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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522화 (521/1,559)

제 522화

“타깃이 경계를 풀었습니다.”

사제의 복장을 입은 이들이 수정구를 통해 연락을 취했다.

-수고했습니다. 검증은 어찌되었습니까.

“타깃이 저희가 찾던 그 물건을 손에 넣은 게 확실해 보입니다.”

긴장한 어투로 보고를 올리자 수정구 너머에서 느긋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유인해보길 잘했네요. 생각보다 빠른 게 조금 걸리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빠르지도 않았습니다. 혹여 성자가 그 헤르메이샤의 유적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제 아무리 1급 위험대상이라지만 거기까지.”

-적어도 지금까지 조직에서 선정한 1급 위험대상 중 간단했던 이는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상부의 명령을 어길 셈입니까?

조용한 타박에 사내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그…… 그것은…….”

-멍청한 자가 지휘를 한 탓에 이미 조직은 놈들에게 한번 우선권을 내어주었습니다. 귀한 능력을 지닌 이방인도 잃었지요. 그런데 또 명령을 어기시겠다 이겁니까?

단순히 목소리만 들려오는데도 심장이 죄어오는 느낌을 받는 사내였다.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숨을 헐떡이며, 그 압박감에 저항하려 부단히 애를 썼다.

하지만 그런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명령을 하달하여주십시오.”

-뻔한 도발입니다. 비록 그자가 가진 귀물이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지만, 애써 경계심을 심어줄 필요는 없습니다. 건들지 마세요.

“하…… 하지만! 모두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귀물도 탈환하고 분쟁도 일으킬 수 있…….”

-지금 제 말을 따르지 못 하겠다는 겁니까?

청년의 목소리에 사제복을 입은 사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수정구의 빛이 꺼지자 그는 입고 있던 사제복을 벗어던진 뒤 검은 로브로 갈아입고 입을 열었다.

“놈들을 주시해라. 오늘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모두 참살한다.”

그의 눈에 흉흉한 살기가 감돌았다.

* * *

“우욱…… 더…… 더는 못 마셔…….”

낡은 음식점 내부에 있는 인원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를 한번 살펴본다면 절대 평범한 이들이 아니었다.

한 제국의 황제.

그리고 중앙 패권 국가이자, 최강대국 팔란제국의 금지옥엽이며 신검의 주인이라 불리는 황녀.

그 외에 단순 영지만 가지고도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성자.

그렇다면 남은 인원들은 별 거 아닌 존재들인가.

하나 그건 아니었다.

겉보기엔 평범하고 순진해 빠진 소년 소녀들이지만, 그들의 정체는 속세와 연을 끊고 오지를 지키며 대륙을 수호하는 기사단의 정식 일원이다.

유일하게 상황이 못마땅하다는 듯 쳐다보는 보리스를 제외한 나머지는 그야말로 주량의 전쟁을 펼치고 있다.

평민들이 좋아하는 보리 맥주를 거대한 잔에 담아 원샷하기를 벌써 10통째.

커다란 오크통이 몇 통이나 비워지고 난 후에야 하나 둘 떨어져 나가기 시작한다.

바닥에 드러누워 뻗어버린 필디르와 그의 팔에 머리를 배고 곤히 잠든 샤이르 렌다는 첫 오크통이 비워질 때 이미 뻗어버렸다.

그리고 샤이르 렌다의 쌍둥이 동생인 펜디르 렌다가 울상을 지으며 제 언니를 데리고 벗어나려 했지만, 이미 그녀도 술이 잔뜩 들어간 터라 비틀비틀거리더니 결국 필디르의 나머지 팔에 머리를 푹 처박고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헤헤헤헤…… 더 마실 수 있어요. 오오!”

조금 의외인 것은 초대 성녀 다프네의 광신도인 루시아 쉘만이었다.

소드마스터 급이 되지 않는 이상, 마나를 움직이지 않는 경우 해독작용은 일반인보다 조금 나은 수준.

하지만 루시아는 신성력으로 해독작용도 하지 않은 채 무작정 술을 부어라 마셨고, 오크통만 열통이 넘어가는 이 순간까지도 버티고 있다.

“으하하하하하!!! 아주 마음에 드는구나! 짐은 쓸데없이 내숭을 떠는 여자보다 솔직한 여인을 더욱 선호한다. 어떠하느냐. 짐의 첩이 되어보지 않겠느냐?”

“딸꾹…… 저는요오…… 프리아님을 딸꾹…… 모시는 사제라구요오…….”

“흐음...신관이 결혼을 못 하는 경우는 들은바가 없네만……성자인 자네의 의견은 어떤가.”

“저야 뭐, 교단에서 나고 자란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알까요. 다만 주신 프리아 여신은 비혼보다는 기혼을 가르치는 신이십니다.”

“거 보아라.”

“흐응…… 딸꾹! 대제…… 대제님은 돈 많아요오?”

“흐음…… 돈이야 썩어 넘치지. 재화를 원하느냐. 이 서부 땅에 넓은 제국의 모든 것이 짐의 것이거늘.”

