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33화
거대한 빛과 함께 놈의 HP가 변한다.
1200만에 달하던 HP는 엄청난 속도로 추락하기 시작했고 핵죽창에 직격당한 놈은 비틀거리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 그로기?”
“미친 보스몹이 그로기를 당하려면 데미지가 얼마나 커야 되는 거야?”
“아! 기억났다!”
놀란 듯 소리치는 한 유저의 외침이 들려온다.
“이상세계! 티오니스! 티오니스 성자!!”
“미친! 그때 그 NPC?!”
이미 나는 티오니스가 아닌 알프 온라인의 배경 속에서 한차례 날뛴바가 있다.
그래서 티오니스에 대한 정보가 묘하게 부족한 지구에서도 나와 페르세르크의 모습은 알려질 대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지구이되 지구가 아니다.
지구는 나와 심연 모두가 침범하지 못하는 불가침 영역이지만 이 알프 온라인이라는 게임 세상은 심연과 내가 모두 어느 정도 간섭할 수 있다.
그럼에도 간섭하지 않는 이유.
나의 경우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고.
심연은 아직 나조차도 이유를 모른다.
심연과 넬타리드가 손이라도 잡지 않는 한 서로 공격을 하지 않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
그렇다면 지금 상황은 심연과 넬타리드가 몰래 손을 잡고 내게 엿을 먹이고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런 꼴이라면 과연 프리아 여신이 지금 모습을 두고 볼 리가 없을 테니까.
스스스슥..
모두가 침묵하는 가운데 이윽고 내가 후려친 데미지가 수치화 된다.
[9999999]!!!!
“9…… 9백만? 맥뎀이라고?!”
“데미지 배분 실화냐…….”
“세상에…… 퀘스트 엔피씨였어?”
“미친 보스 한방에 터졌다.”
“방금 피 1000만 넘게 남지 않았음?”
“보스 실질 뎀감까지 계산하면 적어도 3천만 넘게 박은 거 아님?”
유저들은 놀란 듯 보이지만 나는 조금 다른 느낌을 받았다.
이 괴물들에게서 느껴지는 건 넬타리드의 힘이었다.
지구의 유저들은 넬타리드의 병사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이 괴물의 용도가 무엇인지 아직은 모른다.
중요한 건 내가 이놈을 잡음으로써 넬타리드가 내게 무엇을 주는가였다.
데미지 계산식 같은 건 모르겠다만. 적의 힘은 그리 뛰어나지 않다는 판단 하에 제대로 된 한방에 죽여 버리는 게 가능해졌다.
놈은 공격하는 무기를 파괴하는 특성을 지녔다고 하였던가.
그 잘난 특성을 지니고도 이 무식한 강도를 지닌 롱기누스창을 부수는 건 불가능한 듯 했다.
벙찐 얼굴로 나를 보는 이들을 무시한 채 나는 그곳을 떠나 다시 티오니스로 귀환하려 했다.
“그런데…… 티오니스 npc가 왜 여기 있음?”
“내가 아나, 거기도 특수 필드로 알려져 있으니까 연관이야 있겠지.”
“와. 듣긴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까 기가 막히네.”
“저렇게 맥뎀띄우는 npc가 있긴 함?”
“왕정 기사단장도 그건 안 될걸? 애초에 그 새끼들 지들끼리 처리 못해서 동원명령 퀘스트 내린 거 아녔음?”
자신들끼리 수군거리는 와중이었다.
그때 한 남자가 천천히 다가온다.
“이봐.”
나를 부르는 그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고, 번쩍 거리는 갑옷을 입은 그가 내게 말했다.
“이걸 받아줄 수 있겠나?”
그렇게 물으며 작은 스크롤 종이를 내미는 그의 모습에 내가 그것을 받아들자 사방에서 경악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미친! 고용 계약서 받을 수 있는 npc였어?!”
“흑풍 길마 행동력보소!”
