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80화
“끄어어어억!! 끄억!!”
보는 사람이 표정을 찌푸릴 정도로 고통스러운 작업이었다.
우드득!! 우득!
사람의 근육과 뼈가 저렇게 뒤틀릴 수가 있는가.
무공을 익히는데에도 과거 어릴 때부터 시행하는 고통스러운 고행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도화선녀 곽미영과 공동파 2대 제자 곽준성이 보기에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은 그런 것과는 달랐다.
“끄억!! 컥!!”
얼마나 심했는지 죽은 눈을 한 채 멍하니 있던 천지희가 화들짝 놀라 파르르 떨 정도였다.
뼈를 뽑았다가 다시 맞추고 일부러 근육을 파열시켰다가 다시 조립하여 회복시킨다.
내부를 보지 못하는 이들은 그저 비명에 표정을 굳힐 뿐이지만 정작 본인인 한자성은 죽을 맛이었다.
“그…… 그만…….”
“네 복수심은 그게 전부냐?”
“…….”
내 물음에 그가 우뚝 멈췄다.
“거기서 그렇게 아무것도 해결 못 하고 객사하고 반으로 갈려 뒈져버리고 싶으면 여기서 포기해. 그만둬줄 테니.”
내 말에 그는 이를 악물었다.
“부탁…… 드립니다.”
처참한 비명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 * *
“할아버님.”
백염의 검강이 마치 태양과도 같다 하여 붙여진 백염검성 곽도영은 자신의 앞에 앉아 차를 올리는 손녀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그래, 영아야, 무슨 일이더냐.”
“정말 괜찮은 겁니까?”
“무엇이 말이더냐?”
“그…… 성이와 미영 언니를 추가 인원 없이 단둘이서만 보내도 말이죠.”
“흐음…… 넌 그 데이비라는 서역 청년에 대해 아직도 못 미더운 게냐?”
“솔직히 말이 안 되지요. 서역인들의 무술은 저도 본 적이 있습니다만. 그들 또한 내공과 비슷한 것을 사용했었습니다.”
이제는 없지만.
불안한 표정을 드러내는 효영의 의심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안전하다 해도 걱정입니다. 할아버님. 솔직히 소녀는 그자를 믿지 못하겠습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하면 어찌하여…….”
효영의 물음에 백염검성 곽도영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말했다.
“이 나이를 먹고 얻은 것이라곤 무학뿐만이 아니다.”
“예?”
“그 청년의 나이가 얼마나 되어 보이더냐.”
“많이 잡아야 약관의 나이 정도였습니다만…….”
“그런 청년이 어찌하여 이 할애비 조차 뛰어넘는 세월을 눈에 담고 있을까.”
“…….”
“어떤 의미로건 이상하지 않더냐. 내공이 전혀 느껴지지 않더라니.”
“하지만 그의 내공은…….”
“그래. 일반인만도 못하지. 아예 없는 수준이었다. 그럼 다시 물으마.”
네가 본 서역인의 무술 중 내공을 전혀 쓰지 않고 외공만으로 영수를 잡을 힘을 끌어내는 인간을 본 적이 있더냐.“
“할아버님…… 그 말은…….”
“이 늙은이는 사실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겠구나. 하나. 할애비가 생각한 것이 맞다면 그는 두 가지를 이뤄내고 있다.”
그저 이론상으로만 존재할 뿐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경지.
그야말로 입신도 아닌, 신의 경지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절대 경지.
“물극필반…… 하지만 할아버님! 그건 그저 설화에나 나올법한 경지가 아닌가요?! 이론상으로만 존재할 뿐 그 어떤 이도…….”
물극필반.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전한다. 극도의 내공은 곧 없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개미가 빌딩과 벽을 보는 건 차이가 없다.
그렇기에 말이 되지 않았다.
인간이 60년 동안 내공을 모아야 이뤄낼 수 있는 경지가 1갑자의 내공이 아니던가.
하지만 반박귀진이 가능하려면 이론상 최소 20갑자 이상의 내공이 필요하다.
