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67화
그녀의 말에 나는 피워올리던 기세를 스윽 거두었다.
역시, 그녀는 나를 경계하고 있다.
“들었어, 인간은 혼인이라는 것을 치르며 암수가 하나 모여 가약을 맺는다지?”
느긋한 걸음으로 걸음을 돌린 그녀가 시선을 바깥으로 돌렸다.
“마음 같아선 곱게 두고 싶지 않지만, 오늘은 너와 푸닥거리나 하려고 찾아온 게 아니야.”
느긋하게 말하며 그녀는 손에 쥔 와인잔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리고는 내가 들고 있던 잔에 가볍게 부딪히며 고혹적인 미소를 흘렸다.
심연의 공주들은 하나같이 신의 파편인 만큼 그 외향 자체는 상당한 편이니, 어떻게 보면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아아, 악의가 가득해. 정말 인간이란 종족은 겉과 속이 이토록 다르다니까?”
그녀는 연회장에 모인 이들 중 몇몇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느긋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악의가 너희만 할까.”
“웃기지도 않는 소리. 우린 적어도 속이진 않아. 진실을 말할 뿐.”
사뿐사뿐 걸어 다가온 그녀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저기 금발의 사내는 조심하는 게 좋아. 속이 꽤 뒤틀려있거든.”
그녀가 가리킨 인물은 팔란 제국의 6황자, 렌도스 데 팔란이었다.
조금 위화감이 드는 인물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울드의 시선에는 다른 무언가가 보였던 모양이었다.
물론, 그가 무슨 짓을 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지 않지만 말이다.
위화감이 들지만 어리석은 인간은 아니니까.
“뭐, 인간들끼리의 일은 내 알 바가 아니지만.”
키득거린 그녀가 다시금 잔을 부딪쳐오자 나는 한발 슬쩍 물러나 그녀의 페이스를 흩어버렸다.
“개수작 부리지 말고 본론을 꺼내보자고.”
내 말에 그녀는 손에 쥐고 있던 와인잔을 툭 하고 근처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내게 다가온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 것일까.
시선을 돌리자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에이리아가 보였다.
확실히 그녀에게 울드라는 존재는 공포의 대상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스스스스스…….
동시에 그녀의 발밑에서 검은 기류가 흘러나오기 시작하더니 누군가가 눈치채기도 전에 그녀의 신형이 흩어지듯 사라져버렸다.
“…….”
너무 한순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것이다.
그녀의 힘은 잠식.
실제로 그녀는 잠식이라는 힘을 통해 무언가를 잠식시키고 멋대로 다루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 외에도 심연의 공주들 사이에서도 유별나게 압도적인 하드웨어를 지니고 있긴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었다.
“진짜면, 콩가루고, 거짓이면 꼴에 머리 좀 쓴 건가?”
그녀가 떠나기 전 내 귓가에 속삭인 말은 제법 흥미롭기 그지없었다.
“황녀저하?”
그때, 갑자기 호흡곤란이 왔는지 에이리아가 숨을 조금 거칠게 몰아쉬기 시작하자 곁에 있던 불여우 대공, 카트린느가 놀란 듯 그녀를 붙잡았다.
이에 나는 생각할 것도 없이 곧바로 신성력을 손끝에 끌어올린 채 그녀를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확실히 강신의 여파가 탈진만 있었던 건 아닌 모양이었다.
9위 계급까지 무리 없이 발현할 수 있을 것 같던 신성력의 양 자체는 조금 줄어들었지만.
그 질이 상승했다.
몸에 신을 한 차례 받아들이면서 변화가 생길 거라곤 예상했지만 이건 이것대로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양이 줄고 질이 상승된 꼴이다.
양이야 언제건 늘릴 수 있지만, 그 질을 상승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렇게 상승된 신성력이 효과를 볼 기회는 없었다.
“어?”
그녀에게 무언가 조치를 취하기도 전 그녀의 몸에서 신기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내 것과 똑같은 신성력이 스스로 일어나 그녀를 진정시키고 치유한다.
그 자리에 서버린 나는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신성력은 비슷비슷해 보여도 힘이라는 것 자체가 육신과 엮이면서 조금씩 변한다.
마나의 성질머리가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내뿜은 신성력은 한 치의 오차 없는 내 것과 똑같은 신성력이었다.
“괜찮습니까.”
“아…… 네.”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빨갛게 달아오른 뺨을 숨기는 그녀였다.
“죄송해요. 조금…… 쉬어야…….”
그녀는 울드를 본 것을 자신이 헛것을 본 것이라 치부했는지 힘겹게 웃어 보이며 후다닥 벗어났다.
“데이비 왜 그래?”
