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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574화 (573/1,559)

제 574화

마치 마두의 거처와 같은 커다란 천막이었다.

나를 초대한 녹림은 이 산채의 두령으로 듣기로는 녹림왕이라는 모양이었다.

“어서 오시오, 이야기는 들었소. 하늘에서 오신 분이라 하였소이까.”

“녹림이 이렇게 외부인에게 친절할 줄은 몰랐는데.”

내 미소에 그가 껄껄 웃어 보였다.

“뭐, 틀린 말은 아니오만, 아무리 못 배워먹은 우리라 해도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들을 어찌할 수는 없는 게지. 그러다가 천상의 신들의 진노라도 사면 어쩔 테요.”

거짓말하고 있네.

페르세르크의 권능을 쓸 것도 없이 그의 표정만 봐도 답이 나올 수준이었다.

녹림도는 무력이 강한 산적들이 많지만, 머리가 좋다고 하진 않았으니까.

천마 독고준이 사망하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다만, 그의 설명대로라면 눈앞에 있는 이 거친 수염의 거한은 녹림의 총 두령이라는 뜻이 된다.

녹림은 72채의 산채를 지닌 전 지역의 대형 산적 패거리로 71두령과 한 명의 녹림왕이 있으니 말이다.

“한데, 녹림은 녹림왕 아래에 71두령이 있는 거로 아는데.”

“호오, 그런 것까지 알고 계시었소? 새삼 놀랍군.”

“당신이 녹림의 총 두령인가?”

“뭐, 그렇소. 나는 녹림의 총 두령이 될 몸이오.”

“될 몸?”

단어의 선택에 의아함이 서렸지만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짚고 가자고.”

“짚고 갈 것?”

“난 하늘에서 온 사자 같은 게 아니야. 신혼여행을 왔을 뿐이지.”

“음?”

내 말에 그의 눈이 꿈틀거린다.

“둘째. 이런 건 함부로 꺼내놓지 마. 죽는 수가 있다.”

아공간에서 오향장육이 담긴 접시를 그에게 내밀며 내가 싸늘하게 웃어 보였다.

“그것은.”

“네가 우리에게 대접하라고 내놓은 거지.”

“…….”

“재밌는걸 타 놨던데.”

내 말에 그의 표정이 굳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소만.”

“직접 먹어볼래? 아니면, 직접 이야기할래.”

내 물음에 그는 말없이 나를 직시했다.

그리고는 조용히 말했다.

“다시 묻겠소만. 정말로 하늘에서 온 사자가 아니오?”

“그렇지. 여행자일 뿐이야.”

“하…….”

허탈한 한숨을 내쉰 그가 조용히 나를 바라본다.

“하면 저 옆에 있는 소저도?”

“그건 스스로 판단하고.”

“…….”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그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경고는 했고. 어지간해선 문제 일으킬 생각 없어서 목숨은 살려주는데. 한 번만 더 이딴 짓을 했다간 곱게 못 넘어가.”

“당신은 이것을 먹었소?”

“맛은 좋던데.”

내 미소에 그는 자신이 앉아있던 의자의 팔걸이를 쾅! 하고 내리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콰앙!!!

동시에 사방에서 녹림도의 복장을 한 녹림도들이 들이닥치며 나와 페르세르크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겁이 없는 것인가?”

“굳이 겁먹어야 하나?”

“네놈이 하늘에서 온 사자가 아니라 함은 결국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소리일진데. 감히, 이 녹림왕 두삼 어르신을 앞에 두고도 그리 겁이 없다라…… 여행자라 하였는데 제법 실력이 출중하다 들었다.”

“그런 것도 다 이야기했나?”

“힘만 믿고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는 초출 나부랭이에게 이 무림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것도 대선배의 역할이지.”

스르릉!!

그가 기다렸다는 듯 거대한 창을 꺼내 들며 눈을 번뜩였다.

“네놈이 먹은 음식엔 내공을 봉하는 약재가 들어있다. 그 잘난 고수들도 그걸 먹고 내공을 끌어올렸다간 그 자리에서 주화입마에 빠져들게 되지.”