이 또한 보는 이의 경지에 따라 더 높아짐으로 백염검성 곽도영의 시선으로도 느끼지 못했다면. 상식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내공은 총 40갑자.
그게 가능하다고? 매년 어마어마한 영약과 영초들을 먹고 그걸 모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면 가능이나 할까.
데이비라는 그 서역 청년의 마나가 그토록 방대하다면 한 가지 더 현실 가능성이 적은 가설이 가능해진다.
“바…… 반로환동까지…….”
“가능성은 낮지. 하지만 그게 맞다고 한다면 그는 적이 아닐 확률이 높다.”
그런 강자라면 굳이 자신을 숨길 이유가 없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적으로 돌아서는 것만으로도 이 현재의 무림은 끝장일 테니까.
“…….”
효영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침묵으로 일관했다.
* * *
“옛날이야기를 하나 해주마.”
침을 질질 흘리며 뻗어있는 자성의 곁에 앉은 나는 모닥불에 불쏘시개를 던져넣으며 가볍게 마나를 끌어 올렸다.
그러자 화염이 선명한 빛을 내뿜으며 주변을 밝게 만든다.
“흐으…… 끄윽…….”
“옛날…… 이야기 말입니까.”
그는 다 죽어가는 얼굴로 끙끙대며 내게 물어왔다.
“그래. 재능 없던 한 마인에 대한 이야기.”
내 말에 흥미가 돋은 것일까.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곽 씨 남매가 조심스레 다가오는 게 보였다.
“어디 보자…… 그래. 그 양반의 이름은 ‘이 준’이라고 했지.”
“처음 듣는 이름인데? 삼류낭인의 이야기인가?”
“조용히 해라 멍청한 놈.”
“뭐…… 뭐야?!”
빠악!!
내 말에 곽준성이 뭐라 소리치려 했지만 곽미영의 손바닥에 뒤통수를 맞고 침묵했다.
“이준이라…… 이름이 특이하네요.”
“그래. 역사에는 안 남아있으니까.”
“당신은 그런걸 어찌 알고 계시죠?”
“조용히 하세요. 멍청한 소저.”
“뭐…… 뭐라고요?!”
내 말에 곽미영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동방 출신인 그는 바보라 불리던 아비와 일국의 공주의 자식이었다더라.”
내 말에 끙끙대던 곽준성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흥미가 동한 것일까.
멍한 얼굴로 페르세르크의 곁에 앉아있던 지희마저 나를 바라본다.
“아비의 이름은 이온달. 어미의 이름은 연평화.”
내 말에 곰곰이 침묵하던 곽준성이 눈을 크게 떴다.
“이온달…… 에 연평화…… 설마 동주 왕국의 이달 장군을 말하는?! 단신으로 수많은 무림인들을 꺾고 절대자로서 이름을 날렸으나 동맹국의 배신으로 결국 젊은 나이에 눈을 감았다는…….”
“…… 한 번만 더 주둥이 놀리면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다.”
“아, 알았으니 계속해봐!”
“아비는 네 말대로 뛰어난 장군이었지. 어미는 평원 왕의 딸이었고. 과거 평원 왕은 자신의 딸이었던 연평화에게 그렇게 말하곤 했다고 해. 계속 울면 최고의 바보라 알려진 백치. 온달에게 시집을 보낸다고.”
백치, 바보.
[한 번만 더 울면 저 저 소문이 자자한 백치 바보 온달에게 시집을 보낼 테니 그리 알 거라!]
“평원 왕은 그 말이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올지 몰랐거든. 실제로 어여쁘게 자라 왕국 최고의 미인으로 불리던 연평화가 돌연 온달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왕궁을 뛰쳐나갔으니까.”
그렇게 온달을 찾아간 연평화는 온달의 노모를 설득하여 그의 부인이 되었고 두 사람은 백년가약을 맺었다.
물론, 바보였던 온달이 제대로 된 남편 구실을 할 거라곤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이달 장군과 평강 왕녀의 이야기군요…… 저희 가문 내에서도 그분들에 대한 무용을 들어 알고 있습니다. 바보였던 이달 장군을 평강 왕녀가 가르치고 뒷바라지하여 훌륭한 존재로 만들어냈다고. 지금은 그 흔적도 남아 있지 않지만요.”
