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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578화 (577/1,559)

제 578화

거대한 푸른 호랑이 가죽을 마치 날다람쥐처럼 쥐고 펄럭거린다.

그 모습이 퍽 귀여웠는지 페르세르크가 소리 죽여 쿡쿡 웃어댔다.

허황된 말이다.

영수가 어떤 존재이던가!

붉은 머리 여성은 기억 속에서 거대한 사슬에 묶인 채 발광하던 푸른 호랑이를 기억했다.

단순한 호랑이와 그 크기부터가 다르다.

높이만 해도 4~5미터에 달하고, 쭉 편 몸은 그보다 훨씬 더 긴 몸을 지니고 있다.

앞발을 휘두르면 바위가 가루가 되어 무너져 내렸고 단단한 어금니는 검기로도 베지 못한다.

그런 괴물을.

지금 저 내공도 느껴지지 않는 청년이 죽였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하하. 웃기지 마. 거짓말은 이 누나가 그리 좋아하지 않아.”

붉은 머리 여성은 장난기가 사라진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 직접 죽여주겠어.”

살기등등한 기세가 그녀의 주변으로 퍼져나가며 그녀의 손에 쥐어진 채찍에 검푸른 색의 기류가 넘실거리기 시작한다.

* * *

그녀의 살기에 자경단원들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세, 세상에…… 끔찍한 투기다!”

“이…… 이 정도면 초절정 급 고수 이상!”

초절정.

티오니스로 치면 최상급 익스퍼터 이상에서 마스터 급에 이르는 경지로 지금 이곳의 수준을 생각하면 대단한 위치라는 모양이었다.

다만 그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인간들과 이미 질릴 만큼 싸워본 입장에선 그리 마음에 차는 수준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녀는 이 와중에도 본신의 힘을 모두 드러내지 않았다.

악림문이라.

이쪽은 그나마 싹수가 있네.

솔직한 심정으로 아직 이 세상의 전부를 본 건 아니라지만 실망감이 너무 컸다.

무공은 일반적인 익스퍼터 검사들이 익히는 무학의 방식에 비해 너무 디테일하다.

그렇기에 동수에선 앞설지 모르나.

그 과정이 너무도 험난하다.

무공에서는 검을 구름에 비교하고, 뇌광에 비교하며, 바람과 꽃에 비교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두루뭉술한 표현 자체에 그리 낙관적이지 않았다.

방식이야 어쨌건 무학이라는 게 결국은 누군가를 헤치는 기술이다.

거기엔 어떤 합리화도 필요하지 않다.

숨 막히는 대치.

그사이 먼저 움직인 것은 붉은 머리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기류를 흘려보내 빠르게 채찍을 휘두르며 들어왔다.

채찍을 무기로 쓰는 적은 그리 많지 않다.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그녀의 수준은 초창기 내가 만났던 백작급 뱀파이어이자 리네스 왕비의 시녀로 숨어있던 샤리와 비슷한 수준, 그 정도뿐이었다.

물론, 그 뱀파이어 샤리조차 마스터 급 강자라는 사실에는 딱히 반박할 생각은 없었다.

쒜에에엑!!!

공기가 찢어지는 듯한 소음과 함께 일순간 거대한 소리가 나며 채찍의 끝에 달린 돌기가 내 머리를 향해 파고들었다.

“아…… 안돼!”

내가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자, 한자성이 놀라 소리쳤다.

하지만 그가 생각한 결과는 벌어지지 않았다.

쉬리리릭!! 콰앙!!!

그녀의 채찍이 닿기도 전에 난입한 인물들로 인해 그녀의 신형이 크게 뒤흔들렸기 때문이었다.

“갈!!”

갑작스레 나타난 이들은 총 세 명이었다.

백염이 지긋한 노인 한 명과 젊은 여인 둘.

하지만 그들이 풍기는 기세는 나이나 성별에 관련하지 않고 상당한 수준에 속했다.

“한명은 마스터 급. 나머지 둘은 익스퍼터 최상급이로구나.”

난입한 세 사람을 보던 페르세르크가 눈을 반짝였다.

“격운장법!”

터어엉!!!

“읏. 다 죽어가는 노친네가!”