그런 귀한 약재가 흔하진 않을 텐데.

“투항한다면 계집의 목숨만큼은 살려주마.”

그의 말에 녹림도들이 검을 들이밀며 서서히 다가온다.

“휘유! 싸움이로구나!”

“약탈이다!”

마치 지금까지 참아왔다는 듯 환호를 내지르는 녹림도들의 모습에 페르세르크가 한숨을 내쉬었다.

“데이비, 피는 보지 않기로 했잖아.”

“그랬지.”

“굳이 도발하지 않았어도.”

“걱정 마. 피는 안 볼 거야.”

내 말에 두삼의 표정에 비웃음이 서린다.

“우고 놈에게 들었다. 제법 고수라던데. 내공을 봉하는 약을 먹고 저항하겠다면 말리진 않으마.”

스스스스슷!!

동시에 그의 창끝으로 푸르스름한 기류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절정고수 이상, 그리고 익스퍼터 급이 사용한다는 검기였다.

확실히 익스퍼터 급부터는 대단한 실력인 것이 사실이니까.

두삼이 한발 다가오자 나는 가볍게 손을 풀며 앞으로 나섰다.

“피를 볼 생각은 없는데.”

“애석하지만 조금만 보도록 하지. 네놈의 몸에서 흘리는 피와 저년이 흘릴 소량의 피 정도면 된다.”

그의 음담패설에 내 몸이 움찔거렸다.

페르세르크는 그런 나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낄낄거리는 웃음소리에 잠시 침묵한 나는 손가락을 뚜둑 소리 나게 꺾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피는 안 볼 테니 걱정 마라. 피를 흘릴지 안 흘릴지 정하는 건 니가 아니라. 내가 정하는 거다.”

“건방진 놈!”

그 말에 두삼이 거대한 체격을 이용해 빠른 속도로 돌진해왔다.

[유르그 식(式) 군중제어기]

[명치 X나 세게 치기]

콰앙!!!!

어마어마한 소리와 함께.

주변이 침묵했다.

“크릅…….”

퍽!!

동시에 굳어버린 두삼이 입을 씰룩거리자 나는 곧바로 놈의 턱을 쳐올려 입을 막은 후 싸늘하게 웃어 보였다.

“말했잖아. 피 안 볼 거라고.”

사실 내가 녹림 새끼들하고 별로 사이가 안 좋아요.

처음 검을 배울 때 녹림도 놈들의 그 비열한 전략에 엿을 좀 많이 먹었었거든.

순진하고 멍청하던 시절의 나였으니까.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천마 독고준이 만들어낸 녹림도일 뿐 실제 인간은 아니었던 만큼 놈들이 주제 파악하면 신혼여행의 자비를 베풀어서라도 그냥 두려 했다.

하지만 선을 넘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밖에.

두삼은 내가 어떻게 인간을 초월한 힘을 사용하고도 아무렇지 않은 건지 이해 못 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내가 약이 있는걸 뻔히 알면서 왜 먹었을까.”

“…….”

“생각해봤나?”

“…….”

“선 넘지 말라 경고도 했는데, 왜 경고했는지 생각해봤나?”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그의 턱을 쳐올리며 그의 턱뼈를 으스러뜨려놓았기 때문이었다.

살아남아도 평생 죽만 먹을 상이로다.

“안 해봤겠지. 해봤으면 이런 짓을 할 생각도 안 했을 테니.”

내 전신에서 투기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우고와 부고의 설명으로만 들었던 녹림왕 두삼은 내 몸에서 뻗어져 나오는 투기가 자신의 예상을 아득히 넘어버리자 파랗게 질린 얼굴로 눈을 부릅떴다.

“나머지는 어떻게 할까.”

내 중얼거림에 멍한 얼굴을 하고 있던 녹림도들은 굳은 몸이 살짝 풀린 듯 움찔거렸다.

그리고.

“주…… 죽여!!!”

