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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549화 (548/1,559)

제 549화

구름의 높이는 인간이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높은 곳에 존재한다.

이전과는 다른.

또 강렬한 임팩트를 남기며 베어버린 거대한 하나의 검기가 마치 탑처럼 쏘아져 올라갔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페르세르크는 짧게 숨을 들이켰다.

하늘의 구름이 갈라졌다.

보통이들은 잘 모르지만 조금이라도 학문을 익힌 자라면 알 수 있다.

저 하늘에 뜬 구름이 얼마나 높은 곳에 있는 지를 말이다.

그런 구름이.

현재 데이비가 만들어낸 일검의 잔상에 완전히 어긋나 있었다.

거대한 힘의 폭풍은 구름의 움직임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계속해서 찢어발겼고 하늘에는 마치 거대한 흉터라도 생긴 것처럼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이게 지금 데이비에게 가능한 공격인가.

페르세르크는 냉정하게 아니다 라는 판단을 내렸다.

데이비는 분명 환골탈태를 통해 반절 이상의 힘을 회복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저만한 여파를 만들어내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초단이]

데이비의 손에 쥐어진 청적색의 빛이 섞인 장검이 바로 그 일등 공신이었다.

생자를 베는 홍단이와 사자를 베는 청단이가 융합되어 만들어진 완성체에 가까운 검.

데이비는 자신이 방금 전의 일검을 성공시킬지 못 시킬지에 대해 확신이 없었던 게 분명하다.

그렇기에 초단이의 힘을 극성으로 빌렸고.

그 결과.

확연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쿨럭! 망할, 죽겠네. 진짜.”

피를 한 움큼 토하며 인상을 찌푸린 데이비가 투덜거린다.

데이비가 그만한 공격을 퍼부어야 할 만큼 위험한 적이었던 것일까.

실제로 데스 로드의 클론이라 추정되는 생명체는 블랙홀과 함께 완전히 사라졌다.

“데이비. 왜 그렇게 무리한 게야.”

“한시라도 살려둘 수 없었어.”

그녀는 이해 못 할 변명을 들으며, 완전히 바스러지듯 사라져버린 클론의 흔적을 바라보았다.

“그 세미블랙홀이 그만큼 위험한 마법인가?”

그녀도 처음 보는 마법이었다.

“8서클 정도에 해당하는 초월마법.”

8서클? 그 정도라면 데이비도 어렵지 않게 처리가 가능할 텐데? 초월마법 중 다수가 디스펠이 불가능한 마법이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이렇게 무리할 이유는 없었다.

“그냥 놔뒀으면 이 일대가 사라졌을걸?”

“그건 본녀의 알 바가 아니야.”

그녀가 나긋나긋하게 웃으며 데이비의 뺨을 강하게 꼬집어 당겼다.

“그대는 말이야. 너무 후진이 없어. 오로지 전진이라고. 본녀가 거기에 짜증이 얼마나 나는지 모르지?”

“뭐…… 뭐?”

“다시 이런 짓 할 거야? 안 할 거야?”

“…….”

“할 거야? 안 할 거야?”

한마디씩 뚝뚝 끊어가며 화사하게 웃는 그 모습에 데이비는 알 수 없는 오한을 느꼈다.

이게 아닌데? 이런 성격이 아닌데?

그의 표정엔 그런 감정이 묻어나 있었다.

“이번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데스 로드의 육신이 너무 위험해서 그대가 절대 남겨놓으려 하지 않는 걸 본녀가 모를 것 같아? 본녀가 묻는 건 왜 그렇게 무리한 선택을 했냐는 거야.”

클론 정도일 뿐이다.

하지만 데이비의 손속은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였다.

“데스 로드의 육신은 절대 남겨놓으면 안 돼.”

데스 로드의 육신은 영혼이 없는 그 육신 자체만으로도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일으킨다.

그런 힘을 지닌 육신이 하필이면 미치광이 사이코패스의 손에 들어갔다는 건 두 가지를 의미했다.

“그 빌어 처먹을 놈들이 내 스승의 육신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다는 거고. 또 하나는 그거 잘못 손댔다가 만약에라도 환원이 시작되어버리면…….”

말끝을 흐린 데이비가 페르세르크를 올려다보았다.