그 말에 나는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래. 이 온달의 이야기는 그렇지. 크게 틀린 점은 없어. 하지만 말이야. 온달을 죽인 건 배신자이되 배신자가 아니야.”
“그럼…….”
“평강 왕녀의 아비. 평원 왕의 손에 죽었다.”
담담한 말에 주변이 침묵했다.
“평원 왕은 왕족인 자신이 직접 무너뜨린 부족의 부족장 아들이었던 온달이 거짓 바보 행세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어. 그래서 죽였지. 거기에 멈추지 않고 그의 흔적이었던 어린 아들마저 죽이려 했어.”
“…….”
“이준…… 이라.”
“평강 왕녀는 어떻게든 아들을 도피시켰지. 중간에 이상한 경로로 빠져서 흘러 들어가긴 했지만, 성공적으로 도망쳤어. 거기가 어디였냐면……”
마교.
초창기의 마교, 환마교였다.
“환마교…… 천마 독고준에 의해 무너진 초기의 마교군요. 무림 역사상 최악의 존재…… 최흉의 무인…….”
“초창기 환마교는 단순한 마교 중 하나일 뿐이었지. 사실상 이렇다 할 건 없었거든. 이준은 그곳에서 오래도록 수련을 받았지.”
하지만 그는 재능이 없었다.
내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공을 모아도 다시 흩어버리기 일쑤였다.
재능이 없는 자의 기본적인 표본이었다.
“당연히 환마교에서도 그는 재능이 없는 인물이라 판단했고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지. 그렇게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이준의 나이가 불혹(40)이 되었을 때까지도 그는 말단 교단원을 벗어나지 못했어. 그때 당시 그의 무공 수위는 이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지.”
나이 40이 넘어 살아있는 주제에 이류에 멈춘 것은 그의 재능이 얼마나 없었는지를 알게 해주었다.
아비는 어마어마한 재능을 지닌 존재였으나. 아들은 그 반대였다.
이토록 상대적인 경우는 잘 보기 힘들다.
“때마침 환마교는 자신의 위세를 키워 슬슬 자신들의 야욕을 드러내고 있었다. 환마교의 군주이자 교주인 환마신군은 무림과의 전쟁을 위해 실력이 없고 그리 중요하지 않은 교단원들에게 한가지 실험을 했다.”
오랫동안 마공을 익혀온 마인의 몸속에 뒤틀린 힘을 쑤셔 박은 것이다.
“일백여 명이 투입되었지만 살아남은 건 단 한 명이었어.”
“설마…….”
환마교 역사상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던 그 끔찍한 실험에서 살아남은 건 다름 아닌 온달의 아들, 이준이었다.
“사실 이준은 재능이 없었던 게 아니야. 평원 왕이 이준을 죽이려 독을 사용했을 때 죽어가던 아들을 위해 평강 왕녀는 자신의 생명을 불태워 진기를 이용. 아들의 무공을 완전히 묶어버리고 목숨만은 살려 도망 보냈다.”
“흐음…….”
“문제는 그 체질에 있었어. 온달은 어릴 때부터 무공을 익힐 수 없는 몸이라 하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바보행세를 했지. 하지만 연평화와 만나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 그 체질을 전화위복으로 개선. 압도적인 무인이 될 수 있었다.”
그의 아들이라고 다를까. 아니, 아들의 경우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더 심각한 둔재의 재능이었지만 내부엔 제 아비를 뛰어넘는 힘이 잠들어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의 육신이. 환마교의 실험으로 인해 깨어나 버린 것이다.
“그렇게 깨어난 이준은 자신의 변화에 경악했지. 그동안 노력해도 전혀 성취가 없던 무공이 압도적으로 증가했으니까.”
그는 거기에서 마공에 완전히 심취해버렸다.
“미쳐버린 거지. 갑작스레 힘을 쥐고 그것을 제어할 정신력이 부족했으니까.”
