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60화
166. 여신 프리아
“데이비.”
“아, 로 아이아스 님.”
“후후…… 너무 격식 차리지 말아 주세요. 전 그렇게 존대를 받을만한 인물은 아닌걸요.”
그때 당시엔 몰랐다.
그녀는 그저 흑마법사 중 실력이 뛰어난 존재라는 것만 들었을 뿐 그녀가 설마, 손가락 하나 움직여서 행성을 뒤틀고 핵을 증발시켜버리는 괴물 같은 힘의 소유자일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반신.
[그런데, 누가 가장 강해요?]
겁도 없이 내뱉었던 그 한마디에 시작됐던 아포칼립스에서 그녀는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내 내면에서의 그녀에 대한 평가를 완전히 반전시켜놓았다.
[이건 제 손으론 부술 수 없어요.]
그녀는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잔념이 서린 브로치를 건네주었다.
그녀가 건네준 브로치는 복제가 없는 완전한 진품이기도 했다.
비슷한 물건이야 있겠지만 그녀의 잔념이 담긴 물건은 사실상 회랑까지 그녀와 함께였으니 말이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네 단계 중 하나에 빗대었다.
의지체가 구성되는 네 가지 위치.
나는 그렇게 평한다.
일개, 초월, 등선계, 전능.
가장 하위에 존재하는 피조물, 즉, 일반 생명체.
모든 인간과 엘프, 드워프, 마물, 몬스터, 식물에 동물까지.
모든 존재는 이 단계에 해당한다.
그 잘나디잘난 상위 생명체라 불리는 드래곤조차 말이다.
하지만 이들이 성장하고 성장하여 한계에 부딪히고 몇 차례 변화했을 때.
생명체는 두 번째 단계인 초월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초월.
지금 내가 있는 단계이며, 실질적으로 대부분의 영웅들 또한 이 위치에 존재한다.
네 단계 중 고작 두 번째.
생각보다 별것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는데 실상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애초에 말이 네 단계지 일반 피조물격인 최하위 단계와 초월 이외엔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이기 때문이다.
가지고 있는 힘의 수준을 떠나 그 영혼과 육신이 간섭할 수 있는 경지.
그것이 네 가지의 단계였다.
그리고, 세 번째 단계에 대해서 사실 제대로 된 명칭은 없지만 나는 그렇게 부르곤 있다.
등선경지, 혹은 반신계.
그리고, 이 세 번째 경지에 위치한 존재는 내가 아는 한 둘밖에 없다.
내게 이것들을 가르쳐준, 흑마법사의 대가. 유일무이한 데스 로드 [로 아이아스]와 세계수의 근본.
내가 알고 있는 전대 세계수 이그드라실이나 현재의 세계수이자 이그드라실의 전대 세계수인 알이 아닌, 말 그대로의 세계수가 가진 근본이다.
무너지면 세상이 흔들리고 자칫 멸망까지 초래할 수 있는 세상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경지.
세상을 떠받치는 세상의 피조물이며 그 영역은 반신계에 올라있는 세계수의 근본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만큼 그들이 가진 영향력은 때에 따라 별의 탄생과 소멸까지 간섭할 만큼 거대하다.
다만, 그만큼 제약에 얽매여질 수밖에 없다.
사실상 제약에 얽매이지 않고 가장 자유로운 경지가 초월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초월이라는 단계가 가장 안전하다는 것도 금방 알 수 있었다.
세계수의 거목이 쓰러지면 세상을 떠받치는 힘이 사라지고, 데스 로드의 육신이 단순한 과정으로 파괴되면 망자의 경계가 뒤틀린다.
반신계라 칭하는 위치는 그런 위치였다.
창조의 목적은 비록 같지 않을지라도 이제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육신, 혹은 잔념만으로도 세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지.
나는 그녀가 스스로의 모든 존재를 지우고 사라진 이유가 그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그런 위치에 있기에 죽는 것 조차도 오랜 시간의 공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사멸하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녀의 잔념이 남아 그녀를 회랑에 묶어두었고 그녀는 그것을 내게 건네주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마지막 흔적까지 지워달라고.
사실상 불가능하겠지만, 그 기회가.
드디어 찾아왔다.
“미안한데, 또 속았습니다.”
강신을 통해 거대한 힘, 아니 세상 전체의 의지이자 위대한 의지, 주신 프리아 여신이 내게 강림한다.
성경 원본을 통해 그녀의 의지는 내 육신에 닿았고, 그동안 신의 신부라는 웃기지도 않은 위치를 통해 그녀와 링크를 맞춰온 나는.
