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530화 (529/1,559)

제 530화

드워프에겐 보석 세공을.

엘프에겐 예복의 재단을.

그 외에는 성국에서 축복을 부탁했다.

일생에 정말 단 한 번일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내 인생에, 전생을 통틀어 첫 혼인이다.

나는 그 선택에 후회를 하지 않았고, 혹여 다시 이런 선택을 한다 할지라도 변함없이 같은 결정을 내리리라.

“예쁘다.”

나는 한 치의 거짓 없이 답했고 에밀리아의 도움으로 면사를 걷어 올린 페르세르크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를 푹 숙여보였다.

매번 내게 장난을 걸 생각으로 가득하던 그녀답지 않게 부끄러움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더욱 더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륀느, 페르님의 모습을 높게 평가. 데이비님. 륀느도 저런 의상을 요구해.”

륀느가 대뜸 내 팔을 잡아당기며 요구하자 나는 녀석의 머리를 푹푹 눌러 쓰다듬었다.

“언젠가 네가 저 옷이 필요해질 때 만들어줄게.”

내 말에 륀느는 입을 부루퉁하게 내밀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어울리는 구나. 나의 축복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 그저 네 앞날에 빛이 가득하도록 축복할 뿐.”

“그것만큼 좋은 게 어딨다고.”

부끄러움을 참지 못한 페르세르크가 다시 뛰어 들어가 본래의 복장으로 갈아입었고, 결국 나는 예복을 목갑 안에 소중하게 밀봉한 뒤 아공간에 넣었다.

혼인식 전날까지 예물을 직접 보여주지 않는 이곳의 풍습은 사실 내가 선호하는 풍습이 아니다.

결혼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그녀와 나의 의견모두가 소중했다.

“그럼 다음지역으로 가볼 겁니다.”

“혼인을 치를 때 그때 다시 보겠구나.”

“그보다 더 빨리 볼지도 모르고요.”

내 말에 그녀는 킥킥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페르세르크에게 다가가 그녀를 품에 안으며 조용히 말했다.

“축복 받은 아이야. 네게 신목의 가호를 내리마.”

페르세르크는 마족이다.

또한 그녀는 심연의 종주, 즉 여왕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세계수 알이 그녀에게 축복을 내리는 건 어쩌면 굉장히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거침없이 축복을 내려주었다.

“아참. 알.”

“음?”

“마계에 갔을 때 고대마수라는 놈에 대해 들었습니다.”

내 말에 알의 눈이 크게 깜빡인다.

“고대 마수?”

“이름이 펜릴이라고 하던데.”

내 말에 그녀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래, 펜릴……알고 있다마다.”

“세계수의 가지를 집어삼켰다던데.”

“펜릴은 꽤 오래된 마수란다. 내가 의지를 각성하기 이전에 존재했던 그 전대의 세계수의 기억에서 본 적은 있지. 어딘가에 봉인되어있다는 말은 들었다만.”

그녀의 말에 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좀 셉니까?”

“허면, 먹는 대로 강해지는 놈이 세계수의 가지를 먹어치우고도 살아남았으니 약할 수가 없지.”

세계수가 상대하기 까다로운 이유는 힘의 상성에 있다.

마나의 상성위, 사령마나의 상성위. 신성력의 상성위 등등.

수많은 힘에 상성 우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하지만 네 녀석은 그 상성위의 힘에도 유일하게 무상성 효능의 힘을 지니고 있지 않느냐.

그녀의 말에 나는 상태창을 활성화 하고 칭호란을 열었다.

넬타리드가 칭호 2차 해금을 대량으로 시켜준 덕에 제법 효율이 좋은 것을 많이 얻었다.

개중 내가 환골탈태 스택 6개나 투자해가며 실패했던, 가리지 않는 소환자의 2차 해금 능력이 제법 훌륭하다.

물론, 기본적으로 주술의 위력이 약한 건 사실이지만 이 칭호라면 그 공백을 어느 정도 메꿀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잊지 말거라. 그 펜릴도 오래된 괴물이지만, 내 눈에는 지금 너만한 괴물은 대륙의 역사를 뒤져봐도 없을 테니.”

