기를 들고 항복을 선언한 건 리치 이오였다.
그는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자신의 어깨를 주무르더니 내 물음에 시선을 돌렸다.
“넌 이 지하산맥 안에 자리를 트고 있었나?”
“예. 일단은.”
“그럼 이곳의 길은 잘 알겠네?”
“최하층의 가장 위험한 구역을 제외하고 제가 가보지 못한 산맥은 없다고 자부하지요.”
“그래. 그럼, 안내 좀 부탁하자고.”
내 말에 그의 안광이 거칠게 번뜩였다.
“어디로 안내를 해달라는 겁니까? 밖으로 나가는 거야 제가 다시 돌려보내 드리면……”
“아니, 반대편으로.”
내 말뜻을 이해한 그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는 진중한 어조로 물어왔다.
“마계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추천은 못 드리겠네요. 최근 마계에서 도망친 분의 말을 들어보면 지금 그곳은 혼란과 혈전의 현장이라고…….”
“그건 내가 알아서 판단해. 안내할래. 아니면…….”
여기서 성불할래.
“서, 성불이라니요.”
“주신 프리아 여신이 어쨌든 성자인 내 입장에선 배교의 상징인 너를 그냥 둘 순 없거든.
사실 그냥 둬도 상관없다. 성흔을 찍은 건 주신 프리아 여신의 독단이었으니까.
불만이면 회수해 가시던지.
“그, 그럴 수는……”
“세상 만물의 운명은 신과 함께하니, 신이 선정한 운명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음이다. 그리고, 성자는 그런 신을 따르는 제 일의 신자일지니.”
“그, 그건 무슨 말입니까?”
그의 질문에 나는 시원하게 웃으며 말했다.
“뒤지고 싶지 않으면 안내하라고.”
“끄응……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담담하게 말한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래엔 이곳에 다른 볼일이 있어서 왔던 겁니다. 그걸 해결하기 전엔 도와드릴 수가 없어요.”
“볼일?”
“예. 마그마 카우를 생포해서 데려가야 하거든요.”
마그마 카우.
이오는 마그마 카우라는 놈에 대해 한 차례 설명했다.
분명 마그마 속에서 서식하는 강력한 힘을 지닌 황소를 말하는 것이리라.
온순한 편이지만 힘이 강하고 겁이 많으며 맷집이 좋고 자존심이 강하다는 모양이었다.
“그 마그마 카우를 생포해야 한다고?”
“예. 그놈이 있어야 농사를 지을 수 있거든요. 이런 척박한 지하산맥에선 말이죠.”
농사라니. 이젠 리치가 농사까지 짓는다니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아, 물론. 저 혼자의 신변을 위해 그런 건 아닙니다. 나름대로 사정이 있지요.”
“그러니까. 그놈을 생포하는 데에 도와주면 안내해주겠다?”
“그 정도는 기다려주실 수 있겠지요. 에이 설마, 제가 보관하고 있던 영약까지 깡그리 가져가신 분이 그 정도도 못 도와주실까요.”
빈정거리는 이오의 말에 나는 이놈을 당장 소멸시켜버릴까 생각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그는 나름대로 제법 훌륭한 길잡이가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나라고 해서 마냥 다 때려 부수고 지나가기엔 지하산맥의 길은 너무 복잡하다.
“뭐, 좋아.”
“그럼 따라오시지요.”
이오를 따라 한참을 걸어 들어간 곳은 거대한 마그마의 강이었다.
잔뜩 고여있는 마그마와 벽면에서 쏟아지는 마그마, 그리고 화산석으로 인해 주변은 지하 깊숙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환한 모습이었다.
보통 이 정도로 마그마가 많으면 열기로 인해 피부가 익어버리겠지만, 영약을 먹은 일리나도 나도 당장 열기에 노출되어 탈진하기엔 육신이 너무 평범함의 궤도를 넘어섰다.
뽀글뽀글 고리와 함께 일렁이던 마그마가 일순간 뒤척인다.
“저기 있군요.”
동시에 이오는 품 안에서 기이한 마석이 달린 막대 하나를 꺼내 들었다.
“잘할 수 있는 거 맞냐?”
“하하하하, 주신 프리아 여신께서 보살펴주실 겁니다.”
콰작!!
그가 그렇게 말하기가 무섭게 마그마 카우는 고개만 슬쩍 내밀고 이오를 보다 그대로 덤벼들어 놈의 상반신을 덥석 집어삼켰다.
“생포하다가 잡아먹혔는데?”
