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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624화 (623/1,559)

제 624화

“사저, 왜 그러십니까.”

묘한 공기를 읽은 자성의 물음에 윤희령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묵묵히 자성을 올려다보았다.

대신 붉게 변색된 눈동자엔 뭔지 모를 고요한 감정이 스며들어있었다.

“오라버니? 사저?”

이윽고 낑낑대며 물건이 담긴 바구니를 들고 걸어가던 천지희가 두 사람의 기류를 보고 천천히 다가왔다.

“희아야! 안돼!!”

그때.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느낀 것일까.

자성이 비명을 지르듯 소리 지르며 전신에 내공을 끌어올렸다.

터어어어엉!!!!

그리고.

반사적으로 무형의 장막에 튕겨 나가 볼품없이 나뒹굴었다.

천마신공의 의미를 어느 정도 심득하고 이뤄내면서 절정,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그였다.

하지만 지금 느껴지는 건 지독한 고통과 순간적으로 정신이 날아갈 뻔했다는 아찔함. 그리고 무력감뿐이었다.

“사…… 사저…… 왜…….”

묵묵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윤희령의 모습에 천지희가 바들바들 떨며 물었다.

하지만 윤희령은 무표정으로 다가올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붉은 눈동자와 푸른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말없이 지희를 바라보던 윤희령의 손에 형태가 확실한 검은 빛의 검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검 끝을 천지희에게 겨누었다.

“아…… 안돼!! 사저! 멈춰요! 안돼!!”

절규하는 자성의 외침에 윤희령은 떨리는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지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촤아아악!!

“안돼!!!!!”

싸늘한 파육음이 울려퍼지며 붉은 피가 흩날렸다.

* * *

푸쉬이이이이익!!!!!

새하얀 구름이 노니는 선계.

선계에는 상제를 시작으로 각각 최상급 대신과 그 아래로 상급 대신을 포함한 여러 대신들이 존재한다.

상제의 힘과 권능에 은혜를 받아 선계를 더더욱 청명하게 만드는 이 분위기는 너무도 아름답고 맑아 보였다.

커다란 정자에 앉아 느긋한 얼굴로 학을 향해 먹이를 던져주던 상제는 복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바람이 선선하구나.”

평화의 상징.

말 그대로 이곳에선 어떤 분쟁도 벌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 고요함과 평온함이 가득하다.

하계 천중원에 선계에 관한 정보가 퍼진 건 어쩌면 이곳의 이런 모습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상제는 알고 있었다.

과거 선계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그리 평온하고 청명한 곳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이다.

푸드드드득!!

그렇게 고요하던 선계의 바람이 아주 미약하게 변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먹이를 주워 먹던 학들이 푸드득 하고 날아오르자 상제는 머리에 쓴 면류관을 천천히 풀어내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앙이 다가왔구나. 꿈이 들어맞았어.”

짧게 중얼거린 그의 신형이 흩어지듯 사라진다.

그리고, 그가 다시 나타난 곳은 거대한 폭포의 위였다.

“…….”

붉은 안개가 일렁인다.

선계의 상제는 폭포 아래의 거대한 호수 위로 드러나는 피처럼 붉은 안개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네놈이로구나. 하계로 내려간 대신들을 해친 것이.”

소식이 끊어진 이중엔 상제의 딸인 선계 공주, 민화의 부마도 있었다.

그들의 연락이 끊어졌을 때. 그는 직감할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이 붉은 안개를 내뿜는 괴물이 그 범인이라는 것을 말이다.

“어찌하여 이 땅을 더럽히는가.”

싸늘하게 말한 그의 손에 문양이 새겨진 검이 소환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손에는 불왕의 옥새가 나타나며 기이한 힘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냥 마스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힘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불왕의 옥새.

선계를 다스리는 상제에게 허락되는 권능의 신물로써, 선계를 창조한 자의 의지가 담겨있다는 전설이 담겨있다.

-그르르르르…….

이윽고 붉은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놈의 모습을 보며 상제는 불왕의 옥새를 발현해 검에 그 힘을 담았다.

