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45화
륀느가 만들어낸 대 파괴의 여파로 동굴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내가 이미 한차례 동굴을 베어버린 탓에 어긋나있는 찰나에 큰 충격이 가해지니 무너질 수밖에.
레인 오브 헤븐으로도 치료가 다 되지 않은 소년을 부축한 채 그곳을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소년이 필사적으로 내 옷을 잡는 것을 보고 멈췄다.
뻐끔뻐끔.
피가 잔뜩 묻은 입으로 뻐끔거리는 소년의 행동에 나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이방인이 이렇게 박살 나 있는 건 실상 불가능할 텐데.
이방인의 육신은 죽으면 가루가 되어 부서진다. 그런데 소년은 마치 이곳의 사람 같았다.
그렇다면 방금 전 륀느가 날려버린 사내가 소년을 이 꼴로 만들었다는 뜻이리라.
“하고 싶은 말 많은 건 알겠는데 됐고, 돌아가서 치료받은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내 말에 소년이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필사적으로 뻗어 내 옷을 잡았다.
가지 말아 달라는 이야기였다.
이에 소년이 손을 뻗어 어딘가를 가리킨다.
소년이 가리킨 곳은 죽은 듯 미동도 하지 않는 소녀였다.
“누……나……”
레인 오브 헤븐의 여파 덕에 목소리가 아주 조금 나온 모양이었다.
소년은 피눈물을 흘리며 나를 향해 필사적으로 말했다.
“누…… 나……”
그의 말에 나는 말없이 쓰러져 있는 소녀를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거 구원비 좀 비싼데. 뭐든 할 자신 있나?”
내 물음에 소년은 잠시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에 서린 감정은 복수심과 결연함이었다.
“웃기고 자빠졌네. 잠이나 자 인마.”
퍽!
물론 그런 소년의 독기를 나는 심드렁하게 받아내 버렸다.
소년의 복부를 가볍게 쳐 기절시켜버린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소녀에게 다가갔다.
소녀, 아니 여인이라고 해야 할까.
성년이라고 하기엔 앳되지만 그렇다고 아이라고 하기엔 성숙하다.
피투성이가 된 여인의 목에 손을 올린 나는 아주 미약하게 심장이 뛰는 걸 발견했다.
“기가 막힌 생명력이네.”
보통 인간은 이 정도 상처를 얻고 살아갈 수 없다.
그런데 소녀는 살아있었다.
마치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처럼 말이다.
실상 기적에 가까웠다.
신에게 기도를 올려 그 효과를 증폭시킨 덕분에 소녀는 목숨이 끊어지던 걸 겨우 건졌다.
소년 또한 마찬가지.
문제는 그 여파에 있었다.
그렇게 목숨줄을 이어붙인 탓에 적어도 3시간 정도는 신성 마법으로 회복하기가 어렵다.
직접 치료를 하던지, 아니면 3시간을 기다렸다가 서서히 회복을 시키던지. 둘 중에 하나만 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죽은 이를 끄집어내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주신 프리아 여신의 영향력이 약해진 결과가 이 꼴이다.
“안 되면 되게 해야지.”
나는 소년과 소녀를 나란히 눕힌 뒤 륀느를 향해 말했다.
“륀느. 아직 살아있다. 죽이지 마.”
그 새끼들이 누구의 육신을 가져다 썼는지 알고 있으니까.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살인은 사형으로 다스려주고 고인의 육신을 이용해 아티펙트를 만든 놈들은 똑같이 아티펙트로 만들어주마.
“륀느, 고성능 전투 생체골렘. 임무 성공률을 매우 높게 평가.”
그 말과 함께 륀느의 빠루질로 무너진 벽면에서 검은 머리카락의 남성이 인상을 대뜸 찌푸린 채 튀어나왔다.
“그아아아아아!!! 감히! 감히! 감히! 데스로드를 모시는 신관장인 나를…… 나를 나를 나를! 건드려어어어어!!!”
광기까지 느껴지는 괴성에 륀느는 그의 손에 쥐어진 단검과 그 안에 박힌 아티펙트를 보며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두 사람의 신체를 뉘어둔 채 그대로 마나를 끌어 올렸다.
신성 마법은 가장 부작용이 적은 치료방법이다.
하지만 신성력으로 치료할 수 없다 하여 치료가 안 되는 것 또한 아니다.
“육체 재구성.”
내 중얼거림과 함께 사령 마나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흑마법은 정신계통. 사령 마법은 육신 계통.
정확히 말하자면 사령 마법의 원천은 마법을 통한 의술이다.
