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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526화 (525/1,559)

제 526화

싸늘하다.

침묵이 날아와 꽂힌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몬미더.”

“어떤 놈이…… 허억!? 저, 저하!”

나를 발견하고 몬미더가 눈을 부릅뜨더니 이내 내 손이 까딱이는 것을 보고 총알같이 뛰어왔다.

“오셨습니까요!”

머리를 조아리는 그 모습에 나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자경단원은 모두 모였다.

애초에 자경단원이라는 이름도 무색하지만, 현재 자경단원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는 건 하인스 영지 초기에 있었던 이들을 말한다.

그들 사이에 배신자가 있다.

일루미나티라는 조직의 디센트라 불리는 그 청년은 자경단원 중에 배신자가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들 사이에 정말 배신자가 있는 것일까.

“형님? 저…… 이게 무슨 상황…….”

“바리스. 널 습격한 놈에 관해선 확인했나?”

“그것이…… 죄송합니다. 마치 틀에 짜인 것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졌으니까요. 헌데, 형님이 그걸 어찌 아시고…….”

“그놈이 남긴 흔적은?”

바리스는 품 안에서 작은 종이를 꺼내 들었다.

“마치 경고하듯 제게 이걸 남겨놓고 사라졌어요.”

바리스가 내민 종이를 펼쳐 들자 삼각형과 중앙에 새겨진 눈동자 문양이 보였다.

따로 마나의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단순히 문양을 그린 종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특질능력자의 힘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내 눈을 속일 수도 있기에 이것을 바리스의 곁에 두는 건 위험하다는 판단이 내렸다.

바리스가 건넨 문양이 그려진 종이를 챙긴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자경단원들을 돌아보았다.

“늦은 시간에 미안하지만 확인해야 할 게 있어서 너희들을 불렀어. 먼저 사과해둘게.”

내 말에 그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하명하십시오. 저하! 저희는 저하의 명령을 따를 준비가 언제든 되어있습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던가.

이들 중 배신자가 누구인지 확인할 방법은 내게 없다. 고문을 쓸 수도 없으니 말 그대로 막막하기 그지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일루미나티의 디센트가 말했던 그들의 끄나풀을 찾을 수 있는가.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게 풀렸다.

누군가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세계 최고의 스페셜 리스트가 있지 않은가.

일루미나티가 프리아 여신이 내린 보옥마냥 기괴한 존재이거나 레이나처럼 평행선 급의 타차원 존재가 아닌 이상 반드시 먹힐 것이다.

나는 곧바로 페르세르크와 직통으로 연결되도록 만들어둔 통신용 수정구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나를 멍하니 바라보던 자경단원들을 향해 말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지금부터 너희에게 단 한 가지의 질문을 던질 거다. 대답은 오로지 [네] 와 [아니오]로 답할 것. 알겠나?”

“예 저하!”

몬미더 단장이 선두에 서서 답한다.

[데이비?]

“페르세르크. 조금 도와줘.”

내 말에 페르세르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통신을 끊었다.

치직…….

그리고, 연락이 끊어진 지 조금 시간이 흘렀을 때.

공간이 찢어지며 눈을 쉬이 뗄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가진 은발의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족 특유의 붉은 눈동자보다는 조금 탁하게 변장한 탓에 나와 비슷한 색상의 붉은 눈동자를 반짝인 그녀가 천천히 다가왔다.

“지금부터 나는 너희들에게 한가지 질문을 던질 거다.”

‘예’, ‘아니오’로만 답하되, 진실을 말해라.

이어지는 내 말에 자경단원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어린다.

속마음을 완벽하게 들여다보는 게 힘들다면, 겉으로 드러난 것만 확인해도 좋다.

“너희들은 일루미나티와 관련이 있나?”

담담한 내 질문에 자경단원들은 의아한 표정들을 지어 보였다.

“페르세르크.”

이후 나는 곁에 선 채 말없이 단원들을 보는 페르세르크를 불렀고, 그녀는 이내 천천히 눈을 감은 뒤 입을 열었다.

