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47화
오지에 숨어든 놈들은 언제고 습격에 대비한 매트릭스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지잉…….
초고압 수류칼날처럼 결계와 빙산을 절단해버린 메가로드리아의 공세는 일대를 전소시켜버렸다.
사시사철 얼음으로 뒤덮인 극지방은 최저기온 영하 40도에 육박하는 추위를 지니고 있다.
똑같은 위도인 중부대륙의 북부지방인 판도라 영역은 영하 40도는커녕 도저히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온도지만 지금 내가 있는 이곳 극지방의 경우엔 그래도 누군가가 살 수는 있는 위치이기도 했다.
선 채로 소변을 봐도 그 자리에서 얼어붙는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큼 추운 이 극지방이라 그 빙산의 견고함도 보통 수준 이상이지만 메가로드리아에겐 그딴 건 상관없는 문제였다.
거대한 냉기 구름이 일어나며 난장판이 된 빙산의 내부는 육안으론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다수의 고열에너지원이 느껴지는 건 나만 느낀 게 아닌 모양이었다.
“데이비 님 고열 에너지원을 감지!”
찌잉!!
동시에 거대한 주홍빛의 고열마나 광선이 습격자들을 향해 반격을 개시해왔다.
물론, 내가 나서기도 전에 페르세르크가 손을 휘저어 그대로 막아냈지만, 메가로드리아는 마치 이때만을 기다려왔다는 듯 무식하게 그 광선들을 맨몸으로 받아낸다.
[오너라! 미천한 놈들!]
필사적인 저항을 개무시하듯 맨몸으로 받아내며 메가로드리아는 천천히 거대한 육신을 날려 올렸다.
그리고, 그의 육신이 태양을 가릴 것처럼 떠올랐을 때.
그의 날개가 펄럭이며 6장의 날개 끝끝마다 검은 구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검은 힘이 섞인 폭풍의 눈.
구체 하나하나가 도시를 전파시킬 폭풍을 압축시키듯 담아내자 싸늘하고 섬뜩한 예기가 쏟아져나오기 시작한다.
동시에 파괴된 빙산의 아래에서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숫자의 고열 에너지원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공격이 들어오기 전에 막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메가로드리아는 그딴 저항 따윈 관심 없다는 듯 등 뒤의 날개를 뒤쪽으로 펄럭였다.
그리고.
찌잉!!
이번에야말로 메가로드리아를 지워버리겠다는 듯 날아드는 수백 갈래의 고열광선을 향해 검은 구체들을 집어던지듯 날개를 앞으로 펄럭였다.
퉁!!
거대한 공명음과 함께 마치 독립공간이 생겨난 것처럼 고열광선들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고열광선들이 한 줌에 모였을 때 검은 폭풍의 구체는 지금까지 쌓인 원한을 풀 듯 회오리처럼 터져나갔다.
“으악!”
어마어마한 칼바람에 놀란 페르세르크가 데굴데굴 굴러 내 어깨에서 떨어지려 하자 반사적으로 그녀를 손으로 받아낸 나는 한 손을 휘저으며 소리쳤다.
“적당히 해라!”
[흥! 힘 조절은 하고 있다.]
반경 수 킬로미터를 아예 초토화 시켜놓고도 적당히 하고 있다는 뻔뻔한 말이 거슬리지만,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게 참 당혹스러울 따름이다.
도저히 살아있는 사람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파괴 공작이었지만 메가로드리아의 전의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아직 멀었다!!]
그렇게 소리 지른 그가 천천히 몸을 띄워 올렸다가 그대로 낙하한다.
쩌어어엉!!
놈이 거대한 빙산 속으로 사라짐과 동시에 거대한 폭음이 수차례 울려 퍼진다.
그리고, 잠시 침묵이 지난 후 거대하고 검은 무언가가 휙 하고 빙산 안에서 튀어나오며 내게 다가왔다.
쿵!! 쿵!!
거대한 발소리를 내며 다가온 거대한 흑색의 용왕, 메가로드리아는 손에 쥔 거대한 고깃덩어리를 내게 내밀었다.
[계약자.]
“음?”
[아래의 풍경이 제법 가관이다. 내려가 봐라.]
살짝 가라앉은 말투로 제안하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녀석이 던진 거대한 고깃덩어리를 확인했다.
크기는 대략 10여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체격.
오우거와 비슷한데 색은 트롤의 피부였다.
무엇보다 기괴한 것은.
“세상에, 대체 머리가 몇 개야.”
이 괴물의 머리로 추정되는 부위가 무려 7개라는 점이었다.
트윈헤드 오우거나 트윈헤드 트롤, 혹은 사이클롭스는 희귀하게 보이는 상위 돌연변이형 몬스터로 보인다.
하지만 이토록 많은 머리를 달고 있는 건 단 하나밖에 생각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인공적인 생명체.