뭔가 이상함을 눈치챈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는 손가락 마디를 가볍게 꺾으며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래. 그렇게 나와주면 나도 편해.”

피는 안 흘릴 테니 걱정 마라. 팔다리 하나씩만 평생 못쓰게 해줄 테니.

* * *

녹림 산채 하나가 뒤집어졌다.

예상대로 녹림왕이라던 그자는 진짜 녹림왕이 아닌 71두령 중 하나였다.

그런 그가 왜 녹림왕이라 스스로 자처하고 있었는가.

그 이유는 간단했다.

현재 녹림도들은 1명의 녹림왕 아래 71두령이 있는 게 아니라 30명이 넘는 자칭 녹림왕들의 세력싸움이 한창이기 때문이었다.

너도나도 전부 녹림왕이라 스스로를 칭하고 있으나 실력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그것도 의미는 없다.

물론 이곳의 기준으로 절정고수에 달하는 그의 실력이 마냥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녹림의 왕이라고 하기엔 부족한 것도 사실이었다.

“얼마 전 천열문이 있는 섬에서 큰 폭발음과 함께 연기가 치솟았습지요. 그래서 무슨 일인가 알아보기 위해 몇몇을 파견하기도 했었습니다요.”

모든 녹림이 멍청하게 덤벼들진 않았다.

그중 약삭빠른 몇몇은 잽싸게 머리를 조아리고 목숨을 구걸했고 굳이 좋은 여행에 피를 뿌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던 나는 그들에게서 정보를 받는 대가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 덕분일까. 그들은 내가 굳이 묻지 않은 사실까지도 모조리 털어놓았고. 녹림왕이라 자칭하던 두삼이 숨겨놓았던 보물창고까지 내게 가져다 바치며 아부를 떨어댔다.

이것들이 나를 돈으로 매수하려고 해?

라고 하기엔 상당히 많은 금은보화라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자금 걱정은 없겠다 싶어 냉큼 받아먹은 것도 사실이었다.

“이길로 쭉 가시면, 무림맹에서 관리하는 마을인 태초 마을이 나옵니다요. 절경이 많고 무학관도 존재해서 무림 초출들이 많이 들린 탓에 태초 마을이라 부릅지요.”

“거리는?”

“본래대로라면 사흘은 걸리는 거리에 있습니다만, 이 지도를 따라가신다면 반나절이면 도착할 수 있습지요. 더러운 무림맹과 관에서도 모르는 저희 녹림도만이 아는 길입지요.”

지도까지 건네주며 설명하는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필의 말이 이끄는 수레에 죽은 듯 쓰러져 있는 한자성과 천지희를 뉘었다.

그리고는 이곳 세상 사람들의 옷인 비단옷을 꺼내 페르세르크에게 입힌 뒤 나는 적당히 무림인들이 입는 복장을 하였다.

겉보기엔 귀한 집 아가씨와 그녀를 모시는 호위무사 같은 모양새가 되었지만 상관없었다.

“손 씻고 정직하게 살라고. 이렇게 말해본들 들을 놈들이 아니겠다만.”

“암요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대협의 말씀은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요!”

혹여라도 내가 마음이 변할까 긴장한 얼굴로 소리치는 녹림도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음을 던지고는 페르세르크를 말에 앉힌 뒤 뒤에 올라타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그럼 가자.”

“저대로 두게?”

“여기 인간들의 일은 알아서 처리하라 그래. 다른 세상과 다르게 여기 무림인들은 당한 놈이 멍청이라는 말이 나오는 세상이니까.”

약육강식. 그것이 싫다면 무림에 발을 들여놓지 않으면 된다.

실제로 녹림도들이 노리는 건 표행을 나서는 표국의 물품이지 무림에 발을 들여놓지 않은 행상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놈들이 선한 놈들이냐 나쁜 놈들이냐 하면 명백히 나쁜 놈들인 건 사실이다.

다만 뒤처리 못하는 주제에 괜히 오지랖 부릴 이유는 현재 내게 없었다.

“저 둘은?”

