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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540화 (539/1,559)

제 540화

161. 데스로드의 유산

검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기사들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힘에 당황해 어떻게든 검을 회수하려 했지만 그들의 애병은 하나같이 주인을 배신하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이런! 검이 멋대로!”

허공으로 떠오르는 검을 거의 매달리듯이 붙잡은 기사 하나가 버둥거렸지만, 단조로운 철검은 그런 주인의 의지를 무참하게 배반했다.

순식간에 무장해제당한 기사들은 급히 보조 무기를 꺼내 들려 했지만, 의미 없는 반항에 불과했다.

“커헉!?”

“거, 검이 또!”

“긴장해라! 놈은 염동력을 쓴다!”

이걸 단순히 이기어검이라고 판단하는 놈은 없었다.

확실히 상식 밖의 경지이니까.

현재 대륙에서 이기어검을 다룰 수 있는 이는 총 두 명이다.

린디스의 불여우 대공이자, 내가 날뛰기 전부터 일인군단이라 불리던 단일세력. 카트린느 카라벨라 대공.

그리고, 일리나 데 팔란이면서 일리나가 아닌, 평행선에서 넘어온 모든 세상의 유일한 이방인.

레이나가 있다.

일리나를 포함한 경지가 높은 검사들도 그 경지를 조금 엿보고 있지만, 말이 쉽지 익스퍼터가 마스터가 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검선의 경지가 아니던가.

벽이라는 게 괜히 있는 건 아니었다.

나는 정확히 볼티즈 왕국의 국왕을 제압하고 그를 바라보고 있지만, 검은 마치 스스로 의지를 가진 것처럼 날아들어 기사들을 제압한다.

보지 않고도 보는 경지.

파장을 통해 주변을 장악하는 경계.

바로 심검의 힘이다.

접견실 내부의 기사들을 모조리 제압하자 바리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허공에 뜬 검 하나를 낚아챈 뒤 볼티즈 왕자에게 겨누었다.

“무조건 항복, 그 외에는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그러기에 처음 적당히 요구할 때 받아들였어야지요. 사람이 양심이 너무 없어도 벌을 받는 겁니다.”

‘누구 동생인지 아주 가차 없구나.’

페르세르크는 바리스의 발언이 만족스러운 듯 키득거렸다.

국왕궁은 륀느와 골렘들로 인해 장악되었고 내부는 바리스와 내가 장악하고 있다.

페르세르크가 내 어깨에 앉아있지만, 버릇이라는 게 쉽게 사라지는 게 아닌 터라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나 이외엔 잘 보여주지 않고는 했다.

상황이 이쯤 되니 볼티즈의 왕자는 상황이 잘못 돌아간다고 느낀 모양이었다.

그는 허공에 떠올라 기사들을 위협하고 있는 검 중 하나를 집어 들고 그대로 볼티즈 왕자의 목에 겨누었다.

“이, 이보시오 바리스 왕자. 아, 아무리 선전포고라지만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이오!”

“왜 말이 안 된다는 겁니까?”

“세상 어디에도 선전포고 직후 왕궁을 장악하는…….”

그의 말에 바리스가 킥킥 웃기 시작했다.

다만 표정 속에 서린 싸늘함에 볼티즈 왕자의 입이 다물어졌다.

표정을 보아하니 제대로 화가 난 모양이다.

“볼티즈 왕자님.”

“……”

“싸움에서 가장 효율적인 게 뭔지 압니까? 무혈승리입니다. 굳이 죄 없는 백성들 피 흘러가면서 자기들 이념으로 목에 핏대 세우며 박박 우기는 형식적인 분쟁은 전쟁의 일부일 뿐이지요.”

서로 죽자고 싸우는 대규모 싸움인 전쟁에 규칙이 어디 있나.

보통 선전포고를 전하러 가는 사신들은 죽을 각오를 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그 자리에 잡혀서 목이 댕강 잘려나가는 일도 역사서엔 흔했으니 말이다.

전쟁한다는 말은, 네가 죽든 내가 죽든 어디 끝까지 가보자는 의미가 강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져 가고, 패배자는 피눈물을 삼키며 승전국에 많은 것을 내어주어야 했다.

“병법에서 이르길 가장 상책은 피를 흘리지 않고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라 했지요.”

그렇다면 수많은 전쟁에서 소드마스터급 존재가 선전포고를 올리러 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소드마스터가 전략적 병기급 인재이기 때문이었다.

