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30화
182. 괴뢰왕정
하늘에서 쏟아지는 대규모 폭격은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다.
연금학파의 기술고문이자 이제는 하인스 영지로 입적을 옮긴 에디손과 그의 손녀인 티아라가 만들어낸 괴물 같은 물건이었다.
물론, 지금 내세울 것이라곤 단순히 마나의 순환을 이용한 불협화음에 비롯한 반발성 마나 캐논이 전부지만 말이다.
이론 자체는 간단했다.
이 티오니스 대륙은 대기 중에 대량의 마나가 떠돌고 있다.
그런 만큼 대기 중의 지기와 섞여 순환하는 마나를 끌어모아 역방향으로 회전시켜 반발시킨 힘을 유도. 조사하는 기술이 바로 이것이었다.
굳이 설명하자면 반발성 마도 캐논 정도로 쓰일까.
한때엔 사람이 없는 고요한 영지였던 이곳은 이제 새빨갛게 익어버린 대지와 흔적도 남지 않은 건물의 잔해들로 가득했다.
페르세르크가 있었다면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이번 일은 지지를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너무 잔혹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웃기지도 않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후회는 하지 않았다.
이들이 뭘 건드렸고 그게 얼마나 위험천만한 행동이었는지를 말이다.
“잘 타오르네. 네놈들 머리 위에 태양이 있으라.”
나는 창공에 띄워둔 티아라와 에디손의 작품. 반발성 마도 캐논을 회수한 뒤 완전히 불바다가 되어버린 지면으로 내려섰다.
뜨거운 열기가 올라온다.
그리고.
나는 곧 그 포격 속에서 무너진 잔해의 아래에 깔린 한 남자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이…… 이 악마!”
“악마라…….”
“대체 몇 명을 죽인 것이냐!!”
“몇 명이냐니. 나는 무분별한 테러리스트에게 자비를 베풀 생각이 없어.”
“그러고도 네놈이 성자더냐!”
“흠, 나만큼 성자에 안 어울리는 인간이 또 있을까.”
리나 성녀처럼 병적으로 이타적인 인간은 나와 외려 맞지 않는다.
누군가를 돕는다 할지라도. 그건 내가 맹세한 부분에 한하거나 내가 도울 여유가 될 경우에 해당한다.
지금 일은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영지를 습격한 놈들에 관한 일이고. 만약에 일리나가 없었다면 암살자는 어쩌면 다른 이들을 공격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많이 아픈가?”
“크윽…… 큭…… 타국은 몰라도 이 나라의 여론은 반드시 우리의 편이 될 것이다.”
“그럴지도 모르지.”
사람의 심리란 참 특이한 것이니까.
아무리 살기 좋게 만들어줘도 외부에서 온 존재라는 이유만으로도 배척받을 수 있다.
특히 볼티즈와 라운 왕국은 지구의 한국과 일본처럼 과거부터 사이가 좋진 않았다.
적어도 볼티즈 왕국 내에선 기묘한 바람이 불지도 모른다.
싸아아아아아!!
이윽고 손을 휘젓기가 무섭게 화염들이 손끝으로 물의 정령들이 모여든다.
그리고. 그 물의 정령들은 마치 춤을 추듯 마을을 노니며 그곳에 붙은 화염들을 빠르게 꺼뜨렸다.
그리고는 서서히 죽어가는 그를 향해 말했다.
“네놈의 그 민낯을 세상에 드러내지 못한 게 한이구나.”
“남의 땅에 와서 사람 죽이려고 든 놈들이 대의를 논하지 마라.”
“…….”
“나는 적어도 먼저 건드리진 않았어. 굳이 볼티즈를 압박할 생각도 없었고.”
“거짓말 마라!!”
그가 몸이 찢겨져 나가는 고통을 버티며 소리 질렀다.
“네놈의 수작을 모를 줄 알았느냐!! 이 나라를…… 이 땅을 침략하고, 네놈들이 원하는 사상을 무지한 왕국민들에게 주입해 라운 왕국으로 흡수하려는 속셈이겠지. 지금이야 볼티즈 왕가라는 것을 명목으로나마 남겨놓았겠지만, 그것은 서서히 없어질 것이다. 볼티즈 왕국의 군대는 해산되고 역사는 뒤바뀌겠지! 이 땅의 소속은 볼티즈가 아니라 오롯이 라운 왕국의 것이 될 테고!“
쿨럭거리며 그가 소리 지르자 쏟아지는 물줄기들 사이에 쪼그려 앉아 데이비가 대답했다.
“말은 똑바로 해. 렘버스 후작.”
