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57화
원로들은 모두 저항 없이 총 본산의 감옥에 투옥되었다.
반대로 감옥에 투옥되어있던 이들 중 일부가 역으로 석방되는 웃긴 현실이 벌어졌다.
감옥에 투옥된 원로들은 다른 생각이 있기에 얌전히 잡힌 것일 테지만 나는 그런 그들의 선택에 크게 간섭하지 않았다.
“샤르스 원로님을 포함한 슬림 원로님, 그리고 패트 원로님일세.”
수염이 지긋한 노인 한 명과 체격이 극과 극인 마른 노인 한 명, 뚱뚱한 노인 한 명이다.
그 수는 총 세 명으로 이들이 내 앞에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보고서에도 올렸습니다만. 기사단은 두 가지 방향으로 활동을 해주셔야 합니다.”
“오는 길에 클로멘에게 정황을 들었네. 무슨 문제가 발생했건, 지금은 바깥의 일부터 처리해야겠지. 말해보게.”
자신의 권위를 놓지 않으려 아득바득하던 다른 원로와 다르게 이들은 지금의 원로들이 아닌 감옥에 갇혀있었던 이들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현실에 안주한 채 변화를 거부한 원로들과 충돌하다 함정에 빠져 투옥된 인물들이라는 말이었다.
“샤르스 원로님은 예전에 자네에게 도움을 주신 바 있네.”
“이전에요?”
“뱀파이어와의 전쟁. 그때 당시. 리인포스 알파 기사단이 독자적으로 게릴라 전을 펼칠 수 있게 도움을 주신 분이지.”
그의 말에 나는 샤르스라는 수염 지긋한 노인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도움 감사합니다.”
“아닐세. 헌데…… 자네가 신궁 브류나크를 가지고 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그의 질문에 나는 아공간에서 다시 한번 신궁 브류나크를 꺼내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호오…… 이것이…….”
“이게 신궁이 사용했다던 무기이자 기사단의 상징인 브류나크입니까?”
“나도 실물을 본 건 처음일세. 하지만 심판의 창에서 나온 선조들의 의지가 인정했다면 맞는 것이겠지.”
“오래된 이야기지만 전통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한 그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본래대로라면 각 기사단에서 보낸 정보를 종합하고 회의하여 결단을 내리겠지만 지금 상황이 그리 여유롭지 않다고 들었네.”
“네. 기사단은 현재 두 가지를 해주셔야 합니다. 일부 주병력을 빼내 용병으로 위장시켜주십시오. 그리고 저와 함께 콘타스 제국의 수도로 가셔야 합니다.”
기사단의 전력은 상당하다. 콘타스 제국도 많은 강자들이 있지만, 그것만 가지곤 턱없이 부족했다.
무엇보다 은밀성에서 타 제국의 강자들과는 급이 다른 편이다.
“일루미나티는 타 차원에서 온 세력입니다. 만약 그놈들이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난동을 부리기 시작하면 그때 나서서 제압해주십시오.”
“하면 나머지는?”
“궤멸한 기사단 지부가 있는 곳을 아십니까.”
내 질문에 샤르스 원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패트와 슬림 원로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감옥에 있었다곤 하나 클로멘을 통해 소식은 들었네…….”
“그놈들이 그곳을 날려버린 이유는 레드드래곤 아이라는 귀물을 찾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실상 그곳에 숨겨야 할 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인즉슨…….”
“남은 기사단 중 베테랑만 모아 그곳으로 파견해 주세요. 그리고…….”
나는 종이를 펼친 뒤 무언가를 그려냈다.
아무리 데스 로드의 힘이라도 차원 이동이라는 게 쉽게 가능할 리 없다.
그렇다면, 생각해볼 수 있는 의식은 단 하나
레드드래곤 아이를 원했던 시점에서 대충 감을 잡았다.
“이건…… 마법진인가?”
