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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565화 (564/1,559)

제 565화

뻔하디뻔한 결말이었다.

일루미나티의 소탕.

라스트위스프 기사단과 용사로서 활동하고 있는 레이나.

그리고 삼제국과의 연합을 통해 그들을 말살하는 데에 성공했다.

데스 로드의 육신을 모두 회수하진 못했지만 어쩌면 그것은 괜히 찾는 게 아니라 그냥 두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게 내 판단이었다.

“데이비. 그 중앙 삼원로들은?”

“삼원로? 아 그 영감들.”

하인스 영지로 돌아온 직후 페르세르크와의 혼례 준비로 바빠진 나는 페르세르크의 질문에 그제야 기억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버려 둬.”

“그냥 내버려 둔다고? 무슨 짓을 저지를 줄 알고?”

“어차피 아무것도 못 해. 그런 마당에 괜히 건드렸다가 부스럼이라도 되면 이쪽만 손해고.”

괜히 건드려서 부스럼이 될 거라면 차라리 내버려 두는 게 나으리라.

비록 그들이 내 동기와 보리스 선생님을 그 지경으로 만들어놓았다지만 함무라비 법전대로 고문을 가한 자들은 똑같이 고문을 가해주면 되는 일이었다.

온화한 샤르스 원로와 다르게 패트 원로와 슬림 원로는 중앙 3원로의 독재체제를 매우 강하게 비판하던 이들이었다.

그 두 사람이라면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을 테니 내가 손대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그 세 사람을 압박할 수 있으리라.

내가 나서는 것은 그들이 해결범위를 넘어섰을 때였다.

“식은 역시 하인스 영지에서 올리는 게 좋겠지.”

“이제 그곳이 그대의 고향이고, 집이니까.”

실제로 내 어머니였던 레니 알리샤드 전 왕비의 생가가 있던 곳이 바로 하인스 영지였다.

“혼인 후에 왕성에 잠시 들리자.”

“그대의 어머니를 뵈러?”

“그래.”

인간이 죽어 영혼이 윤회한다는 걸 알면서도 묘비를 찾아가는 건 그저 버릇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후 나는 자잘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시간을 투자했다.

단 한 번뿐인 혼례인 만큼 나는 가급적 후회 없는 행사를 만들고 싶었다.

“본녀는 그대와 단둘이서만 하는 혼례도 상관없어.”

“이제는 거부하지 않네.”

“굳이 거부할 시간조차 아까워졌으니까.”

과거와 다르게 그녀는 끈질긴 구애를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그 탓에 혼인을 올린다는 것 자체를 마냥 거부하진 않았다.

그녀는 심연의 심장이자 여왕으로서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그녀가 마음에 걸려 하던 것은 그것이었으나, 그런 점에서 치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신의 신부가 된다는 말인즉슨, 나 또한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뜻이니 말이다.

“서로 시한부 인생이로고. 쿡쿡…….”

키득거리는 페르세르크의 말에 나는 빙그레 웃으며 그녀의 뺨을 잡아당겼다.

“네가 심연에 끌려갈 일은 죽어도 없고, 내가 사라질 일도 없을 거다.”

내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당해줄 것 같은가.

어림도 없는 소리.

“저하, 청첩장을 보낼까요.”

“뭐? 내가 하지 말라고 했잖아.”

“저하, 이것은 예의입니다. 저하를 친밀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일수록 당연히 청첩장을 기다리겠지요.”

친한 이가 자신에게 청첩장도 보내지 않고 조용히 혼인을 올려버렸다면 섭섭할 수밖에 없다.

베르닐 시종장이 하고자 하는 말은 그것이었다.

“그런가? 그래. 그럼 시종장이 알아서 처리해. 다만, 적당히 보내 적당히.”

물론.

“돈 좀 만지겠네.”

내 말에 베르닐 시종장이 쓰게 웃어 보였다.

