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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566화 (565/1,559)

제 566화

하인스 아카데미는 벌써 나흘 전부터 수많은 인파로 가득해져 있었다.

특별 휴교령이 떨어지고, 영지 전체가 축제 분위기로 가득했다.

엘프와 드워프, 인간, 그리고 드워프의 소개로 이주해오기 시작한 농민 종족이라 불리는 난쟁이, 호비트 까지.

영지는 그야말로 때아닌 축제 분위기로 가득해졌다.

추수 감사절이 다가오며 첫 수확이 성공한 것도 경사라면 경사였다.

전쟁고아로서 살아갈 일부터가 막막했던 아이들은 하인스 영지의 신기한 것들이 가득한 축제 분위기에 구경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황녀저하.”

“네?”

뭐가 그리 즐거운지 헤실거리는 에이리아를 보며 불여우 대공 카트린트 카라벨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자신의 상태를 알고는 있는 것일까.

아마 모르지 않을까.

나인테일 종족의 연정은 그렇게 쉽게 껐다가 켜는 게 가능한 종족이 아니다.

그것은 종족의 족쇄나 다름없고, 또한 종족의 축복이나 다름없었다.

뾰족한 귀를 쫑긋거리며 주변을 둘러보고 즐거워하는 에이리아를 뒤따르며 카트린느는 굳은 얼굴로 조심스레 물었다.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무엇을 말인가요?”

“데이비 왕자가 혼인을 치른다는 것 말입니다.”

“그분께서 정말로 사랑하시는 분과 이어지는 일인걸요. 당연히 축복해드려야죠.”

에이리아의 새삼 맑은 대답에 카트린느는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경사는 경사다. 남의 결혼식장까지 와서 우울한 이야기를 하기는 싫지만 이대로 데이비가 계속해서 에이리아를 피한다면 그녀는 언젠가 종족의 족쇄가 발목을 잡아 죽음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

“자기 위치는 생각도 안 하고 한 명만 사랑하겠다니.”

물론, 그게 나쁜 것은 아니었다.

외려 좋은 일이다.

하지만 에이리아를 아끼는 카트린느의 입장에선 속이 쓰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문제라도 있나요?”

정말 모르겠다는 듯 바라보는 그 모습에 카트린느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린 시절부터 병으로 인해 고통받던 그녀였다.

흉측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보일 수 없어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살아왔던 그녀였다.

이제야 빛을 보고 아름다워졌는데.

수많은 이들의 선망과 부러움, 그리고 관심을 받으며 살아가도 부족함 없을 만큼 착하고 고운 분인데.

어째서 그녀에게 하나도 허락되지 않는 것일까.

“저하, 데이비 왕자에게 그것은 끝까지 말하지 않을 겁니까?”

자리에 멈춰선 채 조용히 묻는 카트린느의 말에 조용히 걸음을 멈춘 에이리아 알 린디스는 조용히 고개를 돌려 카트린느를 올려다보았다.

“네.”

“어째서.”

“그게 약속이니까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고운 미소를 띠며 카트린느의 손을 꼭 잡았다.

“어서 가요. 축복할 일이잖아요. 어서 축하해주러 가야죠.”

“…….”

결국 카트린느는 끝까지 에이리아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 * *

“반갑습니다. 팔란 제국에서 온 6황자, 렌도스 데 팔란입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로 다가온 사내는 건장한 체격에 약간 싸늘한 느낌의 사내였다.

“반갑습니다. 데이비 올 라운입니다.”

“대륙의 저명한 성자님을 직접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팔란 제국의 황자님을 뵈어 저 또한 영광입니다.”

느긋한 미소를 지은 채 내 손을 마주 잡은 그의 모습에 나는 의문이 들었다.

축의금 명목으로 이리저리 뜯어낼 생각이긴 했다만.

아예 모르는 이를 부른 적은 없는데.

“혼인을 올리신다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아, 감사합니다.”

“한데, 왕자님과 결혼하시는 분은 어느 귀족가의 자제분이신지.”

그의 질문에 나는 좀 전까지 하던 생각을 멈췄다.

“왕족입니다.”

“왕족이라, 호오. 정말 놀랍군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어느 왕국의…….”

“글쎄요. 굳이 그걸 말씀드릴 이유라도 있나요?”

빙그레 웃으며 그를 바라보자 그는 나를 떨떠름하게 바라보다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아하하하. 아니지요. 뭐, 굳이 말해주지 않으셔도 상관없는 문제이지요. 어찌 되었건 축하드립니다.”

