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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587화 (586/1,559)

제 587화

173. 운수대통 행운아

한자성과 천지희의 출현에 놀란 듯 바닥에 엎어진 채 윤희령, 정확히는 이실디가 인상을 찌푸렸다.

“너희들이 어떻게 여기에…….”

“은공! 그분을 죽여선 안 됩니다!”

“언니를 놓아주세요!”

내가 손에 쥔 푸른 검을 보며 기겁한 두 사람이 필사적으로 달려와 나를 말렸다.

“떨어져!! 이 자는 극악무도한 마인이다! 너희들을 다치게 할 순 없어!”

“저분은 저희 은인이십니다!”

급하게 외치는 자성의 말에 윤희령의 눈이 꿈틀거렸다.

“뭐? 이건 뭐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야. 저놈이 너희들을 구했다고?!”

“네! 일단 검을 내리시고!”

“그런 놈이 불법 장물창고에 있는 것도 모자라서 맹원을 공격해?!”

그녀가 분기탱천하며 씩씩거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현무대의 단원들이 다시 나를 포위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들을 뚫고 나서기 위해 검을 내려 세운 뒤 끝을 가볍게 튕겼다.

“그…… 그만두세요! 이들은 적이 아니에요!”

자성은 나와 이들의 충돌을 어떻게든 막으려 했다.

“대 사저! 진정하세요! 저분은 절대 악인이 아니십니다! 숲속에서 죽어가던 저와 희아를 구해서 이곳까지 데려 와주신 분입니다!”

자성의 외침에 윤희령은 잠시 생각하는 듯 침묵하더니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검을 거둬들였다.

그리고는 바닥에 쓰러진 금기유를 포함한 장물아비들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자들을 추포해! 다들 철수한다!”

오묘한 대치였다.

* * *

동부 대 상인연합이 있는 대도시의 무림맹 건물은 놀라울 정도로 정갈한 느낌이었다.

과한 사치를 부리진 않았으나 굉장한 위세가 겉벽의 담장부터 느껴져 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맹의 전투부대인 사신대 중 현무대를 이끌고 있는 윤희령이 소속된 곳이기도 했다.

천열문에서 유일하게 사문을 나가 맹으로 향한 인물.

자성과 천지희에겐 한때 가족이었으며 대 사저이기도 한 그녀는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을 파괴할 힘을 지닌 심연의 공주라 할 수 있다.

현재 그녀는 진실된 분기탱천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있었다.

콰앙!!

“빌어먹을 악림문!!”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녀가 오열하는 모습에 나는 말 없이 페르세르크와 눈을 마주쳤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냐?’

‘본녀라고 알겠는가.’

베르단데와 비슷하지만 달랐다.

베르단데는 자신이 심연의 공주임을 알면서도 과거의 어떠한 인연으로 인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세상에 녹아들어 은거하는 스타일이었다.

반대로, 이실디의 경우.

그녀 본인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차원을 다루는 최상위 심연의 공주인 슬리지아가 죽으면서 본래 심연의 공주들은 이제 티오니스 대륙을 제외한 다른 대륙을 오갈 수 없게 되었다.

이실디는 그런 슬리지아가 살아있을 당시 이곳으로 넘어온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이곳에 도착한 그녀는 모종의 이유로, 지금처럼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데이비. 혹시 말이야. 그대가 슬리지아를 죽이면서 티오니스를 제외한 다른 곳의 심연의 공주들이 갇히고 뒤틀려버린 건 아닐까?’

‘그럼 베르샤의 경우는.’

유르기안 대륙의 심연의 공주. 저주의 근원, 베르샤.

그녀는 멀쩡했었다.

‘그녀의 능력은 정신과 비 물리 계통이었으니까. 이실디는 본녀가 보기엔 어떻게 봐도 단순한 근육 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점이 미심쩍지 않아?’

그러니까. 정신계열 심연의 공주들은 비교적 멀쩡한 데 반해. 슬리지아의 힘이 사라지면서 육체 계열의 심연의 공주들은 죄다 헤까닥 했다?

그녀의 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했다.

그녀의 말대로라고 하기엔 너무 이 세상은 조용했으니까.

‘다만 네 말대로 슬리지아가 죽고 심연의 공주들에게 문제가 생긴 건 확실해 보이네’

그것이 지금의 사태를 만들었을 거라곤 생각지 않는다.

“흑…… 흐흑…… 사부님…… 사부님…….”

비고를 전해온 천지희를 끌어안고 엉엉 우는 그녀가 진정하는 데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넌 어떻게 하고 싶은 거지?”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리던 그녀가 진정했을 때.

그녀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짓누르며 자성에게 싸늘하게 말했다.

“복수할 겁니다. 악림문에게요.”

“넌…….”

무언가 말하려다 멈춘 그녀가 인상을 찌푸렸다.

