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36화
수소감귤맛스타는 내가 보여주는 자본의 세례에 완전히 넋이 나간 듯 보였다.
이후 나는 페르세르크와 일리나와 머리를 맞대고 굼다가 드랍한 물건중 이곳에서 바로 쓸만한 것만 구분하여 공방에 놔두고 공간을 넘었다.
넬타리드의 힘으로 알프 온라인과 연결되어있는 지금 한번 갔다 오기만 해도 환골탈태 스택이 적게는 5개에서 많게는 10개가량 쌓인다.
절대 놓칠 수 없는 이동이었다.
그리고.
수소와 산소 남매와 만나기로 한 작은 필드에 도착했다.
애초에 위치는 새로울 것도 없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넬타리드가 이곳으로 나를 날려 보내주었으니 말이다.
구구구구구구!!
하늘에서 새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이내 커다란 비둘기 한 마리가 내게 날아들었다.
그리고는 내 팔에 앉았다.
현실의 닭처럼 두껍다 하여 붙은 닭둘기와는 조금 느낌이 다르게 약간 날렵한 느낌이 드는 특이한 비둘기였다.
“전서구야?”
“그런가 본데?”
“신기하네.”
일리나의 말대로 이런 디테일까지 신경 쓰는 걸 보면 확실히 신과 연관된 게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쯤 되면 이 알프 온라인을 만든 게 넬타리드라는 게 확실해졌다.
“뭐라 쓰여있는 게야?”
궁금한지 내 어깨에 올라앉으며 페르세르크가 물어오자 나는 고개를 까딱였다.
“이 근처에 오고 있다네.”
그렇게 말하기가 무섭게 나는 곧이어 저 멀리서 다가오는 하나의 짐 마차를 볼 수 있었다.
마차를 끌고 오는 건 다름 아닌 수소감귤맛스타였다.
그리고 그 뒤에는 이제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까지 로그아웃은 위험한 산소맛곰탕과 한 소년이 앉아있었다.
“형! 왔어요!”
나를 형이라 부르는 놈에게 왜 그러냐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참 가관이었다.
돈 많으면 형이라니.
수소는 익숙하게 마차에서 내려 내게 다가왔고 산소는 쿡쿡 웃으며 내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경을 쓴 키가 작은 덩치의 소년이 나를 보고는 눈을 부릅떴다.
“꺼억…… 세…… 세상에! 티오니스 성자!”
이미 뜨거운 감자로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상황이다.
모를 수가 없는 것일까.
“야…… 야! 뭐냐?! 티오니스 성자가 왜 여깄어!”
수소를 향해 소리치는 소년을 보며 나는 픽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반갑다. 데이비 올 라운이다.”
재차 호의적으로 소개를 하자 소년은 떨떠름한 얼굴로 나를 보더니 이내 화들짝 놀랐다.
“아. 알겠다! 이 개새 지금 이거 몰카 찍고 있지? 요새 티오니스 성자 룩하고 다니는 인간 많은데 지금 구라…….”
“야. 그 아가리 좀. 닥치고 있으면 안 될까?”
빙글거리며 수소가 쏘아붙이자 소년이 움찔거렸다.
“진짜야.”
“…… 아…… 안녕하세요. 포도맛캣타워입니다.”
“캣타워에 포도 맛이 왜 필요해.”
“엥?”
내 물음에 포도맛이 의아한 듯 나를 본다.
“신경 쓰지 마. 조금 특이한 NPC니까.”
수소의 말에 포도맛이 의심스레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곧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물어왔다.
“그…… 그래서. 나를 데려온 이유가 뭐야. 노가다하느라 바빠죽겠는데.”
포도맛의 말에 산소가 짐 마차의 위에서 몸을 기댄 채 말했다.
“저분이 퀘스트를 주려고 하는데. 너 말곤 믿을 사람이 없대.”
“응? 누나. 이건 또 뭔 소리에요? 나 아직 대장장이 레벨 10인데? 생물학자는 8이고.”
“최대치는 얼마지?”
내 물음에 그가 의심스레 나를 보다 대답했다.
“당연히 80이죠. 돈 쏟아부은 인간들은 50까진 돌파했는데. 그 돌파 퀘스트가 좀 지랄 맞아서…….”
