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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629화 (628/1,559)

제 629화

“들어봐요. 유리아. 그 자식이 사람들 보는 앞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요?”

쿡쿡 웃으며 차를 음미하는 달의 숲 엘프의 수장, 유리아 헬리샤나에게 푸념하는 일리나였다.

“일리나 님. 과도한 음주는 생체활동을 저해한다고 분석해.”

“흐…… 륀느. 날 걱정하는 건 너뿐이구나?”

“륀느, 빠른 눈썰미를 높게 평가.”

담담하게 말하며 유리아식 괴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쏙 밀어 넣은 륀느는 곁에 누워 잠든 홍단이와 청단이, 그리고 귀여움이 한껏 살아나고 있는 하프 엘프 뮤우를 바라보았다.

이 멤버는 제법 익숙한 멤버였다.

유리아 헬리샤나와 륀느, 그리고 일리나.

이전부터 자주 만나 잡담을 떨어왔던 셋은 익숙하디익숙하게 한자리에 모였다.

“미묘한 기분이네요.”

와인을 들이킨 일리나가 테이블 위에 올려둔 팔에 머리를 묻었다.

“괴로우신가요?”

“내가요? 하, 그럴 리가.”

“하지만 당신은 거짓말을 하고 있네요.”

우아하게 차를 한잔 음미한 유리아가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엘프의 눈은 거짓을 볼 수 있으니까요.”

“거짓말.”

일리나가 피곤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정말로 그게 됐다면, 엘프들이 데이비와 그렇게 싸우지도 않았을 텐데.”

“맞아요. 사실 거짓을 제대로 꿰뚫어 보는 건 몇몇 엘프들 한정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거기에 포함되니 상관없겠죠?”

그렇게 말한 유리아는 일리나를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대체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복잡하게 만들죠?”

“나도 모르겠어요…… 그냥…… 그냥 속이 답답해서.”

“언제부터?”

유리아의 물음에 일리나는 침묵했다.

언제부터인가.

“…….”

“말하기 곤란한가요?”

“아니에요…… 그저…….”

“저는 알 것 같은데?”

특유의 사디스틱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녀가 말했다.

“정확히는 은공과 페르세르크 님이 서로를 갈구할 때 아니었나요?”

그 말에 일리나가 벌떡 일어나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닌데요?! 아니라고!”

“그래요. 거짓말이네요. 차라리 저기 동부 제국의 황녀님처럼 자신의 감정에 아주 솔직한 분이면 더 좋았을 텐데.”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 난 데이비를…….”

“은공을?”

“…….”

말끝을 흐린 그녀가 고개를 다시 처박았다.

“모르겠어요…… 정말 모르겠다구요.”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저는 더 이상 말하지 않을게요.”

빙그레 웃는 그녀를 뒤로한 채 일리나는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파묻었다.

지금껏 이랬던 적이 없는데.

데이비와 관련된 것이라면 그저 모두를 지킬 뿐 지켜주는 이 하나 없는 데이비를 그녀가 지켜주겠다 약속한 것뿐인데.

‘가만, 이 약속…… 어째 조금 부끄러운걸?’

얼굴에 열이 차오르자 그녀는 술기운 때문이라 여기며 고개를 휙휙 저어 보였다.

점점 갈수록 이 알 수 없는 심란한 마음을 그녀는 제어할 수가 없었다.

* * *

“데이비 왕자가 돌아왔다고?”

“예, 황태자 저하. 아마, 빠른 시일 내에 렌도스 황자 저하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라 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리라 사료되옵니다.”

“흥, 겁도 없는 놈들. 그보다. 케인 그놈은?”

“들리는 말에 의하면 여전하다고 하시더군요.”

“흥. 그 맹랑한 놈.”

불안하지만 한편으론 안심되었다. 가끔 이상한 면모를 보이긴 하지만 아이처럼 구는 케인은 확실히 일리나를 따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패트릭. 자네의 여식에게 맡긴 임무는 어찌 되었나.”