그리고, 주술이었다.
죽은 자를 살리기 위한 순수한 갈망이 만들어낸 마법이니까.
거기에 멈추지 않고 나는 아공간에 여분으로 만들어둔 부적을 꺼내 허공에 던졌다.
[2급 주술.]
[선계의 문]
인간에게 가장 효율적인.
만약 이놈들이 마나가 없는 지구 출신이라면.
주술만큼 확실한 효과를 보는 것도 없을 거다.
“내가 치료하기로 한 이상 죽을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죽더라도 영혼의 머리끄덩이를 붙잡아 데려와 줄 테니까.
주술은 차원이 분리되기 전 과거의 지구가 원천이다.
그리고 그 후손인 현 지구인은 못해도 상당한 효능을 볼 수 있으리라.
선계의 문이란 주술사들이 육신의 상태를 가장 최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무릉도원을 구현하여 인간과 연동시키는 주술이다.
이걸로 잠시 시간은 벌 수 있을 것이다.
남들 모두가 안 된다며 고개를 저을 수 있지만 나를 우습게 보지 말라지.
그렇게 선계의 문을 소년과 여인에게 연동시킨 나는 양손을 몰아 기도를 하듯 깍지를 끼고 사령 마나를 모조리 끌어내기 시작했다.
[8서클 사령마법]
[리소스 바디]
우드득!! 우득!!
피부와 뼈가 뒤틀린다.
신경이 뒤틀리고 골격이 멋대로 변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몸엔 200여 개가 넘는 뼈가 있으며 상상을 초월하는 양의 근섬유가 있다.
그리고 그보다 압도적으로 많으며 잘못 건드리면 끝장나는 신경까지 있다.
그것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은 채 나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하나하나 뒤틀기 시작했다.
보통 사령술사들이 봤다면 기겁할 장면이지만 그걸 봐줄 인간도 없고, 이걸 누군가에게 보여줄 생각도 없었기에 내 행동은 점차 과감해져 갔다.
뒤틀린 뼈가 붙고 치명상이 생긴 상처가 아문다. 장기들이 수복되며 끊어진 신경이 마치 새로 자라나듯 부풀어진다.
당장에라도 죽을 것 같은 모습을 하던 소녀와 소년의 육신이 회복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와 사령 마법의 연동으로 여성의 물어뜯겼던 팔은 언제 그랬냐는 듯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시작부터 그냥 초고위 신성 마법을 꼴아박을 걸 그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몸이 잘 움직이지 않는 부작용은 남겠지만, 회복 자체는 이렇게 번거롭게 할 필요가 없었을 테니 말이다.
물론, 목숨이 중요하지 부작용이 걱정일까.
나는 숨이 서서히 고르게 변해가는 두 사람을 보며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에 적셨다.
그리고는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귀여운 소녀와 소년들이다.
소년의 나이는 10대 중후반 정도, 소녀, 아니 여인의 경우 20대 초반 정도.
그 모습을 언뜻 보고 있던 와중이었다.
콰아앙!!!!
저 멀리서 륀느와 흑색머리칼의 사내가 충돌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데스로드의 아티펙트를 지닌 녀석이니 륀느의 승산은 낮은 편이지만 상관없었다.
그놈이 그걸 꺼내는 순간만을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얘들 왠지 낯이 익은데.”
죽은 듯 잠든 소년과 여인을 보던 내가 조용히 중얼거리며 두 사람의 뺨을 쓸어내렸다.
“낯이 익다고? 그대가 기억 못 하는 사람이 있는 게 말이 돼?”
“모르는 인물인데 데자뷔가 느껴지는 거겠지.”
낯이 익은데 기억이 안 난다?
그건 내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완전 기억능력자가 가장 바라는 것이 다름 아닌 망각이니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떠오르는 인물은 없다.
이들은 대체 누구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던 찰나였다.
“흐아아아아아!! 이 건방진 년이! 죽여주마! 죽일 거다! 죽여버리겠다!!!”
악을 쓰며 그 사내가 단검을 들어 올린다.
데스로드의 육신이 서린 아티펙트가 꽂힌 단검이다.
동시에 아티펙트가 빛을 뿜으며 사내의 육신이 뒤틀리기 시작한다.
꾸드득! 꾸득!!!!
동시에 사내의 몸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감히 이 신물을 받은 신관장에게 걸리면 어찌 되는지 보여주마! 저 남자 놈은 직접 사지를 해부하고 네년은 사지를 찢어 약탕기에 처박아버리겠다!!”