순식간에 파고든 백염의 노인이 그녀의 복부에 장법을 꽂아 넣자 붉은 머리의 여인이 인상을 찌푸린 채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듯 노인의 뒤편에 있던 두 여인이 칼군무를 추듯 검을 들어 올리며 정확한 합을 맞춰 파고들었다.

카앙!!

순식간에 접근해오는 두 사람의 공세에 여인은 곧바로 채찍을 버리고 단검을 뽑아 응수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뭐, 야…… 어째서 몸이?!”

속수무책으로 밀리며 붉은 머리 여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어째서…… 어째서 내공이 움직이지 않는 거야!!”

그녀는 자신의 상태에 이상함을 느꼈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닥쳐라! 네년의 악행은 여기서 끝이다!”

노인의 노호성에 붉은 머리 여인이 한발 두발 물러나며 주변을 살폈다.

도망가려고?

안되지. 마침 흥미가 돋았는데.

나는 그녀를 무시하는 척하며 가볍게 마나를 끌어 올렸다.

스르륵…….

동시에 그녀의 몸 안에서 활성화되는 특유의 검은 힘이 짓눌리며 사그라져 버렸다.

퍼엉!!!

의지대로 움직여야 할 몸이 움직이지 않은 붉은 머리 여인은 결국 두 여인의 합공에 큰 부상을 입었고, 복부를 부여잡으며 무릎을 꿇었다.

“추포하거라. 데려가서 얻어내야 할 정보가 많구나.”

노인의 말에 여인들은 빠르게 그녀의 점혈을 짚었고 밧줄을 꺼내 그녀를 꽁꽁 묶었다.

“하…… 이게 끝인 줄 아나 봐?”

빈정거리는 말투에 그녀를 묶던 한 여인이 싸늘하게 쏘아붙였다.

“그것은 네년이 선택할 일이 아니다.”

“…….”

짜증스레 인상을 찌푸린 그녀가 곧이어 내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내 표정에서 무언가를 읽었는지 악귀처럼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너구나.”

“…….”

“너 때문이었어.”

눈치가 빠른 여자였다.

그녀의 움직임이 불안정했던 것도. 좀 전 이곳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사용했던 수단조차 봉인 당한 게 내 탓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아챘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구구구궁…… 투두둑…….

“음?”

“과르르르르!!”

“이런! 동굴이 무너진다! 빨리 이곳을 이탈하게! 어서!”

갑작스런 소음과 함께 거대한 호리 동굴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하자 다급한 노인의 외침이 들려왔다.

이에 멍한 얼굴을 하고 있던 자경단원들은 기절한 곽중천과 무리로 인해 몸을 비틀거리는 한자성을 둘러매고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두가 그 동굴을 빠져나왔을 때.

절경 중 하나로 손꼽히던 호리 동굴은 흔적도 없이 무너져 내렸다.

* * *

동굴은 깔끔하게 무너져 내려버렸다.

그 탓에 추가적인 조사도 힘든 상황.

백염의 노인은 외부인인 나의 존재를 거론하며 일단은 돌아갈 것을 제안했다.

“이야기 들었네. 자네가 천열문의 생존자를 데려왔다고?”

길게 늘어뜨린 백염을 쓸어내리며 그가 조용히 말했다.

“어쩌다 보니 그리됐습니다.”

“우선 내 감사를 대신 전하겠네. 노부는 여기 있는 이 못난 놈의 할애비인 곽도영이라고 하네.”

공동파의 2대 제자 곽준성의 할아버지.

자신을 소개한 노인을 보니 확실히 눈매가 조금 닮은 듯 싶었다.

“데이비 올 라운이라고 합니다.”

내 말에 그가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데이비라…… 혹 서역인의 후예인가?”

“뭐, 비슷합니다. 여행 차원에서 이곳으로 온 것이니까요.”

“세상에…… 격변 이후 서역인들이 보이지 않게 되었건만. 이리 후손을 만나게 되는군.”

그렇게 말하며 그가 나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참으로 신기한 인사로고. 내공이 한 줌도 느껴지지 않는 일반인이건만. 정말로 타락한 영수를 잡았는가?”

“타락한 영수?”

“자네가 가죽을 얻었다던 그 호랑이 말일세.”