콰아아!!!!

동시에 검 끝이 하늘을 가리키자 하늘에서 거대한 정화의 빛줄기가 붉은 안개를 관통하며 놈을 내리누르기 시작했다.

콰드드드드드득!!!

어마어마한 폭풍이 인다.

맑은 폭포수로 인해 생겨난 물줄기는 거대한 빛의 기둥에 의해 사방으로 비산했고 빛에 짓눌린 악마종 리퍼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바닥에 짓눌려 고통스러운 소리를 냈다.

-끼이이이이익!!!

“자, 어서 말해보라. 어찌하여 이곳에 나타나 이 땅을 더럽히느냐.”

검 끝을 다시 한번 하늘로 향하게 만들어 힘을 가중시키자 악마종의 몸이 서서히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불왕의 옥새로 힘을 발현한 상제의 힘이 압도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피잉!! 촤르르르르륵!!!

갑작스레 물속에서 시뻘겋고 가느다란 촉수 한 가닥이 순식간에 폭포 위로 날아들어 그의 심장을 뚫어버린 것이다.

“커헉?!”

순식간에 치명상을 입은 상제가 몸을 비틀거리자 악마종 리퍼의 갑각과 뿔로 가득한 얼굴에 섬뜩한 웃음이 서렸다.

-네놈들이 자신하는 이 땅에서도…….

처음으로 놈의 입에서 끔찍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신의 자식들의 흔적인 네놈들이 공포를 느낄 수 있을 거다.

천천히 물속에 박아넣은 손을 빼내며 그를 집어 당겨버렸다.

풍덩!!!

동시에 그가 가지고 있던 문양 새겨진 검과 불왕의 옥새가 힘없이 떨어지자 리퍼가 혓바닥을 내밀어 불왕의 옥새를 받아먹고는 꿀꺽 삼켜버렸다.

상제의 상징이자 데이비에게 받아온 진품.

불왕의 옥새를 먹어치운 것이다.

이윽고 놈의 몸은 더더욱 붉어지며 급기야 화염 같은 빛을 피부 갑각 곳곳에서 뿜어내기 시작했고 이내 끔찍한 웃음을 터뜨렸다.

선계의 왕. 상제의 상징인 불왕의 옥새를 먹어치운 놈은 곧이어 지면에 팔을 박아넣었고, 이내 스며들 듯 일대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놈의 팔에 있는 갑각이 꿀렁거리며 무언가를 쏟아낼 때마다 주변이 뒤틀리고 파괴되기 시작했다.

“상제님!!!”

이윽고 상제의 이변을 눈치챈 선계의 상위수호자들이 순식간에 사방에서 나타나며 그를 물속에서 건져 냈다.

그리고는 경악한 얼굴로 지면과 동화되고 있는 악마종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대체 저게 무슨?!”

“물러나라! 너희들이 감당할 수 있는 적이 아니다!”

다급한 상제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몇몇 수호자들은 내공과 비슷한 힘을 마치 자연의 힘을 끌어내듯 방출하며 놈에게 덤벼들었다.

휘리리릭!! 촤악!!!

하지만 돌아온 것은 핏자국뿐이었다.

놈이 휘두른 채찍 같은 촉수가 겁도 없이 덤벼든 수호자들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것이다.

뺨에 피가 한 움큼 튄 상제의 얼굴에 두려움이 서렸다.

수호자는 선계의 존재들 중에서도 무력이 강한 자들이다.

하지만 선계의 힘이나 다름없는 상제조차 당한 마당에 수호자들이라고 다를까.

“도망쳐라…… 어서!!”

상제는 이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하계를 도운 것.

하계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괴존재들을 해치우는데 손을 빌려준 것이 원인이었다.

하계와 선계에 통로가 열리면서 놈은 그 틈을 타고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후회하기엔 이미 상황이 늦은 상황. 지금 중요한 것은 살아남아 일단 전열을 재정비해야 했다.

“사…… 상제님!!”