“에이리아 황녀의 몸에 내 것과 똑같은 신성력이 있어서.”
내 말에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뜬다.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줄래?”
“그 사람 본인이거나, 태아 때부터 신성력을 쓰는 애라도 가지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고.”
그러니까, 해석하면 어느 쪽이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렇게 말하며 일리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준 뒤 내가 지나치자 일리나가 복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 * *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찾아오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예식 자체는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건지.
단순히 정치적인, 혹은 계산적인 결혼은 아니었다.
마음이 있었기에 더욱 두근거렸고, 늘 같이 있었으면서도 온전히 서로의 것이 된다는 사실이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엄숙한 표정으로 앨리스 대주교가 조용히 운을 떼었다.
하객석을 가득 채운 예식장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제 모든 게 실감이 나는 느낌이었다.
한 쪽에 시선을 돌리니 오지 않을 줄 알았던 인물들도 몇몇 와있는 게 보였다.
“데이비 왕자님. 준비되셨습니까?”
앨리스의 질문에 나는 입고 있던 깔끔하고 검은빛을 띠는 정복을 여미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드리겠습니다.”
“후우…….”
본래 주례를 맡는 신관은 다름 아닌 성녀, 리나였다.
성국의 소속은 아니지만 일차적으로 성흔을 받은 성자를 축복할만한 존재는 성녀밖에 없다는 성국의 판단이었다.
물론, 아직 성국 내에 남아있는 정치적인 문제가 뒤섞인 결과이겠지만 중요한 건 리나 성녀 그 자체였다.
‘악의가 없다지만 머릿속이 꽃밭인 그 여자가 주례를 맡았다간 난리가 날 거다.’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 더욱 두려운 존재였다.
특히 지금 같은 경우는 말이다.
결국, 리나성녀만큼은 절대 안 된다며 강하게 요구한 나와 앨리스 덕분에 주례는 한때 성녀 후보로 거론되었던 앨리스가 맡게 되었다.
법왕이나 몸이 불편한 교황이 올 수는 없으니 말이다.
“후우. 아뢰옵기 황공할 정도로 고결한 분이시여.”
짧게 헛기침을 한 앨리스는 주변을 가득 메운 이들을 한번 스윽 훑어본 뒤 조용히 기도문의 첫 장을 읊었다.
동시에 한때 성녀 후보라는 자리에 있었던 인물답게 그녀의 전신에서 은은하고 포근한 신성력이 흘러나오며 주변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차르릉…….
그리고, 그런 그녀의 신성력에 응하듯 커다란 공동의 예삭장 천장에 푸르고 붉은빛의 작은 광원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와아…….”
“예쁘다…….”
마법적인 처리가 있는 건 아니었다.
“신기하네요.”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던 그녀가 내게 감탄사를 보내왔다.
“연금술로 살짝 건드린 것뿐입니다.”
“하인스 영지엔 별의별 일이 다 터져도 이상하진 않겠죠.”
기도문을 읊고 난 그녀는 곧이어 내게 몇 가지 맹세문을 읊게 했다.
이에 거리낌 없이 그것들을 따라 맹세하자 앨리스 대주교는 뭐가 그리 씁쓸한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들어 보였다.
“하면, 이제, 신부가 되실 페르세르크 양의 입장과 함께 맹세문을 읊겠습니다.
끼이이익!!
그 말과 함께 커다란 문이 열리며 면사를 덮어쓴 이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호오…….”
“와아.”
몇몇 남성들은 감탄을 자아냈고.
“세상에…….”
“…….”
몇몇 여성들은 질시조차 못 한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반짝거리는 은발을 늘어뜨린 채 눈을 내리깔고 천천히 걸어들어오는 그녀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대륙 6대 미녀랍시고 많은 이들이 칭송을 받아왔지만 냉정하게 평가했을 때 페르세르크의 존재는 단연 압도적이었다.
실제로 대륙 6대 미녀 중 4명이나 봐왔음에도 그 사실은 변치 않았다.
일리나와 에이리아 황녀, 그리고 과거 칭호를 얻었던 베르단데나 에디손 기술고문의 손녀인 티아라까지.
“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데이비 왕자님이 그토록 갑작스레 혼인을 치렀는지 의아했는데…… 알 것 같군요.”
급하기는 얼어 죽을.
“와아…….”
신목의 성지의 신녀, 에밀리아가 알의 축복을 담아 만든 예복을 입고 들어온 그녀는 과거 내 어머니의 흔적이기도 한 붉은 귀걸이와 내가 직접 만든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천천히 걸어들어오는 그녀는 뒤로 에나벨과 여성형태로 의태한 메라몽이 들러리로 따라 들어온다.