“네. 그곳에 제 조력자가 있습니다. 이오라는 이름의 조금 괴짜 기질이 다분한 놈입니다만, 그곳의 지리에 대해선 아주 잘 알고 있어요. 그의 도움을 받아 찾아낸 뒤 파괴해주세요.”
“알겠네.”
“신중하게 움직이셔야 합니다. 타르타로스 지하산맥엔 아직 위험한 마물이 가득하니까요.”
내 당부에 샤르스 원로가 눈을 찌푸렸다.
“이것이면 되겠는가?”
“네. 대륙 내의 제국과 왕국 쪽에서도 움직입니다. 비록 그들은 여러분들의 존재를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목적이 다른 건 아니니까요.”
숨통을 조일 땐 확실하게.
원로들의 목숨을 다 끊어버리면 단번에 혼란이 찾아온다.
“이곳의 사후문제는 이일의 처리 후 정리하도록 하지요.”
“원로가 다수 투옥되었네. 혼란이 찾아오겠지. 또한, 원로의 존재는…….”
“원로는 사실 필요 없습니다. 실제로 현장을 뛰는 기사단분들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통솔은 필요하지요. 그러니…… 기왕이면 투표라도 할까요?”
내 장난스런 말에 샤르스 원로가 복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일단 그 일은 나중에 생각하도록 하지. 다만 하나 묻도록 하지.”
“뭡니까?”
“기사단 창립자의 후계로써 원로들을 징벌할 권한을 받았다 들었네.”
“뭐 일단은 그런 약속이니까요. 사실 이제 와서 이러는 것도 웃기긴 하지만.”
“하면, 수호자들도 모두 처단할 생각인가?”
그의 물음에 나는 일곱 명의 남녀를 떠올렸다.
하나같이 마스터 급 이상의 존재들로 이 총 본산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 중 하나이며 최고의 전력 중 하나다.
하나하나 다 기억하진 못하지만 실제로 마지막에 내가 베어버린 차가운 인상의 사내가 가진 실력은 제법 놀라운 수준이었다.
“두고두고 후환이 되겠죠. 그래서 살려놨습니다.”
원로들 또한 마찬가지.
“자네…… 설마 다시 한번 내분이 일어나길 바라는 건가?”
“제가 본 투옥된 원로들은 수호자를 이용해 또다시 문제를 일으킬 겁니다. 그때 가면 이젠 저들을 날려버릴 명분이 생겨요.”
그때 다 죽이는 게 가장 깔끔합니다.
“자네는 10대라고 들었는데. 답지 않게 잔혹하군.”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거부하셔도 좋습니다. 그땐 기사단을 전부 독립시킬 생각이니까요.”
필요 없는 원로회가 없어도 기사단은 각자 방식으로 유지될 수 있다.
“아니, 두고두고 후환이 될 테지. 애석하지만 나 또한 자네와 같은 생각이네. 총 본산은 너무 고였어. 한 번쯤은 환기의 필요성이 있겠지. 하지만 수호자들은 조금 선처해줄 수 없겠는가.”
“수호자라…….”
“그들은 충성심이 강할 뿐이야. 비록 성격이 모나긴 했지만, 성정은 모두 선한 이들일세.”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제일 높은 게 그들인데요.”
“그들에게 일의 옳고 그름은 상관이 없어. 그저 명령이 떨어지면 충직하게 수행할 뿐. 그러니 내가 나서서 그들을 회유할 수 있네.”
샤르스 원로의 말에 슬림과 패트 원로도 고개를 끄덕였다.
“샤르스 원로께선 이 일의 총괄 책임으로 바쁠 테니 그들을 만나보는 건 우리가 하겠소.”
“기사단의 인원을 대부분 뺄 순 없네. 그러니 용병으로 위장하는 것은 수호자들에게 맡기는 게 어떠한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게 확실히 일러두겠네.”
“뭐, 좋습니다.”
용병으로 위장한 기사단은 적을수록 좋으니까.
