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14화
피잉!!
무언가 활시위가 튕기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쩌어엉!!!
동시에 강력한 화살 한 발이 날아들어 은하검성 유길태가 휘두른 검과 충돌해 공격을 상쇄시켰다.
동시에 어두운 석실 저편에서 누군가의 육신이 부웅 날아 힘없이 바닥에 처박혀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이 자는…….”
“석실을 지키던 교인입니다. 설마.”
장로의 보고에 교주가 고개를 든다.
쿠웅!!!
동시에 방금 전까지 아무렇지도 않던 공기가.
일순간 압도적으로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큭?!”
인상을 찌푸리며 신음을 흘리는 장로들과 다르게 반사적으로 자신이 모시게 된 존재의 힘을 두른 교주는 그 힘을 견뎌냈다.
“여기가 투기장이라도 되나? 그럼 난 내 제자 놈에게 걸 생각인데, 어디다 돈 내야 하나?”
장난스레 말하며 한 손에 은자 주머니를 짤랑짤랑 흔드는 데이비의 모습에 모두가 침묵했다.
주변을 짓누르는 어마어마한 압박감 속에서 저벅저벅 걸어들어오는 데이비를 보며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눈물을 흘리고 있던 유화 선녀, 곽효영이었다.
“데이비 공자님?”
“왜 그러고 있습니까.”
“예?”
촤아악!!
누군가가 반응하기도 전이었다.
곽효영은 그녀를 붙잡아 끌고 가려던 교인들이 힘을 잃고 쓰러지는 것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전혀 반응하지도 못할 속도였으니까.
“아…….”
한쪽에는 부상이라도 있는지 쉽게 저항하지 못하고 있는 당가의 아가씨. 당유린과 예현화가 숨을 죽이고 데이비를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강시들과 장로를 제외하고 모조리 베어버린 데이비가 붉은 검을 심드렁하게 거둬들이자 교주가 인상을 찌푸렸다.
“네놈이 그놈이구나. 대체 여긴 어떻게 알고 찾아왔지?”
“어떻게 오긴. 길 찾아 왔다 이 쓰레기야.”
퍼엉!!!
순식간에 무형의 강기가 터져나가 교주를 후려치려던 찰나.
빙검신녀 화옥란의 강시가 파고들어 무형의 새하얀 비도를 부드럽게 휘둘러 강기를 상쇄시켰다.
우드드득!!
하지만 제대로 막아내진 못했는지 꽤 섬뜩한 뼈 울림소리가 울려 퍼졌다.
“당신?! 혼자 온 거야?!”
기겁한 듯 바닥에 주저앉아있던 예현화가 넝마가 된 옷으로 몸을 최대한 가리며 소리 질렀다.
“그럼, 혼자 오지. 누구랑 같이 오나?”
데이비의 대답에 교주와 장로들의 입에서 비웃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안돼! 도망쳐! 당신이 강한 건 알겠는데 여기 있는 강시는 무극이라 불리던 세 영웅의 강시야! 그것도 만령 강시라고!! 생전의 힘을 모두 가지고 있을 거야!”
무극이라 불리던 세 영웅과 3명의 절대 오성.
공통점은 대단한 힘을 지니고 존경을 받아온 존재이며. 이미 사망한 존재들이라는 점이다.
그들의 시신은 진짜배기였으며, 강시로 부활하면서 그 힘이 강해져 있다.
물론, 영혼 없는 껍데기일 뿐이지만 말이다.
“저 소저의 말대로다. 비록 본인은 아니라곤 하지만 만령 강시로 만들어지면서 저들의 힘은 생전보다 더 강하다 할 수 있지.”
부족한 스펙은 만령 강시가 지닌 고유의 힘으로 메꿔 넣음으로써 확실히 생전의 실력과 비슷한 힘을 끌어낸다.
은하검성 유길태.
적수도룡 학중성.
마지막으로 빙검신녀 화옥란.
그 외에 강시로 부활한 천금 천열문주와 나머지 두 명의 무인까지.
이미 데이비의 무력을 일면 본 이들이라곤 하지만 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점이 모든 상황을 절망케 했다.
“도망쳐요! 당신의 힘이라면 도망칠 순 있잖아! 도망쳐서 강자들을 더 끌고 와요! 합공! 동귀어진을 각오한 합공이라면……!”
급히 외치는 예현화의 외침에 절대 오성중 하나가 섬광처럼 흩어진다.
동시에 데이비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는 거침없이 그의 목덜미를 끊어버릴 것처럼 수도를 찔러넣었다.
섬광귀사 백로.
절대 오성중 한 명이며 절대 오성중 가장 경신법이 뛰어난 섬광귀문의 문주.
어느 날 갑자기 문주와 문파원 모두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탓에 의문을 품고 있던 문파의 장이다.
그런 그가 이곳에서 강시가 되어있다니.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파고든 백로의 공격에 반응하지 못한 것일까.
말없이 예현화를 바라보던 데이비가 그제야 고개를 돌린다.