페르세르크의 입장을 말없이 지켜보던 나는 많은 이들의 감탄과 놀라움을 뒤로한 채 내 앞에 선 그녀를 내려다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예쁘다.”
담담한 한마디에 그녀는 내리깔았던 시선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면사로 가려져 선명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미색과 붉은 혈안은 확연히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데이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게야?”
“후회? 웃기지도 않는 소리.”
내 말에 그녀는 그것으로 되었다는 듯 쿡쿡 웃어 보였다.
“페르세르크 양. 식의 진행에 앞서 맹세문을 읊겠습니다.”
말없이 페르세르크를 바라보던 앨리스 대주교는 이미 그녀를 본 바 있기에 딱히 큰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를 꾸미는데 일조한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앨리스가 아니었던가.
“데이비 왕자님은 복 받으셨네요.”
남들이 들리지 않게 우스갯소리를 한 앨리스는 곧이어 페르세르크에게 몇 가지 맹세문을 읊게 했다.
그리고, 잔잔한 덕담과 함께 필요한 요소들을 모두 해낸 뒤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면, 이제 맹세의 교환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앨리스 대주교가 나를 향해 눈치를 주자 나는 품 안에서 꺼낸 작은 상자에서 반지를 두 개 꺼내 하나는 페르세르크의 손에 쥐여주고, 나머지 하나는 내가 쥐었다.
그리곤 서로 조용히 서로의 약지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반지 또한 그녀를 위해 직접 만들고 세공한 것이다.
단순히 예쁜 반지 정도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 서린 힘은 실로 놀라울 정도였다.
“너무 과한걸 만든 건 아니야?”
“아직 완성도 안 된 반지니까.”
반지 속엔 뱀파이어 로드인 요시아 프랑소스의 권능인 피의 계약을 담은 광석이 녹아 들어있다.
하지만 이런 자리에서 그녀의 손가락에 상처를 내어 피를 흡수시킬 수는 없기에 굳이 손대고 있진 않았다.
“호오…… 반지가 굉장히 예쁘네요.”
“듣기로는 데이비 왕자님이 직접 만드신 것들이라고 해요.”
“세상에. 저렇게 아름다운 세공을 한 반지와 목걸이들을요?”
“그러게나 말이에요.”
“나중에 바깥양반을 이용해서 데이비 왕자님께 하나만 만들어 줄 수 없는지 물어보고 싶네요.”
한쪽에서 귀부인들이 들리지 않게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맹세의 교환.
서로가 서로에게 속하며, 서로를 위해 살아가겠다는 약속이다.
나는 페르세르크에게 그것을 건네주었고, 페르세르크는 내가 건네준 반지에 화답하듯 내 약지에 그것을 끼워주었다.
“이후, 가약을 맺은 두 분을 축복하겠습니다. 마지막 의식에 앞서, 이 혼약을 반대하시는 분.”
앨리스 대주교의 말에 주변이 침묵한다.
“조용히, 입 다물고 계셔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뒷감당 저도 못 하니까요.”
앨리스의 말에 몇몇이 여기저기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정말로 반대를 하는 이는 없었다.
그럴 이유도 없거니와.
앨리스의 말마따나 무슨 뒷감당을 하겠는가.
이미 수차례 나와 반목했던 곳이 어떤 꼴을 당해왔는지 그들이 모르진 않았다.
바보가 아닌 이상. 단순히 우연 문제를 넘어서 국제적인 입장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게끔 짓밟아버리는 것을 잘 알고 있을 터다.
“그럼, 두 분.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 맹세의 증거를 이행해주세요.”
이윽고 앨리스의 말에 나는 조용히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리고는 그녀가 가까이 오기가 무섭게 천천히 그녀의 면사를 걷어냈다.
새하얀 피부와 붉은 눈동자.
사람을 황홀하게 만드는 아름다움이 서린 얼굴이 눈앞에 보인다.
“뿔이 없는 게 아쉽다.”
“꿈도 꾸지 마라.”
뿔은 그녀의 아이덴티티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육신이 바뀐 이상 뿔에 집착할 순 없었다.
내가 뭘 생각하고, 뭘 꾸몄건 절대 안 된다 말하는 그녀에게 나는 조용히 다가갔고.
그대로 입을 맞추었다.
부드러운 촉감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차라리 잘된 것이다.
결국 이렇게 성공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
같이 있고, 있었던 이들.
차근차근 하나씩 이뤄나가야 하리라.
그 과정에서 많은 실패가 있을지라도.
눈을 감은 채 내게 몸을 맡겨오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천천히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는 한 발, 두 발 물러났다.
동시에 한 여성이 천천히 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휘이이잉…….
