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91화
퍼밀리어를 통해 이동할 장소를 확보하고 좌푯값을 고정한 뒤. 워프 마법을 통한 이동.
순식간에 주변 지형이 뒤바뀌기 시작했고 나는 곧 거대한 동굴의 입구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리고.
동굴에 도착했을 때.
나는 동굴 바깥으로 기어 나오는 한 소녀를 볼 수 있었다.
“끄으…… 끅…….”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쓰러진 소녀는 흑도 출신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부상이 심한데? 독에 당한 것 같아 보이는데.’
말없이 소녀를 내려다본 나는 흐릿해진 시야로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를 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지?”
“배…… 백도의 끄나풀이에게…… 할 말은 없어…….”
“그래. 궁금하지도 않았다.”
담담하게 말한 나는 그녀를 반듯하게 눕힌 후 그녀의 환부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의 옷을 가볍게 찢었다.
“무…… 무슨 짓을…….”
“입 다물고, 이 악물어. 좀 많이 아플 거다.”
그렇게 말한 나는 아공간에서 관을 하나 꺼내 그대로 그녀의 복부에 찔러넣고 그녀의 가슴을 압박했다.
“흐끄읍?!”
눈이 찢어질 듯 크게 뜨여진 그녀가 버둥거리며 저항하지만 나는 말 없이 그녀의 흉부를 계속해서 압박해 넣었다.
쿨럭!!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격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환부에 찔러넣은 관에서 검은 피가 쏟아져나오기 시작했고 나는 천천히 관을 빼낸 뒤 소독 후 적당히 붕대를 찾아 빠르게 감았다.
“좀 괜찮아졌나?”
내 물음에 흑도 출신의 소녀는 수치심이 들었는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멀쩡한 거 같네. 일각 정도 쉬다가 움직여. 목숨이 가장 중요한 거다.”
담담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내가 그녀를 지나친다.
“저…… 저기!”
그때. 다급한 소녀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녀는 좀 전까지 정신을 갉아먹던 통증이 가신 것이 신기한지 제 복부에 손을 올려놓고 물었다.
“당신…… 왜 나를 구해준 거야?”
“뭐?”
“백도 출신이지? 난 흑도 무림맹. 빙백파의 본파 제자야. 당신과는 경쟁자이자 적이라고.”
“그래서?”
심드렁한 내 질문에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나를 그냥 뒀으면 경쟁자를 하나 제거할 수 있었을 텐데?”
경쟁자를 제거한 다라.
본래대로라면, 나쁘지 않은 결과다.
하지만.
“애들 장난 같은 대회에서 사람 목숨은 함부로 저울질하는 거 아니다.”
담담하게 말한 나는 그녀를 지나쳤다.
내 말에 그녀는 잠시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뭐야…… 바보같이…….그딴 속 편한 생각으론 금방 죽을걸?”
“지금까지 잘 살아있는 걸 보면 네 말이 틀린 게 증명됐나?”
픽 웃으며 내가 묻자 그녀는 어처구니가 없는지 피식 웃어버렸다.
그리고는 천천히 일어나 나를 따라오며 진중한 표정으로 내게 진심 어린 충고를 남겼다.
“다른 입구로 들어가, 그 안엔 끔찍하게 거대한 괴물이 있어.”
그녀의 경고를 무시한 채 동굴 속으로 걸어 들어가자 그녀가 당황한 듯 계속 소리를 지르고 따라왔지만 나는 무시로 일관했다.
“아니 왜 이러는 거야?! 죽으려고 환장했어?! 지금 저 안에는 미친 고릴라가…….”
쿵…… 쿵!!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진다.
소녀는 소리를 듣자마자 경악한 듯 버쩍 얼어붙었다.
“마…… 말도 안 돼…… 이곳까지 기어 올라왔다고?”
그녀의 중얼거림에 내가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도망치기 전에 약한 지반을 부서뜨려서 녀석을 떨어뜨렸단 말이야…… 그런데 그 높이를 그 짧은 시간 안에…….”
“원래 원숭이들이 나무도 잘 타고 벽도 잘 타.”
“벽…… 도?”
“그렇지 않을까?”
그렇게 말한 나는 곧이어 동굴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고릴라와 마주할 수 있었다.