“아니 근데! 저거 진짜 받아서 고용되는 거였음?”
“아오! 먼저 갔어야 했는데!”
이윽고 내가 쥐고 있던 스크롤에서 빛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이렇다 할 변화는 없었다.
“데이비.”
이윽고 하늘에서 주변을 살피던 일리나가 천천히 내 곁으로 내려왔다.
8족 보행형 보스 몬스터가 죽으면서 생긴 빛의 입자가 흩날리며 마치 날개가 펼쳐진 것 같은 환각을 불러일으켰다.
“다친 곳은?”
“없어.”
이윽고 흑풍길드마스터라고 하였던가. 그 남자는 내게 이어 스크롤 한 장을 더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것을 받아줄 수 있겠는가.”
똑같은 질문.
의아한 표정을 짓던 일리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의 얼굴에 약간 부끄러움이 차올랐다.
“이게 뭐죠?”
“고용 계약서다.”
그의 말에 일리나는 스크롤을 쥔 채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웅!!
이윽고 빛이 또 한 번 흘러나오자 일리나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한다.
“이봐! 혼자서 독식하는 게 어딨어!”
“이미 두 사람은 내게 고용되었다. 따라서 몬스터의 드랍템 소유권은 몬스터를 처리한 이들을 고용한 이쪽에서 가진다.”
담담하게 자신의 의지를 밝히는 그의 모습에 일리나가 어깨를 으쓱이며 내게 묻지만 나도 대답하진 않았다.
아니, 그래서. 보상은 언제 주는데.
“아! 기억났다! 검의 공주! 티오니스에서 유명한 npc!"
이윽고 또 한명의 유저가 일리나의 얼굴을 알아봤는지 소리친다.
“미친! 보기 힘든 npc 둘이나 출현했네.”
“대형이벤트이긴 한가 봐요.”
저들끼리 수군거리는 그 모습을 무시한 채 넬타리드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던 나는 곧이어 8족 보행형 몬스터의 시체가 움찔거리는 걸 발견했다.
“어…… 어어?!”
그리고.
엇 하는 사이에 갑자기 일어난 괴물이 무기를 휘두르자 다수의 유저들이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입자가 되어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미친…… 뒤진 거 아녔음?]
시체가 되어서도 의식은 있는지 대화 대신 채팅이 출력되자 주변에서 당황한 시선들을 보내온다.
[감히…… 감히!! 감히 내게 맞서려 드는가!!]
그리고 다시 일어난 거대한 괴물이 괴성을 내지르며 포효를 터뜨리자 일리나가 인상을 찌푸렸다.
괴물의 형태는 좀 전 내가 죽일 때와는 조금 달랐다.
거대한 형상을 한 괴물의 형태에 나는 내게 스크롤을 줬던 이에게 물었다.
“어이, 저거 뭐야?”
내 물음에 굳은 듯 괴물을 보던 흑풍길드마스터는 떨떠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뭐야 저거…… 무서워.”
이 와중에 이상한 소리를 하는 그였다.
그리고 그런 괴물이 천천히 일어나 나를 향해 입을 쩍 벌린 그 순간.
신검 칼디라스가 찬란한 빛을 흩뿌리며 일리나의 손에 소환되었고 순식간에 내 앞을 막아서며 기운을 끌어냈다.
“칼디라스!!”
콰아아아아앙!!!!
동시에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크기로 몸을 일으킨 괴물이 내게 사령마나가 뒤섞인 브레스를 방출했고, 일리나는 그것을 칼디라스가 만들어낸 장막으로 막아내며 소리쳤다.
“데이비! 오래 못 버텨!”
그녀의 외침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강하다.
좀 전의 괴물이 이곳 유저들의 비상한 전략으로 어떻게든 공략할 수 있는 적이었다면…….
[340,000,000/340,000,000]
1200만의 hp가 30배 가까이 점프한다.
