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48화
162. 반신의 육신
상당히 고급스러운 건물 내에 귀족의 옷을 입고 있는 청년이 고개를 들었다.
“다시 말해보세요. 뭐라고요?”
“제1 실험실이 습격을 받았습니다.”
충격적인 소식에 놀란 듯 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1 실험실이라면…… 그곳이군요.”
“예. 데스 로드의 클론 실험과 더불어 강화 양산 키메라의 실험이 지속되던 곳입니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이미 자리를 옮겼지만 스트롬 신관장은 아직 연구가 남았다 하여…….”
그 말에 총수는 말없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짧게 고민하는 듯 하더니 고개를 들었다.
“습격자가 있었을 때 필요 기밀은 모두 소각했겠지요.”
“예. 절반 정도는 태웠습니다만…….”
“그러면 되었습니다. 스페어 플랜을 가동하지요.”
총수의 말에 부하가 눈을 부릅떴다.
“네? 그게 무슨 말씀…….”
“이미 연구 성과는 모두 옮겼습니다. 그곳에는 더 이상 볼일이 없어요.”
“하…… 하지만…….”
“시설이 아깝긴 하지요. 그동안 정말 오랫동안 저희들의 조직원을 숨겨준 비밀장소이니.”
짧게 숨을 들이켠 그가 조용히 물었다.
“습격자는?”
“예의 성자입니다.”
“운도 좋은 놈이군…….”
대체 무슨 수로 그곳을 찾아냈단 말인가. 그 어떤 정보도 새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조직원들 중에서도 극소수에게만 알려져 있는 시설이었다.
이렇게 들킬 요소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걱정해서는 곤란했다.
총수 정도의 위치에 있는 이상 그는 언제나 냉정할 필요가 있다.
“데이비 왕자의 힘은 규격 외입니다. 당장 그를 상대하긴 쉽지 않아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을 내리 당했으니. 이제는 무시하기도 쉽지 않았다.
“시설은 포기합니다. 흔적이 남으면 곤란해요. 그 어떤 것도 남기지 않게. 시설을 뭉개버리세요.
“하면, 그 안에 있던 클론은…….”
“클론? 아아. 그 실패작 말입니까. 걱정 마세요. 설마 깨어나기라도 할까요. 게다가 허가받은 자 이외의 존재가 그녀의 심장을 건드리면 일대 수 킬로미터 미터를 날려버리도록 설계되어있으니…….”
그는 몰랐다. 데이비가 나타남과 동시에 시험관 속에 있던 소녀의 손가락이 까딱 움직였다는 것을 말이다.
* * *
한 손에 목을 틀어 잡힌 채 허공으로 들어 올려진다는 건 굉장한 고통을 수반한다.
“커헉! 컥!”
목뼈가 부러질 것 같은 강인한 악력에 거품을 물고 있으면서도 신관장 스트롬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둥거렸다.
말없이 그를 잡아 들어 올리고 있던 나는 그대로 고개를 돌리듯 벽면에 그를 집어 던졌고 왼손의 검지와 중지를 몰아 펼쳤다.
그리고는, 가볍게 휘둘렀다.
스릉!
동시에 바닥에 쓰러져 있던 로브를 입은 시체들의 몸에서 단검이 뽑혀 나오며 그대로 그의 양팔과 다리를 관통해 벽면에 고정시켜버렸다.
“끄아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온다.
비릿한 혈형이 터져 나오며 그의 몸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주…… 죽을 수 없다! 이대로…… 이대로 죽을 수 없단 말이다!”
격분하며 그는 필사적으로 손을 움직였다.
단검에 찔려 피가 줄줄 흘러내림에도 불구하고 살갗이 찢어지는 고통을 감내한 채 그가 품 안에서 꺼낸 무언가를 작동시키려 했다.
서걱!!!
하지만 그의 행동은 무형의 검기에 손이 잘려나가면서 허무하게 끝맺음을 내려버렸다.
“무…… 무슨…….”
“심검.”
짧게 대답한 나는 그대로 그의 입을 손으로 봉쇄하듯 가린 채 틀어막아 벽면에 부딪혔다.
그리고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전의 다른 신관장처럼 쉽게 죽이지 않고 지독한 고통을 맛보게 해주려 했다.
하지만.
눈앞의 이 노인은.
선을 넘었다.
[변환]
마나가 넘실거리기 시작한다.
동시에 스트롬 신관장의 얼굴이 기괴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으읍…… 으읍!!!!”