상대의 수장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데 가서 선전포고 직후 난동을 부리다가 잡히기라도 한다면?

개전국 입장에선 그보다 손해 보는 일이 없다.

제아무리 전략 병기라 할지라도 하늘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화살을 모조리 받아내며 생환하는 건 거의 불가능할 테니까.

“실제로 과거 린디스 제국이 몇몇 소국가를 점령할 때 비슷한 방식을 썼었지요.”

린디스 제국의 장점은 물량이다.

인재의 물량.

실제로 과거 린디스 제국의 역사를 보면 소드마스터급 강자 십수 명을 보내 그 자리에서 왕가를 장악하고 항복을 받아낸 바도 있었다.

지구와 비슷하지만, 이곳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이념이 완전히 같을 순 없었다.

애초에 전쟁법의 항목조차 다르니까.

물론 거짓 항복의 요소까지 생각하자면 이것도 효율 높은 짓이라곤 할 수 없지만 말이다.

“크윽! 놓아라! 이 비열한 놈!”

볼티즈 국왕은 상황이 제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표정을 대뜸 찌푸린 채 소리 질렀다.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네놈이 이곳 모두를 죽인다 해도 이상을 눈치챈 수도 방위 병단이 모두 왕성으로 몰려들 것이다! 그리하면!”

푸욱!!

순식간에 내 손으로 빨려들 듯 날아온 검 한 자루가 그의 팔을 꿰뚫는다.

동시에 그의 눈이 부릅떠졌다.

“크윽……끄아아악!!”

“폐하!!”

다급해진 기사들이 외치지만 그들 또한 검에 제압당해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밖에 골렘들이 놀기 위해 버티고 있는 게 아닌데 말이죠.”

내 미소에 그의 얼굴에 공포가 서린다.

“그럼 억울하지 않게 폐하, 당신의 목숨을 지금 거둬가 볼까요?”

내가 못할 거 같지?

그런 시선을 보내자 그는 이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한 듯 보였다.

그의 생각 이상으로 나는 빠꾸없이 들이밀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마음만 먹으면 당장 그를 죽일 수 있다는 것 또한 확실히 전했다.

상황을 판단하니 이제는 공포심이 전신을 장악한 모양이었다.

분노가 사라지고 지독한 공포가 남는다.

“아, 알겠네! 항복…… 항복하지! 하지만 일국의 국왕을 그리 절차 없이 죽일 수는 없는 법! 모, 목숨을 거둬가는 짓은 멈춰주게!”

항복하나 마나 내가 아는 볼티즈 국왕은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절대 항복하지 않을 인사였다.

하지만 그는 그 와중에도 내게 협상을 시도해왔다.

아마, 어떻게든 지금 당장 목숨을 연명해 자신이 살아나갈 방법을 모색할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이리라.

본래대로라면 굳이 기다려줄 이유가 없지만, 지금은 외려 그에게 시간을 주는 게 가장 상책이었다.

결과적으로 볼티즈 왕국과의 전쟁은 시작과 동시에 최소한의 희생으로 끝났으니 말이다.

나의 존재를 간과하고 설마 진짜 전쟁을 벌일 거라곤 생각지 못한 볼티즈 국왕의 안일한 판단이 이 사태를 만들었다.

“정말 싫어하는 말이다만.”

볼티즈 국왕을 위협하던 스태프를 거둬들인 내가 그에게서 물러서며 중얼거렸다.

“전쟁은 잔인할수록 빨리 끝난다지.”

나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정말 싫다.

“당장 죽이진 않아. 하지만 그 항복 선언이 거짓이지 않기를 바라지. 가자! 바리스.”

“형님? 그냥 가시는 겁니까?”

바리스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밥을 다해놓고 갑자기 다 된 밥에 재를 뿌린 꼴이었으니까.

이렇게 물러나면 그들은 도망을 치든지 아니면 뒤통수를 칠 가능성이 컸다.

그러니까.

그렇게 되기 전에 쐐기를 박아야 하는 법이다.

따악!

가볍게 손을 튕기자 내 주변으로 빛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접견실 일부에 공간이 찢어지며 그 안에서 라운왕국의 병사들과 왕실 기사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는 라운왕국의 병사와 기사들은 준비가 안 된 이들을 상대로 질 수 없는 전력이었다.

“무, 무슨?!”

“공간 전이라고!? 말도 안 돼! 왕성은 방해역장이 펼쳐져 있을 텐데!”