3억 4천이 넘는 hp를 지닌 이 괴물은 방어력부터가 유저들이 데미지를 박아 넣을 수준이 아니었다.
방어력의 여부도 분명히 존재할 테니까.
파직!
아직 남은 보석의 힘을 아주 찰나의 순간 활성화 시킨 나는 흑풍길드마스터라는 사내에게 말했다.
“날아가기 싫으면 비켜.”
담담하게 쏘아붙인 나는 품안에서 부적 하나를 꺼내 던졌다.
“황룡.”
쿠릉…… 쿠르르릉!!!
동시에 일대 영역 전체에 거대한 뇌운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전투 능력이 압도적인 상위 신수가 모습을 드러낸다.
하늘에 떠오르는 거대한 황룡의 자태에 모두가 침묵하는 그 순간.
모습을 드러낸 황룡이 흉신을 이물질이라 판단한 듯 눈을 부릅떴다.
“그래. 맘껏 정화해라.”
허락도 떨어졌겠다, 황룡에게 거칠 것은 없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윽고 샤우팅을 하듯 두 개의 머리중 하나가 엄청난 포효를 터뜨린다.
“커헉!!”
동시에 살아남은 유저들이 비틀거리며 무너져 내렷다.
“미친…… 90퍼 스탯 감소…… 피어 돌았냐. 진짜…….”
누군가의 중얼거림을 무시한 채 황룡의 남은 머리가 거대한 힘을 응축시키기 시작했고 흉신의 흉흉한 눈동자가 내게서 황룡으로 향하는 그 순간.
하늘에서 수십 가닥의 정화광선이 놈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황룡은 평온을 담당하는 중앙 신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의 지금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파괴자 같은 느낌이었다.
쩌엉!!!!
그리고 거대한 형체를 지닌 괴이한 존재를 향한 광선들이 쏟아지며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숫자가 미친 듯이 터져 올라가기 시작한다.
황룡의 힘은 중원의 기준으론 보석을 발현하지 않은 나와 흡사한 출력을 지니거나 조금 못 미치는 수준에 있다.
하지만 놈에겐 한 가지 특성이 존재한다.
이물질. 즉 황룡이 가진 힘과 트러블을 일으키는 종류의 존재에겐 극도의 속성 데미지를 가한다는 점.
황룡의 힘은 그 외에도 몇 가지 더 존재하지만 사실상 실질적인 파괴력 담당은 이 극상성의 속성에 존재한다.
[그륵……그르르륵!!!]
3억이 넘어가던 데미지는 급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고 그로인해 흉신이라 불리던 괴물이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하나의 숫자가 사라지기도 전에 수 개의 수치가 그 위를 덮어씌우면 무자비하게 출력되는 현상이 지속된다.
게다가 흉신의 머리위에 특이한 문양의 마크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미친 보호 차감이다!! 딜해! 딜! 지금!”
위압이 되어도 유저의 본성은 변치 않는다.
유저들은 흉신이라 불린 거대한 레이드 몬스터가 주춤거리자 그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덤벼들었다.
“저 괴물을 처리하러 온 거야?”
피곤한 얼굴로 칼디라스를 지팡이 삼아 지지하던 일리나가 물어왔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처음의 괴물은 유저수준에서 어떻게든 게릴라로 처리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 흉신이라는 놈은 달랐다.
“일리나.”
나는 일리나를 부르자마자 그녀의 팔을 잡아당겨 8서클의 베리어 마법을 펼친다.
쩌엉!!!!
동시에 거대한 충격파가 터져나가며 끝도 없이 추락하던 흉신의 hp가 다시금 증폭했다.
그리고.
그에게 덧없이 덤벼들던 부나방 같은 유저들이 모조리 쓸려나가 버렸다.
화르르륵…….
동시에 일리나와 내가 가지고 있던 흑풍길드마스터가 준 스크롤이 불타 사라져 버렸다.
아마 죽은 것이리라.
[이 세상을 쥐어 터뜨리리라.]