“흐음…… 그럼 그…… 그 데이비 그게 뭐였었죠?”

“힘 세냐고?”

“맞아요! 필디르가 남자는 힘이 세야 한다고 했어요오! 맞아 허리! 허리는 특히!”

“으하하하하하! 정말 당돌하기 그지없구나!”

겉으로 드러난 직업은 평민, 그것도 일개 용병소녀다.

신관이라 하여 무조건 직위가 있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런 일개 용병소녀가 제국의 황제에게 돈이 많냐느니 밤일을 잘하냐느니 묻는다면, 보통 이런 상황은 목이 몇 번 떨어져 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하지만 콘타스 대제는 더욱 더 재밌다는 듯 대소를 터뜨리며 킥킥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위험한 눈빛을 빛내며 루시아 쉘만의 뺨에 손을 올렸다.

루시아는 반쯤 풀린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헤실거릴 뿐이다.

“그래, 그것을 원하느냐? 내 일찍이 너처럼 마음에 드는 여인을 잘 보지 못했는데 그럼 어디 한번 짐의 실력을…….”

탁..

“잔 비셨습니다.”

내 말에 그가 짧게 혀를 찼다.

“왜 막는 것인가 왕자.”

“아직 어린애입니다.”

“흐음…… 겉보기엔 그대와 동갑내기로 보이는데 그대는 성인이 아니었나?”

“그럼 계속 해보시든가요.”

담담하게 말하며 주머니에 있는 작은 나이프를 그대로 테이블 위에 역으로 꽂아 넣는다.

검기 하나 발현되지 않았는데 날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나무테이블에 깊숙이 박혔다.

그 모습에 대제는 흥미를 잃은 듯 침묵했다.

“이건 뭐, 제국의 대제를 이리 부려먹으려 들다니, 속이 시커먼 놈이로군. 허면 짐의 부탁을 들어주면 그만두지.”

“뭡니까?”

“짐의 여식과 혼인을 올려라.”

그의 말에 나는 가득 찬 잔을 그대로 원샷해서 비워버렸다.

“그대는 일국의 왕족이다. 왕족은 많은 권리를 지녔지만 의무 또한 지니고 있지. 듣자하니 단 한명의 부인을 위해서 다른 이들과의 정략혼을 모두 거절하고 있다고?”

그의 말에 나는 침묵했다.

다른 의무는 다 이행했지만 유일하게 이것만큼은 고집을 부리는 나였다.

“그게 그대의 삶에서 얼마나 갈 것 같은가.”

“불가능한건 아니지요.”

“그럴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눈에 띄는 존재여서는 안 되었지.”

그가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세상일이 그저 머릿속으로 그린대로만 흘러갔다면 짐은 황제에 오르지도 않았을 것이고, 사랑하지 않는 여자를 여럿 품지도 않았을 테지.”

잔을 거칠게 흔든 그가 잔을 내민다.

“세상일이 언제고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야지.”

“유념해두지요.”

“그런 의미에서 짐의 여식과 혼인을 올리는 건 어떠한가.”

그 말에 나는 그의 얼굴을 말없이 들여다보았다. 확실히 그는 젊은 남자였다.

언뜻 보면 잘 쳐줘봐야 30대.

그렇다면…….

“제가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입니다만 대제. 그 황녀님의 나이가…….”

“올해 아홉이지.”

에라이 이 인간아.

“지금 저를 소아성애자로 만드시고 싶은 듯합니다.”

“결혼한다고 꼭 밤을 지새우고 배를 맞추라는 법이 어디 있나. 짐에게 이제 혼인이란, 지켜주는 방법의 일환일 뿐인 것을…….”

처음으로 그의 얼굴에 씁쓸함이 감돌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손에 쥔 잔을 비우는 것에 집중했다.

터엉!!

술판이 벌어지고.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다.

남은 것은 해독능력이 뛰어난 소드마스터급 이상의 인물 4명이 전부였다.

“흐응…… 역시 어지간해선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 모양이군.”

“그럼 이건 어떤가요.”

그가 눈을 끔뻑거리며 나를 바라보자, 나는 미리 꺼내두었던 검은 병을 하나 내밀었다.

동시에 그의 얼굴에 이채가 띤다.

“호오, 특이한 병이로군, 유리의 일종인가?”

“조금 비슷합니다만, 내용물이 워낙에 독한 놈이라서 일반 유리에 담으면 녹아내립니다.”

언뜻 보면 독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지만 그는 경계보단 호기심어린 눈빛을 지어보였다.

이걸 마시고 버티면 내가 인정해 주리다.

“독한놈이라…… 이름이 무엇인가.”

“우화등선주라고 합니다. 한방에 선계로 떠날 수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지요. 비슷한 자매품으로 열반주도 있는데. 한번 드셔보시겠습니까?”

“한 잔 들어보지.”

그의 말에 나는 빙그레 웃으며, 추가로 검은 빛의 나무로 만들어진 두 개의 잔을 아공간에서 꺼냈다.