“잘 해내고 있습니다만. 최근 견제하는 자들이 많아 딸아이를 피신시켜놓은 상태입니다.

“믿을만한 이들을 시키게 알리사 영애를 포함해 몇몇을 일리나의 곁에 붙여, 아카데미에서 지내는 동안 뒤에서 잘 보살펴주라고.”

“허허, 저하의 이런 마음 씀씀이를 황녀 저하께서 알아채셔야 할 텐데…….”

“아니. 몰라야 한다.”

단호한 살리반의 말에 패트릭이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참, 저하, 재밌는 소식이 들려오더군요.”

“재밌는 소식?”

“예, 라운 왕국에 항복한 볼티즈 왕국에서 몇몇 귀족들이 다른 마음을 품은 모양입니다.”

“독립단체라도 설립했나?”

독립단체.

뭐, 일단 라운 왕국은 침략자 입장이니 당연하다곤 할 수 있지만, 명분이 너무 좋지 않다.

볼티즈 왕국은 달맞이 꿀이라는 극도로 잔인한 마약을 유통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국제여론을 좋게 받으려야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게, 볼티즈 왕국을 독립하기 위해선 데이비 왕자가 눈에 가시라고 여기는 모양입니다.”

“…… 멍청한 놈들, 설마 암살자라도 보내려고.”

“허허, 보냈다면 볼티즈 왕국은 국가의 이름도 잃어버리겠지요.”

데이비 올 라운.

그는 단순히 계승권을 버린 왕자이지만 단순히 그렇게 보기엔 너무 멀리 온 남자였다.

단신으로 이 대륙을 뒤흔들 수 있는 단일 세력이 되었고, 각 삼제국에서도 사실 그와 어느 정도 우호를 다지곤 있다지만 그 내막엔 사실 그와 반목해서 제국의 힘을 보존할 자신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일개 인간이.

제국을 두렵게 한다라.

퍽 웃긴 일이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게 바로 그라는 존재였다.

잔잔한 수면에 던져진 거대한 바위.

그런 바위가 만들어내는 파장은 단순하게 여길 건 아니었다.

물론, 그는 영리한 사람이었기에 명분을 남겨놓았다.

삼 제국이 그를 밀어줄 수 있는 명분을 말이다.

때마침 공공의 적들이 몇 차례 침공해온 탓에 대륙에서 그의 명성은 어떤 의미로건 굉장히 거대할 수밖에 없다.

“국가의 입장에서 외부인에게 그렇게 의존하는 건 좋지 않지만…… 적어도 그가 힘을 잃기 전까지 든든한 우방일 경우 확실한 카드가 되겠지.”

삼제국 모두가 알고 있다.

데이비의 도움이 있다면.

나머지 두 제국과의 전쟁을 벌여도 문제가 없을 거라는 것을.

대륙평화를 표방하고 있다지만 사실 중부대륙의 남쪽이나 몇몇 국가는 대륙연합의 그런 평화유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게릴라들이 일어나고 있으니까.

그때 살리반과 대화를 하던 패트릭의 곁으로 시종하나가 조심스레 다가와 그의 귀에 속삭였다.

동시에 패트릭 후작의 표정이 찌푸려진다.

“왜 그러는가.”

“그것이…….”

패트릭 후작이 인상을 찌푸렸다.

“볼티즈의 독립단체가 하인스 영지에 암살자를 보낸 모양입니다.”

“미친놈들.”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살리반이 중얼거렸다.

자칫했다간 조직이 날아갈 테니 암살자 길드를 쓰지도 않았을 텐데.

“볼티즈는 끝났군.”

“예. 이미 데이비 왕자가 극대노를 했다는 모양이더군요.”

겁 없이 사자의 눈을 찔렀으니.

남은 건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에 찢기는 일뿐이다.

“우린 방치하도록 하지.”