그는 그렇게 환마교의 충실한 무기가 되어 무림과의 전쟁에 동원되었다. 당연히 명령을 거부할 순 없었다.
피바람이 부는 지독한 전쟁 속에서 이준은 수많은 고비를 넘기며 계속해서 강해졌다.
하지만 어느 날.
무림맹이 작당하고 미끼로 내던진 한 가문에서 그가 작은 아이를 하나 발견하면서 이야기는 달라졌다.
“무림맹이 한 가문을 미끼로 던졌다고요?”
“그래. 지금은 멸문해서 없나? 독고 가문. 환마교에서 독고 가문을 멸문시키고 뒤늦게 도착한 이준이 생존자를 보고 변덕을 부려 살렸다, 정도?”
“독고…… 잠깐만요! 독고라는 가문은 천마의 가문아니었나요?!”
“정확히는 천마의 가문이 아니야. 명백히 무림을 위해 살아가고 정과 의 그리고 협을 위해 살아가던 무림 가문 일파일 뿐이었어.”
이준은 모두가 몰살된 그 폐허 속에서 작은 소녀 하나를 발견했고, 그를 향해 저주를 퍼붓는 아이를 보며 처음으로 이 이유 모를 세력 다툼에 염증을 느꼈다.
“그때 그는 처음으로 묘한 감정이라는 걸 느꼈어. 후에 그게 죄책감이라는 것도 알았고, 그래서 거의 홀린 것처럼 그 아이를 데리고 다녔지. 교단의 명령까지 무시해가면서.”
“아이의 이름은 독고연. 이준의 일생에 남은 유일한 아픈 손가락이며, 나이 불혹이 넘은 그 도둑놈이 유일하게 사랑한 여인.”
“…….”
“그거 아나? 이준은 본래 자신의 진짜 성을 찾기 전에 성이 없었어. 그래서 주변에선 그를 그저 준이라고 불렀지. 그런 그에게 성을 준거야. 그 작은 아가씨가.”
독고라는 성을.
“죄의식을 느낀다면 가족이 되어달라고. 푸핫, 그 아가씨도 제정신은 아니었지.”
“독고의 성씨에 준…… 설마…….”
곽준성이 경악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그래. 독고 준. 너희들이 천마라 부르는 인물.”
“그…… 그럴 리가요! 천마는 미치광이 살인자 출신의 광인이라고…….”
“역사는 승자가 쓰는 거야. 그때 상황은 참 웃겼어. 무림맹은 마교와의 전쟁에서 버린 독고 가문의 흔적이 남았다는 것에 경계했고, 환마교의 교주 환마신군은 교단 내에서 가장 강한 존재가 자신이 아니게 된 게 두려웠지.”
그래서 한쪽에선 흔적을 완전히 지우기 위해. 또 한쪽에선 독고 준을 정신을 부숴버리기 위해.
“온 무림이 단 한 명의 아이를 노리기 위해 뒤에서 작당을 한 거야.”
그때 무엇을 느꼈을까. 환멸감? 염증?
“자신과 독고연을 위험 존재로 인식한 무림맹과 환마교의 공세에 슬슬 힘에 부치기 시작한 거야. 게다가 환마교의 수장인 환마신군이 그에게 걸어둔 금제가 그의 육신과 단전을 계속해서 부숴나갔지. 오래 못 버티고 객사할 팔자였어.”
거기서 그는 한가지 선택을 내렸다.
이렇게 가다간 죽는다.
또한, 이대로 그가 죽는다면 독고연은 반드시 살해당한다.
그러니. 죽기 전에, 아니 명줄을 앞당기더라도 모두를 짓누를 힘이 필요하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힘을 선택한 거야. 아이 하나 살리겠다고. 웃기지 않나? 환마교에 입적해 수많은 인간을 죽여온 살인귀가 아이 하나 살리겠다고 자기 목숨을 내던지다니.”
“…….”
내 말이 어지간히 충격적이었던 것일까.
세상눈에 어두운 지희나 자성을 제외하고 곽 씨 남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