악을 쓰며 변화한 사내는 이전과 달랐다.
거대한 덩치로 가득해져 그 신장이 3미터가 넘어 보였고 옷이 찢어지며 보랏빛의 거대한 핏줄선 근육으로 가득해졌다.
입에선 스팀이라도 쏟아지는 것처럼 열기가 흘러나왔다.
“아, 아아! 이토록 좋구나. 이방인들의 몸에서 빼앗은 그 스킬들이 모두 내게로 왔어!”
그렇게 말하며 그는 바닥에 떨어진 두 가지 물건을 더 꺼내 들었다.
하나는 단순히 아티펙트로 보이는 구슬이었고, 하나는 아티펙트가 장식된 책이었다.
“죽음의 신 데스로드께서 가라사대! 세상을 순수하게 하라 하셨다! 데스로드의 은총에 모두가 보답하여 하나가 되어야 할진저! 순수란 곧 통합! 그리고 융합을 뜻함이니!!”
광기 서린 그의 외침에 륀느가 인상을 찌푸린다.
“죽여주마!!!”
그렇게 외침 그가 숨을 헐떡이며 그대로 륀느를 향해 파고들었다.
순식간에 지면이 박살 나며 그의 몸이 륀느의 지근거리까지 닿았고 륀느가 깜짝 놀라 라이트 세이버를 소환하려던 그 순간.
괴인의 손이 륀느의 몸을 후려쳐 날려버렸다.
투쾅!!!!
좀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압도적인 하드웨어 스펙에 륀느가 무표정한 얼굴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으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정말 엄청나구나! 이것이 하나! 이것이 통합! 이것이 순수!!!!!”
격하게 외치며 그가 광기 서린 눈으로 륀느에게서 관심을 끊었다.
그리고는 나, 그리고 나와 함께 있는 페르세르크를 향해 섬뜩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거라, 오거라!! 너희들의 육신과 영혼 또한 나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 죽음의 신! 데스로드님의 아티펙트만 있다면 모두가 하나가!!!
격하게 외치며 나머지 아티펙트를 발현하려던 그의 움직임이 멈춘다.
“볼일 다 봤으면 이제 팔다리는 필요 없지? 그리고 아티펙트 두 개정도는 멀쩡하게 흡수해야 하거든, 함부로 쓰지 말고.”
그렇게 말한 내가 천천히 일어난다.
“무슨……”
이후 흑발의 괴인이 당황한 듯 몸을 버둥거리자 그의 팔과 다리에서 시뻘건 혈선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걱정 마. 안 죽여! 이 개, 개 x놈들아.”
너희들은 머리카락 하나까지 아티펙트가 될 때까지 내가 살려둘 거다.
그것을 잊지 마라.
나는 언제 날아왔는지 모를 홍단이를 가볍게 털어내며 무너지기 시작하는 그에게 다가갔다.
“무, 무슨……”
데스로드의 권능을 사용하기 위해 그가 급히 나머지 두 개의 아티펙트를 꺼내 들지만 힘은 발현되지 않았다.
“초월마법이 그렇게 막 사용이 되는 줄 알았나 보네.”
“……”
내 말에 그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상위 초월마법말고 공략이 가능한 하위초월마법도 있거든.”
담담하게 말하며 그에게서 아티펙트를 빼앗아 든 내가 륀느에게 그것을 던져주었다.
그리고는 그의 거대한 육신을 가볍게 짓밟으며 빙그레 웃어 보였다.
“한번 발현된 마법을 디스펠 할 수는 없다만.”
발현되기 전에는 데스로드의 힘이 아니라 단순히 데스로드의 힘에 심취한 이 싸이코놈들의 힘일 뿐이니까.
그걸 막으면 그만인 문제다.
내 미소에 신관장이라 소리치던 그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그, 그게 무슨…… 남의 마나 움직임을 원거리에서 그렇게 빠르게 제어할 수는!!”
“그러니까 니들이 아직 부족한 흑마법사라는 거다.”
빠악!!
그대로 놈의 머리통을 걷어차 기절시켜버린 뒤 나는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삐이이이익!!!
동시에 하늘에서 거대한 검은 흑룡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에 오기 전 혼자 멍때리고 있던 그랜드마스터급 환수, 메가로드리아였다.
[계약자.]
“이 괴물놈 가지고 하인스 영지로 돌아가자.”
[난 운반책이 아니다!!]
“거참, 부탁 좀 하자!”
능청스레 말하는 내 모습에 메가로드리아의 입에서 쓴 한숨이 쏟아져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