이제 남은 것은.
끝장을 보는 것이다.
나는 수호자들이 깨어나고 그들과 슬림원로가 대화할 수 있도록 잠시 기다렸다.
그리고.
오래 걸리지 않아 그들이 나왔을 때.
망설임 없이 준비해둔 전이 마법진을 발현했다.
“…….”
침묵한 채 나를 바라보는 이들에게서 등을 돌린 채 내가 물었다.
“불만이 있으면 여기서 빠져도 좋습니다.”
표정이 좋진 않았지만 일곱 수호자 모두 내 말을 듣고 물러나는 이는 없었다.
“우리가 모시는 건 기사단이다. 기사단이 명령을 바꿨다면 거기에 따를 뿐.”
체격이 큰 사내가 조용히 말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그들의 모습은 전투를 한다는 생각은 있는지 준비를 상당히 거친 모습이었다.
하지만.
너무 눈에 띈다.
“숨어다녀야 하는 그림자 기사단이 꼴이 이게 뭡니까.”
“윽……. 무…… 뭐 하는 짓이냐!”
껄렁껄렁한 인상의 사내가 당황하여 내게 소리치지만 나는 그의 몸을 장식하던 장식품들을 거침없이 빼버렸다.
“아주 나를 기억해주세요 하고 작정했습니까? 어디 소풍이라도 갑니까?!”
“이…… 이건 내 아이덴티티…….”
“그 빌어먹을 아이덴티티를 당신이 왜 찾는데.”
애초에 남들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임무를 처리해야 한다.
너무 오랜 시간 총본산에만 묶여있으니 현장 감각이 많이 떨어진 느낌이다.
“다른 이들도, 거기 아가씨. 얼굴 감싼 붕대 풀어.”
내 말에 사슬을 들고 나를 쏘아보던 흑발의 여성이 입가를 가리던 복면과 붕대를 풀었다.
그러자 드러나는 아름다운 외모가 보인다.
“…… 복면은 그냥 쓰세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를 넘긴다.
우락부락한 근육에 문신을 자랑하는 적발의 청년에겐 커다란 로브를 덮어씌워 문신을 가려버렸다.
“윽?! 이…… 이 문신은 중요한…….”
“아니 됐고. 가려요.”
세 살배기 애들도 아니게 이게 뭐 하는 짓인지.
6명의 상태를 다 한번 체크한 나는 마지막으로 침묵한 채 눈을 감고 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싸늘한 인상의 사내는 내가 가까이 가자 조용히 눈을 떴다.
“하나 묻고 싶다.”
“뭡니까.”
“네 녀석은 우리 모두를 죽일 수 있었다.”
그의 말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각기 실력에 맞춰 그보다 조금 더 강한 수준으로 짓눌러왔지. 이유가 무엇이냐.”
그의 질문에 나는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답했다.
“오만한 것들은 한 번 크게 데어봐야 좀 더 발전하더라고.”
담담한 말에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할 말은 그게 전붑니까?”
“명령에 이 이상의 사담은 의미 없다.”
놀라울 정도로 쿨하게 받아들이는 바사라의 모습에 나는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동시에 바닥에 깔린 마법진이 발현된다.
스팡!!!
그 말과 함께 나와 7명의 수호자. 그리고 륀느와 일리나의 육신이 빛에 휩싸이듯 사라졌다.
* * *
거대한 숲으로 전이한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수호자들을 바라보았다.
젊은 인상들이지만 이들은 하나하나가 전략 병기 급의 강자들이다.
“전이 마법을 이렇게 간단하게 사용하다니…….”
수호자중 마법사 출신의 여성이 기가 막히는지 중얼거렸지만 그 누구도 그녀의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여긴…… 숲?”
“이봐. 여기서 뭘 하라는 거야.”
“좀 기다려봐요.”
그렇게 말하며 나는 검지와 엄지를 동그랗게 말아 휘파람을 강하게 불었다.
