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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568화 (567/1,559)

제 568화

169. 살인 사건

갑작스레 산통을 깨는 비명에 나는 곧장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토인족 소녀가 바닥에 주저앉은 채 와들와들 떨고 있었고, 그 앞에는 갸름한 체형의 수인 남성이 피를 뿌린 채 쓰러져 있었다.

“저……저하……”

나를 보며 울먹거리는 토인족 소녀의 모습에 나는 생각할 것도 없이 쓰러진 수인족 남성의 배가 하늘로 향하도록 눕히고 상태를 확인했다.

“…….”

너무 늦었다.

손을 쓸 틈도 없이 죽어버린 수인 남성은 하인스 영주성에서 자잘한 일을 도맡아 해주던 바트라는 이름의 시종이었다.

“바트…….”

“흑…… 흐흐흑…….”

갑작스런 사태에 나를 따라왔던 이들은 모두가 경악한 듯 보였다.

“대…… 대체 무슨 일이……”

뒤늦게 따라온 고르네오 남작이 심각한 표정으로 수인 시종, 바트의 목덜미에 손을 올렸다.

“…….”

“이미 늦었어요.”

죽은 지 얼마 안 된 이는 살릴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바트의 시신은 차갑게 식어있었다.

“시종장. 행사 중단하고.”

“저하.”

내 명령에 파르르 떨고 있던 에이미가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안 돼요. 저하.”

“에이미.”

“여기서 중단하시면, 저하께서 그동안 준비해오신 것들이 물거품이 될지도 몰라요.”

“…….”

사람이 죽은 이상 제대로 된 진행은 어렵다.

하지만 에이미는 그런 다른 자잘한 것들을 내버려 두고서라도 내가 준비해온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걸 원치 않았다.

“맞습니다. 저하. 신 또한 같은 생각입니다.”

“시종장.”

“신 베르닐, 저하께 불충한 일이라는 것을 아오나, 지금은 지금의 일을 집중해주시옵소서, 이렇게 저하의 경사를 망칠 수는…….”

“목숨의 무게에 경중이 있나?”

“…….”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내 말에 시종장은 말없이 고개를 숙여 보였고 에이미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조용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네…… 저하.”

* * *

살인사건은 중히 여겨진다. 하지만 고작 시종하나, 그것도 많은 종족 중 그렇게 입지가 좋지 못한 수인족의 죽음이라면.

“이대로 저들을 계속 묶어두면 좋지 않은 말은 계속 나올 겁니다.”

냉정하게 판단하는 바리스의 말대로였다.

오는 건 저들 마음대로였지만 돌아갈 길이 막히면 당연히 불안해할 수밖에.

다행이라면 주축 대부분이 어느 정도 이해를 해주고는 있다는 점이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이거 사실이야?”

내 물음에 에이미가 조용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발단은 이러했다.

토인족 소녀가 이번 혼약식을 하면서 각국에서 보내온 선물을 정리하고 분류하던 중 사망한 수인족 시종, 바트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급한 일이 있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바트는 짐을 정리해 그것을 장부에 적어놓으려 했고. 그 내용물을 확인하던 도중…….

피를 쏟으며 사망했다.

사인은 간단했다.

체내 파열.

장기가 하나도 남김없이 처참하게 죽은 꼴이었다.

“형님…… 이 방법은…….”

“알고 있어?”

“유명하죠…… 마스터를 암살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니까요.”

내부에 마나를 지닌 이의 마나를 역류시켜 혈관과 내장을 파열시킨다.

일에 휘말린 바트는 운이 없게도 마나량이 남들보다 상당수 많은 편이었다.

“마스터 급을 노린 암살이라…….”

“페르세르크 님을 노린 선물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혼약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뿌득…….

“어떤 새끼야.”

내 물음에 에이미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게…….”

말끝을 흐린 에이미는 한참 동안 우물쭈물하다 천천히 입을 뻐끔거렸다.

동시에.

덜컥.

“데이비. 이야기 들었어.”

익숙하게 문을 열고 들어온 일리나 데 팔란에게 모두의 시선이 몰린다.

“왜…… 그래?”

싸늘한 침묵이 오가는 방안을 둘러보며 일리나가 의아한 듯 물어왔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에이미가 떨리는 손가락으로 일리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죄…… 죄송하지만, 일리나 데 팔란 황녀 저하께서 페르세르크 님께 보내신 선물에서…….”

일리나는 기본적으로 눈치가 빠르다.

“무…… 무슨 소리야?”

당황한 듯 일리나가 한발 물러났다.

“무슨 소리냐고.”

“일리나, 하나 물어보자.”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녀가 떨리는 눈으로 나를 보며 한 발 더 물러났다.

내가 가까이 갈수록 그녀는 두려움에 쌓인 것처럼 계속해서 물러났다.

“페르세르크에게 축복의 석을 보낸 것이 사실이야?”

조용한 질문에 그녀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떨리는 손으로 파르르 떨며 그녀가 소리 질렀다.