하지만 이미 이 일대를 잠식하기 시작한 저 괴물에서 도망치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이대로 상제가 무력화되고 수호자들이 모두 살해당한다면?

남은 전력은 잠들어있는 선계의 영험한 존재. 팔신시 뿐이다.

하지만 팔신시는 가짜 불왕의 옥새를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상황이라 깊은 잠에 빠져 아직도 깨어나지 않고 있다.

그 말인 즉.

이대로 지금 인원이 몰살당하면 선계는 끝장이라는 소리였다.

그때였다.

상제는 자신의 품 안에서 갑작스레 빛을 발하기 시작한 작은 구슬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등허리에 날개와 머리 위에 원고리를 지닌 작은 소녀가 나타나 그에게 주었던 물건이었다.

그는 그녀에게서 두 가지 물건을 받았다.

하나는 팔신시의 옥을 통해 이미 그 하계의 인간에게 넘겼고 하나는 그가 보관하고 있었다.

그게 이제 와서 왜?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구슬의 빛이 더더욱 강해지기 시작했다.

반대로 바닥에 팔을 박아넣고 주변을 일그러뜨리던 악마의 괴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사아아아아아아아!!

온몸에 한기가 돋는 듯한 끔찍한 목소리에 상제는 물론 경계하며 놈을 노려보던 수호자들도 몸이 굳어버린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역겨운 프리아의 힘이 가득한 곳이구나.

그때였다.

방금 전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던 괴물이 처음으로 말을 한 것이다.

“…….”

-역겨운 신의 땅에서도…….

놈은 끊어질 듯 말 듯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신의 종자가 공포를 느끼리라.

그렇게 말한 악마종 리퍼의 눈에 번뜩였다.

-오래 기다렸다. 나의 증오는 만년을 이어져 왔음이니.

놈의 목소리에 환희가 어렸다.

-절망하라 미물들아, 공포에 떨어라 하찮은 벌레들아.

“크윽?! 귀…… 귀가!”

놈의 목소리가 흘러나올수록 수호자들이 귀에서 피를 뿌리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세상은 불타고, 프리아의 군대는 파멸하리니. 경배하라. 나의 부활을.

마치 음공이라도 쓴 것처럼 놈의 말에 상제의 몸도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불왕의 옥새를 놈이 먹어치우면서 상제의 힘 또한 급속도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두려워하라, 내가 바로, 격변이니라.

천천히 팔을 빼내며 놈이 일어난다.

동시에 놈의 전신에서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힘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스르륵…….

동시에, 놈의 곁으로 언제 왔는지 모를 한 청발의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네년의 각성까지 모든 계획이 오에돈의 생각대로 완성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땅의 힘을 내가 모두 먹어치우고 그 역겨운 프리아의 땅으로 향하는 길을 완전히 열어젖히는 것뿐이다.

붉은 눈동자에 푸른 머리칼을 휘날리는 소녀를 내려다보며 악마종 리퍼가 말했다.

-방해자는 모두 네년에게 맡기지. 그 인간 또한.

이윽고 악마종의 말에 소녀, 이실디가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촤아아악!!!

그리고.

이실디의 손에서 생성된 검은 검이 악마종, 리퍼의 목을 날려버렸다.

-컥?!

* * *

오라버니!! 오라버니!!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온다.

바닥에 쓰러져 의식을 잃고 있던 자성은 그를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리고 있는 소녀를 올려다보았다.

“희…… 희아야…….”

“사저가…… 사저가!”

그녀의 외침에 자성의 눈이 부릅 뜨여졌다.

그의 주변에는 누군가의 피로 추정되는 붉은 피가 가득 쏟아져 있었다.

어찌 모를까.

이 피의 주인을 말이다.

지희와 자성에겐 어떤 상처도 없었다.

하지만. 한 명은 달랐다.

대체 왜 그런 것일까.

그는 문득 그녀가 처음 뿌렸던 피의 색을 기억해냈다.

검디검은 피.

하지만 종래에 그녀의 피는 붉은 색으로 변했다.

마치 무언가가 변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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