내 손에서 붉은빛이 흘러나오기가 동시에 그의 양 귀와 눈, 코, 그리고 입에서 붉은빛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끄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
전신의 칠공에서 피가 흐르는 것도 아니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빛을 뿜기 시작한 그의 칠공은 곧 고열을 띠기 시작했고, 그 안에서 마그마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마그마와 비슷하게 그의 내부가 녹아내리며 생긴 노폐물이지만, 겉보기엔 마치 그의 눈과 코, 입, 귀에서 마그마가 흘러내리는 듯한 비주얼을 보여주었다.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는 그는 온몸에서 섬뜩한 마그마가 쏟아져 내리는데에도 살아있는 자신의 몸을 저주하기 시작했다.
“으으으으읍!! 으으으읍!”
“안 들려 개자식아.”
우득!
그렇게 말하며 다시 그의 입을 봉쇄하듯 낚아챈 나는 그대로 그의 턱뼈를 으깨 부숴버렸다.
쇼크로 당장 사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처사였지만 그는 아직도 죽지 않았다.
벽면에 꽂힌 채 시시각각 칠공에서 마그마 같은 온도를 지닌 붉은 액체가 쏟아져 나온다. 턱뼈는 박살 나 제대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지만, 그의 생존 여부는 간헐적으로 몸을 버둥거리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단번에 죽여준다곤 안 했다.”
섬뜩한 내 말에 그의 몸이 크게 움찔 떨렸다.
쿠웅!!! 쿵!!!
저 멀리서 륀느가 미쳐 날뛰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마 주특기인 빠루와 고열포를 구현해내 내 명령을 충실히 이루고 시선을 파괴하고 있으리라.
녀석 혼자라면 조금 불안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녀의 곁엔 페르세르크가 붙어있으니 큰 문제는 되지 않으리라.
“으으으으…… 으으으으!”
점차 스트롬 신관장의 저항이 서서히 약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그의 칠공에서 뽑아낸 마그마는 진짜 마그마가 아니었다.
그의 육신 내부를 서서히 녹여내 만든 마그마와 흡사한 용해물일 뿐이다.
그러니 내장과 뼈, 근육이 초고열에 녹아내리고 있는 그의 저항이 약해질 수밖에.
말없이 그를 노려보던 나는 이내 그의 목을 천천히 놓아주었다.
하지만 그는 마치 염동력이라도 생긴 것처럼 허공에 멋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드득…….
끔찍한 소리와 함께 한 놈의 몸이 기괴한 각도로 꺾이기 시작했고 이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앙!!!!
그리고, 그의 피부 아래에서 보이던 거대한 색채가 서서히 짙어지기 시작함과 동시에.
퍼엉!!!!
그의 육신이 산산조각이 나듯 박살 났다.
“죽음은 탈출구가 아니다.”
나는 말 없이 완전히 조각나버린 시체를 노려보며 사령마나를 끌어올렸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조각조각 난 영혼이 빠져나오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인상을 찌푸린 채 나를 노려보던 그의 영혼을 바라본 나는 천천히 사령마나를 끌어올렸다.
그가 믿고 있는 것으로 보이던 저 시험관 속의 데스 로드 클론은 다행이라면 다행인지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녀가 클론임을 알고 있지만, 혹여라도 깨어난다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나는 혼령이 되어 떠나려고 하는 놈의 영혼에게 다시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우악스럽게 그의 영혼을 잡아 사령마나를 쏟아붓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의 영혼이 지독한 고통에 몸부림치기 시작한다.
죽음은 탈출구라 할 수 있다.
모든 업을 계산한 뒤 윤회의 길에 들어설 테니까.
실상 윤회를 거쳐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면 같은 인간이라 부르는 것도 애매할 만큼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다.
그것이 윤회였다.
내가 하지 못한 심판을 윤회의 시스템 자체가 스스로 판단해 죄에 따른 판결을 하고, 벌을 준다.
그러니까.
집행은 지금뿐이라는 소리였다.
“누구 마음대로 판단하고, 벌을 주고 용서해.”
그에게 가장 화를 내야 하는 건 키메라 실험에 희생당한 인간이나 동물들, 그리고 데스 로드였던 로 아이아스 본인이다.
정작 죄를 용서할지 안 할지 정해야 할 이들은 이곳에 남아있지도 않은데.
그걸 내가 무슨 수로 판단하나.
나는 사라져가는 놈의 영혼을 붙잡은 채 으르렁거리며 그를 들어 벽면에 밀쳤다.
그리고는 음산하게 웃어 보였다.
“어디 판단을 맡겨보자고.”
나는 영체로 된 그의 육신을 벽면에 고정시킨 뒤 빠르고 간결하게 수인을 맺었다.
퉁!
동시에 내 몸에서 검은 안개가 회전하듯 쏟아져나오며 그 안에서 검고 희끄무리한 무언가가 튀어나와 그의 영혼을 물어뜯기 시작한다.
-끄아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 그 소리는 육성이 아닌 귀곡성으로 들려왔다.