어색하게 웃어 보인 그는 곧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내 곁을 떠났다.

“어디 쥐잡기를 하고 있나.”

떠나가는 그를 향해 짧게 혀를 찬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였다.

“데이비.”

그런 그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리나?”

“축하해.”

묘하게 가라앉은 표정이었다.

“표정이 왜 그래.”

“별거 아니야. 그보다 방금 렌도스 오라버니야?”

“그래.”

“흐음…… 그 인간이 여긴 무슨 일이람…….”

“정식 초청받은 게 아닌가?”

“글쎄, 나야 모르지, 하지만 별로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라서.”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팔란 제국 내에선 아직도 황권을 두고 싸움이 한창일 테니까.

살리반이 광역 어그로를 끌어 다른 왕자들과 피 터지게 싸우고 있으니 아마 저 렌도스라는 황자도 그중 하나일 확률이 높았다.

“렌도스 오라버니는 내가 이끄는 화이트 버드에 욕심이 많거든.”

화이트버드 기사단.

일리나가 이끄는 대륙 규모의 기사단으로 사실상 그녀를 대신해 업무를 보는 이들이 많은 이름만 올라간 기사단이기도 하다.

“어쨌건, 렌도스 오라버니와 너무 가까이하진 마. 악한 인간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묘하게 꺼림칙해서.”

“꺼림칙해?”

“너무 조용하고 깨끗하거든. 너처럼 차라리 대놓고 야만적으로 굴면 마음이라도 편할 텐데. 그는 털어도 먼지 하나 안 나오는 인간이라.”

손사래를 치며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형님!”

“오라버니!”

뒤이어 연회장에 다른 이들도 도착했다.

왕성에서 크리아네스 국왕을 모시고 내려온 바리스가 가장 먼저 보였고, 익숙한 얼굴인 율리스와 함께 걸어오는 윈리도 보였다.

“오라버니!”

나를 향해 맹렬하게 달려오던 도중 주변의 눈치를 살피는지 천천히 멈춘 윈리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헤헤. 이제는 막 안기지도 못하겠네요.”

“쓸데없는 소리.”

그렇게 말한 내가 윈리를 그대로 안아 들고 한 바퀴 빙그르르 돌려주자 윈리의 표정이 해맑게 빛났다.

“오라버니! 축하드려요! 드디어 이날이 왔네요.”

“하하, 축하드립니다. 데이비 님.”

뒤이어 율리스가 악수를 청해왔다.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지만 율리스도 마스터 급을 넘어선 탓에 외향의 변화는 없는 수준이었다.

“경사가 연거푸 겹쳤네요.”

“경사가 겹쳐요?”

“아, 이런, 말실수했군요.”

뭔가 말을 하다 멈칫한 그의 모습에 묘한 느낌이 든다.

이에 내가 윈리를 슬쩍 바라보자 윈리가 내 시선을 피하며 몸을 베베 꼬았다.

그리고, 그런 윈리를 율리스가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마치.

어린 동생을 보는 시선이 아닌…….

“바리스. 근위병 불러와.”

“예?”

“어린애 탐하는 도둑놈 손모가지를 잘라버려야겠다.”

내 말에 윈리가 화들짝 놀라 나를 제지하고 율리스가 식은땀을 흘렸다.

“오……오라버니 안 돼요!”

비명을 지르듯 나를 막아선 윈리의 모습에 나는 표정을 찌푸렸다.

가슴이 아프다!

딸자식 키워봐야 소용없다더니!

“…… 언제부텁니까.”

내 물음에 율리스가 이리저리 시선을 회피하며 조심스레 말했다.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양심은 있으시고요?”

“하하하…….”

어색하게 웃어 보이는 율리스였다.

뒤이어, 타냐와 그의 친우인 마리아 공주가, 호위무사인 단궁의 호위를 받으며 걸어들어왔다.

엘프의 마을 쪽에서 살며 그들에게 궁술을 배우고 있는 타냐는 참 보기 힘든 존재였다.

“오랜만이다?”

“헤헤, 죄송해요. 오라버니.”

“적당히 얼굴도 좀 비치고 그래.”

“네.”

이후 마리아 공주는 새하얀 안대를 한 채 내게 고개를 숙여왔다.

“혼인을 축하드려요.”

“지내는 데 불편함은 없으신지.”

“네. 자유로운 숲 내음을 맡으며 달리는 것도 정말 좋네요. 엘프분들도 모두 친절하시고.”

그녀는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름대로 방식을 통해 주변 사물을 구분하는 기술을 터득한 그녀였다.