“돈도 많으신 분이 아직도 돈 타령이십니까.”

“이런 이야기 못 들어봤어 시종장?”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그가 건네주는 상자를 받아 열어보며 말했다.

“돈 많은 놈이 왕이고 형이다. 옛날 돈 없어서 사냥해서 야생동물 잡아먹던 시절로 돌아갈 순 없잖아.”

달칵…….

상자 안엔 라운 왕국 특유의 새까맣고 고풍스러운 정복이 개어져 있었다.

“이제 하나만 남았나?”

“녹색바위부족에서 조만간 하나를 발견할 것 같다고 합니다.”

“잘됐네.”

광산에서 귀금속 원석을 찾아 가공하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녹색바위부족 드워프들에게 의뢰를 넣은 지 꽤 시간이 흘렀다.

그것만 와준다면…….

“저하!! 녹색바위부족에서 사람이 왔어요! 저하께서 찾으시는 적차석을 두 개 구했다고!”

“귀족은 못되나 보다.”

* * *

4주, 무려 한 달이 흘렀다.

그동안 라스트위스프는 별 탈 없이 일루미나티를 말살했고, 숨겨져 있던 놈들의 마지막 병력이나 도망칠 수단까지 모조리 파괴당했다.

천년이 넘는 생에 첫 번째 결혼이라고 하였던가.

그만큼 애착이 가는 건 사실이었다.

누군가는 그리 말했다.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라고.

실제로 전생에 무균특별 격리실에서 게임을 하고 있을 때 온라인 게임 길드원 중 기혼이던 이들이 하던 푸념을 생각해냈다.

[자고 일어나면 아침밥은커녕 일하러 가기 바쁘지. 밤늦게까지 일하고 돌아와서 지칠 대로 지쳐있는데 의무방어전이 있더라.]

[억…… 본인 방금 와이프 친정에 가는 상상함.]

[다만 그럴 리 없지.]

[며칠 전에 와이프 생일이라고 비싼 명품백을 하나 샀는데. 그날 밤에 꽃단장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더라고. 내가 뭐 또 잘못했나 밤새도록 생각했었음.]

[후우…… 서로 고생이다. 서로 고생이야.]

[나도 남편 밥 차리고 청소 빨래 다 좋은데. 애 보는 게 너무 힘들어.]

[아, 애 키우는 게 보통 일은 아니지. 사랑은 있는데 세시간마다 깨서 우유 먹이다 보면 정말 마음 놓고 푹 자고 싶어.]

[나도 와이프 안쓰러워서 돌아가면서 함.]

[조물주보다 위에 있다는 건물주, 백수 놀음이 신선놀음이네.]

인생의 무덤이라는 말이 괜한 헛소리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참 짧네…….”

묘한 기분이었다.

페르세르크와 대면한 것은 이제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사실상 결혼한다고 생각하면 이른 시간이지만 이미 그녀와 나는 부부 그 이상급으로 함께 해온 탓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반대로 싱숭생숭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정말로 결혼을 하는구나. 이런 생각을 말이다.

결혼이 정치의 일환이라 여기는 이 대륙의 국가 풍습을 생각하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나는 기본적인 사상이 이곳보다는 전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저, 그 사실을 확실시할 뿐.

나의 결혼 소식이 알만한 이들을 통해 이리저리 퍼져 나갔다.

보통 성흔을 받은 성자는 결혼을 못 한다고 하던데.

다행인지 프리아 여신 교단에선 혼인을 금지하는 항목은 존재하지 않았다.

식 자체는 하인스 영지의 가장 발전된 건물 중 하나이며 가장 넓은 공간을 자랑하는 아카데미에서 치러지기로 했다.

본래 신전에서 혼인을 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성국에서 만든 신전 따위보다야 내 손을 통해 만들어진 결실 속에서 맺어지는 게 더욱 운치는 있으리라.

“선생님, 솔직히 말해봐요.”