그의 말에 나는 동굴 안쪽에 묶여있던 호랑이를 떠올렸다.

“아. 어쩌다 보니 그리되었습니다.”

“호오…… 신기하군. 대체 무슨 수로 잡았는가.”

그의 질문에 나선 것은 다른 인물이었다.

“거짓부렁일 게 뻔하지 않습니까 할아버님.”

뚱한 얼굴로 말하는 건 내게 맞아 기절해버렸던 곽준성이었다.

그는 좋은 의도였던 나쁜 의도였던 내게 기습을 당해 기절했다는 게 마음에 안 드는 표정이었다.

“준성이 이놈! 표정을 풀지 못하겠느냐!”

“아니, 말이 나와서 하는 말입니다. 할아버님! 솔직히 제가 뭐 나쁜 짓이라도 했습니까? 위험해 보여서 구하러 갔는데 그런 제 뒤통수를 후려갈기다니요!”

그의 외침에 페르세르크가 쿡쿡 웃어 보이자 곽준성이 벌게진 얼굴로 시선을 회피해버렸다.

“거…… 거짓말일 게 뻔합니다! 아무리 봐도 무공을 익힌 이가 아니에요.”

그의 말에 노인 곽도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솔직히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기껏 구하러 갔더니 남의 뒤통수나 치는 작자입니다! 할아버님께서 허락만 해주신다면 제가 직접 증명해보겠습니다!”

그의 외침에 노인 곽도영이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뜻이더냐.”

“나와 비무를 해라! 네놈이 정녕 영수를 잡을 정도의 힘을 지녔다면 나와의 비무에서 도망칠 이유가 없을 거다!”

그는 기절 직후 내가 요귀들을 어떻게 날려버렸는지 전혀 보지 못했다.

“내가 왜?”

“그래. 받아들이기 힘들겠지. 거짓부렁일 테니!! 하나 걱정 마라. 일반인이 강해 보이고 싶어서 거짓말하는 경우는 내 수도 없이…….”

빠악!!!

결국, 참다못한 곽도영이 손을 휘젓자 그의 곁에 있던 여인 하나가 그대로 그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커헉!! 효영 누님! 뭐 하는 짓…….”

“닥치거라. 할아버님의 앞이다.”

“크윽…….”

인상을 찌푸리는 그를 뒤로한 채 차분한 표정으로 여인이 조용히 말했다.

“결례를 사과드리지요.”

“괜찮습니다.”

내 대답에 그녀가 쓴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혹 지희를 구하실 때 다른 것은 보지 못하셨습니까.”

“지희라면…….”

“소협께서 구해오신 소녀입니다.”

그녀의 물음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별건 없네요. 멀리서 연기가 나고 있는 건 봤습니다만.”

“그렇군요.”

그녀가 조용히 고개를 숙여 보인 뒤 침묵하자 곽준성이 인상을 찌푸린 채 투덜거렸다.

“거, 천열문에서 연기 나는 걸 누가 못 봐서 그러나…….”

빠악!!!

이번엔 다른 여인이었다.

“입 다물어, 곽준성.”

“크…… 큰 누님…….”

이번엔 겁을 집어먹었는지 곽준성이 움찔거렸다.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알려줄 수 있겠나. 영수를 어찌 잡았는지.”

그의 물음에 나는 심드렁하게 사실 그대로 대답했다.

“쥐어패더니 죽더군요.”

내 말에 그가 벙찐 표정을 지어 보인다.

“쥐어패더니 죽었다?”

“예. 그리 강한 놈은 아니었습니다.”

내 답변에 그는 한참 동안 침묵했다.

“그렇군. 자네…… 내공이 아니라 외공을 극도로 수련한 무인이었군.”

정확히는 일부일 뿐이지만 상관없었다.

“외공을요? 할아버님. 아무리 외공을 익힌다 해도 저자의 체격을 보건대, 그리 강한 체력이 나올 리가…….”

“서역의 무술 중 외공을 단련하는 기술이 있다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청년의 몸에서 내공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가는구나.”

그는 내가 서역인의 후예이며 서역인들이 사용하던 무술을 익혔다고 판단한 듯 보였다.