미리 대기 시켜둔 공간을 통해 대기하고 있던 그들을 공간 전이 마법을 역으로 이용해 불러들인 것에 불과했다.

기사들의 말대로 왕국의 왕성은 보통 공간 전이를 방해하는 전이마법 방해장이 펼쳐져 있다.

하지만 성국에 이어 제국의 수도까지 공간 전이로 불쑥불쑥 들이닥치는 내게 사실 현재 대륙의 마법 실력은 너무 뒤처지는 게 문제였다.

방해장을 순간적으로 역산하여 풀어헤치는 건 실상 그리 어렵지 않았으니까.

“고생하셨습니다. 바리스 왕태자 저하, 그리고 데이비 왕자 저하.”

“볼티즈 국왕과 왕자는 지하에 투옥해. 왕국 전체에 이자들이 저지른 짓을 모조리 공표한 뒤에 처형한다.”

아직 출현을 못 한 놈들도 모조리 끌어내야 할 테니.

* * *

미리 대기 중이던 라운왕국의 병력들이 들이닥치고 볼티즈 왕국은 선전포고를 받고 무언가를 해볼 틈도 없이 항복을 선언했다.

전쟁선포는 국가 간의 약속일 뿐이다.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전쟁이 시작되면 그 이후부터는 각 국가의 재량일 뿐이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 당연히 수많은 국가가 너도나도 얼씨구나 하며 끼어들 터.

그 후에 전쟁 사후 전리품 문제로 피나게 치고받고 싸우는 건 뻔한 결말이다.

나는 그 꼴 못 본다.

이 사태에 직접 가담한 왕족은 현 볼티즈 국왕과 그의 측근인 왕자.

페르세르크를 통해 알아본 왕족 관련인들은 그들이 전부였다.

볼티즈 왕국을 짓밟으려 작정하였다지만 관련도 없는 이들까지 싸잡아서 죽이기엔 후의 일도 생각해야 했다.

“쯧쯧. 가관이로구나.”

“누님, 이것도 좀 보시죠. 애초에 저희가 오지 않았어도 볼티즈 왕국은 금방 무너졌을 겁니다.”

서류를 휙휙 넘기며 상황을 정리하는 페르세르크에게 바리스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보고서 한 장을 내밀었다.

국가가 휘청거리고 있는 이 와중에 군비를 감축하지 않고 증강하고 있다는 보고서였다.

그런 주제에 국방비가 턱없이 부족하고 중간 횡령이 많아, 군량 보급은 엉망이고, 무기 또한 제대로 보급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주제에 병사의 수를 아득바득 올리고 있었다.

“마치……”

“전쟁이라도 벌일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게지. 데이비. 이것 좀 보아.”

“안 봐도 뻔하니 넘기자.”

전쟁에서 무력을 내가 담당한다면 바리스는 사후 문제를 담당해야 할 것이다.

“볼티즈 왕국을 짓밟은 건 예정대로 간다. 하지만 왕국 자체를 멋대로 쥐고 흔들지는 마.”

“어째섭니까?”

“지금 볼티즈 왕국의 민심을 봤냐?”

창밖으로 검을 내려놓고 포박되고 있는 왕성 기사들을 보며 내가 물었다.

“민심이요?”

“그래. 말이 아니지. 과징세에 가뭄으로 인한 흉년이 오고, 극도로 치안이 나빠져 있지.”

백성들로선 나라님께 큰소리를 내지 못하게 짓눌려있겠지만, 이 사태가 모두 왕성에서 주도한 것임을 깨닫는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이 와중에 왕족들의 식사는 대단하더군요. 사치가 제국 못지않은 수준이었습니다. 헌데 형님. 민심이 그토록 나쁘면 차라리 볼티즈 왕국을 무너뜨리는 게……”

“인간이라는 게 그래서 참 간사해.”

담담하게 말하던 나는 창밖으로 보이는 누군가를 발견하고 걸음을 옮겼다.

“페르세르크. 그놈들 떴다. 가자.”

“어찌 이리 뻔한 싸움인 겐지……”

“형님?”

내가 대답하지 않고 나가버리자 당황한 바리스가 일어나 나를 따라왔다.

“형님, 왜 중간에 끊으십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다 끊으면 저 궁금해서 못 참습니다.”

“아무리 불태워버리고 싶은 인간이라도 소속감이라는 건 무시 못 하거든. 우리가 볼티즈 왕국을 강제합병하면 반수는 환영하겠지만, 일부는 극도로 흉포해질 거다.”