늦었다!!
본능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촤악!!!
데이비를 공격하던 섬광귀사 백로의 몸이 허공에서 홀로 찢겨져 나가는 것을 보고 모두가 의아함을 품었다.
“강시가?”
“어째서 혼자서…….”
데이비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 있었을 뿐 이렇다 할 반응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기습을 가했던 강시가 갑자기 스스로 붕괴하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무슨…….”
경신법으론 무림 최고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백로 문주가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져버리자 데이비는 쓰러진 백로의 시신을 보며 말했다.
“이 사람이 백로 문주라는 양반이라고? 아니지, 백로 문주였던 것이라고 해야지.”
대체 누구와 대화를 하는지.
홀로 중얼거린 데이비가 손에서 꺼낸 투명한 보석을 보며 비릿하게 웃어 보였다.
“이건 이렇게 쓰는 거라 이거지.”
섬뜩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걸렸다.
“한자성!”
그리고, 멍하니 상황을 지켜보던 한자성을 향해 소리쳤다.
“예…… 예!”
“지금부터 시험을 치른다. 이곳에 있는 강시 중 하나를 해치워라. 약한 놈도 좋고 강한 놈도 좋다. 해치우는 데 성공하면 마지막 개문을 해주마.”
싸하게 중얼거린 데이비가 한 발 내디뎠다.
스르륵…….
동시에 부드럽게 다가와 곽효영을 안아 든 그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시간제한은, 내가 이놈들을 전부 정리할 때까지.”
그 말과 함께 곽도영을 향해 검을 휘두르던 유길태의 뒤로 교주의 명령을 받은 천열문의 문주, 천금의 강시가 데이비를 향해 덤벼들었다.
긴 장검을 쥐고 섬광처럼 파고드는 그 모습에 한자성은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어디서 이런 힘이 난 것일까.
무공이란 마냥 깨달음을 얻는다고 갑자기 강해지는 부류의 기술이 아니다.
하지만
한자성의 성장 속도는 말도 안 되는 부류의 경지에 있었다.
고작 일주일도 전에 삼류 무인의 딱지도 제대로 못 벗어나던 한자성이.
현재 검 끝에 검강으로 변하기 직전의 검기를 뿜어내고 있는 것이다.
“미쳤어요?! 상대는 한 공자의 스승님이에요!”
“그러니까 이겨내야지.”
그 말에 당황한 듯 소리치던 곽효영이 움찔거렸다.
“평생 스승의 망령에 잡혀 살 거냐?”
빙그레 웃으며 데이비가 다시 한 벌 내디딘다.
동시에 나머지 두 명의 절대 오성과 세 명의 무극들이 데이비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하기 싫으면 관둬도 좋다.”
“은인께선 제게 가시밭길을 요구하시네요.”
멍하니 자신의 검을 내려다보던 한자성이 물었다.
“제가…… 이길 수 있나요?”
“그거야 너 하기 나름이지.”
“…….”
너무 무책임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한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스릉…….
그가 결연한 표정으로 검을 들어 자신의 스승이었던 강시를 향해 검을 뻗었다.
* * *
[파손율 0.01% 파손율이 100퍼센트에 도달할 시 권능의 핵이 파괴.]
꽤 친절한 설명이다.
남들에겐 보이지 않지만, 현재 내 어깨 위엔 페르세르크가 앉아있다.
그녀는 절대 내 곁에서 떨어뜨려 놓을 수 없는 만큼 실상 보이지만 않을 뿐 계속해서 같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 파손율이라는 게 대체 무엇인가.
바로 프리아 여신이 내게 건네준 보석이었다.
넬타리드의 힘을 끊어버리고 내게 물건을 내려준 그녀는 총 세 가지의 물건을 내게 내밀었다.
첫째. 임무의 보상이었던 뼈로 만들어진 주술검.
둘째가 바로 이 사기적인 권능이 담긴 보석.
마지막으로 여분의 목숨인 잔불.
주술검은 아직 쓸 일이 없으며 잔불은 내가 죽기 전엔 발현하지 않으니 사실상 당장 효과를 볼만한 물건이라고 해봐야 보석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 보석은 보옥을 바라던 내게 그녀가 내려준 신물.
그에 비슷한 힘을 지니고 있을 거라곤 생각했지만.
보옥과 비슷하면서 보옥과는 다른 힘을 지니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혼과 육신을 부작용 없이 순간 동기화시킨다.
그리고, 그 동기화시킨 시간에 따라 파손된다.
방금 전 절대 오성중 하나였다던 섬광귀사 백로(였던 것)를 처리하는 데에 남들은 보지 못한 듯하지만 나는 정확히 그의 전신을 직접 부숴버렸다.
그가 섬광과도 같은 움직임을 보였다면.
나는 주변 자체가 되리라.
[월령보] 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애초에 암살자는 마스터 급 이상의 초인을 암살할 수 없다.
상당히 현실적인 진실이며, 마스터 급 존재를 암살하기 위해선 그에 준하는 실력가가 오거나 오랜 시간 지치게 만드는 수밖에 없다.