“악림문은 현재 환 제국의 태자인 월계우가 뒤를 봐주고 있어. 아무리 맹이라도 일국과 전쟁을 벌일 여력은 되지 않아.”

관과 무림은 별개다.

하지만 관은 무림을 굳이 건들지 않을 뿐 실상 작정하고 말살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말살할 힘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서로를 존중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천 중원은 환 나라와 유 나라가 득세하고 있다.

무림맹의 힘이 강한 유나라와는 별개로 환나라는 말 그대로 악림천하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압도적인 위세를 지니고 있었다.

“그래도 할 겁니다. 스승님을 죽인 그놈들을 전 용서할 수 없어요!”

자성의 분노어린 외침에 이실디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일에서 손 떼.”

“사저!”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넌 재능이 없어! 그놈들과 싸우면 필히 개죽음이 될 거야!”

이실디의 말에 자성이 이를 악물었다.

이실디는 역시 자성이 새로운 단전을 만들고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성장 속도와 잠재력을 얻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에게 맡겨…… 반드시 복수할 테니까.”

“글쎄. 가능할 것 같진 않네.”

그 모습을 보던 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

“넌 무림맹의 소속이라 하지 않았나?”

애초에 근본적인 의문이었다.

“그것도 멋대로 입장을 표명할 수 없는 월급쟁이.”

월급쟁이라는 단어가 그녀에게 어울리진 않는다만, 맹원이라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순진한 애 속일 생각하지 말라고, 네가 아무리 분노해봐야 맹은 악림문과 싸우지 못할 거다.”

내 말에 그녀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자성을 보며 말했다.

“자성. 쟤 대체 뭐야?!”

십 대 중반의 외모를 지닌 소녀가 20대의 청년을 올려다보고 하대를 하며 짜증을 부리는 모습은 퍽 괴리감이 샘솟는다.

“사저, 그게…….”

“애초에 너, 지금 장물 밀수범으로 지금 이곳에 잡혀 와있는 건 알고 있는 거야?”

“말 돌리지 말자고.”

“뭐?”

“간단하게 질문할게. 보아하니 악림문이라는 곳은 거대한 조직 같은데. 틀렸나?”

내 물음에 그녀가 움찔했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단체. 당연히 무림맹과 비슷한 위세를 지니고 있겠지. 그럼 다시 묻지, 무림맹은 증거도 거의 없는 천열문 습격 사건만을 계기로 국가와 전쟁을 벌일 만큼 간이 큰가?”

내 질문에 이실디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결국, 넌 아무것도 못 해. 여기 있는 이상.”

내 말에 그녀의 인상이 왈칵 찌푸려졌다.

“아니, 할 수 있어. 그 자식들이 습격한 증거만 찾으면…… ”

“증거를 인멸하겠지. 맹에서.”

미안하지만 사람 사는 곳은 어딜 가나 똑같다.

그것은 악림문, 무림맹 할 것 없고, 아무리 정의를 표방해도 힘이 비등비등한 이상 함부로 나설 순 없는 것이다.

물론 무림맹과 악림문의 사이가 좋지 않다 할지라도 말이다.

“은공의 말이 맞아요, 사저. 사저를 찾아온 이유는 희아를 부탁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성…….”

“희아의 신변을 맹에서 보호해주세요. 악림문을 찾아 복수하는 건 저 하나로 족합니다.”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슬슬 나서야 할 때 아닌가?”

내 말에 모두가 놀란 듯 문밖을 바라본다.

동시에 굳게 닫힌 문이 열리며 깔끔한 복장을 한 학사가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깃으로 만들어진 부채를 한 손에 쥐고 나머지 한 손은 뒷짐을 지듯 한 채 걸어들어오는 이의 복장은 샌님이라는 생각이 물씬 들게 했다.

“눈치가 빠르시군요. 무림맹의 맹주 책사를 맡고 있는 제갈환이라고 합니다.”

느긋하게 말하며 안경을 툭 하고 쓸어올린 그는 가늘게 뜬 실눈으로 나를 파악하듯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기다리고 있던 것 아닌가?”

“맞습니다. 우선 당신은 나중으로 돌리지요. 그리고, 현무대 단장.”

“제갈 군사.”

“경거망동 하지 마십시오. 이런 일은 가볍게 나설…….”

“무림맹을 지원하는 건 유나라인가?”

“…….”

내가 그의 말을 가로채자 그가 나를 보며 말했다.

“맞습니다. 눈치가 빠르시네요.”

악림문을 지지하는 강대국, 환나라와 무림맹을 지지하는 유나라.

“포기해라. 무림맹은 절대 나서지 않을 거다.”

이실디는 그 사실이 어처구니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지금 저자의 말이 사실입니까 군사?”

“냉정하게 판단하자면 그렇습니다. 여러 방면으로 방안을 생각해봐도 지금 당장 그들을 제지할 수단은 없습니다.”

“…….”