일리나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끄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놈에게 이끌려 마그마 속으로 끌려들어 가버린 이오는 한참 동안 침묵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마그마 속에서 기포가 일어나더니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끄아아아아!! 신께서 함께하신다아아아!!!”
격한 외침과 함께 튀어나온 녀석이 숨을 헐떡이며 마그마강의 어귀로 기어 올라왔다.
전신에 화염이 이글거리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났다.
착각은 아니었다.
이놈, 소드마스터급 이상의 수준이다.
놀라울 정도의 경지였다.
“헥…… 헥…… 이런 실수 했군요.”
담담하게 중얼거린 그가 손에 쥐어진 막대를 보고 입을 쩍 벌렸다.
“으악! 최면스태프가 부서졌잖아!”
그가 쥔 스태프는 자루 일부만 남아있었다. 힘을 발현하던 마석은 이미 마그마 카우가 집어삼킨 듯 보였다.
“이, 이럴 수는……”
어떻게든 찾아보려 하지만 마그마 카우는 멀리 마그마 속에서 헤엄치며 그를 놀리듯 유영했다.
“이, 이런…… 이러면 다시 최면막대를 가지러……”
이 허당 리치 놈이 하고 싶은대로 하게 내버려뒀다간 온종일 걸릴 느낌이었다.
나는 등 돌려 떠나려는 그의 쇄골을 낚아챈 뒤 그가 가지고 있던 스태프의 일부를 빼앗았다.
“뭐, 뭐하시는 겁니까!”
“요지는 저놈을 조련하면 된다는 거 아니야.”
내 물음에 그가 침묵했다.
마그마 카우를 생포해 가 그놈을 조련해 농사에 써먹겠다는 건데 결국 조련만 하면 생포는 필요 없다는 것 아닌가.
내 물음에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아공간에서 커다란 고깃덩어리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럼 내가 보여주지.”
진짜배기 조련사의 실력을.
내 말에 놈의 안광이 번뜩였다.
“오, 혹시 테이머 셨습니까?!”
“일단은.”
“……너 테이밍 기술도 있었어?”
“어깨너머로 배웠어.”
테이밍 기술은 특질능력이니까, 배우고 싶어도 배우진 못한다.
그렇다고 불가능하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잘 봐, 진짜 테이밍은 이렇게 하는 거니까.”
담담하게 말한 내가 오른손에 막대를 쥐고 왼손에 고기 덩어리를 놓고 손을 올렸다.
사람의 크기에 반 정도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의 고기다.
마그마 카우는 몸길이가 4미터 정도 되는 마물이다.
제법 강하긴 하지만 한 번 본 적은 있다.
[데이비. 조련은 말이다. 네 체질로는 불가능해. 하지만 네게도 가능한 방법이 있어. 잊지 마. 조련을 받는 대상도 감정이 있는 동물이야. 감정 면에서 교감하면…….]
그 가르침을 잊지 않았다.
나는 테이머 스승의 말을 그들에게 읊어주며 말했다.
“조련의 기본은 두 가지야. 놈을 유인할 먹이와 조련막대. 마침 이 정도면 적절한 조련막대가 되겠네. 내 구도는 엉망이지만.”
물론 내 구도야 조정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조련막대에 둔강을 피워올린 뒤 뒤로 숨겼고 고기를 지그시 눌러 핏물을 흘렸다.
그러자 헤엄치던 마그마 카우가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오오……”
그 모습에 이오와 일리나가 신기하다는 듯 나를 바라본다.
철썩!!!
이윽고 천천히 뭍으로 기어 나온 마그마 카우는 코를 킁킁거리며 고기에 고개를 가져다 대고 탐색하기 시작했다.
이후 나는 막대를 녀석에게 보여주며 서서히 다가갔고 이오와 일리나는 긴장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조련의 중요 점은 교감이야. 이 막대는 녀석과 나를 교감하게 해줄 거다.”
“오오…….”
“최대한 부드럽게. 놈을 내 가족이라 생각하고 평생의 동반자라는 마음가짐으로.”
그렇게 말한 내가 고기를 유도하여 놈의 입에 물려준다.
녀석은 고기를 한입 베어 물더니 눈을 크게 뜨고 거침없이 고개를 먹어 삼키기 시작했다.
이후 나는 손에 쥔 막대를 들고 말했다.
“교감이다. 최대한 조용히, 그리고 부드럽게. 안심을 시켜주면서……”
퍽!! 퍽퍽퍽퍽!!!
-음무오오오오오오!!!!
놈을 쥐어패기 시작했다.
[데이비 잘 들어. 조련은 말이다. 이렇게 하는 거야.]
배운 대로 하면 다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