그런 주제에 암살자들은 보통 일이 한번 꼬이는 순간 자결을 해야 하는 입장이다.
자신의 목숨에 애착 없는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노력에 비해 얻는 과실이 너무 적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무림에서도 사실 티오니스에서도 암살자라는 직업 자체가 천대받는 건 사실이기도 했다.
살수왕 헤르메이샤도 본래 그런 암살자였다.
그녀는 암살자 특유의 방식 그대로 끝까지 발전시킨 존재였으며.
단신으로 어마어마한 무력을 손에 쥔 노력가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의 기술이 단순히 한계가 명확한 암살자의 기술일 리가 있을까.
한 가지 걸리는 점이라면 금기의 힘과의 연관성이었다.
내가 사용하는 금기의 힘은 모든 힘으로부터의 완전 독립.
즉, 신의 힘이 내 몸에 버프를 걸어주는 보옥 같은 경우 이것을 금기의 힘이 독립시킴으로써 효과를 못 볼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피잉!!!
섬뜩한 금속음과 함께 유길태의 검이 나를 향해 파고든다.
은하검성 유길태의 검술은 성광검술.
마치 별빛이 반짝이는 듯 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그리고.
나는 이놈의 검술을 이미 본 바 있다.
“하하하하하하! 무슨 수를 쓰는 건지 모르겠다만 무극에 이른 자 세 명을 상대로 네놈이 무슨 수로 이길 셈이더냐.”
무극.
화경의 위. 현경에서 한 단계 더 올라간 경지라고 일컬어지는 경지.
체질인 무극지체와는 조금 다른 의미의 경지라 할 수 있다.
강시의 무력은 확실히 생전의 그들의 무력과 비슷한 수준이다.
천마 독고준과의 전투 이후 더 강해졌는지는 나도 알 길이 없지만 적어도 그들이 천마와 대적했을 때 정도의 수준은 나온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그런 그들이 셋이요, 화경에서 현경 사이의 강자가 둘, 그 외에 화경 급에 심연의 힘을 몸에 새긴 장로가 대여섯.
확실히 본래대로라면 악림문의 계략대로 이 세상은 악림문이 지배해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다.
“무극이라…….”
나를 향해 쉴 틈 없이 공격을 퍼붓는 그들의 공세를 아슬아슬하게 피해내듯 몸을 살짝살짝 틀어 빗겨낸다.
“저들은 무적이다. 그리고, 내 야망의 마지막 단추를 끼워줄 절대적인 무력이지! 네놈이 강하다는 말은 들었으나 이들을 상대로 혼자 온 것은 아주 어리석은 짓이었다는…….”
그렇게 말하던 도중이었다.
[파손율 0.5% 파손율이 100퍼센트에 도달할 시 권능의 핵이 파괴.]
은하검성 유길태의 날카로운 검이 정확히 내 손에 붙잡혔다.
다른 이도 아니고 무극이라 불리던 강자의 검이 내 손에 막힌 것이다.
“무슨?!”
경악한 교주와 장로들의 외침이 들려온다.
공수입백인 같은 기술로 검을 잡아내는 것도 정도가 있는 것이다.
상대는 무극이라 불리던 은하검성 유길태의 검.
그런 그의 검술이.
단순히 검에 막혔다?
검의 궤도가 강제로 멈춰진 유길태의 강시가 급히 벗어나려 하지만 마치 검이 달라붙은 것처럼 내 손을 따라와 그대로 내 쪽으로 끌려들어 온다.
그리고, 그렇게 끌려온 그를 향해 내가 맨손을 그대로 뻗었다. 어떤 초식도 담기지 않은 정권.
그 정권에, 은하검성 유길태의 강시가 무너져내린다.
검강도 들지 않는 육신이 폭발할 것처럼 뒤틀리며 무너져 내린 것이다.
“무극?”
내 비웃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니들, 무극이 너무 쉽게 보였나?”
은하검성 유길태의 육신이 마치 붕괴하듯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진짜도 아닌 가짜로 만들어진 강시 따위가.”
극한의 깨달음 끝에 도달하는 경지.
혼과 육신이 동기화되며 내 혼에 새겨져 있던 절대 경지가 다시 한번 눈을 뜬다.
본래의 내가 아직 되찾을 수 없는 힘의 발현계.
놈의 공격을 낚아챈 나는 정확히 유길태의 빈틈없는 방어를 향해 그대로 돌진했고.
그의 몸에 손이 닿기 직전 손에 회전을 담듯 그대로 휘저었다.
콰드드드득!!!!
검강도 통하지 않던 단단한 육신이 일순간 꽈배기처럼 뒤틀리며 박살 나버리자 모두가 침묵했다.
무극이라 불리던 절대 고수의 힘을 지닌 강시가.
너무도 쉽게 박살 나 버린 것이다.
고작 약관의 나이의 모습을 한 청년에게.
“내가 혼자 온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