“한데 말입니다. 저하.”

말끝을 흐린 패트릭이 조심스레 중얼거렸다.

“그 암살자가 일리나 황녀 저하를 공격했다는 모양입니다.”

…….

그 말과 함께.

살리반이 벌떡 일어났다.

“화이트버드에게 소문을 퍼뜨려.”

“저하?”

“볼티즈 왕국의 이름을 일주일 내로 이 땅에서 지운다. 데이비 왕자에게 연통을 넣게 만나자고. 공식적으로 드러내. 아주 말려 죽여버릴 테니.”

방관하겠다던 살리반은 어디로 갔는가.

패트릭 후작은 벙찐 얼굴로 자신의 주군을 바라보았다.

너무도 현명하고, 너무도 따스한 사람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따를 가치가 있는 남자.

하지만.

그는 다른 의미로 전 황태자와 다르게 지독한 여동생 바보였다.

* * *

“죽…… 여…… 줘.”

바닥에 쓰러진 에디손과 의자에 추욱 늘어지듯 앉아 완전히 하얗게 태워버린 연금학파 출신의 대륙 6대 미녀.

티아라가 질린 얼굴을 한다.

“내가 많은 골렘들을 만져왔지만 이런 마도 기계장치는…….”

본래라면 내가 주기적으로 그들을 보조하여 일을 마쳐야 했다.

하지만 이실디를 포함한 중원의 일이 길어지면서 그들이 대부분의 일을 전담하게 되었는데 공학자 특유의 고집과 자존심 때문에 내게 지원 요청을 하지도 않고 스스로 일을 해결하려던 모양이었다.

그 결과.

성공은 하였으나 두 생명이 거의 녹다운되어버렸다.

“고생들 많았습니다.”

이후 영지 지하 대형프로젝트용으로 만든 공방으로 들어선 나는 그들이 만들어놓은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기계장치를 보며 말했다.

“생각보다 대단한데요?”

“대체…… 대체 어떻게 이런 걸 구상해낼 수 있는 거예요?”

지치고 꾀죄죄해졌음에도 미모가 바래지 않은 붉은 머리칼의 소녀가 나를 향해 질문을 던져왔다.

“이곳에서 아주 먼 곳에서 빌려온 지식입니다.”

유르기안 대륙에서 가져온 원료와 마족들을 털어 가져온 권능을 이용하여 만들어낸 거대한 원자로는 아직 미완성이지만 그에 파생되는 몇 가지 물건은 만들어졌다.

“이건 양산이 불가능해요. 그야말로 하인스 영지의 병기라고 봐야겠네요.”

기술을 훔쳐갈 수도. 기술을 알아도 만들 수 없다.

“은공은 이걸로 지금 대륙 정벌이라도 하실 생각인가요?”

“아니.”

담담하게 말한 내가 조용히 대답했다.

“취미생활.”

그 취미생활의 스케일이 크다고? 이 정도는 되어야 영웅들의 제자 소리는 듣지.

“마침 시험해볼까 했는데 잘됐네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사람의 크기만 한 거대한 마포탑을 집어 들었다.

“시…… 시험한다고요?”

“부품에 하자가 있다면 새로 만들어야 하니까.”

“절대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티아라가 질린 듯 중얼거린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지닌 무기인데…… 이걸 어디다 쓰신다는 거예요?”

“하인스 영지에 발톱을 내미는 놈들에게.”

애초에 대상은 정해져 있었다.

볼티즈의 렘버스 후작.

그가 정말로 하인스 영지에 암살자를 보낸 게 맞다면.

그들이 독립활동은 빛을 보지 못하리라.

* * *

볼티즈 왕국의 외곽 도시.

작은 도시에는 고요함만이 가득했다.