오갈 곳을 잃은 분노는 곧 라운왕국으로 향한다.

게릴라, 혹은 저항군, 그 외에 독립투사.

뭐 이름이야 여러 종류가 있지만, 결론적으로 좋진 않다.

“그럼, 왕국을 남겨놓으면……”

“왕국을 남겨놓되. 민심을 땡기는 거지. 먹고살기 힘든 이들은 내일 먹고살 밥만 있어도 행복한 게 평민들이니까.”

좋지 않지만, 세상의 흐름이라는 게 그런 법이다.

“라운왕국이 해야 할 건 볼티즈 왕국의 민심이야. 그래야 차후 합병을 하든 뭘 하든 저항이 적을 거다.”

어떻게든 저항군이야 나오겠지만. 막무가내로 괴뢰정부를 만들면 이쪽도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다.

“어쩌다가 볼티즈 왕국과 이런 전쟁이 벌어진 건지……”

“사이가 좋진 않았잖아? 그보다 국제연합에선 뭐라고 연락이 왔든?”

“회의 결과가 아직 3심에 놓여있어요. 다만 상당히 긍정적으로 검토되고 있는 모양이에요.”

아이를 잡아다가 악마 같은 짓을 해서 금지 마약을 만든 게 하필 왕족이니까.

이놈들은 죽어도 할 말이 없다.

“형님, 그보다 이 사실을 전 할겁니까?”

바리스는 아지기 볼티즈의 평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왕족들이 숨기고 있는 수만은 비리와 끔찍한 행각들.

그리고 달맞이 꿀을 제작한 과정 등을 대중에게 공개할 건지 물어왔다.

“그래야지. 그래야 이쪽도 문제가 없지.”

볼티즈 국왕이 저지른 짓이 낱낱이 드러나면 백성들의 판단은 뻔하다.

평소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짓밟혀있던 울분과 분노가 한 번에 치솟아…….

“반드시 단두대에 걸라 외치겠지.”

광기가 된다.

인간의 본성 자체를 부정하는 건 의미가 없다.

이용할 건 이용하되, 아닌 것은 막는 것.

그것이 내가 내린 판단이다.

“그런데, 형님은 어디 가시는 겁이니까?”

나와 페르세르크가 집무실을 빠져나가 복도를 거닐자 바리스가 의아한 듯 따라붙었다.

수십 명의 기사와 수백에 달하는 병사들이 왕성을 장악하고 있어 사방이 혼란 그 자체였지만 내가 거니는 이 복도만큼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을 거야. 손님 맞이해야지.”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청단이를 뽑아 든 내가 가볍게 검 끝을 아래로 향하게 내리 세웠다.

동시에 청단이의 푸른 검신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서리기 시작한다.

사자(死者)를 베는 푸른 검.

청단이의 권능은 비 물리 법칙에 속하는 모든 것을 벤다.

실제로 청단이에게 베여도 꿋꿋이 버티는 괴물들도 있지만, 그것도 버티는 것일 뿐 효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튀어나와서 해.”

팅!

검집에서 청명한 소리를 내며 청단이의 검신이 번뜩인다.

동시에 청단이의 푸른 검신에 서린 푸른 검기가 허공을 찢어발겼다.

“무슨?!”

그 변화는 확실히 드러났다.

좀 전까지 아무도 없던 복도에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그의 행동은 느긋하기 그지없었다.

그 괴인의 정체는 모를 수가 없었다.

이미 한차례 내게서 살아 도망친 놈이었으니 말이다.

얼굴의 반쪽에 검붉은 핏줄이 돋아난 그는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설마 저를 찾아낼 줄 몰랐군요.”

일루미나티의 총수, 디센트 (죽음을 부르는 자)의 장난기 서린 말에 나는 미소로 화답해주었다.

“그때 내가 심어준 업의 심판이 제법 효과가 좋았나 보다?”

“정말 놀랍더군요. 덕분에 진짜로 죽을 뻔했습니다만. 어떻게든 멈추는 데에 성공했지요.”

업의 심판을 하고 싶다고 해도 그렇게 멈추는 게 쉽진 않았을 텐데.

그의 얼굴에 생긴 끔찍한 흉터가 왜 생긴 건지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가 가진 업을 내가 가진 칭호의 힘으로 심판해버렸으니까. 아마 그의 육신을 좀먹어가고 있는 저 흉터들은 그 부작용일 것이다.

