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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552화 (551/1,559)

제 552화

164. 아기 머리 뱀 요르간

“망할! 데스 로드의 육신이 나왔을 때 그것도 생각을 해놨어야 했는데!

안일했다.

너무 안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스 로드는 자신의 영혼이 사라지고 남을 육신 자체가 엄청난 여파를 불러올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의 존재를 지우는 것으로 육신을 완전히 봉했다.

여기까지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더.

실제로 데스 로드로 아이아스가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린 것엔 몇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분명히 보았다.

수백에 달하는 아이의 유해 사이에 있던 깨어진 알을 말이다.

마치 그 안에서 무언가가 스스로 깨고 나온 듯한 모습이었다.

콰아앙!!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위로 올라온 나는 내 예상이 들어맞았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생후 1년도 채 되지 않은 아이를 갖은 잔혹한 방법으로 죽여서 얻어낸 원념 서린 피를 먹고 사는 알.

데스 로드가 모종의 이유로 인해 지우지 않고 봉인시켜둔 알의 본체.

아기 머리 뱀, 요르간.

그것이 바로 저놈이다.

“응애애!!”

나를 발견하기가 무섭게 입에 물고 있던 소녀를 놓을 생각도 하지 않고, 순진무구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본다.

이에 나는 망설임 없이 손을 휘저었다.

[마왕 유르그 식(式) 군중제어기]

[식단 검사]

투쾅!!!!!!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놈의 머리 아랫부분을 후려치자, 녀석이 크게 휘청거렸다.

방어력이 압도적인지 큰 상처는 없어 보였지만, 입에 물고 있던 금발의 소녀, 일리나를 구해내는 데엔 성공했다.

“응애애애!! 응애애애애!!”

순식간에 일리나를 받아 안고 거리를 벌린 나는 고통스러운 듯 자지러지며 울어대는 아기 머리 뱀 요르간의 모습에 혀를 찼다.

그래, 이놈은 그런 놈이다.

자신이 무언가를 파괴하고 괴롭힌다는 자각조차 없다.

녀석의 크기는 내 예상보다 한참 컸다.

“성장 속도가 너무 빠른데.”

분명 내가 처음 기척을 느꼈던 건 이놈이 맞았을 것이다.

하지만 알의 크기는 끽해야 사람의 손바닥만 한 정도.

그러니까 그 짧은 시간에 이 순수한 미치광이 뱀은 사람의 서너 배가 되는 사이즈로 자라버렸다는 소리다.

아마 내 연주에 의해 잠들어버린 일루미나티의 조직원들을 집어삼킨 모양이리라.

일루미나티에선 이놈을 어떻게 부화시켜 길들여 보려 한 모양이지만, 애초에 요르간은 길들일 수 있는 괴물이 아니었다.

문제는 요르간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올라오기도 전에 기습이라도 당한 듯 큰 부상을 입은 일리나의 상태도 심각했다.

칼디라스의 힘이 그녀를 보호했는지 요르간의 날카로운 이빨이 당장 그녀의 몸을 뚫지는 않았지만, 내장이고 뼈고 하나같이 엉망이었다.

“데이비. 치료해. 본녀가 저놈을 죽일 테니.”

페르세르크가 내게서 받은 초월의 종언을 꺼내 들며 말하자, 나는 미련 없이 일리나를 그 자리에 누였다.

“30초만 버텨.”

“……노력해봄세.”

데스 로드가 죽이지 못해 봉인한 괴물이다.

지금 보면 요르간은 사실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크기도 끽해야 사람의 두세 배 정도이고, 기괴하긴 해도 위협적인 생김새는 아니다.

하지만 요르간의 진짜 골 때리는 점은 바로 압도적인 성장이었다.

실시간으로 거대해진다.

조금의 영양을 섭취하는 것으로도 어마어마하게 거대해진다.

데스 로드가 저 괴물을 봉인할 당시 요르간의 크기는 길이만 수 킬로미터에 달하던 절망의 뱀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크기가 커질수록, 놈은 더 많은 원념을 먹어 삼키며 계속해서 강해진다.