장난기가 많은 그였지만 이번엔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생자와 망자의 경계가 뒤틀려버리는 수가 생긴다.”

그것이 불러올 참사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담담하게 말한 데이비는 아공간에서 치유 능력을 올려주는 비약을 꺼내 마신 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완전히 분해되듯 사라져버린 클론의 육신이 있는 곳에서 작은 구슬을 주워들었다.

“데이비.”

말없이 구슬을 바라보는 데이비를 향해 페르세르크가 조용히 물었다.

“그렇다면 륀느도 상황이 나쁜 거 아닌가?”

그녀의 질문에 맹한 얼굴로 두 사람을 보던 륀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륀느라고 해서 그 육신의 힘을 다룰 수 있을 거라곤 생각지 않는데.”

“그렇지.”

“만약에라도 잘못되면…… 륀느는…….”

뒷말을 내뱉진 않았지만 모두가 알 수 있었다.

그런 상황이 정말로 왔을 때.

힘을 소유한 륀느를 살려둘 순 없다는 것을.

륀느도 눈치가 없진 않았다.

“데이비 님. 륀느가 제어할 수 없을 경우. 륀느의 파괴를 요청.”

“조용히 해. 애꿎은 녀석 죽으라고 시킨 일이 아니니까. 그리고 만약에라도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지면…….”

데이비가 한숨을 내쉬며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내가 알아서 해.”

“그대는 끝까지 본녀에게 기대지 않는구나.”

조금이라도 의지해주면 좋을 텐데…….

페르세르크는 씁쓸한 마음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아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페르, 사랑은 하는 쪽이 지는 거다. 그러니까 넌 남자 만나지 말고 이 아버지랑 같이 살자꾸나.]

너무도 오래된 장난스러운 말투.

귀찮아하는 성격임에도 그는 그녀에 관한 일은 절대 미루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소중한 사람의 흔적이다.

데이비의 기억에서 그에 대한 흔적을 봤을 때 느꼈던 것은.

안도감.

그리고, 고마움이었다.

“혼자서 버티다간 언젠가 골병들게야.”

“버팀목이 어딘가에 기대는 순간 집은 무너지는 거야.”

* * *

륀느의 탐지는 범위가 존재한다.

일차적인 탐지에서 깨달은 건 두 곳이 전부였다.

일루미나티가 독하게 기록을 말소한 탓에 사실상 빙산 아래의 연구실에서 얻은 건 많지 않았다.

세미 블랙홀 마법이 발현될 때만 해도 살아남은 놈들이 있었는지 연구소 전체가 폭삭 주저앉아버렸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무너지는 것이라면 대지의 정령이나 백호 흰둥이를 이용해볼 수 있겠지만 마법적인 폭발을 준비해두었는지 아주 깔끔하게 날아가 버렸다.

“상관없어. 어차피 그놈들 연구 성과야 안 봐도 훤하다.”

영지로 돌아온 나는 페르세르크의 걱정을 일축시키며 말했다.

“볼티즈 왕국의 문제는 해결됐나?”

“왕성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당분간은 라운 왕국에서 물자를 지원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린 모양이더군요.”

라운 왕국은 볼티즈 왕국을 부숴 버릴 생각이 없다.

나의 경우 왕가를 완전히 재기불능으로 만들어버릴 생각이었지만 이번 일의 사후처리는 어디까지나 바리스에게 양보한 후였다.

바리스는 가장 먼저 흉흉하고 흔들리는 볼티즈 왕국의 민심을 잡기 위해 대량의 식량과 물자를 하인스 영지에서 대출받아 볼티즈 왕국에 투자했다.

국가를 집어삼키든 뭘 하든 손에 넣고 굴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심이다.

전생의 삶인 지구에서 한국과 일본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지 않던가.

탄압만 있는 곳에 남는 것은 오로지 파국이 전부였다.

바리스가 택한 것은 유화정책.

나름 흥미롭다.

“그러고 보니, 이 대륙에는 신혼여행 개념이 없던가?”

내 중얼거림에 페르세르크가 화들짝 놀라더니 한발 물러났다.

반대로 베르닐 시종장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신혼여행이라면…… 준비하라 명하신다면 어디든 할 수 있사옵니다만. 굳이 그러는 이들은 잘 없는 편입니다.”