“어? 데이비? 내 껀?”

“죽고 싶으면 먹어도 돼.”

내 말에 그녀가 움찔거리더니 물러났다.

빈말로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목숨을 걸고 마시는 술이라…… 퍽 흥미롭구나.”

“겁을 먹으셨으면 여기서 멈추셔도 좋습니다.”

“그럴 리가 있나. 어디 들어와 보거라. 짐의 주량은 제국 제일일지니.”

그 말에 나는 작은 흑나무 잔에 미량의 우화등선주를 따라주었다.

[딸꾹…… 내가 이게 없으면 잠을 못자요. 어지간한 술은 이젠 기별도 안 가니 원. 오오 다프네 한잔 하고 가지?]

[닥쳐 미친x끼야. 내가 위장 관리 똑바로 하라 했어 안했어. 또 위장 덜어내고 싶어!? 내가 몸 챙기라고 했어 안했어 이 호랑말코 같은 x끼야!]

천마 독고준의 기록은 우화등선주 위의 열반주.

그것을 열통 내리 속에 부어버리고 나서야 취할 정도였지만 보통의 경우, 열반주는 한입만 마셔도 사람을 보내버리는 악랄하기 그지없는 술이다.

그리고 그 열반주를 보관만 하지 마실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회랑에서도 그랬으니…… 아마 지금은 열반주는커녕 우화등선주만 해도 취기가 올라오리라.

세상에 심검을 쓰는 이를 상대로 대번에 취하게 만드는 술이라니.

이름그대로 극악무도하기 그지없다…….

못마땅한 듯 나를 보는 보리스 선생님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냄새만 맡아도 정신이 아릿해지는 술을 보며 대뜸 한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짧은 순간 그의 전신에서 마나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크으…… 어마어마하군.”

서서히 붉어지기 시작한 얼굴로 그는 미리 꺼내둔 포상, 목걸이를 내게 던졌다.

기이한 힘이 깃든 목걸이였다.

“그대의 것이다.”

털썩…….

그 말을 끝으로 그는 테이블에 머리를 처박고 잠들어버렸다.

“……실례하겠소.”

이윽고 대제의 호위가 그림자 속에서 스멀스멀 빠져나와 그를 부축한 뒤 내게 말을 걸어왔다.

“술기운 자체는 날이 밝으면 깔끔하게 날아갈 겁니다. 푹 쉬게 해드리세요.”

“알겠습니다.”

“와…… 대제는 주량도 주량이지만 그가 익힌 힘이 이런 독에 굉장한 면역을 지니고 있다고 들었는데…….”

“괜히 이름이 우화등선주가 아니야.”

그렇게 말하며 나는 잔에 따라둔 작은 양의 우화등선주를 그대로 들이켰다.

동시에 어마어마한 술기운이 확 밀려 전신에 퍼져나간다.

마나의 힘으로도 쉽게 해독하지 못하는 엄청난 취기와 냄새에 일리나가 코를 쥐고 인상을 찌푸렸다.

“데이비 단원.”

그리고 모두가 조용해졌을 즈음.

가만히 술을 홀짝이던 보리스가 싸늘한 말투로 내게 물어왔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뭐하는 짓이냐니요.”

내가 반문하자 그는 가볍게 손을 허공에 휘저었다.

그러자 그의 마나가 묵직하게 퍼져나가며 주변 공기를 뒤틀어버린다.

소리가 통하는 매질을 모조리 차단시키는 것으로 사일런스 마법과 비슷한 효과를 만들어낸다라.

놀라운 성과다웠다.

“자네…… 지금 기사단의 규율을 어기겠다는 것인가?”

“규율을 어긴다라. 저는 기사단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한 적이 없는데요.”

“…….”

“대제는 선생님과 저 녀석들을 그저 저와 일면식이 있는 이들 정도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운이 좋게 대제의 출현으로 도움을 받은 용병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최상의 시나리오 아닙니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네! 거기서 내가 머리만 조아렸으면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우리의 존재를 신경쓰지 않았을…….”

“누가 신경 안 써준다고 하던가요?”

내 물음에 그가 침묵했다.

“이미 들켜놓고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하면 저들이 몰라준답니까?”

“데이비 단원.”

“선생님. 기사총장 클로멘 그 깐깐한 양반이 왜 일리나와 저를 이번 일에 참가시켰는지 모르겠습니까?”

내 물음에 그가 침묵했다.

“저희가 싸우고 있는 게 누굽니까.”

“기사단 지부를 하나 괴멸시킨 흑마법사. 게다가 정체모를 힘을 지닌 이방인들도 있지.”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선생님.”

나는 최대한의 예우를 갖춰 물었다.

“기사단이 싸워왔던 적은 누구입니까. 잔머리 쓰고 숨을 줄도 알던 인간이었습니까? 아니면.”

“…….”

“본능에 따라 움직이던 마물이었습니까.”

마물도 마물이지만 사람 잡는데엔 전문가 쓰라고 클로멘 그 양반이 우릴 보낸 게 아니냐 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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