메가로드리아에게 제법 저항한 듯 싶지만 그래 봐야 만들어진 생명체.
문자 그대로 그랜드마스터 급 강자와 싸워도 밀리지 않는 환수왕의 상대로는 그 능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데이비.”
그때였다.
괴물을 이리저리 바라보던 페르세르크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내게 알려왔다.
“예전에 오르뎀 영지의 일, 기억해?”
오르뎀 영지.
다름 아닌 바리스와 윈리가 있던 영지로 융해가속바이러스로 인해 한때 난리가 났었던 영지이기도 했다.
현재엔 하인스 아카데미의 의료학 교수를 맡고 있는 고르네오 남작과 그때 당시 내 손에 죽었던 링튼 백작.
그리고, 제국에서 빠져나와 수작을 도모하던 소드마스터와 엮였던 영지이기도 했다.
“오르뎀 영지라.”
“그때, 링튼 백작이 했던 인체실험. 그곳에서 본 키메라와 흡사해.”
키메라 제작방식은 비슷한 면은 존재해도 완전히 같을 순 없다.
그 과정이 개개인의 비전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중앙질병관리단의 의회원이자 그 일의 원흉이었던 링튼 백작의 키메라 제조방식과 지금의 제조방식은 단 하나를 제외하고 모조리 달랐다.
“메가로드리아. 이놈의 전력은?”
[미완성품 같았다만, 완성되었다면 계약자 네 녀석의 기준으로 마스터에 준하는 수준이었겠지.]
“그 하나의 차이로 인해 키메라가 그만큼 강해진다라.”
마스터 급은 엄연히 초인의 반열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 마스터 하나가 생긴다고 문제가 되는 건 아니라지만.
만약에, 만에 하나라도 링튼 백작이 했던 것처럼 이놈들이 양산이 가능하다면?
밸런스는 한순간에 붕괴된다.
“메가로드리아. 방해꾼은 마음대로 치워, 제법 팔팔한 놈들이니 어디에 맘대로 날뛰어봐.”
그 말에 메가로드리아의 안광이 번뜩인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사방에서 다수의 괴생물체들이 몰려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한 시간을 벌려는 수작이지만 상관없었다.
곧바로 홍단이를 꺼내 든 나는 메가로드리아가 이미 한차례 박살 내버린 빙하의 아래. 거대한 시설을 향해 검 끝을 겨누었다.
“뭐가 됐건 잘 찾아온 듯 싶네.”
늦기 전에 잘 찾아왔다.
메가로드리아가 완전히 우그려 뜨려 버린 거대한 금속 문 안쪽으로 떨어지듯 낙하하자 몇 겹의 방어 체계가 더 보였다.
시간을 끌려는 수작이 보였다.
이곳의 연구가 세상에 알려지면 많이 곤란하다는 뜻이리라.
“저항력이 강한 금속이로고. 쉽게 베이진 않겠어.”
“비켜.”
바닥의 단단한 금속을 노려보며 내가 홍단이를 진동시킨다.
동시에 눈동자에 결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장장이 기술로써 금속을 다룰 때 나는 오로지 나만이 가진 방법을 통해 금속의 결을 다룬다.
그런 점에서 쇠로 만들어진 이런 방벽의 결정도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마당에 홍단이의 권능이 점차 강해지고 있는 상황이니.
[초 중검]
[초신속 발검]
[적월광검]
붉은 궤적이 한 차례 번뜩이며 두께 수 미터에 달하는 엄청난 두께를 지닌 철벽이 그대로 잘려나가기 시작했고 나는 그대로 시설 안으로 다시금 뛰어들었다.
“겨…… 격벽이?!”
“막아라!”
내 존재를 눈치챈 놈들은 그제야 적이 메가로드리아뿐만이 아니라는 걸 제대로 인지한 듯 보였다.
“륀느.”
“명령 대기 중.”
“잡혀 온 놈들 빼고 전부 죽여.”
필요한 놈은 내가 챙길 테니.
내 말에 페르세르크가 빠르게 날아 륀느의 머리 위에 올라앉았다.
“본녀는 륀느를 돕겠어. 그대도 몸조심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그래.”
스르릉…….
홍단이를 쥔 채 나머지 한 손으로 청단이를 뽑아 든 내가 눈을 천천히 감았다.
동시에 마나가 마치 감각의 파장이 된 것처럼 퍼져나가며 이 지하 시설의 형태를 하나하나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크기. 연식도 상당해 보이는데 언제부터 이딴 준비를 해온 건지 놀라울 정도였다.
“대어 중에서도 특급 대어였나 보네.”
통로를 틀어막고 돌진해오는 키메라들을 거침없이 베어낸다.
단 하나의 자비도 없이 거침없이 베어버린 나는 지하의 가장 최하층에서 도달하고 나서야 볼 수 있었다.
10여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체격에 육중한 무기를 지닌 괴물 열댓 마리가 나를 포위하고 있는 것을 말이다.