“태초 마을인지 뭔지 그곳에도 의원이 있다니까, 거기 던져주고 우린 절경이나 구경하러 다니자고.”

중원은 티오니스와는 다른 절경들이 존재한다.

내가 이곳에 와서 가장 보여주고 싶은 것은 그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행렬의 속도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녹림 산채를 떠나 태초 마을로 가는 길목에도 아름다운 절경들이 가득했으니 말이다.

페르세르크가 마법을 주로 다뤘다곤 하나 기본적으로 그녀의 육신은 인간을 초월한 육신을 가지고 있다.

가볍게 점프하는 것만으로도 바위와 바위를 넘나들며 비단옷의 자락을 흩날리는 그녀의 모습은 이곳의 이들이 말하던 선녀의 모습 그 자체였다.

또한, 그렇게 절경을 뛰어다니며 구경하는 데에 재미를 들리다 보니 환자인 두 사람을 신경 쓰지 않게 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누군가가 다가가고 있는 것 따윈, 이미 내 안중에 있지도 않았다.

* * *

“크으…….”

차린 한자성은 온몸을 덮치는 격통에 인상을 찌푸리며 정신을 차렸다.

[도망가, 자성아…….]

[너만은 살아야 한다.]

[희아를 부탁하마.]

지독한 악몽이었다. 죽어가던 사형과 사저들의 모습에 절로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은 어디인가.

멍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는 날이 저물어 노을이 진 태양을 멍하니 바라보다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는 초인 같은 힘으로 잘 움직이지도 않던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 보았다.

“희아야!! 희아……!”

급히 누군가를 찾아 부르던 그는 곧 그의 곁에 고이 누워 잠들어있는 소녀를 보고는 짧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가 찾던 희아. 즉 천지희가 누워있었기 때문이었다.

인상을 쓰며 천천히 손을 뻗은 자성은 천지희의 뺨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분명 기절하기 직전 자신들을 녹림도가 덮치고 있었다.

본래대로라면 그는 죽음을 맞이하고 희아는 놈들에게 납치되어 노리개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상황이다.

그런데 어찌 된 것인가.

멍하니 있던 그는 문득 자신의 몸 여기저기에 붕대가 감겨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치료를 받았다. 누가? 그 흉악무도한 녹림이 박애에 눈을 뜨고 자신들을 치료해 보내주기라도 한 것일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혹시라도 모를 상황에 대비해 주변을 둘러보던 자성은 곧 근처에 묶인 말과 수레, 그리고 누군가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상황으로 미뤄보건대.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은…….

녹림도에게 끌려가던 자신들을 누군가가 구해내고 응급처치를 해주었다!

그게 누구이든 간에 감사를 표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은인의 모습은 어딜 봐도 보이지 않았다.

“이 근처는 학바위의 근처…… 이렇게 소리 없이 멀리 갈만한 곳은 없을진대…….”

절경이라면 절경 중 하나이지만 이곳의 지리는 사형들과 함께 와보며 들은 바 있다.

무공의 초절정 고수 이상이 아니고서야 함부로 돌아다니다간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위험한 장소라는 것을 말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너무 많아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던 찰나.

한자성은 문득 느낀 섬뜩한 살기에 눈을 부릅뜨고 벌떡 일어났다.

스릉!!!

어디서 나온 힘인지 그는 품에 있던 검을 뽑아 들며 숲속을 향해 소리쳤다.

“누구냐! 당장 나와라!!”

그의 외침에 노을이 지고 검게 변한 숲속에서 무언가가 흐릿하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치 보호색으로 몸을 감쌌다가 나타난 것처럼 스르륵 나타난 것은 고혹적인 미소를 지닌 가죽옷에 붉은 머리칼을 지닌 여인이었다.

“어머나, 감이 좋은걸?”

느긋하게 말하는 여성은 무기도 하나 없었지만, 자성은 섬뜩한 느낌과 함께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에 있는 가죽옷의 붉은 머리를 가진 여성은 악림문. 그것도 자신의 집이나 다름없던 천열문을 멸문시켰던 악림문의 장로의 곁에 있던 그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

식은땀이 절로 흘렀다.