회랑의 영웅들이 작정하고 만들어낸 전투병기가 약하면 쓰나.

* * *

신목을 떠난 나는 괜스레 불안한 표정을 짓는 그녀를 데리고 곧바로 황색바위 부족으로 향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땐 상당히 외부를 배척하는 기세가 강했지만, 지금 황색바위 부족엔 하인스 영지민들이 몇몇 돌아다니는 게 보일정도로 개방적으로 변했다.

“오오 은사! 은사께서 오셨군!”

나를 발견하자마자 환대하는 드워프들의 모습에 나는 하나하나 그들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토르스 장로님은 어디 계십니까?”

“응? 그 검은바위 부족의 노친네 말이오? 아마 대공방에 있을게요.”

장인 드워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3천도까지 올라가는 대화로가 있는 공방으로 향했다.

아직까지 이곳은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되어있지만 나는 예외였다.

실력으로 말하는 드워프가 나를 제지할 수단은 없을 테니까.

깡!!! 깡!!!

시원시원하게 울러 펴지는 망치소리가 들려온다.

작업에 몰두한 드워프들의 집중력은 상당해서 내가 온 줄도 모르고 망치질에 여념이 없다.

“음? 오! 은사 오시었소!”

그런 나를 반긴 것은 황색바위 부족의 1장로, 골고다였다.

“여기까지 오신건…… 그 토르스 그놈을 만나러 오신 게요?”

“예. 일단 부탁한 게 있으니까요.”

내 말에 그가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나를 안내했다.

“그 놈 아주 몇 날 며칠째 작업장에서 나오지도 않고 있소이다. 검은바위 부족과 비록 좋은 사이는 아니지만 일단 트르스 그놈의 세공실력은 알아줘야 하지.”

그렇게 말하며 그가 작업실 문을 열자…….

휘리리릭!!! 빠악!!

갑자기 날아든 망치가 그대로 골고다 장로의 머리에 직격했다.

“끄아아아악!! 내 머리!”

망치가 날아든 탓에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구는 골고다 장로였다.

이후 작업실 안에서 한숨을 내쉬며 검은 머리칼의 드워프 하나가 뒤뚱뒤뚱 걸어 나왔다.

“누가 매너도 없이 이렇게 작업실 문을 벌컥벌컥…… 음? 오호, 오시었소.”

골고다장로의 비명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토르스는 나를 올려다보며 반색했다.

검은바위 부족의 드워프.

드워프의 신물인 태초의 섬광의 수명이 다했을 때.

검은바위 부족에서 파견을 와 그것을 내놓으라며 황색바위 부족 드워프와 싸우던 그 드워프였다.

드워프는 주로 여러 분야에서 재능을 드러내는데, 골고다 장로의 말에 따르면 그의 세공능력이 굉장히 뛰어나다고 했다.

“대부분 완성되었소. 이제 은사께서 직접 작업하시면 될 듯하오.”

토르스는 뒤뚱뒤뚱 걸어 들어가 작은 상자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내가 한 것이라곤 겉치장뿐이지만.”

그 말에 나는 작은 상자를 열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고맙습니다.”

“고맙긴 무엇을. 드워프는 은원이 확실한 종족이오. 이정도도 못해줄까.”

그의 말에 나는 씨익 웃으며 아공간에서 작은 술병 하나를 꺼내들었다.

“전에 포이즌 웜으로 담궈둔 독주입니다.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네요.”

“어흠! 어흠! 뭐 이런 걸 다…….”

그는 헛기침을 하면서도 누가 가져갈까 잽싸게 병을 낚아챘다.

“크흠…… 하…… 한잔 같이 하시겠소?”

“아뇨, 이제 이걸 직접 만들어야죠. 공방 빌려도 됩니까?”

“평소 같으면 몰매 맞을 소리이지만 은사께 어찌 그러겠소. 당연히 좋소, 아니 오히려 써줬으면 하는군.”

토르스의 말에 나는 그가 안내한 공방으로 들어갔다.

“데이비? 이번엔 대체 뭘 하려고…….”