생명체가 존재하고 그 생명체간에 질투나 원념 같은 것이 존재할 시 이놈은 불사에 가까운 재생능력과 포식능력을 지닌다.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뱀.

요르간의 위험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용을 물어 죽인 독.

그 또한 문제였다.

“망할, 벌써 물렸구나…….”

나는 일리나의 팔이 보랏빛으로 변색되어 괴사되고 있는 것을 보고 급히 그녀의 옷을 찢어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그녀의 갑옷 이외에 복장 여기저기가 찢겨져 푸른빛의 속옷이 그대로 드러났지만, 다른 생각을 할 단계가 아니었다.

나는 그녀의 양팔을 묶어 피가 통하지 않게 만든 뒤 그녀의 복부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평소라면 얼굴을 붉히며 기겁할 일리나였지만, 그녀의 표정은 이미 반쯤 넋이 나간 듯 멍한 얼굴이었다.

“죽지 말고 버텨. 내가 살려줄 테니까.

[5급 성마법]

[정화]

우우우웅!!!

정화마법이 그녀의 몸에 스며든다.

하지만 효과는 없었다.

그래. 애초에 당연한 일이다.

이에 나는 좀 더 신성력을 끌어냈다.

게으름을 잔뜩 부리는 신성력을 호되게 재촉해 마법을 급히 발현시킨다.

[8위계 성마법]

[대 정화(grand purification)]

화아아아아악!!!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대한 빛이 터져 나오며 은은하게 퍼져 나가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X병!”

대뜸 인상이 찌푸려지는 나였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요르간에게 물린 게 이곳이 아니라 차라리 하인스 영지였다면 어떻게 해볼 수단이라도 있었을 진데.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일리나의 육신을 장악하는 독으로 인해 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한 번 물리면 반드시 죽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독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데…… 이비…….”

그때였다.

멍한 얼굴로 천장을 올려다보던 그녀가 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초점을 잃어 나를 제대로 보지 못하면서도 계속해서 내 이름을 부르는 그녀였다.

이쯤 되자 나는 천천히 눈을 감고 생각했다.

콰앙!!! 쾅!!!

거대한 아기 머리를 가진 뱀 요르간이 페르세르크를 노리고 쉴 새 없이 파고들지만, 페르세르크는 눈을 감은 채 초월의 종언을 가볍게 튕기듯 휘두르는 것으로 놈의 움직임을 원천 차단하고 있었다.

“응애애애애애!!”

처절한 울음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데…… 이…… 비.”

남은 시간은 약 1분 30초 정도.

독이 심장까지 퍼지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이 독이 심장까지 흘러 스며드는 그 순간.

그녀는 반드시 죽게 된다.

해독 마법도, 내가 가진 의료 지식도 쓸모가 없다는 것에 절망해야할까.

아무리 알고 있어도 안 되는 일은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은 잘 알고 있다.

“안…… 돼…….”

나를 향해 무언가 계속해서 말하려는 듯 뻐끔뻐끔거리는 일리나였다.

“안 되긴 뭐가 안 돼. 넌 내가 사망 선고해줄 일 없으니까 닥치고 있어.”

데스 로드의 기억에서 나는 이 뱀과 싸워본 바 있다.

그때 당시엔 중독을 막는 방법을 이용했기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이제는 현실이다.

나는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신성 회복 마법도 먹히지 않고, 의술도 방법이 없다.

신의 히포크리아 누님이었다면 침착하게 독을 적출하는 방법을 찾았을 것이고, 성녀 다프네였다면 무식한 신성력으로 이 독을 짜부러뜨렸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나는 내 스승만큼의 실력이 없다.

속으로 몇 차례고 되뇌던 도중이었다.

‘독은 혈류를 타고 흐른다. 혈류…… 혈류…….’

내 눈이 부릅뜨여졌다.

스승의 기술을 따라갈 수 없다하여 내가 손도 못 대는 건 없다.

스승들이 자신들의 분야에 한해 절대적인 경지를 이뤘다면.

나는 그 스승들의 경지를 엿보고 베껴 수많은 능력을 조합하는 것으로 내 능력을 증명한다.

나는 곧바로 일리나의 속옷을 제외하고, 옷을 모조리 찢어버렸다.