“그렇겠지.”

비슷해도 결국은 다른 세상이니까.

보통 이 대륙에서 귀족이나 왕족, 평민 할 것 없이 결혼과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프리아 교단의 신전에 방문하여 신의 석상 앞에서 맹세를 한다.

수많은 하객들이 보는 앞에서 주례의 말에 따라 맹세를 읊고 기도를 올린 뒤, 반지를 교환하고 입을 맞추는 것으로 식은 끝이 난다.

그 후의 일?

당연히 저녁까지 이어지는 연회, 그리고.

첫날밤.

결혼이라는 건 애당초 그런 의미였다.

서로를 구속하고 서로를 소유하며,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를 아끼는 두 사람이 만나, 2세를 낳고 서로를 지키겠다는 맹세의 각인.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신혼여행이든 결혼에 필요한 자금 같은 건 사실상 사치, 그리고 허영에 가까운 문화일 뿐이었다.

‘내가 아는 한에서 그게 제일 심했던 게 중국이었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든 나는 하인스 영지로 데려왔던 두 명의 이방인 남매를 떠올렸다.

“볼티즈 왕국은 당분간 바리스에게 넘겨두고. 첫 번째 동굴에서 구출해왔던 녀석은 지금 어디 있지?”

“객실에서 식사를 하고 계실 겁니다.”

“가보자.”

담담하게 말한 나는 손장난을 치는 청단이와 홍단이를 륀느의 품에 안겨주었다.

익숙하게 두 아이를 받아든 륀느가 알게 모르게 한숨을 내쉰다.

육아 스트레스. 보통 아니라던데.

“나중에 콘타스 제국명물인 그레이트 스콜피온 꼬치를 구해다주마.”

“데이비 님, 륀느가 미각 데이터 제공을 매우 높게 평가!”

눈을 반짝이며 잽싸게 두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륀느였다.

페르세르크는 익숙하게 몸을 줄여 내 어깨에 올라앉았다.

“그 귀걸이는 언제 받은 거야.”

“어머나, 알고 있었던 게야?”

“그걸 내가 왜 몰라.”

낡았지만 영롱한 빛을 간직하고 있는 귀걸이는 다름 아닌 내 어머니께서 쓰시던 물건이니 말이다.

어디 갔나 했더니…….

“폐하께서 주셨나?”

“아바마마라고 해보는 건 어떠한가.”

“웃기는 소리.”

지금이야 상황이 정리되었다지만 크리아네스 국왕과 나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어려운 사이일 뿐이다.

뚜벅…… 뚜벅…… 철컹!!

굳게 닫힌 고풍스러운 목재문이 열린다.

그 안에선 붕대로 몸을 감은 소년이 미친 듯이 음식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처…… 천천히 드세요…….”

그리고 그의 곁에는 당황한 듯 쟁반을 들고 어색하게 웃고 있는 토인족 소녀가 보였다.

노예 경매장에서 구해왔다가 이곳에 취직하게 된 귀여운 소녀였다.

“아…… 오셨나요. 저하?”

나를 발견하고 환한 미소를 지어주는 앙증맞은 토인족 소녀의 모습에 나는 말 없이 다가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말없이 손을 뻗어 토인족 소녀의 귀를 주물럭거렸다.

“꺄악?!”

“뭐 하는 게야!”

철썩!!

동시에 내 어깨에 있던 페르세르크가 벌떡 일어나더니 그대로 작은 발을 이용해 내 뺨을 걷어차 버렸다.

“아, 미안. 수인족을 볼 때마다 욕망이 차올라서.”

희한하게 괴롭히고 싶은 종족이란 말이지.

내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식사에만 온 신경을 쏟아붓고 있는 남자는 척 봐도 아직 젊어 보였다.

나이는 나보다 더 들어 보이지만, 미성년의 성장 속도가 지구보다 빠른 이 대륙의 기준으로 치면 사실상 바리스나 윈리와 비슷한 나잇대로 봐도 무방한 모습이었다.

“으적…… 으적…… 쩝쩝…….”

말없이 식사만 계속하는 모습에 토인족 소녀가 당황한 듯 소년을 부르려 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고생했어. 그러니까 식사할 때만큼은 내버려 둬.”

내 말에 토인족 소녀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네…… 네에 저하.”