“그…… 그렇긴 하지만!”

“…….”

“아…… 아니야. 데이비, 내가 아니라고!”

당황한 그녀가 어떻게든 소리치려던 찰나였다.

“저하, 중요한 정보입니다.”

동시에 아무것도 없던 허공 속에서 검은 복장을 입은 사내 두어 명이 나타나며 내게 다가왔다.

이전 달맞이 꿀 사태 이후로 메아리가 다시금 보내준 정보원이었다.

그들은 내게 무언가 말하려다 일리나를 발견하고 놀란 듯 침묵한다.

“뭐야. 무슨 일인데.”

“…….”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 빨리 말해.”

“그…… 그것이…….”

정보원은 눈치를 살피는 듯 하더니 이내 내게 조심스레 다가왔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속삭였다.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소리였지만 들을 이들은 다 들은 후였다.

청각이 하나같이 좋은 편이니까.

“에이미.”

“예…… 예! 저하!”

“일리나를 객실에 감금시켜.”

싸늘한 내 한마디에 일리나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데이비…… 내가 아냐…… 내가 아니라고!!”

다급한 외침을 하며 그녀가 뒤이어 들어온 영지 근위병들에게 끌려나가기 시작했다.

“륀느, 따라가서 지켜, 내 명령이 있기 전까진 어떤 인간도 들이지 말라고. 필요하면 무력도 허용하겠다.”

“륀느, 명령 인수.”

“데이비!!! 데이비!!”

나를 부르며 끌려나간 일리나를 말없이 지켜보던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정보원들을 향해 물었다.

“그 정보, 거짓 없어야 할 거다.”

정보원이 가져온 이야기는 간단했다. 일리나가 축복의 석을 구한 이후 이곳에 오기 전 오크 마법사들에게 들렀었다는 소식이었다.

마스터를 죽일 수 있는 암살기법.

마나 역류를 시키기 위해선 오크들이 사용하는 특이한 오크만의 토템 마법이 필요했다.

* * *

일리나가 감금된 소식이 퍼져나가자 사방에서 난리가 났다.

설마 나와 각별한 관계인 일리나가 그런 짓을 저질렀다곤 생각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유감입니다. 데이비 왕자님.”

“렌도스 황자님.”

6황자, 렌도스 데 팔란.

일리나의 오라비 중 하나다.

“설마. 그 어리석은 것이 치기에 휩쓸려 그런 짓을 할 줄이야…….”

렌도스의 한숨 소리에 나는 조용히 침묵한 채 물었다.

“이 일은 시종의 문제가 아닙니다.”

시종이었던 바트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엄연히 페르세르크를 노린 암살기도였다.

그 정도 저주가 서린 물건이라면 페르세르크를 죽일 순 없어도 나름대로 타격을 줄 수는 있다.

물론, 그녀에게 낌새가 보이자마자 내가 처리했을 테지만.

결과적으로 그녀를 노렸다는 건 변치 않는다.

“이 일로 팔란 제국과 라운 왕국 사이에 큰 불화가 생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원하는 게 있으십니까?”

“네. 일리나를 데리고 고국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미우나 고우나 제 동생이니까요. 데려가서 정식으로 처벌을 내릴…….”

“아뇨. 일리나 데 팔란 황녀의 처우는 이곳에서 정할 겁니다.”

“데이비 왕자님.”

싸늘하디 싸늘한 내 대답에 그가 놀란 듯 나를 바라보았다.

“팔란 제국과 라운 왕국의 과거 조약사항을 보면 팔란 제국민이 범죄를 일으켰을 경우 신변을 제국에서 인도받아 그에 따라 적법한 절차를…….”

“살리반 황태자께는 따로 말씀드리지요. 예외 조약사항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페르세르크는 이미 저와 혼약을 했고, 저는 비록 계승권을 버렸다지만 왕족입니다. 일반 범죄가 아닌 국가 전복에 해당하는 범죄나 왕족을 시해하려 한 범죄는 조약사항에서 예외로 해당하겠죠.”

내 말에 렌도스가 우물쭈물했다.

“후우……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과 내용. 그리고 결과에 대해 저희 제국에 반드시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불미스러운 일이라곤 하지만.”

“알겠습니다.”

내 말에 렌도스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쯧쯧…… 멍청하고 아둔한 것이 어쩌다가…….”

“렌도스 황자님.”

그때, 떠나가던 그를 뒤에서 부른 내가 조용히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일리나가 혹 이상한 낌새를 보인 바가 있습니까?”

“……글쎄요. 하지만 그리 기분이 좋아 보이진 않더군요. 뭐, 예전부터 사랑을 독차지하고 살아온 아이니까요.”

“말씀 감사합니다.”

본래라면 불가능한 협상이다.

하지만 팔란 제국은 현재 가장 위협적인 군사 세력으로 린디스 제국이나 콘타스 제국도 아닌 라운 왕국을 꼽고 있기에 그들도 함부로 갑질을 할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단 한 명의 전략병기.