그 어떤 신체보다 더 신의 혼을 받아들이기에 적합하도록 개발되어있다.
여신이 남성의 몸에 빙의한다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환한 빛의 구체로 만들어진 신의 형체는 그저 나를 묵묵히 바라만 보았다.
“이제 죽은 사람은 놓아주어야지요.”
브로치의 잔념이 남아있는 이상 그 어떤 짓을 해도 로 아이아스는 영면에 들 수 없다. 그녀의 힘은 두고두고 남아 그녀의 혼을 세상에 잡아놓을 테니까.
회랑의 영웅들은 스스로의 미련을 떨쳐내거나 약속을 완수하면 스스로 소멸하는 이도 더러 있었다.
적어도 나를 가르쳤던 영웅들은 그러지 않았지만 나를 가르치지 않았던 이들 중 일부는 그런 선택을 내리고 스스로 소멸하기도 했었다.
“당신이 만든 굴레로 인해 세상의 한 축이 되고, 망자의 왕이 되었죠. 보통 일개 의지체가 그걸 감당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 아닙니까?”
내 물음에 주신 프리아 여신의 의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침묵으로 일관한다.
빛의 형체가 서서히 내게 다가오기 시작하자. 내 육신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다부진 근육이 서서히 옅어지고 호리호리해지며 키가 작아진다.
검은 머리카락은 익숙한 청은 색의 긴 머리로 변했고, 눈동자는 푸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사람은 살아서 절대 그 경지에 도달해선 안 된다.”
내 말에도 형체는 멈추지 않았다.
“당신을 위해 살아온 가련한 영혼을 구제해 줄 줄도 알아야죠.”
로 아이아스는 절대 내게 초월의 위를 넘보지 말라 하였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초월에서 등선계로 올라가는 순간.
절대 곱게는 못 죽는다는 것을.
실제로 마법을 가르쳤던 아트렐리아 대륙 출신의 마법사, 오딘은 등선계의 경계에서 스스로 물러난 인물이었다.
사실상 헤라클래스를 제외하면 회랑 최고령의 영웅이 바로 그 콩알만 한 외눈의 여자였으니 말이다.
“됐고. 당신이 원하는 대로 몸을 내놓겠습니다. 대신 약속은 꼭 지켜주세요.”
그 말과 함께.
내 육신이 모조리 변했다.
그리고.
“무…… 뭐냐!! 무슨 일이?!”
건방지게 데스 로드 로 아이아스의 힘을 몸에 둘렀던 일루미나티의 총수, 디센트의 얼굴이 사색이 되기 시작했다.
완전히 몸이 변해버린 나는, 아니, 주신 프리아 여신은 허공에 목이 잡혀 매달린 채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부욱!!!
무언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세상이 흑백으로 뒤틀렸다.
모든 시간이 멈추고, 모든 인과가 멈춘다.
그 속에서 깨어있는 것은.
나와 디센트의 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륀느와, 대제, 그리고 대제의 몇몇 기사들이 전부였다.
세상이 완전히 멎어버린 이곳에서 기사들은 그저 멍하니 나와 세상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몸을 엎드리고 고개를 조아렸다.
“아아…… 신이시여…….”
“여신께서…….”
잘 알지도 못하지만, 본능적으로 내 몸 안에 들어온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콘타스 대제는 그 오만한 성격도 버린 채 정중하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여 보였다.
피조물로써 창조주에게 보내는 절대적인 복종과 같았다.
* * *
시간이 멈춘 세상 속에서 깨어있던 이들은 본능적으로 두려움과 경외를 한다.
륀느와 데스 로드 화 해버린 디센트를 제외한 모두가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상황 속에서, 내 몸을 통해 강림한 주신 프리아 여신은 차디찬 푸른 눈을 한 채 천천히 그의 팔에 손을 뻗었다.
데스 로드, 로 아이아스의 경지가 가지는 위치는 등선계.
그리고.
그녀의 설명대로라면 세상의 섭리를 조정하고, 창조하는 주신 프리아 여신은, 마지막 단계인 전능에 있다.
로 아이아스가 설사 행성을 부수고 은하를 뒤틀어 블랙홀을 만들어내는 존재라 할지라도.
피조물의 한계는 벗어날 수 없다.
즉, 완전하지도 않은 주제에. 데스 로드의 힘을 받아들인 디센트는.
무슨 짓을 해도 강신상태가 된 프리아 여신을 막을 방법이 없다.