소년의 식사는 그로부터 한 20분 정도가 흘러서야 끝이 났다.

마치 걸신들린 것처럼 먹어치우던 소년은 빵을 입에 문 채 울고 있었다.

“이제 이야기할 상황이 되나?”

내 물음에 소년은 눈물 어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데이비 올 라운. 너희들도 알다시피 이 땅의 성자라 불리는 인간이다.”

내 말에 소년의 얼굴에 경계심이 어렸다.

이 소년의 내면을 한차례 들여다본 페르세르크는 기겁했었다.

이토록 생명체의 정신 방어가 약해져 있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작은 개미 하나의 정신방어도 이보다는 단단하리라.

그 덕분에 소년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대략적인 이야기는 이미 시녀를 통해서 들었지?”

“당신은…… 사람인가요?”

그 질문의 의도를 모르진 않았다.

“글쎄, 네가 보기엔 어떻게 보이나?”

내 물음에 소년은 침묵했다.

“이곳은 제가 있던 곳과 달라요. 그곳의 인간들은 단편적인 말만 했었죠. 당신처럼 이렇게 생각하고 말을 바꾸지 않았어.”

“바로 봤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집어치우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담담하게 말한 내가 소년을 직시하며 말했다.

“넌 돌아갈 수 없다.”

“…….”

“이해가 안 되지? 미안한데 자리 좀 비켜주겠어?”

내 말에 토인족 소녀와 나를 따라왔던 베르닐 시종장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조용히 물러났다.

방안에 남은 것은 나와 페르세르크, 그리고 소년이 전부였다.

“누나는…….”

“네 누나?”

“누나의 시신은 어떻게 되었나요.”

소년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애 죽었어?”

“나름대로 고심해서 살려놨었는데?”

“안 죽었어.”

담담한 페르세르크의 답변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죽지도 않았으니 시신은 아니지.”

내 말에 소년이 눈을 부릅떴다.

“그…… 그럼!”

“하지만 지금 볼 수는 없을 게야.”

나를 대신해 페르세르크가 천천히 일어나며 말했다.

“혼수상태에 빠져서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니.”

내가 그녀를 치료한 직후와 별반 차이가 없는 모양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살렸던 소년의 누나는 거의 죽었다고 보는 게 좋을 정도의 상태였다.

억지로라도 목숨줄을 붙여놓았지만, 인간이 아닌 이방인.

즉, 신 넬타리드가 만든 인공육신을 덮어쓰고 있는 게임 캐릭터라는 점에서 보통 인간과는 달랐다.

아주 좋은 예로 그들은 숨을 쉬지만 산소가 없어도 살 수 있는 육신을 가지고 있다.

사기적인 육체 같으니라고.

“돌아갈 수 없다는 건…….”

“정확히 말하자면 넌 예외야. 네 누나가 자발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거지.”

내 말에 소년이 침묵했다.

“이름은?”

“수소감귤맛스타요…….”

“그딴 거 말고, 본명.”

“…….”

내 말에 소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금제인가?”

넬타리드가 아무런 제제 없이 인간들을 이대륙에 불렀을 리는 없으니 이건 물어봐도 의미가 없다.

“이름이 뭐 이따구야.”

“제…… 제 이름이 뭐가 어때서요!”

“그래, 수소라고 불러 줄까. 수감이라고 불러 줄까. 수감맛이라고 불러 줄까.”

“그냥……수소라고 불러주세요. 그리고…….”

잠시 침묵한 소년이 울먹거렸다.

“흐흑…… 고마워요……고마워요…….”

그제야 소년은 내 품에 안겨 와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사람 목숨 파리 목숨인 이 세상에서 치안율 세계 최정상급의 국가인 한국출신의 이방인이 끔찍한 일을 겪으면 그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압도적일 수밖에 없다.

나는 굳이 이방인들의 출신인 지구를 언급하지 않았다.

이미 이 대륙에는 여러 차원이 뒤섞이며 넘어온 존재들로 가득하다.

페스리사 대륙의 일루미나티.

그리고 심연의 베르단데나 다른 심연의 공주들.

그리고 지구 출신의 넬타리드.

주신 프리아 여신의 힘이 약해지고 차원간의 균열이 벌어지면서 이런 경우는 이제 허다할 정도이다.