“뭘.”

심드렁한 내 물음에 흑발의 소녀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거 어디다 써먹으려고 이런 걸 시키는 거예요?”

요시아 프랑소스는 현재 붉은빛을 띠는 보석을 향해 힘을 발현하고 있었다.

“뱀파이어, 아니다, 뱀파이어 로드의 권능에는 피의 계약이라는 게 있어.”

내 말에 한쪽에서 조용히 침묵하고 있던 분홍빛 머리칼의 뱀파이어, 밀피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로드의 권능, 흥미로워. 연구해보고 싶어.”

“꿈 깨세요.”

비록 뱀파이어로드와 하프뱀파이어 간의 사이이지만 둘의 사이가 마냥 좋진 않았다.

실상 밀피유가 있던 곳은 로드를 배신한 배신자들이었으니 말이다.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폭주하지 않게 지켜나 봐.”

“끄응…… 그래서? 그 권능이 뭐 하는 건데요? 피의 계약?”

“서로의 피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서로의 존재를 각인하는 거야. 죽기 전까지 서로가 링크되어있는걸 알 수 있거든.”

한날 한 시에 죽는 꿈같은 미래는 꾸기 힘들지라도.

적어도 멀리 떨어지는 순간이 있어도 페르세르크가 안전한지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방법이다.

녹색바위부족을 통해 구한 적차석은 그런 뱀파이어의 힘을 담기에 아주 유용한 보석이기도 했다.

“오, 녹아내린다!”

이윽고 권능의 발현에 성공했는지 요시아가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선생님, 이거 잘하면 피 마시게 해주는 거죠?”

“오냐.”

“아싸! 땡잡았다!”

내 말에 요시아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키득거리며 다시금 힘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요시아도 슬슬 자신의 힘을 어느 정도 다룰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전대 뱀파이어로드가 제 목숨을 바쳐가며 각성시킨 요시아인 만큼 그 재능 하나만큼은 어쩌면 역대 뱀파이어 로드 중 최고라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은공? 다른 곳에 집중할 틈이 있다면 이거라도 드시겠어요?”

그때 내 머리를 손질해주고 있던 달의 숲 엘프의 수장이자 하인스 영지의 영지민인 유리아 헬리샤나가 나긋하게 웃으며 작은 젤리를 꺼내 내밀었다.

겉보기엔 맛있어 보인다만.

그걸 만든 작자가 유리아라면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또 뭔 괴식을 만든 거야.”

“별거 아니에요. 슬라임의 체액을 굳힌 다음 블러드웜의 속살을 빻아서 첨가한 거랍니다. 미용에 아주 효과가 탁월하고 맛도 좋답니다.”

유리아의 말에 나는 블러드웜이 어떤 놈인지 떠올릴 수 있었다.

블러드웜.

대충 1미터 정도 되는 지렁이형 몬스터로 몸 곳곳에 가시와 눈이 달려 혐오스럽기로는 절대 밀리지 않는 몬스터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 숲을 침범한 블러드웜 한 마리를 잡았거든요.”

일단 그녀도 상급 정령사니까, 이상할 것도 없었다.

“맛은 있네. 피부미용에 좋다고?”

페르세르크에게 줘볼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나와 다르게 미식에 관해 상당히 가리는 게 많은 페르세르크는 기겁하며 먹지 않으려 할게 틀림 없었다.

반대로.

“데이비 님. 새로운 미각 데이터 수집을 요구해.”

괴식에 한해선 유리아조차 인정하는 존재. 륀느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가 건네준 젤리를 홀라당 집어 삼켜버렸다.

“매우 특이한 식감, 이것을 륀느가 높게 평가.”

“몸은 괜찮냐?”

“륀느, 자기 수복이 뛰어난 골렘. 문제없다고 보고해.”

젤리가 맛있는지 붕대가 엉성하게 감긴 발을 통통 튕기며 먹던 륀느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유리아가 건네준 젤리의 주머니를 품에 안고 자박자박 걸어 나가버렸다.