한차례 신목의 성지에서 예상치 못한 예복을 입어본 사례가 있던 페르세르크가 부담스럽게 물어보자, 나는 빙그레 웃으며 그녀를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는 륀느에게 홍단이와 청단이를 풀어 건네주며 말했다.

“두 아이 좀 부탁해. 좀 걸릴 테니.”

내 말에 륀느는 핼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아아아!! 링느!”

“린느!”

동시에 검이 두 아이로 변하며 륀느에게 매달렸지만, 륀느는 익숙하게 두 아이를 안아들며 어르고 달래기 시작했다.

“데이비님의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 판단. 나가서 숨바꼭질을 륀느가 높게 평가해.”

“숨바꼭질!”

“할래! 청단이도 할래!”

신이나 떠들며 밖으로 나가는 셋을 본 나는 페르세르크와 단둘이 남게 되자마자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읏?!”

그리고 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의 머리에 뿔을 그대로 부착했다.

“역시 뿔이 있어야 돼.”

인체공학적 설계 뿔.

손에 쥐는 촉감이 좋다.

“뭐…… 뭐하려…… 꺅!”

그대로 그녀의 뿔을 잡아 벽면에 밀친 내가 그녀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눈을 부릅뜬 채 나를 보던 그녀가 버둥버둥거리기 시작했고, 이내 체념이라도 한 듯 추욱 늘어졌다.

한참동안의 키스에 그녀의 얼굴이 매력적으로 붉게 달아올랐다.

눈은 반쯤 풀렸고, 숨은 거칠어져 있었다.

붉은 입술로 달뜬 숨소리가 흘러나오자 나는 그녀를 천천히 안아 흔들의자에 앉혔다.

“됐어. 딱 좋아. 거기 앉아있어. 영감이 떠오른 참이니까.”

“그것과 방금 전의 파렴치한 행동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게야!”

“적어도 혼인할 대상에게 주는 물건인데, 그에 따른 감정도 담아야지.”

처음엔 경계 대상이었지만 서로 익숙해지고, 서로 편안하다보니 어느새 설레고 있었다.

그렇게 말한 뒤 나는 테이블을 가져와 그녀의 맞은편에 두고, 상자를 개봉해 그 안에 든 반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주 작은 송곳 같은 칼을 집어 들고 오러블레이드를 피워 올렸다.

검은 나의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이오, 내 마음은 검이 가는대로 움직임이니. 나의 마음이 곧 검이오, 검이 곧 나의 마음이라.

심검의 묘리가 담기며 검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내 손에 감겨들어온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모델로 해서 크로키를 그리듯 세공을 시작했다.

“옷은 내가 재단 실력이 좀 달려서 말이다. 그건 전문가에게 맡겼지만 세공은 이쪽도 전문가거든.”

그러니. 예물은 직접 만들어 주리라.

은빛 목걸이와 팔찌. 그리고 발찌와 반지까지.

나는 잔뜩 지친 채 매력적인 얼굴로 늘어져 있는 페르세르크를 액세서리 속에 담기위해 신들린 세공을 시작했다.

* * *

“폐하.”

“베스퍼스 시종장. 몸은 어떠한가.”

“멀쩡하옵니다. 그 정도 칼침에 당할 정도로 늙진 않았으니 심려치 마시옵소서.”

“몸을 잘 관리해야 하는 게지. 그래. 아직 부상이 가득한 몸인데 어찌하여 나를 찾았는가.”

조용한 침실인 탓에 공적이 아닌 사적으로 말하는 크리아네스 국왕이었다.

“바리스 왕태자 저하의 근신 사태이후로 왕실 분위기가 영 무겁습니다.”

“그 영특한 아이가 어째서 귀족을 그 자리에서 베어 죽였는가…….”

“바리스 왕태자저하께선 생각 없이 일을 저지를 분은 아니시지요. 어쩌면. 저와 왕태자 저하를 습격했던 이들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런지요.”

“증거가 없었네. 너무 경솔했어.”

“데이비 왕자 저하였다 해도 결과는 똑같았겠지요.”

“그 아이라면 거기서 멈추지 않았겠지.”