* * *

“머리가 좋은 놈이네.”

끝까지 뻥카를 놓치지 않았다.

그 덕분에 마지막까지 주도권을 내어준 건 이쪽이었다.

내부에 배신자가 있을 수 있다는 한마디. 그리고 놈의 소속을 생각하면 제법 신빙성 있고 효율 높은 거짓말이기도 했다.

놈은 내게 엿을 먹고 쫓겨나면서도 반격을 가할 정도의 깡을 지니고 있었다.

단순히 지금까지 만난 멍청한 적과는 다르게 신중한 놈이라는 건 분명해 보였다.

이전과 같이 남의 속을 들여다보는 힘이 없는 내겐 쉽지 않은 상대라는 건 분명하다.

“데이비, 요즘 많이 바빠 보여?”

느긋한 얼굴로 창가에 앉아 다리를 살랑살랑 흔들던 페르세르크가 장난스레 웃어 보였다.

“멍청하게 속아 넘어갔지.”

“안 봐도 알 것 같으니 질문은 하지 않겠어.”

눈치가 빠른 페르세르크는 내가 무엇 때문에 이러는지 대충 알아낸 듯했지만 바리스는 아니었다.

“형님. 대체 무슨 일입니까. 갑자기 나타나셔서……”

“별일 아니야. 그보다 바리스, 그때 당시의 일을 자세하게 설명해봐.”

내 말에 바리스는 복잡한 얼굴로 그때의 기억을 되짚어 설명했다.

총괄 시종장 베스퍼스와 대화를 하며 침소로 돌아가던 중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그를 습격했고 사라졌다.

그리고, 사라지기 직전 일루미나티의 흔적을 남겨놓았다.

이것이 뜻하는 의미는 간단했다.

언제든 바리스의 목숨을 노릴 수 있다.

그리고, 그 경고의 대상은……

바리스가 아닌 나에게 향하는 경고였다.

디센트라던 그 총수 놈이 내게 보내는 경고.

비록 전투능력은 그놈이 압도적으로 밀리겠지만.

반대로 놈은 오랜 시간 이 땅에 자신의 힘을 만들어왔다.

빠드득…….

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가며 손에 쥐고 있던 문양이 새겨진 종이가 처참하게 구겨졌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손 뼈마디가 뒤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 이 x끼들이.

“크윽? 형님!”

바리스의 비명이 들려왔지만 내 몸에서 쏟아져나오기 시작한 살기는 서서히 제어력을 잃고 주변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파악!!

서서히 창백해지는 바리스의 모습에 페르세르크가 거칠게 내 몸을 끌어당겨 제 품에 안았다.

푹신한 감각이 얼굴에 전해지며 싸늘하게 굳어가던 분노가 일순간 날아간 것처럼 편안함만이 남았다.

“진정해. 데이비.”

“……”

한참 동안 말없이 그녀의 다독거림을 받던 나는 눈을 감은 채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에 빠졌다.

마법사 스승이었던 오딘은 내게 이런 말은 한 적이 있었다.

너무 머리가 좋고 생각이 많기에 때로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나는 디센트 놈의 한마디에 벌써 몇 가지 가설을 세웠고 그것을 갈아엎기를 반복했다.

결국, 나 스스로가 덫을 만들고 거기에 스스로 발을 묶어버린 셈이었다.

“후우…… 진정하자.”

상대가 머리가 좋은 놈이라면 이쪽도 그만큼 냉정하고 면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때로는 과감한 방식이 먹히는 것을 보여줄 필요도 있다.

“바리스. 당분간은 메라몽과 함께 다녀.”

내가 손짓하자 기다렸다는 듯 메라몽이 스르륵 다가와 그의 곁에 섰다.

“메라몽, 명령을 인계한다.”

[어벤저 편대 수장, 메라몽, 명령 인수준비 완료.]

