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51화
티오니스 대륙에는 여러 악기가 존재한다.
하지만 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악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리라.
부드러운 선율 소리가 아름다운 악기로 내가 제법 애용하던 악기 중 하나이기도 했다.
굳이 시간을 들여가면서 이것을 만드는 이유는 간단했다.
가장 범위가 넓으니까.
“정말, 그걸로 막 쥐어패려고 그러는 거 아니지?”
일리나의 질문에 나는 짧게 혀를 찼다.
“쥐어팰 거면 십자가가 더 낫다고 했잖아.”
신의 이름 앞에 너도 나도 한방.
공평한 죽창도 좋지만, 묵직한 한 방의 손맛도 제법 괜찮다.
십자가라는 게 생각보다 둔기로서의 효능이 뛰어나니 말이다.
신께서 십자가에 묻은 피를 용서하시리라.
리라의 품질 자체는 사실상 흔하디흔한 양산품보다 조금 좋은 정도였다.
좋은 품질을 만들기엔 시간도 예산도 너무 부족했으니 말이다.
악기 제작이라는 건 본래 시간을 상당히 잡아먹는 짓이다.
그렇기에 나는 가장 심플하면서도 효과가 발군인 악기를 이용해야했다.
순식간에 나무를 깎아 U자 형태로 모양을 잡았다.
나무를 이렇게 깎아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오러 블레이드를 조각칼에 정밀하게 덧씌운 덕에 살짝살짝 가져다 대는 것만으로도 서걱서걱 잘려나가는 나무였다.
그리고 작업을 시작한 지 약 3시간 정도가 흘렀을 때.
디리링…….
나는 그럭저럭 쓸 만한 리라를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나름대로 예쁜 형태의 리라였지만 애석하게도 두 번은 없다.
“한번 쓰면 망가지겠네.”
냉정하게 판단하며 나는 가볍게 현을 튕겼다.
그러자 일리나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감탄했다.
“소리가 참…… 예쁘다…….”
약간 홀린 듯한 그 표정에 나는 악기를 이리저리 들어 흔들어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다 재워보자.”
* * *
이번 임무는 닥치는 대로 부딪쳐서 다 죽이면 곤란했다.
정확히는 이들을 말살하지 않고, 경계를 풀고 있는 틈에 몰래 잠입해 정보를 빼내서 탈출하는 것이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자, 이제 어떻게 할 건데?”
기척을 죽이고 있던 일리나가 조심스레 물어오자, 나는 망설임 없이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마나를 살짝 가공해 리라에 덧씌웠다.
소리가 퍼져나가야 효과가 커지니 그 증폭률을 상승시킨 것이다.
그리고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리라의 현을 튕기기 시작했다.
음악은, 그래. [섬그늘 아기] 정도로 가자.
단조롭고 아름다운 음악이지만 그 실체는 닥치는 대로 재워버리는 무자비한 수면의 마수였다.
디리링…….
단조롭지만 아름답고 중독성이 강한 음색이 그들이 있는 시설 전체에 퍼져나가기 시작하자, 몇몇은 소리에 관심을 가지며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또 다른 이들은 반사적으로 기세를 끌어올려 적습에 대비하려는 행동을 보였다.
하지만 그들에게 들려오는 건 그저 단조롭고 아름다운 음악이 전부였다.
그리고 음악에 노출된 이들은 서서히 그 효과에 잠식되듯 넘어가기 시작했다.
모두 잠들어버린 것이었다.
저들이 기억하는 건 갑자기 들려온 음악 소리와 함께 잠들어버린 것이 전부일 것이다.
“자. 움직이자.”
음악이 끝나기가 무섭게 팽팽한 긴장의 끈이 풀린 것처럼 줄이 끊어져 버리는 리라였다.
단 한 번이지만 대량의 마나를 담아 파장을 만들어냈다.
대충 만든 악기로 버틴 것만으로도 용하다는 게 내 판단이었다.
이후 은신처의 일루미나티 조직원들이 완전히 잠든 것을 확인한 나는 바닥에 쓰러져 코까지 골고 있는 조직원 하나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망설임 없이 놈의 뺨을 강하게 꼬집어 당겼다.