증거가 없으면 나올 때 까지 헤집는다.

그것이 크리아네스가 본 데이비 올라운의 성정이었다.

“헌데, 그 일로 온 것 같진 않고.”

“그렇사옵니다 폐하. 일전에 데이비 왕자저하의 혼약상대에 대해 보고드린 바 있지요.”

“그래. 알아보았는가.”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다만 이름이 페르세르크이며 나이대는 왕자저하와 비슷하다는 것뿐이옵니다.”

“평민출신이라…… 이 말인가? 얄궂기 그지없군. 귀족들이 들고 일어나겠어.”

크리아네스의 말에 베스퍼스 시종장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혼인의 윤허를 부탁드리는 상소가 올라왔습니다. 어찌할까요.”

“내 일찍이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 그 아이에게 못할 짓을 많이 한 못난 애비일세. 이제 와서 그 아이가 스스로 선택한 반려조차 거부할 명분이 어디 있겠나.”

그 말에 베스퍼스 시종장이 조용히 고개를 숙여보였다.

“허면 윤허한다고 전하겠나이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현재 대륙에서 엄청난 위세를 가진 존재는 다름 아닌 데이비 올 라운이다.

그가 혼인식의 윤허를 요청했지만, 결국은 며칠 내로 식을 올리겠다는 통보와 같았다.

그가 갑자기 혼인을 올린다고 하니 타국에서, 또는 그와 관련이 있는 곳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크리아네스 국왕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단 한명의 왕자가 라운 왕국 개국 이후로 있었던 모든 업적보다 더한 위세를 전 세계에 퍼뜨리고 있으니 말이다.

“헌데…… 그 아이가 혼인을 치르고 자식을 낳으면…….”

“폐하께선 할아버지가 되는 것이옵니다.”

“기분이 싱숭생숭하군. 레니가 살아있었다며 더 좋았을 것을…….”

“데이비 왕자 저하의 친모이셨던 초대 왕비저하 말씀이시옵니까.”

“지켜주지 못한 내가 무슨 낯이 있겠는가. 헌데 조금 괘씸한 것도 사실이구나.”

아들의 첫 결혼이다.

아들이 여럿 있었지만 둘은 사망했고 하나는 아직 결혼의 결자도 꺼내지 못하고 있는 이 와중에 장남이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비록 해준 게 없는 못난 아비라고 하지만…….

“폐하. 입에 미소가 걸리셨습니다. 그리 좋으십니까.”

“크흠.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군.”

“상대가 평민일지도 모르지요.”

“직급이라…… 그 아이에게 반려의 직급의 무슨 의미가 있나.”

배우자의 직급을 보는 이유는 스스로의 위세를 더더욱 올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스스로 위세가 너무도 높은 위치에 있다면.

배우자에게 애초에 바랄게 있을까.

“축하한다 말을 전하는 건 그 아이의 복장을 뒤집는 일이겠지. 베스퍼스 시종장. 어찌하면 좋겠는가.”

“후후…… 아무리 사이가 틀어져도 아버지는 아버지입니다. 멀리서라도 바라보시는 게…….”

“데이비는 시종장이 생각하는 그런 아이가 아닐세.”

“허면 그걸 주시는 건 어떨런지요.”

“그것?”

“초대 왕비저하께서 가지고 계시던 물건. 현재 폐하께서 보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 말에 크리아네스 국왕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낡은 서랍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들었다.

그 안에는 수수하지만 예쁜 적빛 귀걸이가 들어있었다.

레니 알리샤드가 죽은 뒤 리네스 왕비가 그녀의 모든 흔적을 말살하는 과정에서 크리아네스 국왕이 몰래 숨겨온 물건이었다.

실제로 리네스 왕비는 가장 의미가 컸던 그 귀걸이를 찾으려고 갖은 발악을 했다는 보고도 받은 바 있었다.

불쌍한 사람 같으니.

“폐하께서 데이비 왕자저하의 생모이셨던 초대 왕비저하께 구혼하실 때 주셨던 그 물건은 비록 보석의 가치는 떨어질지라도…… 데이비 왕자저하껜 큰 의미가 될 듯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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