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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612화 (611/1,559)

제 612화

심연의 공주.

본능적으로 그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눈앞에 있는 남색 산발의 광년을 보며 홍단이의 검 끝을 튕기듯 내려 세웠다.

“폐…… 폐하!!”

놀란 백도대의 사내들이 자신들의 황제인 용포를 입은 소년을 향해 소리쳤다.

“커헉…… 컥…….”

이윽고 죽은 듯 침묵하던 소년의 입에서 괴로운 신음이 터져 나왔고 백도대원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일사불란하게 그녀를 향해 덤벼들었다.

쩌어엉!!!!

하지만 그들이 지근거리까지 다가가기도 전에 백도대원들의 몸이 튕겨 나온다.

푸웅!! 풍! 풍!!

그리고, 튕겨 나온 이들은 내가 펼친 에어쿠션에 맞아 충격을 상쇄시키며 바닥에 쓰러졌다.

“폐…… 폐하를 보호…….”

“어떻게 어전에!”

“비켜.”

싸늘하게 쏘아붙인 내가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자 남색 산발의 광년은 이내 손에 쥔 황제를 아무렇게나 던져버린 뒤 양손을 들어 올렸다.

“이런, 실패해버렸네.”

츄르릅 하며 혀를 핥은 그녀가 한발 물러났다.

“어쩔 수 없지. 물러나는 수밖에.”

“제법 기척 숨기는 기술이 좋네.”

“설마 찾아낼 거라곤 생각지 못했는걸?”

그녀가 쉰 목소리로 내게 빈정거렸다.

이곳에서 만난 어떤 심연의 존재들보다 압도적인 위압을 품고 있는 여인. 겉보기엔 그냥 미x년이지만 기도는 확실히 달랐다.

그녀의 정체는 단신으로 세상을 지워버릴 수 있는.

심연에서 나타난 수억의 사념들이 뭉쳐져 만들어진 존재.

바로 심연의 공주였다.

둘이라고 했는데.

하나는 보이지 않는다.

“뭐. 네가 이겼어. 이번엔 물러가 줄게. 오에돈이 하는 짓은 사실 관심 없고 나는 배신자년을 끌고 가려고 온 것뿐이니까.”

그렇게 말한 그녀는 자신의 바닥에 타락한 늪을 만들어내더니 서서히 내부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누구 마음대로 가겠다고.”

반사적으로 금기의 힘을 발현하고 검을 휘두른다.

촤악!!!

동시에 그녀의 팔이 떨어져 나갔지만.

그녀의 육신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너…… 정말 강하구나. 역시 슬리지아를 죽였다고 했을 때 이상하다곤 생각했지만…… 위험한 변수야.”

그 말을 남기고 그녀는 사라졌다.

그러니까. 지금은 슬리지아 그년을 다시 만나면 찍소리 못하고 죽는다는 걸 모른다는 게 다행스러운 일이다.

* * *

환나라의 황제 월곤.

겉보기엔 11살 정도의 어린 소년이지만.

실제나이는 불혹을 가볍게 넘긴 나이라는 모양이었다.

“흑…… 흐흑…….”

무너진 황제궁을 대신하여 근처의 작은 궁으로 모셔진 황제 월곤은 쉽게 눈을 뜨지 않았다.

“데이비. 그녀가 황제를 노린 건…… ”

“아마 나를 견제하고 방해하기 위해서겠지.”

대체 심연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이실디, 즉 윤희령만 노렸다고 하기엔 묘한 감이 없잖아 있다.

이전엔 일리나를 노리더니 이번엔 이곳에서 무언가 꼼수를 부리고 있다라.

이미 놈들의 계략 절반은 해치웠다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의 영감! 어서 말해보라! 폐하께선…… 폐하께선 무탈하신 건가!”

“상처가 깊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월곤의 몸에는 정체불명의 상처로 가득했다.

아마 그 광년의 힘인 침식, 부패이리라.

나는 어의의 행동에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응?”

“비키세요.”

담담하게 말한 나는 곧바로 월곤의 몸에 손을 올렸다.

“외…… 외부인이 옥체에 손을 대다니!”

“황제 죽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싸늘하게 일갈한 나는 월곤의 복부에 생겨나 피부를 괴사시키고 있는 부패의 흔적을 바라보았다.

금기의 힘으로 지울 수 있을까.

금기의 업은 내 육신과 내 힘을 규칙에서 독립시키는 힘이다.

나를 강화하거나 내 힘에 담아 방출하는 건 가능해도 남의 몸에 스며들게 하여 이런걸 지우는 건 쉽지 않다.

물론, 지우라면 지울 수는 있지만.

잘못하면 황제가 죽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금기의 힘은 나도 아직 숙련도가 그리 높지 않다.