“뭐…… 뭐 하는 거야?!”
기겁한 일리나가 놀라 나를 불렀지만 나는 놈의 뺨을 완전히 찢어버릴 각오로 흔들어댔다.
하지만 정작 그런 나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그는 깨어나지 않았다.
“음, 효과 자체는 나쁘지 않네.”
“세상에…… 안 깨어나는 거야?”
“깊게 자면 아픈 줄도 모르지.”
뇌 자체가 잠에 빠져들어 버리면 뻔한 일이다.
이후 행동에 제약이 사라진 나는 과감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흐음…… 그럼 괜찮은 거겠지?”
불안한 듯 중얼거리던 일리나는 바닥에 쓰러진 사내의 로브를 휙 벗겨 얼굴을 확인한 뒤 이리저리 건드려보고는 피식 웃어 보였다.
“웃기네…… 이렇게 잠들어버리다니.”
새삼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는 그녀였다.
“역시 네가 있으면 뭐가 돼도 되는 모양이야.”
환한 미소에 나는 괜히 머쓱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였다.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느낀 나는 고개를 돌려 은신처의 안쪽을 바라보았다.
나뿐만 아니라 같은 것을 느낀 듯 페르세르크도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보았다.
“왜…… 왜 그래?”
“넌 여기서 정보를 찾아. 잠시 내려 갔다 올테니.”
“뭐…… 뭐 잠깐!”
내 말에 일리나가 당황하며 따라오려 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무시한 채 순식간에 그 자리를 떴다.
* * *
무슨 정보가 되었건 일리나는 적당히 쓸모 있는 정보를 잘 찾아내 줄 것이다.
그것이 라스트위스프 기사단 내의 배신자 명단이든 아니면 일루미나티에 대한 지식이든.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었다.
이딴 정보는 단순 구실일 뿐이니 말이다.
“가까워.”
“알고 있어.”
그보다 지금 내 관심을 끌고 있는 건 오히려 이쪽이었다.
동굴 은신처의 아래쪽으로 비밀통로가 있었다.
본래라면 이중 삼중으로 쳐진 두꺼운 잠금 시설로 숨겨져 있었지만, 홍단이를 이용해 그 문 자체를 베어버리니 잠금 자체가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욱…… 역한 냄새.”
거대한 바위 문을 부수고 들어서자마자 확 밀려오는 악취에 인상을 찌푸린 페르세르크가 반사적으로 손을 휘저어 장막을 만들어낸다.
그러자 코를 찌르던 악취가 일순간에 차단이라도 된 것처럼 사라졌다.
“데이비, 가자.”
“그래.”
내 어깨에서 내려와 몸을 키운 그녀가 천천히 나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횃불을 비추지 않으면 어두워서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빛 하나 없는 캄캄한 지하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나는 전혀 움직임에 제약을 받지 않았다.
애초에 사령술사가 어두운 것에 익숙하지 않으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때때로 너무 좋은 시력이 원망스러울 때도 존재한다.
“맙소사…….”
“이 새끼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네.”
내 눈에 보인 것은 끔찍한 참상이었다.
하나하나 제정신이 아닌 짓을 저지르는 놈들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건 정말 미친놈들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지경이었다.
지하 창고에서 본 것은 겨우 만 한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기들의 유해였다.
그것도.
“대체 이게 몇 명이야.”
“족히 수백…….”
수백 명이나 되는 아기들의 시신이다.
게다가 곱게 죽은 형상도 아니었다.
어떤 아이의 모습은 금속 집게발 같은 것에 집힌 채 마치 해부라도 했는지 복부가 갈라져 있고 피부가 벗겨져 있었다.
어떤 아이의 육신은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피부가 괴사해 있었고, 일부는 독에 중독된 건지 피부가 보랏빛으로 변해 있었다.
“왜 아이들만…….”
이 상황이 기가 막힌 지 페르세르크가 중얼거렸다.
반대로 나는 복잡한 심정이 들었다. 대체 무엇을 위해 이런 것을 하고 있었는가.
나는 문득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이 새끼들 설마…….”
그쯤 생각이 미친 내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콰아아아앙!!!!!