이후, 나는 실험실 내부에서 유일하게 존재감을 차지하고 있는 시험관 속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눈도 뜨지 않고 그저 시험관의 용액에 갇혀있는 그 모습에 나는 씁쓸함이 감돌았다.
데스 로드. 로 아이아스와 완전히 똑같은 얼굴이다.
머리카락 색이 다르고 체격도 조금 다르다. 그녀의 몸에서 느껴지던 순수한 힘의 느낌도 전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들여다보는 그녀의 몸 안에는 엄연히 데스 로드 특유의 사령마나가 느껴졌다.
“데이비 님. 심장에서 다량의 동일 에너지가 검출된다고 보고.”
어느새 고개를 돌리자 피투성이가 된 채 한 손에는 시뻘건 빠루를 들고 있는 륀느가 보였다.
“클린.”
이에 가볍게 손을 튕기며 아공간에서 물병을 꺼내 허공에 던지자 물병의 물들이 퍼져나가며 륀느의 몸을 빠르게 씻겨냈다.
예상대로 그 피들은 륀느의 것이 아니었다.
“제법 흥미로웠다고 보고. 데이비 님이 명령하신 부분을 모두 소각처리 완료.”
“생존자는 없던?”
“제로.”
짧은 답변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비…… 잠깐만, 이 여자는…….”
내가 침묵하자 륀느의 머리 위에 앉아있던 그녀, 페르세르크가 심각한 얼굴로 내게 물어왔다.
“일루미나티는 설마 그녀를 부활시키려는 속셈인가?!”
“아니, 부활이 불가능하다는 건 가장 잘 알 거야. 이건 단순한 흉내야. 자기 욕심이라고.”
그렇게 말한 나는 홍단이를 꺼내 시험관을 사선으로 베어내려 했다.
“육신이 완성되기 전에 파괴하자.”
그렇게 말하며 나는 미련 없이 시험관 채로 그녀의 몸을 잘라버리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카앙!!!!!
하지만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하……. 실화냐.”
거대한 시험관 속에 잠들어있던 소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눈을 떴고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홍단이의 검면을 잡아 막아낸 것이다.
마법사 주제에 숙련된 검사도 어지간하면 불가능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낸다.
눈을 감은 채 홍단이의 검을 낚아채고도 아무 말 하지 않던 클론이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눈동자는 옅은 빛으로 감싸져 있었다.
그 눈에 서린 감정은 무표정에 무감각이지만 섬뜩한 기분이 든다.
말없이 눈을 뜬 채 나를 바라보던 그녀의 모습에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츠츳…… 츠츠츠츠츳!!!
동시에 그녀의 발밑을 기준으로 검은빛의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마법진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나, 둘. 마치 수십 개의 원이 연동된 것처럼 만들어진 마법진이 드러나자 그녀는 마치 자신의 것이라는 것마냥 에너지를 폭주시키며 일대를 진동하기 시작했다.
“으…… 으윽!”
비명을 지르듯 몸을 바들바들 떨던 페르세르크가 나를 바라본다.
이대로 저 클론을 그냥 둘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모를 리가 있나.
나는 홍단이를 곧바로 거둬들이고 청단이로 검을 좌우 교체했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그대로 데스 로드의 클론을 향해 청단이의 검날을 휘둘렀다.
그녀가 단순히 데스 로드의 흔적만 가지고 만들어진 클론이라면 아무 문제 없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저 클론이 보여준 힘치고는 너무 과했다.
그런 내 의문을 말없이 클론을 노려보던 페르세르크가 풀어주었다.
“데이비…….”
“아티펙트라도 봤나?”
“심장…….”
그 말에 나는 내면이 철렁하는 기분을 받았다.
내 스승의 심장이 여기 있다.
그건, 데스 로드의 심장, 그리고, 그녀가 존재를 지워가며 잊혀지게 만들고자 했던 것 중 하나다.
섭취하거나 그 힘을 빨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힘의 상을 불러올 수 있다.
물론 그게 가능한 건 세상에 단 한 사람뿐이지만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던 일반인조차 초인으로 만들어버리는 게 바로 이 구체라는 소리였다.
“그 심장 네 것 아니야.”
내 말에 클론의 손에 새까만 구체가 수십 개 어리기 시작했다.
데스 로드는 다른 이름으로 반신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런 그녀의 근원인 심장을 근원으로 사용한 클론은…….
제아무리 본인이 아니라도 위험천만할 수밖에.
말 없는 대치가 이어진다.
일단은 내 스승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그녀를 죽이는 게 마냥 내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존재가 문제가 된다면, 제자 된 도리로서 스승의 명성을 지켜주는 게 도리가 아니겠는가.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한 나는 그녀가 마법 공격을 퍼붓기도 전에 청단이를 당겨냈다.
그리고는 검 끝을 정확히 그녀의 심장에 거두었다.