헤라클래스는 내가 이것을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나는 이것을 그리 깊게 다뤄본 적이 없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금기의 힘을 제외한 채로 황제를 살리고 부패만 죽이는 방법.

결국 수술뿐인가.

“수술을 할 거다. 필요한 것들을 말할 테니 가져오도록.”

급소 부위라 아슬아슬하긴 하지만 침식 부위의 위험한 부분만 절개해내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내 말에 어의가 노발대발하며 나를 향해 소리쳤다.

“이…… 이자는 대체 누군가!! 누구이기에 멋대로 폐하의 옥체에!”

“가져오라고.”

싸늘하게 말한 내가 그를 노려보다 그가 당황한 듯 움찔거렸다.

“작은 칼. 그리고 사천당가의 파체독.”

내 말에 의원의 얼굴에 경악이 서린다.

“서…… 설마 폐하의 옥체에 칼을 대겠다는 것이오?!”

“정확히는 복부를 가를 거다.”

“미친 소리!!”

“내가 너희 잘난 중원 예법을 보면 늘 답답하던 게 있다.”

어의가 경악하며 소리를 내질렀다.

“산 사람의 배를 가르겠다니!! 그것도 폐하의 몸을!!”

중원도 그렇고, 조선 시대도 그렇고.

왕의 육체에 칼을 대는 게 그렇게 무서운 일인가.

그런 주제에 전쟁에서 팔이 괴사한 병사의 팔을 깔끔하게 작두로 잘라내던 놈들이.

아, 물론, 산사람의 배를 가른다는 수술법은 중원의 의학으론 아직 이른 감이 없잖아 있을 것이다.

게다가 내공과 환단으로 자체 치유하는 방식이 성행한 중원의 시기라면 더더욱.

말없이 나를 보던 조순이 조용히 물었다.

“폐하를 살릴 수 있소?”

“그냥 두면 죽어. 이미 몸 안으로 퍼지고 있어서 시간도 별로 없고.”

“어의, 사천당가에 가서 파체독을…….”

“파체독이라면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스르륵.

그때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새하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사내가 나타났다.

“자넨.”

“살무대 단장 배환이옵니다. 장군. 늦어서 송구합니다.”

“이 일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네.”

“…… 파체독은 제가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을 죽이는 극독으로…….”

그렇게 말하며 작은 도자기 병을 내미는 그의 행동에 나는 손가락을 튕겨 허공섭물로 그의 도자기 병을 받아왔다.

그리고 마개를 열어 냄새를 맡은 후 한 방울 손가락에 떨어뜨린 뒤 혀로 찍어 맛을 보았다.

“저…… 저런?!”

당황한 어의와 살무대 단장 배환의 비명이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 정도면 되겠다.”

파체독은 마취에 쓰이는 약과 성능이 비슷하다.

그냥은 마비독이지만.

조금만 내용물에 자극을 준다면.

열기와 냉기를 일으켜 파체독 자체의 온도를 빠르게 변화시킨 뒤 다시 독을 맛본다.

딱 좋게 익었네.

그렇게 말한 나는 그대로 병에 담긴 액체를 황제의 입에 부어 넣었다.

“아…… 아니! 파체독을 폐하께?!”

당황한 이들이 달려들려 하지만 조순이 나서서 그들을 막았다.

“칼.”

이윽고 내가 손을 뒤로 내밀자 조순이 조용히 작은 단검을 내밀었다.

“지금은 이것뿐이오. 시간이 없는 것 아니었소?”

“상관없어.”

짧게 일축한 나는 곧바로 작은 칼로 용포를 이리저리 찢었다.

끔찍한 흉터가 남은 복부에 손을 올린 나는 이리저리 몇몇 부분을 눌렀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의 살이 조금씩 뻣뻣해지는 느낌이 들자 곧바로 검기를 일으켜 배를 갈라냈다.

“윽?!”

“…… 크흑…… 폐하…… 폐하…….”

어찌할 바를 몰라 시선을 돌리는 이들. 몇몇은 흥분하며 눈물까지 흘린다.

마치 나라를 빼앗기고 눈앞에서 자신들의 주군이 몹쓸 짓이라도 당하는 꼴을 보는 듯한 모양새였다.

물론 내가 그들을 신경 쓰진 않았다.

환자에게 집중하는 수술에 다른 곳에 집중할 시간은 없으니까.

“거슬리는 힘이네…….”

침식 부패.

직접적인 파괴력을 지닌 광년의 힘인 부패는 다른 심연의 공주와 다르게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그년은 여기서 죽여야겠다.

절대 살려 보내면 안 되는 부류의 적이다.

이윽고 핏방울이 돋은 것을 아공간에서 꺼낸 여분 성수를 뿌린 천으로 닦아낸 나는 이미 살점 안까지 검게 변색된 것을 보고 칼을 들었다.