수장에 욕심이 많은 놈답게 선배격인 에나벨이 있음에도 자신이 수장이라 칭하는 녀석이다.

“당분간 바리스를 지켜.”

[명령인수완료.]

그 말과 함께 녀석의 몸이 한 차례 뒤틀리더니 작은 시녀 복을 입은 귀여운 소녀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적절한 대상을 검색합니다. 현 모습을 유지하도록 하겠습니다. 피드백을 부탁드립니다.”

“어, 어어?”

귀여운 소녀가 무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말하니 바리스로선 꽤 당황스러웠던 모양이었다.

“괘, 괜찮아요. 아니 그보다 형님. 대체 무슨 일인 거죠? 제게도 말씀해주세요.”

“넌 신경 쓰지 마. 형이 알아서 할 테니.”

내 말에 바리스의 몸이 우뚝 굳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푹 숙이더니 조용히 물어왔다.

“제가 물어도 답해주지 않으시겠죠.”

“……”

“형님은 늘 그런 식이십니다. 네, 형님의 눈에는 제가 못 미덥겠지요.”

“바리스.”

그대로 손을 뻗어 녀석을 잡으려 했지만, 녀석은 내 손을 툭 쳐냈다.

“당분간 생각 좀 하고 싶어요. 형님.”

씁쓸해 보이는 바리스의 뒷모습은 지쳐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그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페르세르크가 내 팔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지금 그대가 하는 어떤 말도 저 아이에게 도움이 되진 않을 거야. 나중에 다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해.”

그녀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 *

“그러니까. 일루미나티라는 놈들과 충돌했다고?”

“일루미나티에 대해 아는 게 있어?”

“본녀도 직접 본 적은 없으니 뭐라 말할 순 없지만…… 일리나 그 아이가 어릴 적 칼디라스를 각성하고 대륙을 돌아다니면서 소문을 들은 적은 있는 게야.”

황족이나 왕족, 혹은 상위 귀족들에게나 은밀하게 퍼진 조용한 소문이었다.

일루미나티라는 조직이 세상의 근본에 숨어들어 세상 전체를 조종하고 있다고 말이다.

“음모론인 게지.”

말없이 내 손을 가지고 장난치는 륀느를 무시한 채 내가 표정을 찌푸렸다.

“그게 사실이었다는 거지.”

“그들의 말이 사실이려면 적어도 한두 국가가 얽힌 것으론 부족해. 아마 수많은 국가에서 그들의 손아귀에 놀아나고 있겠지.”

그녀의 말을 듣고 나니 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게 사실이라면 단순 라스트위스프 기사단 문제가 아니었다.

“일리나 그 아이가 놀란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게야.”

페르세르크의 중얼거림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놈들은 자신들의 힘은 물론이고 현재 대륙에 소수 나타나고 있는 이방인들조차 손에 넣고 이용하고 있다.

“그놈들의 목적은?”

“그걸 알면 그리 비밀스러운 집단일 리가 없지. 단순히 세상을 조종하는 어두운 손이라는 것 정도로만 알려져 있어.”

그녀로선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기 힘들어 보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살살 간을 보던 조화의 신 넬타리드가 나와 접촉하며 내게 호의를 베풀고 있다는 점이었다.

“일단 상황을 지켜봐야겠네. 그리고……”

“그리고?”

“이방인은 싹 정리해야겠다.”

단순히 이 세상을 게임으로 여기고 있는 놈들이다.

진실을 모르니 당연한 결과이지만 그들 하나하나가 굉장한 변수인 만큼 이대로 두는 건 곤란했다.

“아이나.”

내 말에 어둠 속에서 검은 복장을 한 다크 엘프 하나가 한 엘프 여성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어떻게 알아내신 겁이니까?”

“보이니까 찾아낸 거지.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가까이 와.”

내 말에 그녀가 조용히 다가왔다.

“에나벨. 임무완료.”

“그래. 데이터 정리를 해야 하니 골고다 장로님께 가봐.”