새카만 털이 잔뜩 나 있는 거대한 고릴라는 놀라울 정도로 거대한 체격을 지니고 있었다.
크기는 대략 8미터 정도.
놈의 근육은 인간과 비교할 바 못 되었고, 놈의 눈은 흉흉했으며, 놈의 손은 대번에 인간을 찢어발길 것만 같았다.
“도망쳐! 녀석은 단풍이 다리를 찔러놔서 빠르게 쫓아오지 못해!”
당황한 흑도의 소녀는 급히 내 팔을 붙잡고 뛰쳐나가려 했다.
하지만 나는 요지부동으로 그녀의 행동에 이끌려나가지 않았다.
“뭐…… 뭐 하는!”
쾅!!!!!
“꺅!”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은 그녀는 파르르 떨었다.
“벌써 누구 하나 죽었나?”
“단풍…… 내 호위…… 아…… 아니 나와 함께 온 흑도의 후기지수!”
그녀의 외침에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릴라를 올려다보았다.
이곳에 유별나게 강한 저놈이 있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는 모를 일이지만.
중요한 건 저 고릴라의 패기였다.
“워후! 우후! 우후우후우후우후!”
고릴라 특유의 소리를 내며 양 손바닥으로 제 가슴을 두드리는 녀석을 보며 나는 천천히 놈을 향해 걸어갔다.
“그…… 그만둬! 자살행위야!”
비명과도 같은 소녀의 외침도 무시한 채 고릴라를 향해 걸어간 나는 말 없이 놈과 눈을 마주하다 내 손바닥으로 내 가슴을 두드리며 놈의 소리를 똑같이 흉내 낸다.
“워후우후우후우후우후!”
“워후우후우후우후우후!”
그러자 녀석도 더 강하게 제 가슴을 두드리며 소리 지르기 시작했고 이내 나를 향해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다리에 상처를 내서 속도가 못 나오게 해놨다더니 순 뻥이로구나.
거대한 고릴라와 고릴라 흉내를 내며 돌진하는 나의 모습을 누군가가 봤다면 저 미친놈이 대체 뭐 하는 짓이냐는 표정으로 바라보았을 테지만 애석하게도 지금 이곳에 있는 건 나와 흑도의 소녀뿐이었다.
벙찐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그리고.
마치 일생의 적수를 찾은 것처럼 돌진해오던 고릴라가 양손으로 나를 잡아챌 듯 손을 뻗어오자 나는 그대로 양손을 펼치며 내공을 퍼뜨렸다.
[금강불괴신공]
[부처님 손바닥]
동시에 황금빛 기류가 내 손에서 뻗어져 나와 곧 내 손을 감싸며 거대한 손으로 변했고 놈과 그대로 양손을 마주 잡아 힘겨루기를 하기 시작했다.
으드득.
물론.
싸움 자체는 오래가지 않았다.
나와 양손을 맞잡고 힘겨루기를 하던 고릴라의 표정이 기괴하게 뒤틀리더니 기괴한 숨소리를 내뱉으며 몸을 배배 꼬기 시작한 것이다.
우드득…… 우득!
섬뜩한 뼈 울림소리와 함께 놈이 바닥에 쓰러져 발버둥을 친다.
하지만 나는 놈을 힘으로 짓눌러버린 뒤 녀석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소리쳤다.
“강해져서 돌아와라!!”
“후욱! 후욱!”
바닥에 쓰러진 채 눈물 콧물 다 쏟으며 괴로워하던 고릴라는 이내 내가 쫓아올세라 정신없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
그리고. 그런 몰골을 본 흑도의 소녀는 벙찐 얼굴에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뭐해. 안 따라와?”
이윽고 내가 멍하니 서 있는 그녀를 향해 소리치자 그제야 그녀가 화들짝 놀라 나를 따라나서며 소리쳤다.
“이봐! 당신 대체 뭐야?!”
“뭐긴 사람이지.”
“아니! 내가 말한 건 방금 대체 어떻게…….”
“힘 싸움 몰라?”
기가 막힌 지 그녀가 허! 하며 헛숨을 내뱉었다.
“이…… 이봐! 같이 가!”
그러면서도 그녀는 당황한 듯 내 뒤를 따라 부지런히 걸어들어왔다.