“후우…… ”

짧게 침묵하며 나는 손을 뻗었다.

간 일부와 신장 하나. 그리고 창자의 일부.

그리고 복부의 살.

살고자 하면 많은 부분을 도려내야 했다.

당연히 조금만 실수해도 큰 문제가 생길 것이고, 운이 나쁘면 수술이 성공해도 죽는다.

하지만.

쫄지 마라. 나는 신의 히포크리아의 제자 데이비 올 라운이다.

눈이 번뜩이며 나는 거침없이 칼질하기 시작했다.

물자가 부족한 만큼 사령 마법을 통해 육신을 직접 제어한다.

창자 일부를 절개한 뒤 멀쩡한 부분을 이어붙여 사령 마법으로 회복시킨다.

신성력이 없으니 이렇게라도 하는 수밖에.

애초에 사령 마법은 인체 그 자체를 연구하는 마법이고 흑마법은 인간의 정신과 변색된 검은 사령 마나를 연구하는 학문이었으니 어려울 것도 없었다.

창자를 절개하고 이어붙이고, 신장을 적출한다. 간 일부를 잘라냈고 다른 부위의 살을 가져와 이어붙였다.

“세…… 세상에…… 이것이 사람의 손놀림인가…….”

게 거품을 물며 나를 저지하려 들던 황궁 어의는 내 수술을 지켜보며 경악을 숨기지 못했다.

적어도 깨어나면 몇 년간은 상당히 불편하게 살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유교 사상이 뿌리 깊게 박힌 유나라에선 절대 불가능하지만, 흑도무림맹을 지원하는 이곳에선 차라리 가능한 방법이었다.

이윽고 내장의 문제를 해결한 나는 베르샤의 저주를 이용해 침식 부패를 막던 살점 부분을 바라보고는 천천히 그것을 모아냈다.

그리고는 복부에 다시 상처를 내고 내공을 끌어올려 그것을 유도했다.

베르샤의 힘과 내공으로 그것들을 일부 빼낸 뒤 나는 남은 살점 부분을 거침없이 절개했다.

이후 아공간에 손을 밀어 넣어 성수 한 병을 환부에 뿌리고는 손을 세정하고 아공간에서 꺼낸 작은 환단을 황제의 입에 밀어 넣었다.

“그것은?”

“심심해서 만든 초신환단이다. 다른 건 몰라도 육체 회복을 촉진하는 기능이 극도로 강해.”

그렇게 말하며 나는 환단을 그의 목구멍으로 넘겨주었고 빠르게 녹아들며 변화를 읽어냈다.

잘라낸 살점이 마치 살아난 것처럼 재생된다.

이것도 신성 마법만 쓸 수 있으면 하면 되는 일이거늘.

프리아 여신의 영향력이 줄어들면서 초월계 신성 마법 한 번으로 대부분의 신성력을 써버린 꼴이다.

같은 신성력 양이면 과거엔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었을 테지만.

이제는 불가능해졌다.

신의 영향력이 약해질수록 신성력의 효율은 떨어지니까.

이윽고 필요한 양만큼 재생되자 나는 손으로 그의 혈도를 짚어 초신환단의 효능이 혈도를 타고 넘어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리고는 다시금 절개했던 복부를 빠르게 이어붙였다.

약간 우툴두툴한 흉터가 남았지만 상관없었다.

살았으면 된 거 아닌가.

“3.”

이윽고 나는 머릿속으로 세고 있던 시간을 짧게 읊었다.

“2.”

“1.”

이윽고 내가 손뼉을 가볍게 쳤다.

“으윽?!”

동시에. 방금 전까지 미동도 하지 않던 환나라 황제, 월곤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초 단위로 제어하는 수술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이다.

나는 경악을 넘어 이제는 경이롭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어의를 향해 말했다.

“뭐합니까. 식사준비 안 하고.”

“무…… 무슨 소립니까.”

“초신환단으로 육신을 재생시켰는데 그 열량이 어디서 나온 거라 생각하시는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건 불가능하다. 재생을 촉진한다고 했지 그 열량을 제공해주는 건 아니다.

힐을 사용해서 육신을 회복할 때 피시전자가 지치는 것과 같은 이치.

내 말뜻을 깨달은 것일까.

황궁 어의가 화들짝 놀라며 근처의 환관에게 소리쳤다.

“수…… 수라간에 일러라!! 폐하께 올릴 음식을 준비하라고!!”

그의 외침과 들은 손뼉을 가볍게 치며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둘러보는 월곤을 향해 물었다.

“죽다 살아난 기분은 어떱니까?”

과거엔 태자를 죽인 범인이었을지 모르나.

지금은…….

“신의…… 그야말로 신의 그 자체로다!!”

황궁 어의의 외침에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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