-그르르르…….
하나하나가 완성품이라도 되는지 마스터 급의 기세가 느껴질 지경이었다.
링튼 백작의 수작은 귀여워 보일 정도로 거대한 키메라들을 보며 나는 홍단이를 가볍게 튕겼다.
“뭘 숨기고 있는지 한번 보자.”
* * *
“크…… 큰일 났습니다! 스트롬 신관장!”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이들이 일제히 들이닥쳤다.
연구를 위해 시약을 제조하고 있던 노령의 사내는 갑작스레 들이닥친 부하들을 보며 짜증스레 바라보았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연구를 하는 동안 어떤 방해도 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나?”
“치…… 침입자입니다!”
“흥! 총수가 분명 이곳은 어떤 놈도 쳐들어올 수 없으며, 탐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했던 것 같은데.”
“그…… 그것이…….”
느긋한 얼굴로 그가 혀를 찼다.
“만들어놓은 실패작들을 내보내. 양산도 안 되는 쓰레기들이지만 꼴에 마스터 급 힘을 지니고 있으니 침입자들을 제압할 수 있을 거다.”
“그…… 그것이…….”
그 말에 로브를 입은 사내 하나가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방금 전 최하층 제조실을 지키던 소드마스터 급 키메라 15마리가 단 한 명에게 모조리…… 격살 당했습니다.”
챙그랑!!
그 말에 스트롬 신관장의 손에 쥐어진 시약이 바닥에 떨어져 깨졌다.
역한 냄새가 올라오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은 채 물었다.
“총수의 명령대로 데이터를 지우라 하였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데스 로드의 육신을…….”
“그래서, 연구를 멈추고 당장 이곳을 벗어나라?”
“적들이 하나같이 위험합니다! 바깥엔 정체불명의 용이! 안쪽엔 괴물처럼 날뛰는 남녀가 시설을 완전히 붕괴시키고 있습니다!”
그 말에 스트롬 신관장은 귀찮다는 듯 혀를 찬 뒤 손에 쥔 마석 지팡이를 들었다.
우웅…… 터엉!!!
동시에 로브를 입은 사내 하나의 머리통이 터져나갔다.
“쓸모없는 놈들. 마나 게이트를 준비해라.”
그렇게 말한 스트롬 신관장은 근처에 있는 거대한 시험관을 노려보았다.
그 안에는 회색 밝은 자작나무 색을 띠는 머리카락의 여성이 잠들어있었다.
“이년을 깨워라.”
“하…… 하지만.”
“그 잘난 데스 로드라고 했나? 그 괴물 같은 존재의 힘으로 만든 이년이라면 충분할 테지.”
역대급 완성품.
마스터 급 키메라조차 실패작으로 보일 만큼 시험관에 든 여성은 그야말로 최고의 걸작이었다.
그렇게 말한 그가 고개를 까딱이자 사내가 급히 시험관의 물을 빼내기 시작했다.
“자. 내가 만든 최고의 완성품이 얼마나 잘 선방해줄지는 나중에 확인해보자고.”
그렇게 말하며 돌아서려던 그 순간이었다.
쩌억!
무언가가 갈라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일대가 고요하게 변했다.
“음?”
의아한 표정으로 사내들을 바라본 스트롬 신관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어서 저년을 깨우고 마나 게이트를 가동하라 하지 않았나. 나는 바쁘고 귀한 몸이다. 어서 다음 은신처로…….”
“갈 필요 없어.”
담담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커헉?!”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기 위해 고개를 돌린 스트롬 신관장은 곧이어 허물어지는 로브의 사내들 사이에서 걸어오는 흑발의 남성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전신에 소름이 쫙 돋으며 그대로 굳어버렸다.
지금까지 그 어떤 존재에게서도 느껴 본 적 없는 끔찍한 살기였다.
“넌 그냥 여기서 죽어야겠다.”
싸늘한 목소리와 함께 핏발이 선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청년이었다.
도망쳐야 한다.
무조건 도망쳐야 한다!
본능적인 위기감을 눈치챈 스트롬 신관장이 한발 두발 물러나려다 그대로 몸을 돌렸다.
콱!!!
하지만 몸을 돌린 그의 목을 낚아챈 것은 좀 전까지 그가 바라보며 뒷걸음질 치게 만들었던 사내였다.
언제 뒤로 온 것인가.
이해할 수 없는 움직임에 신관장의 눈에 공포가 어리기 시작했다.
총수와 처음 만나 일루미나티에 가입했을 땐 단순히 법에 구애받지 않고 도덕에 구애받지 않는 연구를 하게 해준다는 조건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완벽하다던 이 실험실에 대체 누가 찾아온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커헉…… 컥…….”
한 손으로 그의 목을 틀어잡아 올린 청년은 무서우리만치 싸늘한 무표정이었다.
말없이 그를 낚아채고 있던 소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