청은발을 지닌 작은 소녀로 변한 내 육신에 깃든 프리아 여신은 내게 하사했던 성경 원본을 천천히 손바닥 위에 소환해냈다.
동시에 성경 원본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그녀의 의지에 따라 펼쳐지기 시작했고, 금빛을 은은하게 빛내다 천천히 덮였다.
말은 없었다.
그녀와 대화를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건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그저, 나는 묵묵히 이 상황을 지켜볼 뿐이니 말이다.
브로치와 데스 로드의 육신으로 만든 아티펙트들을 모조리 섞어 융화한 디센트라지만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꼈는지 주춤거리며 소리 질렀다.
“머…… 멈춰라! 거기 멈추지 않으면 이 땅을 흔적도 없이 붕괴시켜버리겠다!!”
그의 외침에도 프리아 여신은 멈추지 않고 그에게 다가갔다.
손가락을 튕기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부수는 데스 로드의 힘을 가진 놈이 도망을 치고, 아무런 무기도 없는 청은발에 푸른 눈을 가진 작고 아름다운 소녀가 그저 묵묵히 그를 향해 걸어간다.
그리고. 그 숨 막히는 대치를 끝맺은 건 디센트였다.
“신? 신이라고?! 웃기지 마라! 신은 바로 나를 말하는 것이다! 망자의 신!! 죽음의 신!!! 그리고, 파괴의 신이 바로 나이니라!!”
데스 로드의 흔적은 어떤 의미로 보면 죽음의 신, 혹은 파괴의 신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호기롭게 소리 지른 디센트가 양손을 강하게 부딪쳤다.
어떤 영창도, 필요 없이 세상이 침식되기 시작한다.
디센트의 발끝부터 지면이 부패하기 시작했고, 돌바닥과 흙더미들이 마치 죽은 것처럼 가루가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저 손뼉 친 것만으로도 서서히 멈추지 않는 부패가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 심연의 존재를 일거에 말살하기 위해 내가 사용 가능한 초월계 흑마법을 사용한 바 있다.
일정 공간을 빠르게 부패시켜 사멸시키는 마법을 쓴 것으로도 마나의 대부분을 사용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지금 디센트가 펼친 마법은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상위의 힘이었다.
다만, 그의 경지와 깨달음이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었기에 그가 발현한 힘은 마치 폭주하듯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런 폭주하는 힘을 주신 프리아 여신이 그냥 두고 볼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휘이익!!
가볍게 손을 휘젓는 것과 동시에 사상의 힘이 그녀의 의지를 따르듯 움직이기 시작한다.
동시에 모든 것을 부패시키던 데스 로드의 사령 마나가 스스로 멈추고 흩어졌고, 그 뒤를 이어 정체불명의 힘이 마치 시간을 역행하듯 부패한 땅을 원상복구 시켜버렸다.
“난 데스 로드의 뒤를 잇는 두 번째 죽음의 신이나 다름없다! 어디 반쪽짜리 신이여! 할 수 있다면 나를 막아봐라!”
자신의 마법이 일순간에 역행 당해버린 탓에 디센트의 표정이 대뜸 일그러졌다.
그는 닥치는 대로 몸 안의 힘을 발휘해댔다.
아무리 끝도 없이 방대한 사령 마나라도 지금 그처럼 단순무식하게 어떤 묘리도, 경지, 깨달음도 없이 발현한다면 그 효율은 극도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그가 생각한 힘이 발현되겠지만 그가 생각한 대로 움직여주지도 않는다.
방대한 힘 자체가 순식간에 폭주한다는 소리였다.
디센트의 그런 행동에도 주신 프리아 여신이 빙의한 내 육신은 그저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위기감을 느낀 디센트가 도망치기 위해 공간을 뒤집으려던 그 순간.
수 미터나 떨어져 있던 프리아 여신의 육신이 순식간에 그의 앞에 도달했다.
“흐읍?!”
모든 인과관계가 뒤틀린 움직임에 놀란 그가 눈을 부릅뜨고 경악성을 내뱉었다.
동시에 그의 의지에 반하듯 데스 로드의 힘이 세상을 붕괴시키기 시작하자 프리아 여신은 손에 든 성경의 원본을 작고 흰 손으로 말아쥔 뒤 나머지 한 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스스슷…….
그러자 디센트의 손에 죽어버린 자력과 중력, 대기가 일제히 소멸하고 다시금 창조되기 시작한다.
죽은 것은 버리고 새로이 만든다.
만드는 것은 파괴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이 상식인 만큼 그녀가 벌인 일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했다.
‘타나토스고 넬타리드고, 신들이라는 것들은 다 저 정도인가.’
