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90화
대부분은 그저 의아하게 넘길 뿐이었다.
백도의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
심지어 살무대의 절정 급에서 초절정 급에 달하는 무인들도 몰랐다.
절정이 어떤 존재이던가.
서역인들이 보이던 얄팍한 경지와 다르게 태생부터 준비해오며 오랜 시간 고행과 수련을 해 오르는 경지라 할 수 있다.
100여 명이 모이면 그중에 절정은 한 명이 있을까 말까 한 정도.
초절정은 그보다 더 희박한 확률이다.
살무대는 그런 인재들이 모인 곳이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자철석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검도 아니면…… 역시 이번 시험의 본질을 알고 있었거나 아니면 놀라운 통찰로 알아낸 것입니까?”
그들은 지금 자신들이 서 있는 이 땅 아래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너희들이 보기에 어떠하더냐.”
“…….”
“백도의 후기지수들이 이렇게 빠른시간내에 통과하는 게 가능하다 보느냐.”
그의 질문에 살무대 대원들은 침묵했다.
스르르륵.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이윽고, 흑도의 무리들을 시험하러 갔던 유나라 측의 특수부대. 흑풍대가 도착하자 살무대의 단장은 말없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놀라운 인재가 있더군.”
“놀라운 인재?”
“흑도의 아이들이 시험을 얼마 만에 통과했나.”
그 물음에 흑풍대의 단장인 사내가 눈을 찌푸렸다.
“흐음. 이 각(한 시간)에서 한 시진(두 시간) 정도였다.”
“일각 안에 모두 끝났다.”
“뭐?”
놀란 듯 흑풍대의 대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쪽의 아이들이 고작 일각 안에 전원 통과했다고?”
“치졸한 짓을 벌인 자 둘과 재능이 없는 놈 한 놈을 제외하고 17명이 통과했다. 수는 흑도의 아이들보다 적지만. 시험을 통과한 아이들의 평균 시간은 일각이었다.
삼십 분 안에 시험이 끝나버렸다.
분명히 흑도 쪽 아이들의 재능이 더 뛰어나다는 것을 이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살무대는 환나라에서, 흑풍대는 유나라에서 파견되어 이번 비무 대회를 총괄하기 위해 현재 협력하고 있으니 말이다.
정보의 교환 정도야.
그렇기에 흑도의 아이들이 전원통과에 짧은 시간 안에 통과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유나라 측 무림맹에서 선출한 아이들이 일각 안에 시험을 끝내버렸다니.
이건 말이 되지 않았다.
“뭔가 시험장에 문제가 있었나?”
아무리 상대측과 사이가 안 좋아도 냉정하게 봐야 할 건 냉정하게 봐야 했다.
흑풍대의 단장은 그렇게 생각했다.
“정확히는 단 한 명 때문에 모조리 뒤틀렸지.”
“한 명?”
“그래. 아주 괴물 같은 놈이 들어왔다.”
그렇게 말한 그가 검을 빠르게 출수했다.
쩌억!!
동시에 그들이 서 있던 지반의 일부가 잘려나갔고.
그 내부를 본 모두의 얼굴에 균열이 생겼다.
“금강자철석이…….”
그냥 자철석이라 속였지만. 사실 금강자철석이라는 천혜의 자원이 묻힌 땅이 이곳이다.
강도는 압도적으로 검강으로도 잘 베어지지 않는다.
그런 금강자철석이 묻힌 지반이.
내부부터 무수한 균열로 완전히 파훼 되어있었다.
“단 한 명이 벌인 일로 인해 시험을 보던 다른 아이들까지 덩달아 쉽게 검을 뽑아갔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무얼. 간단하게 검을 뽑은 거지.”
담담한 살무대 단장의 말에 흑풍대 단장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무슨 소리냐. 금강자철석에 반 이상 박힌 검을 그냥 뽑는 건 불가능…… 설마.”
그제야 무슨 소리인지 이해한 흑풍대의 단장이 눈을 크게 떴다.
“단순히 힘으로 지반 내부의 힘을 뒤틀어버렸다는 것인가?”
“그래. 금강자철석이 가진 인력이 그의 힘을 못 견디고 모조리 붕괴한 것이다.”
미친 소리! 허튼소리라 하고 싶은데.