“미안한데 조금만 참아라. 해독이 끝나면 걸칠 거라도 줄 테니.”

그렇게 말한 나는 푸른빛의 속옷만 남은 일리나의 육신을 가지런히 눕힌 뒤 허겁지겁 그녀의 배 위로 올라타듯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양 옆구리 옆에 무릎을 대고 허벅지를 세워 내려다보듯 일리나를 바라본 나는 그녀의 전신에 퍼지기 시작한 보랏빛 흔적들을 보며 양손을 가볍게 부딪쳤다.

스승들이 무식한 재능으로 극한의 경지를 보았다면, 나는 여러 가지를 익힌 존재로서 부족한 것을 다른 곳에서 채운다.

그것이 내 비전이고, 내 재능이니까.

우선은…….

[베르샤의 저주.]

[혈류둔화.]

피의 흐름을 극도로 느리게 만드는 혈류 둔화의 저주.

본래 같으면 몇십 초 이상 지속되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위험한 저주이지만 상관없다.

수술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을 테니까.

혈류 둔화가 터지자마자 그녀의 육신이 변색되는 게 눈에 띄게 느려지기 시작했다.

나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당장 일어나라 굼벵이들아.

[5서클 마법]

[트랜스포지션]

원소마나가 움직이며 일리나의 등을 중심으로 작은 마법진을 만들어낸다.

이후 나는 신성력과 사령 마나를 대량으로 쏟아붓기 시작했다.

정화와 사령 마나 특유의 인체 간섭력을 통해 독을 천천히 유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나는 직접 검지와 중지를 모아 그녀의 가슴 바로 아래 부분의 복부에 손을 올렸다.

그녀의 몸에 퍼진 독을 혈도에 끌어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중요한 혈도에 이처럼 독한 독을 이동시키는 건 자칫 그녀를 죽일 수 있기에 막대한 집중력을 요구하고 있었다.

나는 중요 혈도로 모여드는 독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마공]

[섬뢰지]

본래는 공격용 무공이지만, 애초에 사용할 수 있다면 응용하는 것이 기술인 것이다.

콰앙!! 쾅!!

멀지 않은 곳에서 페르세르크와 요르간의 싸움이 치열했지만, 나는 시선을 일리나에게서 떼지 않았다.

“일리나. 조금만 참아. 반드시 구해줄 테니까.”

굳은 얼굴로 내가 중얼거렸다.

잃는 건 한번이면 족하다.

멍청해서 놓친 것도 한 번이면 족하다.

지구에서의 일과 내 어릴 적의 일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으리라.

동시에 아주 천천히 유도하던 내 손동작도 서서히 빨라졌고, 독이 마치 뱀이라도 된 것처럼 혈도를 따라 내 손에 이끌리기 시작했다.

보랏빛으로 변색되었던 피부의 죽은 피는 마치 한 줄로 된 뱀처럼 변했다.

이후 나는 그녀의 다리를 살짝 넓게 벌려 그 사이에 앉은 뒤 땀을 거칠게 닦아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손에 내공을 끌어모았고, 당장이라도 퍼질 것처럼 모여 있는 독을 두 갈래로 당기기 시작했다.

기운은 사타구니 아래쪽의 회음혈로.

실질적인 독은 위쪽으로.

마치 빙의라도 한 것처럼 몸이 붕 뜬 기분이 든다.

본능적으로 양손을 움직여 미친 작업을 한다.

하나라도 집중이 흩어지면 끝장나는 마당에 두 개를 동시에 굴리는 게 쉬운 줄 아는가.

[데이비. 영웅이 말처럼 쉽게 되는 게 아니야.]

[알겠냐? 넌 죽었다 깨어나도 여기 못 올 거다.]

그래, 영웅 되기 참 어렵네요들.

신들린 듯 손을 움직인 나는 곧 회음혈을 통해 그대로 독한 기운을 끌어 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머지 힘을 위쪽으로 하여 그녀가 독을 토해내도록 유도했다.

쿨럭!!! 쿨럭쿨럭!!!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새까만 피를 내뿜으며 일리나가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데…… 이비…….”

그리고 아주 잠시 후 자신의 몰골을 떠올린 그녀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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