삐이이익!!!
수차례 삑삑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런 내 행동에 의아한 듯한 시선을 보내는 몇몇이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가만히 눈을 감고 있던 바사라의 눈이 부릅 뜨여졌다.
“크흡!”
동시에 무언가를 느꼈는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들 전투준비!! 적이다!”
그의 외침에 서로 잡담을 하던 수호자들이 움직인다.
좀전의 가벼운 모습과는 별개로 놀라울 정도로 효율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검은빛을 띠는 거대한 용왕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를 향해 맹렬한 적의를 드러내면서 말이다.
“미…… 미친! 말도 안 돼!”
“저딴 거랑 싸우라고?!”
“온몸이 저릿저릿하군…….”
강대한 적이 있다는 소식은 들어 알고 있는 그들이었지만 설마 이만큼 강한 존재일 거라곤 생각지 못했는지 경악한 모습들이었다.
그리고 두려움에 몸을 떨면서도 물러나지 않고 전투를 준비하던 그 순간.
[빌어먹을. 식사 중엔 고블린도 건드리지 않는 법이다!]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흩뿌리며 소리친 흑빛 용왕은 당장이라도 덤벼들 것처럼 움직였다.
“움직여!! 놈이 공격한다!”
그리고, 수호자들이 메가로드리아가 포효를 내지르는 것을 보고 지레 겁을 먹고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봐!! 뭐 하는 거야!”
다만 나와 륀느, 일리나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자 껄렁껄렁한 인상의 사내가 급히 뛰어와 일리나와 륀느를 둘러매듯 옮기려 했다.
내게 가장 먼저 덤볐다가 저항도 못 한 채 머리를 지면에 처박혀 기절했던 그 사내였다.
“몸이 굳은 거냐?! 그렇게 약해빠진 주제에 뭐하러 이곳까지 와!”
“꺅?! 뭐 하는 거야! 이거 놔!”
당황한 일리나가 버둥거리다 그의 명치를 걷어 차버렸다.
“커헉!!”
상상이상의 공격력에 당황한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그는 잘 모르는 듯 하지만 실상 일리나의 실력은 그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 문제를 일으킨 건 나 혼자였기에 그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었다.
마법을 쓰는 수호자는 당장이라도 공격을 할 준비를 하고 있고 그녀를 지키듯 적발의 사내가 내게 사용했었던 화검을 소환한 채 당장이라도 요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슬을 든 여성은 긴장한 얼굴로 낫을 꽉 쥐었고 바사라와 남은 한 명은 검을 들고 당장이라도 파고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미친! 대체 뭐 하는 거야!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니까! 너희 두 사람까지 지켜가며 싸울 여유는……!”
다급히 소리치는 그가 입을 다물었다.
나를 향해 적의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던 메가로드리아가 갑작스레 내가 허공에 던진 것을 보며 시선을 돌린 것이다.
“방사능 잔뜩 먹여놓은 고기다.”
[크흠! 이번만 용서해주지! 등에도 태워주마!]
방금까지 쏟아지던 적의가 마치 거짓말이었다고 말하듯.
주변 분위기가 순식간에 풀어진다.
허공에 떠오른 고깃덩어리를 한입에 집어삼키고는 만족스럽다는 듯 입맛을 쩍쩍 다신 흑빛 용왕은 이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내렸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져 끙끙대고 있는 사내를 포함한 7명의 수호자들을 보더니 물었다.
[계약자. 이 우스꽝스러운 놈들은 뭐냐.]
그의 말에 수호자들은 한참 동안 벙찐 얼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몰라, 오랜만에 세상 밖으로 나왔더니 아직 적응이 안됐나 보지.”
“저 괴물이 그만한 위압감을 내비치는데 경계 안 하는 놈이 어디 있나!!”
내 말에 결국 참지 못한 수호자 하나가 억울하다는 듯 소리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