궁술의 기본, 바람과 파장을 느끼는 것.

그것을 일상생활에 적용함으로써 그녀는 시력을 대신하고 있었다.

“돌아가고 싶으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타냐의 일로 인해 현국을 뒤집어엎으며 데려오긴 했지만 사실 마리아 공주에게 악감정은 없었다.

“아뇨, 이곳에 좀 더 지내고 싶어요. 왕궁을 떠나 이토록 자유롭게 살아본 건 처음이니까요.”

처음에 비해 굉장히 밝아진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오라버니. 정말로 멋지세요. 역시 사람은 커서 혼인을 올려야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된다고 하는 게 진짜인가 봐요.”

나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타냐가 손뼉을 쳤다.

“정말 자랑스러워요. 오라버니.”

“고맙다.”

빙그레 웃으며 타냐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녀석은 조금 있다 다시 보자며 어디론가로 가버렸다.

베르닐 시종장과 에이미에게 적당히 일을 넘기긴 했지만 설마 이토록 많은 이가 왔을 줄은 몰랐던 나였다.

한 쪽에 고개를 돌리니 피곤한 기색을 애써 숨긴 채 열띤 토론을 펼치고 있는 에오니샤와 에디손, 그리고 티아라가 보였다.

그 외에…….

“오랜만이에요. 데이비 님.”

“에이리아 황녀님.”

“편하게 불러주실 순 없나요?”

“와주셨네요.”

내 말에 에이리아가 생긋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품 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내밀었다.

“작은 팔찌에요. 페르세르크 씨에게 드릴 선물로 직접 만들었어요.”

“고마워요. 페르세르크도 기뻐할 겁니다.”

에이리아의 미소에 나는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녀의 종족은 나인테일이다. 전생의 발음대로라면 구미호.

나인테일에 대해선 이미 들어 알고 있다.

한 번 마음을 주면 기억이라도 사라지지 않는 이상 없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에이리아는 기억을 잃어버리고 나서도 나를 그리워하며 찾아 헤맸던 불쌍한 소녀였다.

책임지지도 못할 거면 일을 치질 말았어야지.

머릿속에 혼란스러운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직…… 유효해요.”

“네?”

“서로 알아가자던 말.”

내 말에 그녀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인다.

하지만 이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적어도 지금은 아니랍니다.”

천천히 손을 뻗어 내 뺨을 쓸어내린 그녀가 내게서 한발 물러났다.

“당분간은 곁에서 지켜만 볼게요. 하지만 저도 포기하진 않았어요. 당신을 사랑하는 건 진심이니까요.”

부끄러운지 시선을 피하며 조심스레 말한 그녀가 내게 등을 돌리고 후다닥 뛰어갔다.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지만 이내 입가를 가리며 표정을 숨겼다.

결혼식 당일까지 되어서 이리 복잡한 기분이 들 줄은 몰랐다.

[세상사 마음대로 다 되면 참 좋지 않겠나.]

콘타스 대제가 했던 말이다.

[에이리아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짐은 무슨 짓이든 할 것이네.]

약혼문제가 터졌을 당시 데오르트 황제가 내게 했던 말이었다.

복잡한 심경을 뒤로한 채 나는 고개를 휘휘 저어 걸음을 옮겼다.

결국,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했다.

연금학파, 신전, 마탑. 각 국가.

수많은 이들이 찾아왔다.

샤쿤탈라의 F반 학생들도 여기저기 끼어 있는 게 보이니 어지간한 이들은 다 모였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 그때.

나는 묘한 기시감이 느껴진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내가 시선을 돌렸을 때.

나는 이곳엔 있어선 안 될 존재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끼어 있는 것을 보고 멈칫했다.

“네년이 왜 여기 있나.”

“어머나, 내가 못 올 곳이라도 왔나 봐?”

“빌어먹을 년이?”

울드.

베르단데와 스쿨드의 언니이며, 프리아 여신이 말했던 헤라클래스의 흔적 중 하나로 추정되는 존재.

현재 내 가장 큰 적중 하나이며, 솔직한 말로 준비가 없으면 나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괴물 중 괴물이 떡하니 이곳에 나타나 있었다.

“표정 풀어, 제법 중요한 일을 하는 것 같던데. 나도 오늘은 싸우러 온 게 아니니까.”

울드의 말에 나는 인상을 더욱 찌푸렸다.

“개수작 부리려고 온 거면…….”

“계속해서 그렇게 노려보면…….”

말끝을 흐린 그녀가 빙그레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여기가 난장판이 되어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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