“그렇군요. 그렇게 말하면 이해가 갑니다.”

저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다하고 있지만, 굳이 오해를 풀 생각을 하진 않았다. 그냥 너희들의 수준이 낮아서 못 보는 거라 말해본들 좋은 결과를 낳을 리는 만무하다.

“후우…… 천열문의 비고를 듣고 곧바로 왔네만 이리 한발 늦을 줄은…….”

그가 쓰게 중얼거렸다.

“어찌 되었건 고맙네. 비록 자성 저 아이는 나도 처음 보았다만 그래도 천열문의 소중한 가족. 그리고 천금 장문인의 유일한 혈육인 지희를 구해와 준 점에 대해선 뭐라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네.”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여행길에 쓰러진 게 보여서 데려온 것 뿐입니다.”

“그것으로도 큰 은혜일세. 혹,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보시게. 내 가능한 한 다 들어줌세.”

그의 말에 나는 품 안에서 벽옥색의 보성파편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이것을 찾고 있습니다. 이것과 비슷한 기운을 풍기는 보석이나 더 선명한 힘을 띠는 보석을 본 적이 없으신지요.”

내 물음에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특이한 보석이로고…… 미안하네. 내 떠오르는 건 없네.”

그의 말에 나는 짧게 입맛을 다셨다. 애초에 찾기 쉬우면 그걸 케인이 그냥 놔뒀을 리 없다.

“제가 본적이 있습니다.”

그때 곽도영의 곁에 있던 여인이 조용히 말했다.

“미영이 네가 알고 있단 말이더냐?”

“예, 정확하진 않으나 비슷한 것을 본 바 있습니다. 할아버님.”

“호오…… 보석에 흥미 없는 네가 그리 말하다니 놀랍구나.”

그의 말에 미영이라 불린 여인이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그…… 그것이 우연히 본 것이라…….”

“어디서 보셨습니까?”

“동부의 상인연합 쪽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장물아비가 가지고 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녀의 말에 곽도영이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호오. 그래. 그거 반가운 소식이로구나. 어떠한가. 도움이 되었는가.”

“예. 준비되는 대로 떠나야겠네요.”

내 대답에 그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수염을 쓸어내렸다.

그리고는 고민하듯 나를 바라보다 물었다.

“자네는 강한가?”

“기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디 가서 맞고 다닐 정도는 아닙니다.”

내 말에 곽준성이 피식 비웃음을 던졌다.

“서역인의 조잡한 무술로 무슨 자신감인지 원…… 악?!”

“닥치라고 했다. 준성.”

“크으…….”

쓸데없는 사족을 달다 또 한 대 맞은 곽준성이 인상을 찌푸린다.

“그래. 하면 의뢰를 한번 받아볼 생각이 없는가.”

그의 말에 내가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동부에는 무림맹의 본부가 있네. 그곳으로 자성이 그 아이와 희아를 데리고 가주게. 보상은 섭섭잖게 해주지.”

* * *

백염검성 곽도영.

그는 검성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실력가이지만 이번 행렬에는 따라오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동굴에서 잡은 붉은 머리의 여인을 심문할 겸. 혹여나 추가로 있을 태초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었다.

화경 급의 고수가 있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일 테니.

“저…… 은공.”

그렇게 동부로 떠나기 위해 마을의 외벽을 나선 나는 조심스레 내게 다가온 자성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야.”

“죄송하지만 혹, 저를 구하셨을 때 목걸이를 보지 못하셨습니까.”

그의 질문에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목걸이?”

“예, 호리병 장식이 달린 목걸이입니다만…….”

“글쎄. 따로 보진 못했는데.”

내 말에 그가 쓴 표정을 지어 보였다.

“…….”

“중요한 물건이었나?”

“아뇨. 괜찮습니다.”

전혀 안 괜찮아 보이는데.“

목걸이라…….

나는 녹림채를 떠나기 전 내게 실실 웃으며 아양을 떨던 우고부고 형제에게 받았던 목걸이를 떠올렸다.

[대…… 대협! 이것도 가지고 가십시오! 실은 이것도 저 치들의 물건인지라…… 헤헤.]

호리병 형태의 목걸이.

하지만 나는 이것을 곧바로 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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