“명령인수.”

긴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에나벨이 스르륵 사라지자 나는 아이나가 건네준 종이를 받아 테이블 위에 올렸다.

“고생해줘서 미안한데 네가 움직여야 할 거 같다.”

“움직인다고요?”

“대륙에 있는 이방인들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해야 해.”

내 말에 그녀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는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죄송해요. 지금은 당신의 명령을 받들 수 없어요.”

그녀의 의외 대답에 나는 말없이 그녀를 직시했다.

“명령을 받을 수 없다?”

“네.”

그녀의 대답을 들어보니 어지간한 회유로는 그녀를 움직이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이유는?”

“이제 제 목적을 이룰 때가 왔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녀의 말에 내가 고개를 까딱였다.

“타이밍 참 얄궂네. 그래. 네가 바라는 게 뭐야. 그동안 받아먹은 게 많은데 도와주지 않을 수도 없겠네.”

내 말에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당신이 저를 후원해주세요. 당신을 상징하는 미스릴 패를 제게 건네주세요.”

대륙의 성자로서, 하인스 영지의 영주로서, 또 라운왕국의 왕자로서.

“자금까진 바라지 않아요. 제가 필요로 하는 건 당신의 명성과 위세. 그거면 됩니다.”

그녀의 말에 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제 돌아오기 힘든가?”

“그 사람을 찾기 전까진…… 돌아오지 못할 듯합니다.”

그녀는 1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내게 많은 도움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타이밍이 좋진 않지만, 이제는 내가 그녀에게 약속을 지킬 때가 온 것이다.

말없이 책상에서 미스릴 패를 꺼내 아이나에게 던지자 그녀는 부드럽게 그것을 잡아챘다.

“찾는 사람이 있다?”

“네. 그 사람을 만약…… 찾아낸다면. 그때 다시 저는 당신의 제안을 받고 당신의 정보원으로서 활동하겠습니다.”

그녀는 나의 사람이었지만 명백히 완전히 나의 사람은 아니었다.

“메아리 쪽에서 가만히 있진 않을 텐데.”

“그래서 당신의 위세를 빌리는 겁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로.”

“사고만 치지 마.”

내 말에 그녀는 떨떠름하게 물어왔다.

“저를 믿으시는 건가요?”

“믿냐고? 나는 아군이 아니면 안 믿어.”

“그럼 어째서 이 귀한 걸 제게 선 듯……”

“그동안 아군이었잖아? 당분간 보기 힘들겠지만, 그동안의 정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네 동생의 얼굴을 보고 넘겨주는 것이기도 하고.”

내 말에 그녀가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말이야. 네가 찾는다는 그 사람이 누구야.”

내 말에 그녀는 씁쓸한 표정으로 침묵했다.

그리고는 잠시 후 조용히 말했다.

“오래전, 제게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은혜를 베푼 분입니다.”

“호오…….”

생각해보면 이전 신목의 성자의 농간으로 신목의 성지에서 쫓겨났던 그녀가 다크 엘프가 되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들은 바가 없었다.

그녀도 말하지 않았고, 나 또한 궁금해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제가 사용하는 이 은밀 보법 또한……”

“그게 은밀 보법이야? 그냥 걸음걸이 아니야?”

내 말에 그녀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걸 찾는 당신이 이상한 겁니다.”

“어쨌든.”

“이건 세상에 단 한 명밖에 없는 그 사람에게 배운 것이니까요.”

그래?

그런데.

그런 것치고…… 마족 중에 그 보법과 정확히 동일하면서 더욱 숙련도가 높은 움직임을 보이는 이가 하나 있었는데.

“사람이라고?”

“네.”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라……

“가봐. 몸조심하라고.”

“저를 대신할 인물을 길드에서 파견해줄 겁니다.”

그 말과 함께 그녀는 연기처럼 흩어졌다.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던가. 그녀가 사라짐으로 인해서 벌써 정보 체계에 상당히 큰 구멍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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