* * *
-그르르르르르…….
거대한 호랑이 한 마리가 내 앞을 어슬렁거리자 나는 놈의 박자에 맞추어 녀석과 거리를 유지한 채 한 바퀴를 천천히 걸어 돌았다.
처음엔 긴장한 얼굴로 나를 보던 흑도 출신의 소녀는 벌써 이런 상황이 몇 번이고 반복되니 지쳐버린 듯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심란하게 나를 바라본다.
-크아아아앙!!!
이윽고 녀석이 나를 향해 덤벼든 그 순간.
나는 망설임 없이 호랑이에게 덤벼들었다.
당연히 거대호랑이는 그 우악스러운 힘과 거대한 턱으로 내 쇄골을 물어뜯었고.
나 또한 놈의 목덜미를 무식하게 물어뜯었다.
당연히 이 동굴에 들어올 때부터 금강불괴신공을 사용하고 있는 내 몸에 놈의 이빨이 틀어박힐 리 만무하다.
반대로.
버프 마법을 수 겹 중첩한 내 치악력은 거대한 호랑이인 놈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무식한 힘을 자랑했다.
-크아아아앙!!!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나를 떼어내려 애를 쓰는 놈이었지만 나는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고 결국 녀석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뻗어버렸다.
“퉤퉤, 다음부턴 이 짓은 하지 말자.”
입에 끼인 녀석의 털을 뱉어내며 내가 중얼거리자 흑도 출신의 소녀는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백도에 뒤가 구린 놈이 많다고는 들었지만, 살다 살다 당신처럼 미친놈은 처음 보네.”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우지 못하며 그녀는 말없이 걸어가는 나를 따라 움직였다.
“그런데 시험치고는 난이도가 상당한데?”
후기지수들의 수준은 잘 치면 절정 수준. 하지만 지금 나오는 괴물들은 단순히 절정 수준의 무인으로썬 감당하기 힘든 거대 짐승들이 가득하다.
압도적인 힘을 자랑하던 고릴라나. 방금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던 호랑이.
찔렸다 하면 그 자리에서 쇼크사해버릴 것처럼 거대한 침을 지닌 벌에 끔찍한 외향을 지닌 거미도 보였다.
흑도의 후기지수들의 재능이 좋다고는 하지만 개개인의 역량으로 시험을 돌파하는데 이딴 놈들이 나온다?
말 그대로 각 비무대회의 참가자 전원을 죽이겠다는 말과 다를 게 하나도 없었다.
“기습 안 해도 되나?”
“뭐?”
“네 경쟁자가 방심하고 있을 때 제거할 수 있는 기회인데.”
나는 그녀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며 물었다.
“해서 성공할 것 같지도 않고. 우린 더러운 백도 놈들과 달리 은혜를 원수로 갚는 더러운 짓은 안 해.”
기왕 못된 짓을 하게 된다면 차라리 당당하게 한다!
그것이 흑도 무림맹, 즉 사파의 정론이었다.
반대로 백도 무림맹은 그런 마인드 자체를 용납하지 않는 이들이 많다.
어느 쪽이 잘났고, 어느 쪽이 못났고 할 것도 없었다.
“이상해…… 시험치고는 난이도가 너무 높잖아!”
“높은가?”
“다…… 당신이 비정상적으로 강해서 그래! 방금 당신이 해치운 거대 짐승들은 도저히 시험에 나올만한 녀석들이 아니야!”
“그럼 착오가 있었겠지.”
내 대답에 그녀가 심드렁하게 받아친다.
“흑도의 살무대와 백도의 흑풍대. 그리고 두 국가의 관계자들이 개최하는 시험에 그런 사고가 터지고도 아무런 조치가 없다고? 말이 되는 소릴…….”
“그게 아니면. 양측 모두 이 사태를 모르고 있거나.”
담담하게 말한 내가 물었다.
“그도 아니라면, 양측 모두 널 죽이고 싶어 하거나.”
“…….”
내 말에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았다.
“아. 도착했다.”
이윽고 거대한 연무대와 수많은 관중들이 모인 비무 대회장에 도착하자 거대한 함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두 번째 시험의 끝을 고하는 함성이었다.
“거 좀 귀찮은데 이제 좀 시작해줬으면 싶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한숨을 옅게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