포도맛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아공간에서 꺼낸 물건 하나를 건넸다.
“이거. 제작할 수 있겠냐?”
내 말에 그가 눈을 찢어질 듯 크게 떴다.
“끄아아아아아!! 굼다의 심장!!!!”
기겁한 녀석이 바닥에 주저앉은 채 소리쳤다.
“구하기만 하면 1000억도 준다던 그거!!”
압도적인 레이드 보스가 드랍한 심장이다. 주로 심장은 무구의 제작에 쓰인다는데 그렇다 보니 그 가격이 천정부지라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천억은 너무 과하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석유왕국의 왕자 중 한 명이 제대로 이 게임에 빠져드는 바람에 그런 미친 금액이 오갈 수 있다는 모양이었다.
애초에 알프 온라인에서 현금의 거래는 비교적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있으니까.
덕분에 더러운 돈이 세탁되는 웃긴 현상도 벌어지고 있지만 대체 무슨 수를 쓴 건지 더러운 돈을 세탁하면 곧바로 적발되어버린다는 모양이었다.
아니라고 해도 스위스 은행마냥 세탁시켜준다 한들.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어찌 되었건 실제 굼다의 심장을 본 포도맛은 숨이 넘어갈 듯 꺽꺽거렸다.
이거 하나면 일반인이 공부하고 대학가고 취직해서 평생을 벌어야 버는 돈의 수백 배를 벌 수 있으니까.
욕심이 안 나면 이상하리라.
“지금부터 넌 이걸 제작해주면 된다. 알다시피 내가 이쪽은 제작 기술이 없거든.”
단순히 두드리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곳은 현실적이면서도 미묘하게 게임의 힘이 서려 있다. 그래서 나의 힘으론 포도맛이 만드는 철검 하나 제작할 수 없다.
무언가가 막고 있는 게 아니라 이들이 가진 특유의 힘이 필요하다는 소리였다.
“하, 하하하하지만 전 이런 엄청난 재료를 다룰 자신이 없는 데요오…….”
그제야 사태파악이 되었는지 포도맛캣타워가 조심스레 중얼거렸다.
“그…… 그리고 제가 다룰 수 있는건 비늘이지 심장은 가공된 것만 건들 수 있어서……”
그 말에 수소가 당황한 듯 소리친다.
“야! 대장장이에 생물학자라며!”
“아니! 대장장이라고 뭐 다 뚜드려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이 새끼야!”
옥신각신 싸우는 그 모습에 곰곰이 생각하던 수소의 누나. 산소맛곰탕이 질문을 던져왔다.
“저기 포도야.”
“네 누나~”
온도 차이 급격하게 변하며 화사하게 답하는 포도의 모습에 수소가 노발대발했지만, 포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럼 심장을 가공하는데 필요한 직업이 뭔데?”
“일단 대장장이로서 두들기려면. 우선가공을 거쳐야 하는데요. 그러려면 생체 연금사나 물질변환사가 필요해요.”
번거로운 작업에 수소가 인상을 쓴다.
하지만 반대로 산소는 누군가가 기억났는지 손뼉을 쳤다.
“아! 은공. 제 친한 길드원 중에 믿을 만한 애가 하나 있어요. 물질변환사.”
그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채용한다.”
“곧바로 연락해볼게요. 아마 지금 시간엔 휴식이라 접속하고 있을 거예요.”
그 말에 수소가 의아한 듯 중얼거리다 인상을 찌푸렸다.
“누나 설마. 그 미친년 데려오려고?”
“미친년이라니 말이 심하잖아.”
“아니 그 X라이같은 이중인격자가 뭐가 좋다고 만나는데?!”
기겁하며 소리치는 수소의 말에 산소는 귀엽게 웃으며 혀를 쏙 내밀 뿐이었다.
“데이비. 그런데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 분명 뭐가 있다는 거야.”
이윽고 눈치가 빠른지 일리나가 내게 조언해오자 페르세르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물어보는 수밖에.
“이봐.”
내가 포도맛캣타워를 부르자 그가 화들짝 놀라며 긴장한 듯 내게 다가왔다.
“네…… 넵!”
“긴장하진 말고. 지금 말하는 게 누굴 말하는 거야.”
“그…… 그게 말이죠. 물질변환 센스는 좋은데. 좀 정신 나간 누나가 있어요…….”