“내 눈앞에 다시 나타났다는 건 뭔가 할 말이라도 있다는 거겠지.”

“네. 비록 시험작이지만 지금만큼 완벽한 실험여건도 없을 테니까요.”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바리스가 긴장한 듯 소리치자 페르세르크가 손을 뻗어 그를 제지했다.

“실험?”

“예. 비록 완성품은 아니지만 데스로드의 유산을 이용해 이곳 왕성에 있는 모두의 생명을 조금…… 거둬가겠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그가 품 안에서 꺼낸 수정구가 검은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화아아악!!!!

동시에 정령 마나와는 상당히 상극인 검은 에너지가 사방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검은 안개처럼 말이다.

[데스로드가 만든 마법입니다. 이 세상의 존재는 이 위대한 마법의 존재도 알지 못하겠죠.]

안갯속으로 사라진 느긋하면서도 징징 울리는 듯한 목소리에 청단이를 다시 납도한 내가 손을 풀었다.

그의 말은 아무래도 진실인 듯 보였다.

블랙 미스트는 [로 아이아스]가 만들어낸 마법이 틀림없었다.

검은 안갯속으로 사라진 그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이곳에선 모든 것이 제 의지대로 움직입니다. 물론 당신 같은 괴물에겐 감각의 혼란은 크게 의미가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끝없이 쏟아지는 적들을 상대로 마나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으면서 싸울 순 없겠지요.]

“설마 내가 그걸로 죽으려고.”

[죽지 않아도 이 왕성에 있는 모두를 죽이는 건 어렵지 않지요. 당신을 죽이지 못하는 건 조금 아쉽겠지만.]

블랙 미스트 마법.

오감의 혼란을 일으키고 일대를 모조리 검은 안개로 채운다.

검은 안개는 시전자의 의지에 따라 아군이 되기도 하고, 적에게 극도의 공포를 주는 존재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형체가 없는 안개를 베는 것도 불가능.

그렇다고 디스펠을 할 수 있냐 하면 그 또한 불가능하다.

[하하…… 하하하하! 정말 만족스럽군요!!]

나는 안갯속에서 나를 향해 파고드는 살기에 반응해 그대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안개로 만들어진 괴물이 내 손에 그대로 제압당했다.

퍼엉!!

물론, 내가 놈의 머리통을 박살 내기도 전에 괴물의 육신이 다시 안개처럼 연기로 흩어져버렸지만 말이다.

[참고로 이 마법은 디스펠이 불가능합니다. 당신이 잘하는 그 잘난 디스펠도 여기선 무용지물이지요.]

그의 도발은 계속되었다.

[위대하신 데스로드께선 적들에게 끝없는 공포를 선사하기 위해 이 마법을 만드셨습니다. 비록 수준이 떨어져 그녀의 유산을 통해 이 마법을 발현할 수밖에 없지만. 서클을 초월한 이 마법은 정말 놀랍군요.]

데스로드 표 하위 초월 마법.

오로지 그녀만이 사용할 수 있는 필드 마법이며 그녀의 존재를 입증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틀렸어.”

그 어둠 속에서 서서히 숨통을 조여오듯 다가오는 살기를 흩어버린 채 내가 싸늘하게 말했다.

“블랙미스트의 본 목적은 전쟁 방지야.”

이 안개 안에선 그 누구도 시전자를 제외하고 서로를 헤칠 수 없으니까.

말 그대로 광기에 휩싸인 대군을 멈추게 하는 데엔 최적화된 마법이다.

[무, 무슨?! 당신! 어떻게 이 마법의 이름을?!]

“그런데 참 이상하지? 데스로드 [로 아이아스]는 페스리사 대륙에서 존재 자체가 잊힌 거로 기억하는데.”

내 말에 일루미나티의 총수, 디센트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마법의 이름도, 데스로드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내 행동에 경악하고 있다는 게 여지없이 전해진다.

“너 나하고 할 말이 많을 거 같지 않나?”

그 말과 함께.

내 손이 허공으로 뻗어졌다.

그리고.

처음으로 안갯속에서 형체가 있는 무언가를 낚아챘다.

[마왕 유르그 식(式) 군중제어기]

[한방에 주님 곁으로.]

멱살을 잡아당겨 자세를 무너뜨린 그의 급소에 정확히 내 팔꿈치가 내리꽂혔다.

[커…… 헉?!]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는구나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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