아무도 입을 열 수 없었다.
무수한 균열이 생긴 지반이 그 증거가 되어주고 있었으니까.
“과거 금강자철석에 대한 실험으로 금강자철석의 인력을 상회하는 힘으로 그 힘을 억눌렀을 때 어찌 되는지 실험해본 바 있다.”
금강자철석은 많이 묻히면 많이 묻혀있을수록 그 인력이 강해진다.
그리고, 그렇게 강하게 서로를 당기는 힘이 그보다 더 강한 힘에 그대로 끌려나갈 경우.
내부는 모조리 붕괴하고 저들의 힘이 갈 곳을 잃고 폭주하며 사방으로 비산한다.
그 결과는 지금 잘려나간 지반에 보이는 것과 같았다.
“대체 그자의 정체가 뭐지?”
살무대 단장의 물음에 흑풍대의 단장은 침묵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기억에 이런 짓을 저지를 이는 없었다.
다만, 누가 되었건…….
“흥. 숨겨진 용이 하나 있었던 모양이군.”
“지금 이 상황에 승리감에 도취하는 건가?”
“억울한가? 재능이 높은 아이들이 많다며 으스대던 살무대 단장답지 않군.”
“빌어먹을 놈.”
그렇게 말하며 살무대와 흑풍대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아이의 이름이 무엇인가.”
“데이비…… 라고 하더군. 서역인의 후예인 모양인데. 솔직히 겉보기에 내공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무인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사술을 썼을 가능성은?”
사술을 쓴 게 들키면 백도에 그만한 개 쪽도 없다.
만약 정말 사술이라면 흑풍대에서 나서서 그를 제지할 생각이기도 했다.
“내가 보고 있는데 감히 사술을 쓴다고? 어림도 없지. 내가 본 바로 그는 내공을 일으키지도 않고 단순히 힘으로 뽑았다.”
“더 기가 막히는군.”
“직접 본 나는 어떻겠나. 다들 움직여라. 다음 시험을 준비해야 하니.”
살무대 단장의 말에 흑풍대와 살무대는 이해할 수 없는 지반을 다시 한번 흘끗 보고는 다시금 이동했다.
* * *
“너무 무식했어.”
어깨에 앉아 륀느가 장난칠 때처럼 발을 통통 튕기던 페르세르크가 키득거렸다.
시험장은 애초에 시험을 치르고 비무 대회에 참가하는 참가자들을 제외하곤 참가할 수 없다.
하지만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했던가.
그녀의 은폐 마법을 눈치채지 못한다면 그녀가 함께한다고 뭐라 할 이는 없었다.
손바닥만 한 작은 크기로 몸을 줄여 어깨에 앉아 주변을 구경하는 그녀는 내가 계단을 타고 느긋하게 올라가는 와중에도 주변 구경에 여념이 없었다.
“슬슬 아이들이 올라오고 있는 모양인 게야.”
“그놈들은 나중에 내게 술 한번 사야 될 거다.”
내 평가로 첫 시험을 통과할 놈은 고작해야 절반.
나머지는 어부지리였다.
몇몇은 사실 그런 변화 없이도 알아서들 잘 하겠지만 말이다.
처음 검을 잡았을 때.
단순한 근력으로 당겨지지 않는 검의 변화에 내부에 마나를 퍼뜨린 결과 나는 대충 그곳의 구조를 알 수 있었다.
반쯤 박힌 검을 뽑아내기 위해선 검을 찢어버리던지, 아니면 금강자철석의 인력을 척력으로 바꿔서 뽑아내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굳이 그러지 않고 검을 마나로 감싸 강화시킨 뒤 힘으로 뽑아버렸다.
“굳이 그럴 필요 있어?”
“그냥. 시험 내용이 조금 건방져서.”
픽 웃은 나는 저 멀리서 헐떡거리며 올라오는 소년들을 흘끗 바라보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비무 대회를 하는 주제에 시험을 치른다니 웃기지도 않는다.
역시나 이곳에도 같은 복장을 한 살무대의 인원들이 보였다.
여전히 살(殺)자가 쓰인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그들이라 얼굴 자체 그대로 판단할 순 없지만 역시 이들 또한 절정에서 초절정에 준하는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빠르게 왔군, 증표가 되는 검은 가져왔는가.”