당황한 듯 그가 중얼거렸다.
“정신이 나가?”
“그…… 뭐라 해야 하지…… 하여튼 좀 그래요, 설명이 애매한데. 어쨌든 그래요! 쉽게 말해서 산소 누나만 보며 미치는 여잔데…… 음…… 뭐라고 해야 하나…… 겉으론 멀쩡한데 속이 약간 뒤틀려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렇다는 말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됐건 데려와. 어차피 손댈 게 많으니까.”
내가 수소와 산소에게 말하자 두 사람은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굉장히 저희와 비슷하시네요. 보통 이곳 사람들은 저희랑 다르게 말투가 좀 정중하거나 무거운데.”
“신경 쓰지 마. 그래. 그럼 비늘은 가공이 된다고?”
“일단은요. 물론, 천 옷처럼 바꾸려면 재단사도 필요한데.”
“그건 일단 됐고. 그럼 어디 한번 볼래? 뭘 만들 수 있는지.”
내가 그에게 비늘을 꺼내 내밀자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비늘을 집어 들고 제작대를 활성화시켰다.
그리고는 그 위에 올려놓더니…….
“끄어어어…….”
경악한 듯 입을 쩍 벌리며 소리 질렀다.
“대박이다!!!”
경악하는 포도맛의 외침에 옥신각신 싸우던 산소와 수소의 시선이 일순간 그에게 향했다.
“뭔데 뭔데. 무슨 일인데.”
“아, 아니 이걸 스샷을 찍을 수도 없고 진짜…….”
어쩔 줄 몰라하는 포도맛의 모습에 내가 물었다.
“제작이 되나?”
“아…… 아뇨. 제작하려면 못해도 제작 레벨 40은 되어야 할 거 같은데요…… 게다가 고품질 등급 띄우려면 더 올려야 하고.”
지금 제작 레벨 최고가 50 정도라고 하였던가.
제법 빡센 여정이다.
하지만 과연 넬타리드의 제작기술로 만들어진 이 물건이 내게 얼마나 큰 여파를 가져올지는 투자해보면 알겠지.
“그럼 지금부터 그 물질변환사인지 뭔지 올 때까지 네 레벨부터 올려보자고.”
대장장이 직업을 지닌 이방인이 기술을 향상시키려면 무자비한 노가다와 상당한 자본. 그리고 퀘스트의 성공이 필요하다.
“올린다고요? 저기…… 돈으로 밀면 제작 30레벨 찍는데 돈 얼마나 깨지는지는 아세요?”
“얼마나 깨지는데.”
“지금 대장장이 직업이 돈을 얼마나 먹는데요. 어림도 없어요.”
그 말에 수소가 풉하고 웃는다.
“왜 웃냐 새꺄?”
“너, 저 형이 돈 얼마나 많은지 모르지?”
“하기야…… 비늘 하나만 팔아도 십수억 우습긴 하겠다. 아니 근데 지금은 돈이 있어도 못 올리는 게 대장장이 퀘스트인데.”
퀘스트 난이도가 랜덤으로 지정되는데 지금 상위 대장장이 퀘스트는 극악하기로 유명한 시즌이다.
그렇기에 대장장이 유저들이 죄다 지금은 X나 버티기라 하여 존버를 외치고 있다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굳이 그 정도 레벨을 올리지 않아도 어지간히 즐기는 데엔 15레벨 이하로도 충분한 게 현실이니 그 이상은 노가다와 돈 지랄일 뿐이다.
물론. 레벨이 올라갈수록 메리트가 없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윗물 세계 상류층은 여기도 존재한다.
“하려면 한 달이나 두 달 뒤에 하시는걸 추천 드릴게요. 뭐 저야 밀어주신다면 하겠지만…….”
“그럼 바로 하지.”
돈? 밀어주리라.
노가다? 안 하면 죽는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주마.
그 외에 퀘스트? 빡센 몹? 구하기 힘든 재료? 내게 그딴 건 의미가 없다.
내 단호한 답변에 포도맛은 당황스러운 듯했지만 이내 자신의 레벨을 올릴 수 있다 여겼는지 제법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럼 할게요. 어떻게 해요?”
“일단 의뢰를 하지.”