의지만 남은 채 나는 그 상황을 지켜보았다.
묻고 싶은 건 산더미처럼 많았다.
영향력이 떨어져서 아무리 주신이라도 이토록 압도적이고 비효율적인 힘의 격차를 보여주는 건 실상 가능하지 않을 텐데.
디센트가 죽인 것을 사멸시키고 다시 만들어낼 이유는 없었다.
주신 프리아 여신의 힘이라면 죽이기 전에 막아서 뒤틀어버릴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 장면은 자력과 대기, 중력의 유통기한이 다 돼서 부품을 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설마?’
아니겠지.
그 외에도 묻고 싶은 것은 많았다. 대체 그동안 다른 신들이 날뛰는 와중에 왜 침묵하고 있던 건지, 또 왜 주신 프리아 여신이…….
륀느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건지도.
묻고 싶은 건 산더미였지만 주신 프리아 여신은 나와 대화를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의지체로써 의사소통의 방법 자체가 기이하기 짝이 없다.
“대…… 대체 뭐야……. 대체 뭐냐고…….”
자신의 힘이 발현되기가 무섭게 상쇄되어버리자 디센트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그의 힘은 의식이 성공함에 따라 막대한 위치까지 올랐다.
비록 그의 힘이 아닌 데스 로드의 잔념이 가진 힘이라지만 그것을 멋대로 다룰 수 있는 시점에서 사실상 그의 힘 중 일부가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힘을 지닌 그가.
아무것도 못 하고 그대로 쓸려나갈 뿐이다.
아기 머리 뱀 요르간만 아니었다면 그는 어쩌면 이토록 절망스럽게 무너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 오지마……. 오지마!!!”
수차례 마법을 발현해 닥치는 대로 죽인다.
대지의 흙을 죽이고, 하늘의 구름과 별을 죽인다.
하지만 주신 프리아 여신은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그가 죽이는 것들을 마치 새로운 부품으로 교체하듯 계속해서 새로이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녀의 발걸음이 디센트와 아주 가까워졌을 때.
청색의 눈동자를 지닌 프리아 여신의 입이 뻐끔거렸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의지는 전해져왔다.
[데이비.]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나는 의아함을 지닌 채 혼령만 남은 채로 그녀의 육신을 지켜보았다.
우웅…….
동시에 그녀가 손에 쥔 성경 원본을 들어 올렸고 그대로 디센트의 뺨을 후려쳤다.
쩌엉!!!!
세상의 색이 수차례 변한다.
디센트는 굳어버렸고.
주신 프리아 여신은 무표정을 한 채 미친 듯이 놈의 얼굴을 성경 원본으로 후려갈겼다.
퍼엉!!! 쩡!! 쩡!!!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디센트의 옷에 걸린 브로치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부서지면 망자와 생자의 경계가 뒤틀리지만. 주신 프리아 여신이 나선 이상 그건 이제 의미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마치 스트레스를 풀 듯 미친 듯이 디센트를 후려치는 프리아 여신의 입이 한차례 꿈틀거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뻐끔거렸다.
어디서 스트레스를 이토록 받았는지 주신 프리아 여신의 얼굴은 분명 무표정인데, 잔뜩 짜증이 서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윽고, 그녀의 입이 뻐끔거림에 따라 의지가 정확히 전해져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로지 내게만 전해져왔다.
그리고, 인간인 내게 가장 공감될 수 있는 언어로 만들어진 의지가 머릿속을 스친다.
[데이비.]
그런데 왜 자꾸 성경으로 디센트를 후려치면서 나를 부르는 거지?
[데이비.]
또 다시 들려온다.
쩌엉!!!!!
세상의 경계가 뒤틀리고 균열이 일어날 정도로 강렬하게 성경 원본이 강한 힘을 머금고 디센트의 머리통을 후려친다.
너무 막대하고 상위적인 힘이 공간의 견고함을 뒤틀고 틈을 만들어 깨뜨린 것이다.
디센트가 파괴하면 복구하기만 하던 프리아 여신답지 않은 과격한 파괴였다.
스스로도 힘을 주체하지 못해 세상의 일부를 파괴한 게 놀라웠는지 손짓이 잠시 멈출 정도였다.
[데이비.]
그리고, 성경을 후려치던 주신 프리아 여신의 의지전달이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는지 그 의지의 일부가 흘러들어왔다.
물론.
[데이비.]
다시금 나를 부르며 후려치는 손에 힘이 더 강해진 것 같은 착각도 든다.
착각……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