눈앞의 여자는 녹림도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괴물이었다.

실력이 출중하던 사형 한 명이 그녀와 싸우다 전신을 채찍에 찢겨 죽었으니 말이다.

그녀의 무기로 보이는 채찍은 없었지만 대단한 고수라는 것을 모를 순 없었다.

“섬에서 도망친 게 고작 여기야? 저런, 불쌍해서 어째.”

“대체 우리에게 왜 그러는 거지?!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자성이 분에 못 이겨 소리를 지르자 그녀가 키득키득했다.

“글쎄. 그건 장로님에게 물어보지그래? 난 시킨 대로 할 뿐이야. 그리고.”

말끝을 잠시 흐린 그녀가 천천히 움직인다.

“지금 내가 받은 명령은 네가 지키고 있는 그 꼬마 아가씨를 데려가는 것.”

생각해보면 무공수위가 가장 낮은 지희가 죽지 않고 버틴 것도 이상하긴 했었다.

그것이 처음부터 그녀를 노렸기 때문이었다면.

이해가 된다.

“희아를 데려갈 순 없을 거다. 내가 반드시 막을 테니!”

자성은 스승에게 배웠던 천열검의 기수식을 잡으며 투기를 흩뿌렸다.

눈앞의 여인은 초절정 고수들까지 찢어발길 정도의 실력을 지닌 강자.

그런 강자에게 무공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은 막내 자성은 바람 앞의 촛불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물러설 수 없었다.

[천열검]

[봉황일검]

스릉!!

마치 검이 봉황이 된 것처럼 붉게 번뜩이는 느낌이 든다.

순식간에 여인을 향해 파고든 자성은 비명을 지르는 몸의 경고도 무시한 채 덤벼들었다.

물론. 만용의 대가는 컸다.

뻐어어억!!!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자성의 몸이 그대로 꺾이듯 무너졌다.

“크…… 으…….”

“이렇게 약해서야 원…… 그래도 걱정하진 마. 장로님이 넌 살려두라 하셨거든. 그러니 저항하지 말아 주었으면 해.”

온몸의 힘이 풀려버린 자성은 지희를 향해 다가가는 여성을 보며 흐려지는 시야를 억지로 잡으려 애썼다.

어떻게 도망쳐 나왔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설마…… 나를 구해준 은인들도 네년이…….”

의식을 잃어가며 그가 놀라 소리치자 그녀가 빙그레 웃어 보였다.

“글쎄?”

의미 모를 미소를 지어 보인 그녀가 지희에게 손을 뻗으려던 찰나.

자성의 의식이 다시금 나락 속으로 빠져들려던 순간,

뻐억!!

자성은 들려올 리 없는 둔탁한 소리를 들으며 의식을 완전히 놓아버렸다.

“뭐야, 이 여자는.”

붉은 머리칼의 여인은 방어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쓰러져 기절해버렸다.

보아하니 제법 실력 있는 살수 같지만 사실 그놈이 그놈이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데이비였다.

느긋하게 중얼거리며 나타난 데이비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그 뒤로 나타난 페르세르크가 눈을 가늘게 뜨며 데이비를 째려보았다.

“또? 그대는 주먹보다 대화로 먼저 풀어보는 습성을 길러야 해.”

“안 죽였어, 걱정 마. 기절만 시켰으니까. 어서 자리 펴고 잡아 온 것들이나 구워 먹자.”

“노린내가 상당할 텐데?”

“내가 누구야. 악성 곰팡이도 먹을 수 있는 거로 바꾸는 데엔 내가 전문가야.”

“맛은 보장 못 하지만?”

“뭐, 그거야…….”

“그런데, 저 여자는 저대로 둬도 되는 게야?”

“깨어났을 땐 우리는 없을 거야. 신경 쓰지 마.”

붉은 머리칼의 여인이 기절한 것조차 알지 못하고 혼절해버린 자성이 들었다면 피를 토할 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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