“상황을 설명해주마. 넌 돌아갈 수 있어. 다만 네 누나는 아직 의식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 나갈 수 없다.”

내 말에 소년이 침묵했다.

“강제로 꺼낸다는 생각은 하지도 마라.”

내 말에 수소의 눈이 부릅뜨여졌다.

“그…… 그걸 어떻게.”

“거기서도 들었겠지만, 여기는 너희가 생각하는 게임이 아니거든.”

이미 들은 사실이지만 새삼 충격인지 소년이 손을 덜덜 떨었다.

몬스터를 죽이고 적대 인간을 죽여 왔을 이들이다.

자신들이 한 것이 살생이고, 살인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그 혼란은 더 클 수밖에.

“그…… 그렇다면 이곳의 있는 이들도 전부 사람이라는 소리인가요?!”

“그래.”

“그럼 당장 이 사실을…….”

“안 될걸?”

지구에서 쓰던 이름을 언급할 수도 없는 금제까지 걸린 놈들인데. 이곳에 대한 사실을 지구에 퍼뜨리는 걸 넬타리드가 두고 볼 리가 있나.

속을 알 수 없는 신이지만 심연과 싸우기 위해선 넬타리드 신의 도움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주신 프리아 여신이 완전히 파업 모드이니까.

“넌 그 사실을 아마 네 고향에서도 언급할 수 없을 거야.”

“당신…… 당신은 어떻게 그것들을 아는 거죠? 마치 당신도…….”

게임 캐릭터였던 것처럼.

그 실없는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녀석의 이마에 가벼운 딱밤을 넣었다.

“끄아아아아악!!!”

“지금 이 대륙에 와서 사고치는 타차원인간이 어디 한둘인 줄 아나.”

불법 체류자 입장까지 내가 고려해 줘야하나?

“끄윽…….”

“쓸데없이 긴 이야기는 집어치우자고. 거래를 하자.”

내 말에 소년이 눈을 부릅떴다.

이 소년의 내면은 순수하다. 제 누나를 사랑하는 게 훤히 보일 정도로.

[누나야. 가져오지 말라고 했잖아.]

[아, 미안해 현수야. 그래도 우리 동생 여기 있으면 심심할 텐데, 누나가 이런 거라도 가져오면 덜 심심하지 않을까?]

그저 웃는 얼굴. 피곤함에 찌들어있으면서도 나에겐 항상 웃어주던…….

그러나 제 삶도 제대로 살지 못하던 누나.

나와 아웅다웅하던 동생과 다르게 누나의 존재는 너무도 아픈 손가락이다.

‘돈 좀 깨지면 가족끼리도 외면하던 세상에서 정말 보기 힘든 케이스이긴 하지…….’

씁쓸함을 지운 나는 조용히 손뼉을 쳤다.

짜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주변의 분위기가 일변한다.

금기의 업.

신의 힘을 걷어내는 유일한 힘이다.

눈앞의 소년, 수소를 포함한 모든 이방인들은 많은 제약을 가지고 있다.

문명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어떤 발언도 이 대륙의 사람에게 할 수 없다.

고향에 대한 어떤 언급도 할 수 없으며, 이곳이 현실이라는 것을 확신 받을 수도 없다.

종류는 다양하지만, 넬타리드의 목적은 단순했다.

신의 힘을 빌린 게임 캐릭터를 뒤집어 쓴 타차원의 이방인들을.

심연과의 싸움에서 화살받이로 이용하라는 것이다.

어차피 그들이야 어지간해선 죽지도 않을 테니 넬타리드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그 무력의 수준은 별 볼 일 없지만 말이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 잘 들어. 네 누나를 살릴 수 있는 건 이 대륙에서 오로지 나뿐이다.”

거짓말이다.

“네 누나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아는 것도 나뿐이다.”

이 또한 거짓말이다.

“넌 돌아갈 수 있지? 애석하게도 너희는 그곳에서 이곳으로 넘어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만…… 두 가지만 조사해줘.”

내 말에 울먹거리던 소년이 놀란 듯 나를 쳐다본다.

하지만 곧이어 굳은 결심이 선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뭘 찾아주면 되죠?”

“내가 네 고향에서 알고 싶은 정보는 딱 두 가지야.”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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