끔찍한 목소리로 웅얼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놈의 크기는 더욱 거대해져 있었다.
유저는 몰살당했고 이곳에 남은 건 황룡과 나, 그리고 일리나가 전부였다.
사실 놀라울 것도 없었다.
레이드 게임에선 흔히 볼 수 있지 않는가.
[미친. 풀피 됐는데?]
[한방에 몰살? 흉신 설정 괴랄한 건 알았는데 이 정도였음?]
[저거 흉신 중에서도 중상위 흉신임. 우리가 잡은 하위 흉신하곤 급이 다름]
[아니 게임 초기라곤 하지만 그래도 괴물 수준 차이 너무한데?]
[저 npc는 살아있네 그 와중에]
혼란으로 가득한 공간.
시체가 되어버린 유저들은 대화대신 채팅으로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이에 내가 걸음을 옮기며 그들을 침묵시켰다.
“왜들 이래. 레이드 어디 한 두번 해 보나. 실패했으면 재깍재깍 리트라이 각 잡아야지.”
내 발언에 몇몇이 놀란 듯한 반응을 보인다.
“새삼스러울 것 없어. 저기 탱커.”
였던 것.
방패를 들고 있는 유저들의 시체를 가리킨다.
“그리고, 저기 딜러.”
였던 것.
딜러진을 가리킨다.
마지막으로 힐링을 담당하던 이들을 가리킨다.
“저기 힐러.”
였던 것.
문제는 패턴이 참 괴랄하기 그지없다는 점이다.
“정석 공략도 없이 마냥 너흰 죽음, 아무튼 죽음…… 이런 거지같은 패턴이라 이거야.”
담담하게 말하며 나는 황룡을 소환 해제 시켰다.
황룡의 힘은 강하다.
하지만 놈의 힘이 흉신을 완전히 정화하기도 전에 거대한 힘이 퍼져 나갔다.
이에 나는 손가락을 펴 올렸다.
“한 번 실험해보자.”
처음 보는 유형의 존재는 조사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
이윽고 내 손 끝으로 푸른빛을 띠는 마나탄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하나하나가 보잘것없어 보인다.
하지만.
하나하나가 제법 화력 가성비가 좋은 마탄들이다.
[네이팜스트라이크.]
핑!!!
이윽고 내 주변에 떠오른 수백 수천 개의 광탄들이 흉신을 향해 날아든다.
투콰아앙!!!
동시에 놈의 hp바가 다시금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3억 6천만 정도였던 hp는 놈이 폭주하며 그 두 배로 늘어 7억 2천만이 되어 있었다.
이곳 유저들의 수준으로는 하루 종일 때려도 절대 잡지 못할 폭거에 가까운 수치다.
하지만 속도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유저와 나는 다르니 말이다.
계속되는 광탄을 맞으며 흉신이 거대한 포효를 터뜨리고 날카로운 손을 휘둘러 들어오지만, 나는 일리나를 안아든 채 놈을 놀리듯 단거리 블링크마법으로 요리조리 놈의 패턴을 이리저리 파훼해버렸다.
그리고. hp가 어느 정도 줄었을 때.
놈의 몸에서 또 다시 빛이 쏟아져 나왔다.
쩌어엉!!!!!
이전보다 더 강한 포효.
내가 펼친 8서클 베리어에 커다란 금이 갈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한계치는 10억 정도인가?”
2배 기준으로 상승하던 놈이 갑자기 퍽! 하고 상승치가 고꾸라졌으니. 한계치가 훤히 보인다.
내가 아는 한에서 이렇게 끝도 없이 성장할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단 한 명뿐이다.
맨몸으로 껄껄 웃으면서 대 행성 파괴 마법도 받아내는 미치광이 생존 전문가.
hp[1,000,000,000/1,000,000,000]
피통만 10억.
흥미가 사라졌다.
“요지는 방어만 무시하면 된다는 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