무감각한 목소리로 검을 제출하라며 손을 내미는 그를 보며 나는 이곳에 오는 길에 홍단이와 청단이의 사이즈와 비슷한 환도 두 자루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두 자루?”
“따로 안된다는 규정은 없던데.”
“…… 그렇다. 받아라. 검을 보관할 검집이다.”
이윽고 그는 빠르게 준비한 검집 두 개를 건네주었고 나는 말 없이 두 자루의 검을 검집에 넣어 허리에 채웠다.
“두 번째 시험은 험난한 난관을 뚫고 비무 대회장까지 도달하는 것이다. 저 앞에 보이는 숲의 안쪽으로 들어가면 동굴이 존재한다. 그곳을 지나 비무 대회장까지 도달하는 것. 그것이 시험이다.”
그의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충고하지. 어떤 경우에도 검을 잃어버리지 마라. 자신의 일부와 다름없는 무기를 잃어버린 자는 비무 대회에 참가할 자격 따윈 없다.”
“흐음…… 먼저 오는 대로 가는 건가?”
“그렇다. 시험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할수록 명성은 드높아질 것이고. 보상도 더욱 커질 것이다.”
“별로 관심 없네.”
담담하게 말하며 그를 지나친다.
“적당히 까부는 게 좋을 거다.”
이윽고 지나치는 나를 향해 살무대의 대원 하나가 조용히, 그리고 분노를 담아 경고한다.
“저 안에서 누군가가 죽어도 아무도 모르니까.”
“여기서 내가 당신네 다 죽여도 누구 하나 모를걸?”
“…….”
“보는 놈만 없으면 암살이거든.”
담담하게 말한 내가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동시에 그의 몸에 마나를 가볍게 주입하여 그의 기를 단숨에 짓눌렀다.
절정, 초절정. 제법 뛰어난 살무대지만 여태껏 만난 수많은 위험변수와 비교하면 사실상 그리 위험한 것도 아니었다.
[천마신공]
[압공]
천마신공은 이런 것도 할 수 있는데.
네 무공엔 이런 거 없지?
쿵!!!
그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개인 사견 끼워 넣지 말고.”
“흐읍…… 흡!”
호흡이 거칠어진 그의 몸이 작게 떨렸다.
처음부터 내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던 자에게 내가 호감을 표해줄 이유는 없었다.
물론, 그의 잘못은 아니었다.
애초에 환나라 출신의 살무대가 백도의 참가자에게 살갑게 대하는 게 외려 수상쩍기 그지없으니 말이다.
나와 그의 대화를 들은 이는 없었다.
나는 조용히 살무대원을 지나쳐 거대한 숲으로 들어서는 입구로 진입했다.
* * *
거대한 숲.
나는 곧바로 비무 대회장으로 가지 않았다.
애초에 시험 1등은 내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모로 가든 결과적으로 비무 대회에서 우승만 하면 그만인 일이다.
압공으로 내기를 짓눌러버렸던 살무대 대원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하나같이 기계 같은 무감각함을 보여주며 나를 시험장 내부로 안내해주었다.
이후 나는 거대한 숲을 돌파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기다렸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을까.
주변에 환각 마법을 쳐둔 터라 감시하는 인원걱정도 없이 기다리기를 한참.
저 멀리서 들려오는 굉음을 보아하니 뒤늦게 온 백도와 흑도의 후기지수들이 숲을 돌파하고 있다는 게 여지없이 느껴졌다.
스르륵.
그리고, 그렇게 잠시 기다렸을까.
나는 바람 소리와 함께 내 앞에 내려서는 작은 은발의 소녀를 보며 물었다.
“확인해봤어?”
“임무완수, 륀느의 은밀한 작전능력을 데이비 님이 높게 평가.”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다.”
내 말에 륀느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데이비 님이 높게 평가.”
“야, 임마. 적어도 일을 확실히 하고 나서 칭찬을…….”
내 말에 륀느의 눈이 부릅 뜨여지더니 이내 어깨를 파르르 떨며 양손으로 엉엉 울 듯 얼굴을 가렸다.
“흑…… 흐흑…….”