본래 이곳은 탐관오리가 지독한 정책을 펼침으로써 영지민들의 고혈을 짜던 곳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라운 왕국이 볼티즈 왕국에게 항복을 받아낸 뒤로 바리스가 영주를 처벌함으로써 주인이 비어있는 평화로운 곳이 되어버렸다,

그 과정에서 영지에 지쳐버린 영지민들은 이주 권한을 받아낸 뒤 이곳을 떠났고, 실상 이곳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영지가 되어버리기도 했다.

그렇기에.

볼티즈의 독립을 노리는 이들에겐 최적의 은신처이기도 했다.

“렘버스 후작. 너무 성급한 결정이었습니다.”

볼티즈 왕가의 충신, 렘버스 후작이 침묵한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몇몇 남성들은 불안한 얼굴로 말했다.

“암살자를 보내다니요. 그가 방심에 방심을 거듭했을 때 그때 보냈어야 했습니다.”

“그는 영지를 비우고 있었습니다. 그 틈을 타 그의 소중한 이들을 납치하여 그의 움직임을 제약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실패하는 순간 저희는 큰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잘못하면 저희 모두가 끝장이겠지요.”

그 말에 렘버스 후작이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삼제국이 더는 나서지 않는다는 겁니다. 모든 것은 임무에 성공하고 돌아온 정보원이 상황을 뒤집어 줄 겁니다.”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닐는지…….”

“믿고 따라오시오. 언젠가는 내 뜻을 이해하게 될 테니.”

그렇게 말한 렘버스가 와인잔을 들어 올렸다.

“볼티즈 왕가의 독립을.”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제국주의 만세.”

서로 입을 모아 자신들의 결의를 다지는 그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암살자가 누구를 공격했고, 그 소식이 누구의 귀에 들어갔는지.

또 때마침 하인스 영지로 돌아온 그 괴물 같은 인간이 얼마나 꼭지가 돌았는지를.

적대하는 대상이라도 해서 될 게 있고 안될 게 있는 법.

과도한 자극은 역효과가 나기 마련이지만.

렘버스 후작이 판단하기엔 인간이란 아무리 뛰어나고 대단하다 해도 분명히 약점이 있다고 여겼다.

그런 데이비의 약점은 주변인들의 신변.

인간의 몸이 두 개 세 개일 순 없기에 모두 지킬 순 없다고 판단하는 렘버스 후작이었다.

하지만 그는 성자로 알려진 데이비가 설마 영혼을 끄집어내 윤회의 고리를 뒤틀고 대화할 수 있는 상위 사령 술사라는 것을 몰랐다.

“선서한다.”

이윽고. 사람이 거의 없는 이 땅의 창공에서 누군가의 조용한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자신들의 과오를 잊고 인간으로서 해선 안될 짓을 일삼는 놈들에게 두 번의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을 엄숙히 맹세한다.”

그 말에 렘버스 후작이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다른 동지들과 함께 은신처를 빠져나가 하늘을 올려다본 순간.

그들의 눈이 찢어질 듯 크게 뜨여졌다.

“이 말은 꼭 해보고 싶었다.”

무표정으로 창공에 떠올라 렘버스 후작을 내려다보는 청년의 표정은 너무도 차가웠다.

“테러범을 용서하는 건 프리아 여신의 뜻이기에 내가 할 수 없지만.”

짧게 숨을 고른 그의 뒤편으로 순간적으로 섬광이 튀었다.

“그 빌어먹을 테러범 놈들을 신의 곁으로 보내는 건 내가 할 일이다.”

투웅!!!

동시에 하늘 높은 창공에서 구름이 번쩍인다.

투쾅!!!!!

동시에 수십 가닥의 거대한 에너지 줄기들이 렘버스 후작이 있는 은신처를 정확하게 정밀 조준하며 쏟아진다.

“볼티즈 왕국의 최소한의 권한은 보장해주려 했다만, 그걸 걷어차는 테러리스트 새끼들이라면 협상은 없다.”

“데…… 데이비 왕자!!”

“목숨을 순순히 내놓으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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