“…….”
“볼티즈 왕국과의 전쟁도 결국은 너희가 시작한 거야.”
“웃기지도 않은 소리! 전쟁법을 무시하고 무단 선전포고를 한 건 네놈이…….”
“어이.”
말을 끊은 나는 곧 그의 멱살을 잡은 채 물었다.
“어린아이를 잡아다가 끔찍한 마약을 만들어서 라운 왕국에 유통하고 수많은 귀족가의 자제와 영애들을 폐인으로 만든 네놈들이 할 소리인가?”
침묵이 인다.
“독립운동을 하는 건 너희들 자유지만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아니다 싶으면 발을 뺐어야지.”
“…….”
“잘못한 놈이 벌을 받는 게 나쁜 일인가?”
“적어도…… 백성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
“그래 없어. 그래서, 내가 이 나라 백성을 죽였나?”
내 물음에 그는 침묵한다.
“너희 논리는 결국 아무것도 없는 거야. 단 하나 있다면 너무 갑작스러웠고.”
퍼억!!
내 손이 그의 가슴을 뚫는다.
“너무 과했다고 부르짖는 것뿐이겠지.”
어떤 경로로건 볼티즈의 독립운동은 성공할 수 없는 기반을 지녔다.
“신께서 저주를 내리길.”
죽어가는 그가 씹어뱉듯 중얼거리자 나는 고개를 주억거린다.
“가서 면담이나 잘하시지.”
영혼에 자아가 깨어 있다면 말이다.
* * *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했던가.
데이비 올 라운이 볼티즈 왕국에 무단으로 침입…… 그 후 소규모 영지를 불태워버리며 렘버스 후작을 포함한 다수의 귀족을 죽였다는 소문이 하루아침에 퍼져나갔다.
사정을 모르는 볼티즈 왕국에선 그나마 남은 귀족들까지 처리한다는 이상한 여론이 돌았고, 평소 귀족들을 향해 이를 부득부득 갈던 이들은 잘 죽였다는 말을.
몇몇은 라운 왕국이 겉으론 평화정책을 펼치면서 속으론 방해가 되는 이들을 암살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라운 왕국 내에서도 크게 나서는 이는 없지만 알게 모르게 이번 일은 조금 과했다는 말이 나돌았다.
당연 볼티즈 왕국에선 항복을 하였다 해도 이번 일 만큼은 과했다면서 항의를 해온다.
아마 렘버스 후작을 포함한 나머지 귀족들로 기득권을 얻기 위해 여론을 조작, 독립을 부르짖는 이들의 짓이 분명했다.
라운 왕국은 데이비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그의 왕국이지만 가장 데이비의 손을 안 타는 곳이기도 했다.
데이비는 라운 왕국의 국정에 관해선 선을 넘지 않는 한 철저한 방관을 유지했으니 말이다.
물론, 선을 넘는다 해도 간섭할 권한은 없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는 예외라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나돌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그들의 그런 여론이 있건 말건 데이비는 한결같은 느긋함을 유지했다.
볼티즈 왕국에서의 일 이후 거대 공방에서 반쯤 반파되어버린 반발성 마도 캐논을 본 에디손과 티아라의 표정이 파랗게 질린다.
“어…… 어떻게 만든 건데…….”
“이게 단 한방에 박살 났다고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한 명의 드워프와 한 명의 소녀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마도 캐논의 접합부를 열어젖혔다.
푸쉬이이이익!!!
“후우…… 완전히 다 타버렸네.”
과도한 마나 반발로 인해 극도로 위력을 끌어올리면서 내부가 완전히 불타버렸다.
이래서야 한번 쓰고 버리는 실패작일 뿐이다.
“세상에…… 안돼…… 안돼! 내 역작이!”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쥐어뜯는 티아라의 외침에 에디손이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믿을 수가 없군. 내부엔 미스릴로 도금을 했고, 그 외에 흑철을 포함한 열기에 저항이 강한 금속을 썼소. 한데 이렇게 비틀릴 정도라니…… 대체 대기 마나의 반발이 얼마나 강하기에…….”
“음…… 이 정도는 되겠네요.”
데이비는 곧이어 원소 마나와 사령 마나를 한 손에 끌어올린 후 일부러 그것들을 반발시켰다.
투쾅!!!!
동시에 거대한 폭음이 일어나며 주변에 폭풍이 몰아쳤고 티아라와 에디손은 비명을 지르며 밀려났다.
“으꺄악!”
“어이쿠! 넘어질 뻔 했지 않느냐.”
“하…… 할배…….”