구슬픈 목소리에 당황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륀느의 갑작스런 기행에 놀란 나와 페르세르크는 아주 잠시 멍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데이비! 어서 달래봐!”
“아이씨!”
당황한 그녀와 내가 허둥지둥거리며 륀느에게 다가간다.
그리고는 륀느의 어깨를 잡고 횡설수설 내뱉었다.
“저기 음…… 그래. 륀느, 내가 지금 화를 내는 게 아니야 잘 알지? 일단 중요한 일이니까…….”
두서없는 말에 훌쩍거리던 륀느가 양손에 얼굴을 파묻은 채 울먹이며 물어왔다.
“륀느…… 흑…… 높게 평가?”
“…… 그래. 높게 평가.”
일단은 진정시켜보자.
내 말에 륀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본 나와 페르세르크는 벙찐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 연기도 배웠냐.”
“륀느, 뛰어난 연기능력을 매우 높게 평가.”
륀느의 얼굴은 여느 때와 같은 무표정이었다.
눈물 같은 건 보이지 않았고 외려 입매는 능글맞은 웃음을 짓듯 한쪽 끝이 슬쩍 올라가 있었다.
임무완수를 외치며 폴짝폴짝 점프한 그녀는 곧이어 눈을 반짝이더니 양손을 허리에 올리고는 허공에 홀로그램을 투사하듯 수많은 문자배열을 만들어냈다.
스스로 성장하는 골렘이라지만 갈수록 가관이다. 라는 말이 나는 륀느의 기행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륀느가 조사해온 것들을 가볍게 훑었다.
륀느가 투사한 홀로그램에는 케인의 힘을 이용해 이실디를 조사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내용 자체는 간단했다.
이실디의 경우 세계의 흐름에 따른 부작용으로 인해 기억을 잃은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한 차례 나눴던 이야기가 확정 시 되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륀느 높게 평가?”
“그래. 륀느는 높게 평가한다만, 케인은 낮게 평가한다.”
도움 안 되는 놈 같으니.
케인이 들었다면 피거품을 물었을 소리를 해대면서 나는 륀느의 머리를 푹푹 눌러 쓰다듬었다.
“비무 대회장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혹시라도 심연의 힘이 감지되면 곧바로 연락해.”
내 말에 륀느는 등허리에 난 날개를 팔락거리며 이내 천천히 떠올랐고, 스스슥 하는 사이에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자…… 그럼 볼일도 끝났으니 가보자.”
그렇게 말하며 환각 마법을 해제한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데이비. 위치를 알고는 있어?”
“모르지.”
이 숲을 헤매고 동굴을 지나 비무 대회장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마지막 시험을 치르는 모양인데…….
륀느를 기다리느라 꽤 시간을 허비한 나로썬 별 수 없었다.
“자…… 그럼.”
그렇게 말한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에 날아다니는 새 한 마리를 포착했다.
그리고는 검지와 엄지를 직각으로 펴 두 개를 마치 직사각형 만들 듯한 뒤 새를 그 안에 가둬 바라보았다.
[3서클 흑마법]
[퍼밀리어]
우웅…….
동시에 검은 사령 마나가 신나게 내 몸에서 빠져나가며 새와 동기화되기 시작했고 새의 눈으로 숲 전체를 바라본 나는 가볍게 발을 통통 튕겼다.
그리고는 한 발 내디뎠다.
시험의 내용은 이 숲을 지나 동굴에 도달하는 것.
그리고 그 동굴 안의 시련을 통과해 비무 대회장으로 향하는 것.
결국, 모로 가든 도착만 하면 된다는 소리였다.
뒤늦게 나를 따라왔던 백도와 흑도의 후기지수들은 대부분 도착할 놈들은 도착했을 테니 시간이 늦기 전에 나도 들어가면 될 일이었다.
거리는 상당하고, 마냥 걸어가기엔 숲길이 영 눅눅한 것이 진입하기가 껄끄럽다.
생각을 마친 나는 곧바로 행동에 옮겼다.
가볍게 마나를 흩뿌려 일대에 광역 환상진을 펼치자 기척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시험 도중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후기지수들을 감시하는 눈들이 분명했다.
이후 그들의 시선을 완전히 장악한 나는 미련 없이 마나를 방출했다.
[8서클]
[워프]
공간을 뛰어넘어버리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