“10년…… 그 안에 제가 그들의 악행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그들의 힘을 깎아놓겠습니다. 그때까지 참아주세요.”

지금 자성과 이실디가 날뛰기 시작하면 맹의 입장에서도 곤란하다. 그러니 지금은 피해자인 너희가 참아라.

뭐 그런 뜻인 듯 싶었다.

“싫습니다.”

“이봐. 자성이라고 했나? 군자의 복수는 10년도 이르다고 했네.”

“…….”

“와신상담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또 기다리게. 설마 자네의 복수심은 10년도 못 기다릴 만큼 알량한 복수심인가?”

제갈환의 설득에 자성이 이를 악물고 부들부들 떨었다.

힘이 없어서 복수할 수 없다니. 이만큼 기가 막힌 일이 또 있을까.

분한 기분을 참을 수 없는지 지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고 이실디는 말없이 분노를 삭였다.

“들었습니다. 당신이 천열문의 생존자분들을 데려와 주셨다고요.”

“그랬지.”

“일단은 감사를 표하겠습니다.”

“귀찮은 짓을 했다 생각하진 말고.”

빙그레 웃자 그 또한 미소로 화답한다.

물론, 아직 무림 초출이며 경험이 부족한 자성은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기도 하다.

“저는 떠나겠습니다.”

“자성!”

“스승님의 원수가 두 눈 뜨고 살아있는 꼴을 두고 볼 수 없습니다. 맹이 나서지 않겠다면 저 혼자서라도 갈 겁니다.”

이후 당황한 윤희령과 천지희가 따라 나가버리자 방안에 남은 건 제갈환과 페르세르크, 그리고 내가 전부였다.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말하지 마라.”

내 말에 그가 움찔하며 나를 본다.

“네 머릿속에 뭔 생각이 들어있는지 훤히 보이니까.”

“…… 재밌네요. 그럼 지금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맞혀 보시겠습니까?”

“정체를 알 수 없는 세작, 혹은 그에 준하는 무언가가 아닌가 판단하고 있겠지. 조금 애매한가? 그럼 이건 어때. 눈앞에 있는 이 남녀, 통제가 가능한 이들인가.”

내 말에 그의 미소에 아주 잠깐 균열이 생겼다.

사실 페르세르크의 권능으로 그가 생각하는 바를 읽어 들인 결과였다.

그가 가장 먼저 생각하고 표면적으로 드러낸 심층 생각을 읽게 유도해준 것으로 충분했다.

물론, 절반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내막이다.

“뭐, 사실 천열문 복수고 악림문이고 내 눈엔 다 그놈들이 그놈들이라 별로 관심은 없어.”

내 말에 그가 말없이 나를 직시했다.

“내가 묻고 싶은 건 두 가지.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그 백염검성 늙은이의 목숨을 구해준 셈 치고 대답해줬으면 하는데.”

내 말에 그는 무슨 기괴한 소리를 하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군요. 전서구를 통해 연통을 받았습니다만. 백염검성 어르신께서 당신께 빚을 졌다는 말은 들은 바가 없습니다.”

“왜 없어, 목숨을 살려줬잖아.”

내가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게 묶어버린 붉은 머리 여성. 그녀가 본신을 드러내는 순간 그 곽도영이라는 늙은 무인도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내 말에 그는 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그 또한 이해할 수 없군요. 하늘 아래 감히 어떤 누가 백염검성 님의 목숨을 노릴 수 있단 말입니까.”

“모르면 식견은 거기까지였던 거겠지.”

담담하게 말한 나는 품 안에서 작은 서책을 꺼냈다.

“악림문으로 추정되는 사내에게서 가져온 건데. 별호가 천귀살마라고 했던가?”

“천귀살마!!”

내 말에 그의 실눈이 부릅 뜨여졌다.

“그가 가지고 있던 서책이다. 보아하니 그의 무공이 담긴 비급 같던데. 루팅 잘해놨지? 이걸 넘겨줄게.”

내 말에 그는 말없이 서책을 받아 내용물을 확인하곤 인상을 찡그렸다.

“진품…… 이군요. 그럼 당신이 정말 천귀살마를 죽였단 말입니까?”

“그거야 머리 좋은 당신이 스스로 판단해. 이쯤 되면 뭔가 털어놓을 생각도 들었겠지? 마침 무림맹의 군사라는 당신에게서 직접 듣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는데.”

“당신이 장물 밀수꾼들과 함께하고 있었다는 건 불문에 부치는 거로 이 서책의 거래를…….”

서걱!!

이 와중 에도 욕심을 부리는 그였다.

당연히 그런 그의 욕심은 무형의 강기가 날아들어 그의 귀걸이를 잘라버림으로써 완전히 사라졌다.

지지력을 잃고 중력에 이끌려 호박석 장식이 툭!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이봐.”

“…….”

“천기를 읽는 제갈세가에서 자신의 명줄은 못 읽나 보지?”

내 몸에서 싸늘한 투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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