그대로 넘어지려는 티아라를 넘어지지 않게 받아낸 에디손은 빨개진 얼굴로 허둥지둥거리는 티아라를 뒤로한 채 손으로 턱을 쓸어내며 중얼거렸다.
“흐음…… 이 정도 반발이라니 확실히 위력은 좋지만, 이걸 이용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겠소?”
“일반적으론 그렇겠죠.”
“…… 뭔가 불안하군.”
“저는 에디손 기술고문의 고집과 자존심을 존중해드렸습니다.”
어느 정도의 지식만 전해주고 그것을 응용하고 적용하는 건 그와 티아라의 몫이다.
데이비가 거의 이들의 작업에 간섭하지 않고 물자만을 제공한 건 일의 경중을 따진 것도 있지만 사실상 이들에게 직접 해낸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런데 실패했죠.”
“조…… 조금만 더 시간과 예산을 주신다면!”
놀란 티아라가 후다닥 달려와 데이비에게 매달린다.
“아…… 안돼요! 이런 걸 만들지도 못하고 나가떨어졌다간 평생 화병이 날게 분명하다구요!”
죽도록 고생해서 만든 것이긴 하지만 데이비가 제공한 기반 지식과 기술들은 지금까지의 연금학파가 이뤄낸 것과는 다른. 조금 상위 차원의 지식이었다.
마법 대륙 아트렐리아. 연금술 대륙 유르기안.
어느 쪽이든 한 분야에 한해선 티오니스보다 앞서는 문명이었으니까.
“제…… 제발 해고만은!”
파랗게 질려 애원하는 그녀의 모습에 데이비는 그저 빙그레 웃어 보였다.
“제가 당신들을 왜 해고합니까?”
“예?”
물론, 그들은 데이비가 얼마나 지독한 놈인지 아직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안되면 되게 해야죠. 다만 원하신 바도 있으니…… 좋아요. 답은 주지 않겠습니다. 직접 알아내셔야죠.”
다만. 알아내는 과정이 얼마나 험난할지는 본인들의 몫이고, 선택이다.
“걱정 마세요. 단기간 속성 교육을 시켜드릴 테니.”
저벅저벅 다가오는 데이비의 말. 때린다는 것도 아니고, 죽인다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무섭게 느껴지는 것인가.
“36시간만 수업을 들으면 우주의 진리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함께하시죠.”
그렇게 말한 데이비는 슬금슬금 뒤로 도망가는 티아라의 어깨를 콱! 틀어잡았다.
“하실 거죠?”
그 미소에 티아라는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네…… 네.”
“조금 힘들지 몰라요. 그래도 할거라 믿어요.”
존댓말을 하니 더 무섭다고 외치고 싶은 그녀였다.
“걱정 마. 지식을 배우는데 아프기야 하겠어?”
이윽고 데이비의 눈에 광기가 스친다.
“내가 가르치는 건 정말 잘하는데.”
뭔가 스위치가 잘못 돌아갔다는 생각이 드는 티아라였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하는 에디손과 다르게 티아라는 이 데이비라는 인간이 지식을 전수해주는데 이토록 악랄할 수가 있는지 처음 알게 되었다.
* * *
데이비의 과잉진압.
그것이 여론이 되어 국제회의가 열린다는 말이 나돌았다.
볼티즈 왕국과 라운 왕국의 전쟁은 충분히 납득이 가능한 선에서 과반수의 찬성을 받았다.
그만큼 볼티즈 왕국이 한 짓은 선을 넘었고, 어지간한 국가라도 이 일을 당하면 분노하지 않고 넘길 수가 없는 지경이었으니까.
하지만 이후 바리스의 평화, 유화정책과 다르게 갑작스레 난입한 데이비가 볼티즈 왕국의 소영지를 불태우고 그곳에 있던 볼티즈 왕가의 귀족들을 다수 죽였다는 사실이 퍼지면서 회의가 소집이 된 것이다.
정확히는 소집되어야 했다.
하지만 볼티즈 왕국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은 거대한 여파가 되어 쏟아져 내렸다.
렘버스 후작의 독립활동을 뒤에서 도운 존재가 다름 아닌 팔란 제국의 6황자. 렌도스를 따르던 귀족들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버린 것이다.
그것도 다름 아닌 일리나의 평행선 같은 존재.
용사 레이나에 의해서.
그 소식을 전해 들은 데이비는 싸늘하게 웃어 보였다.
다 처리했다면서?
뒤탈 없게 하겠다면서?
“살리반 그 양반 머리 좀 싸매야겠네.”
이제부터 내게 변명을 해야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