동시에 녹빛 바람이 들며 일반인들의 눈에 보이지 않아야 할 정령들이 나타나 꺄르륵 웃고 축복이 서린 정령의 가루를 사방에 흩뿌리기 시작했다.
‘선물이다.’
그녀의 정체는 다름 아닌 세계수 알이었다.
신목의 성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그녀가 이곳에 온 방식은 아마 이전의 세계수 이그드라실과 비슷한 방법을 쓴 것일 터였다.
성공리에 혼약식이 끝난다.
축복 어린 탄성과 박수를 들으며 돌아선 뒤 자잘한 이벤트들도 이어졌다.
페르세르크가 손에 쥐고 있던 부케를 펠리스티 공국의 공녀가 놀라운 속도로 받아들자마자 바리스가 허겁지겁 식장 밖으로 도망치고, 그런 그를 공녀가 환하게 웃으며 쫓아간다.
부케를 받은 이는 다음 대에 혼인을 치른다는 속설은 이곳에서도 있었다.
“으…… 으아아아악!!”
뭐가 그리 두려운지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바리스를 뒤쫓는 공녀의 행동에 몇몇은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몇몇은 껄껄 웃어 보이기도 했다.
그 외에 장난기가 돋은 유리아가 엘프의 전통인 웨딩가터 회수를 내게 요구하여 페르세르크를 당황스럽게 만들었고,
드워프식 전통인 신랑의 힘자랑도 골고다 형제의 주관 아래에 이어졌다.
하인스 영지는 인간만의 영지가 아니었으니까.
드워프와 엘프, 수인족까지 섞여 살고 있는 곳인 만큼 이런 행사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물론, 이 예식을 촬영하는 지구의 유저가 하나 보이긴 했지만, 굳이 좋은 날에 건들지 말라는 페르세르크의 부탁에 따로 손을 대지 않기도 했다.
그런 요소 하나하나가 즐거움이고 추억이며, 하나의 기억이기에 나는 굳이 거부하지 않고 하나하나 모두 이뤄냈다.
“어머…… 어머…… 세상에…… 왕자님이 강하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저토록 절륜한 몸일 줄은.”
“정말 튼실하네요…… 우리 남편은 이제 힘도 없어서 매번 보약을 사야 하는데…….”
“젊어서 참 부러워요…….”
“마스터라지요? 평생토록 저렇게 절륜한 체력을 가질 텐데. 어찌나 부러운지…….”
페르세르크를 등에 앉힌 채 무식한 속도로 팔굽혀 펴기를 해내는 내 모습을 보던 귀부인들의 소곤거리는 소리도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화려하고, 아름답던 혼례식의 마지막은 누군가의 비명으로 인해 완전히 반전되었다.
“…… 꺄아아아아아악!!!”
* * *
대륙의 왕자, 데이비 올 라운의 혼인 영상은 지구 쪽에도 퍼져나갔다.
극소수의 유저가 진입할 수 있는 특수필드나 다름없는 티오니스 대륙에 들어간 미국의 한 유저가 웨딩 현장을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촬영한 것이다.
덕분에 그 영상은 미국 쪽도 그렇지만 처음 알프 온라인이 오픈된 한국에서는 뜨거운 감자로 소식이 퍼져나갔다.
[와우, 퀄리티 실화?]
[진짜, 예전에 보긴 봤는데, 여왕님 너무 우월하다.]
[반찬거리 감사요.]
[미친 ㅋㅋㅋㅋㅋ]
[무엄한 새끼, 저 새끼 끌어내셈. 여왕님은 모두의 여신이시다.]
[세상에 대륙 6대미녀 6대미녀 카는 소리는 들어봤는데, 저건 넘사급 퀄리티인데.]
[lol, very cute girl]
실시간으로 게임을 즐기는 각국에서 수십 개의 댓글이 올라온다.
익살스럽고 장난스러운 말투가 매력인 스트리머의 진행에 많은 이들이 혼약식이 담긴 영상을 시청했다.
대부분은 퀄리티가 좋다. 게임 주제에 현실성 넘친다.
또 부럽다느니, 여러 이야기가 많았다.
하지만, 좋은 이야기도 있으면 나쁜 이야기도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타닥…… 타다다닥…….
방송분을 실시간으로 보던 한 남성이 어두운 방 안에서 시선을 화면에 고정시켰다.
너무도 아름다운 소녀. 그녀의 존재는 마치 자신을 위해 태어난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게 만들었다.
“이 여자다…… 내 여자. 내 여자야.”
혼이 쏙 빠져나갈 만큼 아름답고 매력적인 소녀를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겠다는 듯 그의 눈이 부릅 뜨여졌다.
그리고는 천천히, 또 익숙하게 타자를 두드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