동시에 내 불길한 상상이 현실을 보듯 일리나가 있던 위층 쪽에서 거대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 * *
“아…… 윽…….”
일리나는 아주 잠시 의식이 날아갔었다는 사실에 경악하며 천천히 눈을 떴다.
서류를 확인하던 그녀는 우연찮게 라스트위스프 관련 서류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서류 안에서 일루미나티에 가담한 배신자들의 명단을 발견했고, 쾌재를 부르며 데이비를 찾으려 했다.
그런데.
환한 얼굴을 하며 돌아선 그녀의 앞에.
거대한 아기 얼굴을 지닌 뱀이 기다리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칼디라스를 뽑아든 그녀였지만 아기 얼굴의 뱀은 그녀를 거대한 육신으로 후려치듯 벽면에 처박아버렸고, 그녀가 반항하기도 전에 파고들어 그녀의 허리를 물어 뜯어버렸다.
지독한 고통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그녀는 그대로 힘없이 아기 머리의 뱀에게 물린 채 이리저리 흔들렸고, 이내 거대한 폭음과 함께 내던져지며 벽면에 처박히듯 그대로 꽂혀버렸다.
처참했다.
그녀의 애병인 칼디라스는 그녀의 손을 떠나 먼 곳에 떨어져 있었고, 데이비는 이곳에 없었다.
그런 마당에 자신은 괴물뱀에게 한 대를 맞고 의식이 잠시간 날아갔으니, 상황이 좋으려야 좋을 수가 없다.
“대체…… 저게 뭐야?”
그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래도 나름 기척 감지가 뛰어난 편이었다.
하지만 저 아기 머리를 지닌 뱀이 접근하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다.
바닥에 주저앉아 피를 울컥 토한 그녀는 마치 독이라도 퍼진 듯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피부가 보랏빛으로 죽어가는 걸 보며 허탈하게 웃어 보였다.
좀 전 아기 머리를 한 뱀에게 물렸을 때 독이 스며든 모양이었다.
게다가 일격에 내장과 뼈가 상해 제대로 된 싸움을 하는 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
너무 안일하고 멍청했다.
언제든 기습공격에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놨어야 했는데.
스르륵…… 스르륵…….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 때문에 시야가 붉게 보인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린 일리나는 아주 부드럽게 흐느적거리며 다가오는 아기 머리 뱀을 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재수가 없는 것도 유분수지.”
저항할 수단이 사라져버렸다.
처음 기습공격의 허용이 너무 컸던 탓에 그녀는 그저 아기 머리를 가진 뱀이 하는 바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아기 머리의 뱀이 멈춰 선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벌리자, 그 안에선 상상도 못 할 크기와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났다.
그뿐만 아니었다.
놈의 이빨 사이로 튀어나온 갈라진 혓바닥.
그 혓바닥의 중앙에는 섬뜩한 눈동자가 자리잡은 채 이리저리 눈을 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동자는 곧 바닥에 쓰러져 있던 일루미나티 조직원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이내 일리나에게서 관심을 끊은 듯 조직원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스르륵…… 스르륵…… 쩌억!!! 콰득…… 콰드득…….
일리나 앞에서 끔찍한 꼴을 드러내며 조직원을 씹어 삼키기 시작했다.
피가 터져 나오고 육신의 파편이 튄다.
육신에 힘이 빠져버린 일리나는 그 끔찍한 육식 장면을 계속해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응애애!
그리고, 식사를 모조리 삼킨 아기 머리의 뱀이 마치 아기가 우는 듯한 소리를 내며 몸을 부르르 떨더니 이내 고개를 돌렸다.
이번 타깃은 정확히 일리나인 듯 보였다.
공포심이 극대화된다.
이대로 가다간 저 끔찍한 입에 들어갈 다음 차례는 그녀가 되리라.
일리나는 급히 데이비를 부르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좀 전부터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순히 목을 다쳤다고 하기엔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이윽고, 그녀에게 다가온 거대한 뱀은 그녀를 한 번 내려다보았고, 순진무구한 아이의 눈망울에 그녀를 담았다.
그리고.
콰작!!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