그것이 만들어낸 결과가 이것이다.

렌도스 황자가 떠나고 일리나는 객실에 유폐되었다.

갑작스런 사태에 하객으로 찾아온 이들은 당황한 듯 했지만 나는 정해진 수순대로 그들을 진정시킨 뒤 빠르게 돌려보냈다.

물론, 몇몇은 남아있었지만 말이다.

“데이비 님. 이건 뭔가 잘못됐습니다.”

율리스는 윈리와 함께 찾아와 내게 항변했다.

“뭔가 오해가 있을 겁니다. 일리나 님이 뭣 하러 그런 짓을 한단 말입니까.”

“맞아요. 오라버니. 일리나 언니는 페르언니가 결혼식 때 직접 치장하게끔 도와주셨어요.”

그녀의 말에 나는 눈을 감았다.

“데이비, 그 말은 맞아. 일리나 그 아이가 본녀를 해칠 이유라곤…….”

“잘 들어.”

내 말에 그들이 침묵한다.

“축복의 석에 서린 저주로 페르세르크를 죽일 순 없어. 하지만…….”

말끝을 흐린 나는 아직 예복을 벗지도 않은 페르세르크의 머리에 장식된 장식품 하나를 떼어냈다.

“이게 뭐로 보이나.”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의아해진다.

“마광석이다, 효과는 마나 윤활제. 그러니까. 마나 역류가 벌어지면 그걸 증폭시켜주는 힘을 한다는 거다.”

직접 가져와서 페르세르크의 머리에 꽂아준 장식이. 알고 보니 축복의 석과 섞여 그녀를 크게 다치게 할뻔했다는 소리였다.

“데이비.”

“넌 조용히 해. 페르세르크.”

짧게 말한 내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하아…… 아주 X랄 났구나 그냥.”

경사스러운 날에 큰 사고가 터졌다니.

일리나가 한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데 모든 증거와 정황이 그녀라고 말하고 있다.

“저는 믿습니다. 일리나 님이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요. 스승님께서도 같은 의견입니다.”

“오라버니……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윈리와 율리스의 말에 나는 그들에게 짧게 축객령을 내렸다.

그리고, 모두가 떠나간 직후 페르세르크와 바리스만이 남았다.

그 뒤를 이어 소식을 들은 에이리아가 들어와 내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데, 데이비 왕자님. 시, 실례지만…….”

“무슨 말을 하시려는 건지 알겠습니다만, 지금은 아무 말 하지 말아주세요.”

내 말에 에이리아가 움찔거렸다.

“페르세르크. 네가 말해봐라.”

내 말에 페르세르크가 침묵한 채 나를 본다.

“렌도스 황자와 일리나를 향해 네 권능을 썼을 때. 뭐가 보였지?”

“…… 일리나가…… 본녀를 암살하려 했다.”

심연의 권능조차 그녀가 범인이라 말한다.

“더는 이야기는 듣지 않아. 다 나가.”

싸늘하게 쏘아붙이는 나를 보며 모두가 침묵했다.

하지만 곧 페르세르크를 제외하고 모두가 나가버렸다.

“데이비.”

“…….”

“이건…….”

“난 네가 제일 중요해 페르.”

그녀를 애칭으로 부르며 내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이건 잘못됐어.”

“네 권능까지 그렇게 말했는데?”

“그래, 본녀의 권능도 그렇게 말했지, 하지만 느낌이 이상해.”

그래. 그녀가 이럴 이유가 없다. 그런데 하나도 빠짐없이 너무 칼같이 들어맞는다.

질투에 눈이 먼 자가 할법한 실수까지 디테일하기 그지없다.

“만약 일리나 그 아이가 정말로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이라면 어찌할 게야?”

그녀의 물음에 나는 눈을 감고 앓는 소리를 냈다.

어찌해야 하나.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된 기분이었다.

페르는 너무도 소중한 부인이지만, 일리나는 일리나대로 소중한 인연이었다.

한순간에 헌신짝처럼 버릴 수 없게 되어버린 아픈 손가락 말이다.

그녀와 내가 침묵하고 있던 그 순간이었다.

“그땐…….”

내가 조용히 입을 연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건 쉽지 않겠지. 하지만 네가 최우선이다.”

“데이비.”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숨기지 말고 말해.”

내 말을 끊은 그녀가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가 앉은 책상에 걸터앉아 손으로 내 멱살을 잡아 시선을 가까이했다.

“일리나를 가둔 이유가 정말로 본녀를 암살하려 해서야?”

그녀의 질문에 나는 침묵으로 다시 일관했다.

하지만 그녀에겐 숨겨본들 의미는 없어 보였다.

“아니야.”

내 대답과 동시에.

“어때, 내 말이 맞지?”

아무것도 없던 허공이 일그러지며 그 안에서 누군가가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걸어 나왔다.

“울드.”

내 말에 그녀가 빙그레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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