[데이비. 위험한 육신이 남는다는 건 파멸의 상징을 뜻해요. 나는 강한 힘을 얻었지만 그렇기에 세상에 존재를 남겨선 안 되는 것과 같아요.]
그녀의 육신은 이미 하나로써 거대한 아티펙트나 다름없다. 그런데 이 겁 없는 놈들이 그걸 부활시켰다.
“데스 로드를 모신다는 놈들이라면 도저히 해선 안될 짓인데.”
그녀의 마지막 유지까지 개 무시한다는 걸 보면 이놈들은 단순히 데스 로드를 모시는 게 아니다.
단순히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였다.
클론 데스 로드의 발밑에 있던 마법진이 거대한 공명을 일으킨다.
쩌저저저적!!!!!
동시에 천장이 뒤틀리기 시작하더니 하늘로 끌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페르세르크 또한 하늘을 보고 경악했다.
“세상에…….”
하늘에 보인 것은, 하늘을 가득 메울 듯 거대해 보이는 검은 구체였다.
“세미 블랙홀이라…….”
진짜 블랙홀 현상은 아니지만 닥치는 대로 시공간 저편으로 내던져버리는 최소위 천체 마법이다.
단순한 클론이 그녀의 특기였던 그녀의 마법들을 사용할 수 있는가.
세미 블랙홀이라는 마법의 수준은 8서클 정도의 마법이지만 클론이 8서클 마법을 내는 건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아마 이 클론의 이상행동은 일루미나티도 예상 못 한 결과이리라.
말없이 거대한 마법을 만들어내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심드렁한 시선을 보냈다.
“데이비! 빨리 끝내버려! 시축이 뒤틀리기 시작했어!”
이래서 초 고중력 마법이 민폐라는 거다.
말없이 빛나는 안광으로 나를 노려보며 서서히 떠오르는 그녀를 보던 나는 문득 그 눈동자에 서린 무언가가 엿보였다.
하지만 침묵 끝에 나는 청단이와 홍단이를 융합시켜 초단이를 만들어냈다.
당장이라도 일대를 모조리 집어삼킬 듯 떠 있는 구체와 그 구체로 실시간 빨려 들어가는 돌조각들이 마치 거대한 궤도를 이루어낸다.
이윽고 초단이가 완전히 융합되고 흰 원피스를 입은 청적색 머리카락의 소녀가 반투명한 유령처럼 나타나 내 등 뒤에서 목을 감싸 끌어안았다.
[보고 싶었어요. 아버지.]
“저거 좀 베자.”
내 말에 초단이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거대한 블랙홀을 바라보았고, 이내 침묵했다.
하지만 곧 등 뒤로 순백의 거대한 날개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마치 날개가 자라나는 것처럼 뻗어 나가며 펼쳐지자 나는 짧게 숨을 골랐다.
그리고는 거대한 블랙홀과 그 블랙홀을 만들어낸 클론을 바라보며 검을 한 손으로 쥐고 사선으로 튕기듯 끌어내렸다.
그리고는 당시 당겨 올리듯 검 끝이 하늘로 향하게 만든 뒤 그대로 들어 올렸다.
스스스스스스…….
동시에 백색의 기류가 초단이의 검에 머금어지기 시작한다.
아직까진 이게 한계지만.
충분히 가능하리라 믿는다.
침묵 끝에 내가 눈을 번뜩였다.
클론의 안광에서 보인 감정은 언뜻 스쳐 지나갔지만, 확실히 느껴졌다.
살고 싶다는 단순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데스 로드의 육신은 절대 남겨놓아선 곤란했다.
살고 싶다고?
미안한데, 그건 안 되겠다. 원망하고 싶다면 마음껏 원망해라. 애초에 영혼 없는 클론이라지만, 내가 제례를 지내서라도 편히 보내주마.
[초 중검]
[종막]
[하늘 쪼개기]
상대가 생각 이상의 힘을 가지고 폭주한다면 이쪽도 힘을 폭주시키는 수밖에.
본래라면 이런 정면승부는 전혀 효율이 좋지 않지만.
내게는 그런 효율을 보조해주는 최고의 검이 있지 않던가.
맹자 가라사대.
템빨 앞에 장사 없다. 라고 하였다.
초단이의 검에서 서린 무형의 기류와 푸른 강기가 넘실거린다.
그리고,
아주 찰나의 순간 종베기를 하듯 들어 올린 검이 번쩍이며 그대로 내리그어졌고, 정신을 차렸을 땐 하늘을 가른 것 같은 거대한 섬광이 클론과 블랙홀을 넘어 하늘의 구름을 모조리 갈라버렸다.
이전 볼티즈 왕국에서 하늘의 일부에 흠집을 낸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곳에선 힘 조절을 해야 했지만.
이곳에선 전력을 내리그어야 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