의뢰. NPC가 유저에게 퀘스트를 내릴 때 나오는 단어다.
삐릭.
동시에 포도맛은 무언가가 보였는지 눈을 크게 떴다.
“저…… 수르트의 기술 일부가 보상이라는데…… 수르트가 뭔데요?”
“쩌는 거야 믿고 맡기라고.”
물론, 공짜로 준다곤 안 했다.
“뭔가 너무 대단한 걸 주는데 제가 해야 할 건요?”
“종속계약.”
에오니샤 2호 가 되면 끝난다.
걱정 마. 잠은 재워주고 밥도 먹여는 줄 테니.
내 말에 뭔가 불안함을 느낀 듯 보였지만 그 뒤로 슬금슬금 다가온 수소와 산소 남매가 그의 손을 잡아 수락 버튼을 눌러버렸다.
“포도야 누나 봐서 한 번만 도와주면 안 될까?”
“눌러 그냥 새꺄.”
“으아악!!! 계약서는 꼼꼼히 보라 했는데!”
기겁하는 포도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이미 의뢰는 받아졌다.
“참고로 의뢰포기는 없다. 될 때까지 지원할 테니 이 악물어라.”
내 말에 포도가 불안함을 느끼는 얼굴로 나를 본다.
“저…… 그냥 여기서 나갈게요.”
휘리릭 철썩!!!
하지만 곧이어 페르세르크가 마기로 만들어진 채찍으로 허공을 때리자 그의 몸이 움찔거린다.
어찌나 큰 소리가 났는지 마기가 퍼져나가며 허공이 찢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데이비가 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는 게지.”
“들어올 땐 마음대로지만.”
“나갈 땐 아니라고. 참고로 너희들 통각이 없는 줄 아는 모양인데. 이쯤 되면 내가 그냥 NPC가 아니라는 생각은 한번 해볼 때가 됐을 거다.”
NPC가 할 수 없는 말을 대놓고 하는 내 모습에 포도맛이 기겁한 듯 수소를 보자 수소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게…… 나중에 설명해줄게, 포도야.”
내 대답에 포도맛의 표정이 파랗게 질린다.
“그 특이하다는 물질변환사도 데려와. 그쪽도 의뢰할 거니까. 그쪽은 보자…….”
이바 반 호엔하임의 기술 조금 정도 빌려주면 되겠지.
물론, 기술의 유출에 대한 걱정은 전혀 없었다.
알려져도 상관없는 기술들이 이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지 봐야할 테니까.
어차피 저들에게 중요한 건 수르트의 기술이나 이바의 기술이 아닌 스킬 레벨일 뿐이다.
그럼 서로 윈윈하게 어디 노력해보리라.
* * *
“흥흥~”
동성애자라는 사실과는 조금 다른 의혹을 가지고 있는 [마가]는 오랜 친구이자 믿을 수 있는 이인 산소맛곰탕에게서 연락이 오자 스케줄도 모조리 취소한 채 게임에 접속했다.
담당자가 한바탕 난리를 부렸지만 상관없었다.
얼마 만에 만나는 것인가.
마가에게 산소맛곰탕은 어릴 적부터 함께해온 너무도 소중한 인연이었다.
그녀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그녀는 주변에 있던 붐비는 유저들을 죄다 밀쳐내며 소리 질렀다.
“X발 다 비켜! X나 나는 오늘을 위해 살아온 거야!”
격한 발언을 내뱉는다.
“흠흠흠~ 우리 귀여운 산소산소산소오? 무슨 일로 나를 불렀을까? 이 언니가 갈게! 지금 당장 갈게! 롸잇나우!”
선물을 기대하는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마가는 곧이어 산소에게서 온 쪽지를 확인했다.
[소개팅 받을래? 네가 좋아하는 잘생기고 따뜻한 남자야.]
“누구 부탁인데! 남자건 여자건 못생기건 당연히 간다!!!”
비명을 지르듯 그녀가 약도에 표시된 곳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왜 만남의 장소가 중급 던전인지는 모르겠다만. 상관없었다.
산소가 거짓말할 이유도 없고. 정말 그런 사람이라면 한껏 가서 침을 질질 흘려줄 자신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마가는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산소의 부름에 응하기 위해 신나게 걸음을 옮겼다.
지옥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줄도 모른 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