“륀느, 이것을 포교할 것을 요청해.”

“어머, 그래 주면 고맙죠.”

유리아는 자신이 만든 역작을 누군가가 먹어준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모양이었다.

“자, 다됐어요. 은공께선 눈매가 살짝 날카로운 것이 매력이라지만 이런 자리에선 부드러운 게 더 좋을 거라 생각했답니다. 어떤가요?”

유리아는 곧 물의 정령을 소환하여 커다란 거울을 만들어 내게 비춰주었다.

거울 안에는 라운 왕국 특유의 디자인이 섞인 검은 정복을 입고 있는 청년이 보였다.

평소와 크게 다르진 않지만 그래도 상당히 유해보이는 이미지였다.

“와…… 선생님,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는데요?”

그새 집중을 못 했는지 요시아 프랑소스가 나를 보며 놀란 듯 중얼거렸다.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 바뀌나요?”

“반하지는 마라.”

“선생님은 피 말고는 별 볼 일 없거든요?”

혓바닥을 쏙 내민 요시아는 곧 붉은 보석을 녹인 액체가 담긴 병을 내게 건네주었다.

“선생님이 시킨 대로 만들었어요.”

“완성도는 어때.”

내 물음에 말없이 작업을 지켜만 보던 밀피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품질은 우수하다고 생각해.”

밀피유가 그렇게 말한다면 괜찮은 수준이라는 뜻일 거다.

나는 흰 장갑을 벗은 뒤 손끝에 오러 블레이드를 살짝 일으켜 상처를 냈다.

그러자 붉은 피가 뚝뚝 흘러 병 안으로 스며들었고, 이내 붉은 빛을 내기 시작했다.

“앗! 아깝게시리!!”

동시에 요시아가 참지 못하겠다는 듯 달려들어 내 손가락을 입에 물고 쪽쪽 빨기 시작했다.

“세상에 피가 귀한 줄을 모르시네!”

“그래, 그럼 이거만 먹고 끝내자.”

“웃기는 소리 마세요. 이걸로 누구 코에 붙이라고.”

내 손이 스스로 치유되어 지혈될 때 까지 피를 빨아 마시던 요시아는 이내 내가 팔뚝을 걷어주자 눈을 반짝이며 팔뚝을 앙 물었다.

날카롭게 돋아난 송곳니가 살갗을 파고들며 피를 빨아먹기 시작한다.

괴기스런 현상이지만 그녀가 뱀파이어라는 걸 아는 이들에겐 그리 놀라운 사실도 아니었다.

그렇게, 만족할 때 까지 피를 빨아 마신 요시아는 붉은 피가 묻은 입가를 스윽 닦으며 내게 웃어 보였다.

“선생님, 결혼 축하드려요. 좋으시겠어요? 그렇게 아름다운 부인을 맞이하시고.”

“그래.”

“저도 이제 슬슬 혼기가 찬 나이라 걱정이네요.”

요시아의 말에 나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새끼 임팔라의 목덜미를 물고 노려보고 있는 표범.

음.

확실히.

“제가 임팔라라는 거에요?”

“아니, 네가 표범이지.”

내 말에 요시아의 표정이 샐쭉하게 변했다.

생각하던 것을 그대로 중얼거린 모양이었다.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하인스 영지에서 일어나는 혼례식으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찾아온 참이었다.

하나하나 고맙다는 인사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본심은 축의금을 명목으로 자금을 뜯어낼 생각으로 가득하지만 말이다.

“자, 그럼 신부님 보쌈하러 가보자고.”

나는 일리나와 윈리, 그리고 타냐, 그리고 신목의 신녀인 에밀리아의 도움을 받으며 혼례 준비를 하고 있을 페르세르크를 향해 다가갔다.

그때였다.

“데이비 왕자님이십니까?”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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