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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649화 (648/1,559)

제 649화

188. 볼 수 있되 닿지 않고, 들리지 않고. 갈 수 있되 갈 수 없는

재벌가의 차녀, 한유나.

그녀는 현재 산소를 포함해 또 한 명의 소중한 친구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삑삑!!

새빨갛고 예쁜 스포츠카에 몸을 실은 그녀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그동안 고진석의 악의에 몸서리를 치며 쫓기는듯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

한 인간과의 만남이 그녀를 모든 일에 초탈하게 만들어버렸다.

윽박지른 것도 아닌데.

그와 겪은 일을 생각하면 지금 자신의 상황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 느긋하기 그지없었다.

그 덕분에 정해진 경로를 벗어나 개인적인 일탈을 시도한 것이다.

그녀의 부모님은 그동안 인간 불신의 경지까지 떠밀린 그녀가 갑자기 문을 열기 시작하자 감동이라도 하였는지 아침부터 분위기가 화사했다.

“가자, 뱀블비.”

20대 초반에 자차가 있다는 건 일반적인 입장에선 대단하지만, 그녀의 집은 굉장한 부였기에 사실상 이것도 굉장히 검소한 행동이었다.

장난스레 말하며 시동을 걸고 액셀을 밟은 그녀는 자신에게 연락이 온 소중한 친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녀는 차가 거의 없는 한적한 도로에서 속도를 내며 액셀을 강하게 밟았다.

마가가 가는 곳은 다름 아닌 산소의 집이었다.

그동안 몸이 안 좋아서 집에서 게임만 하던 그녀였지만 무슨 이유인지 최근부터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는 모양이었다.

무리한 움직임은 좋지 않지만 간간한 운동은 해야 한다던 산소의 말을 기억하고 있던 마가는 그녀를 태우고 누군가를 소개해주기 위해 그녀를 찾아갔다.

“요! 산소!”

“윤지아라고 부르라니까.”

굳이 오프라인에서까지 닉네임으로 부를 필요가 있을까.

당황하며 소리치는 산소의 말에 마가는 비실비실 웃으며 그녀를 향해 빠르게 손짓했다.

“어서 가자! 오늘은 이 언니가 쏜다!”

“얘는?”

키득거리면서도 산소, 즉 윤지아는 마가 한유나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 또한 바깥 공기를 마시며 바람을 쐬는 것을 싫어하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디서 난 차야?”

“응? 언니 차야.”

물론 한유나의 차가 맞지만, 굳이 자신이 부자라는 사실을 떠벌릴 생각은 없는 그녀였다.

“흐응. 언니가 알면 화내겠네.”

“언니가 빌려준 건데 뭐. 조금 긁어도 상관없으니 마음껏 타고 오라더라.”

꺄르륵 웃으며 그녀는 산소가 탈 보조석의 문을 열어준 뒤 그녀의 등을 떠밀어 태웠다.

“자자 우리 산소 어서 타고 가자!”

처음 보는 사람이 봐도 윤지아를 향한 무궁한 신뢰와 애정을 보내주는 한유나의 모습에 지아는 결국 픽 웃으며 차에 올라탔다.

“그…… 그런데 너 장롱면허 아니었어?”

“얘는? 내가 장롱 뗀 지가 언젠데! 자 봐! 초보운전 딱지도 뗐다 이 말씀이야!”

그렇게 말하지만 윤지아는 이상하게 불안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버릇없는 꼬맹이는?”

“지환이? 지환이는 알프 온라인.”

“어휴 게임 폐인 자식.”

“쿡쿡…… 이제 아이템 정리만 끝나면 손도 안 댈 테니까.”

씁쓸한 말에 마가는 더 이상 파고들지 않았다.

그토록 알프 온라인을 좋아하던 두 사람은 며칠 동안 연락이 안 되다가 다시 나타나더니 뭔가 회의적으로 변해있었다.

게임에도 열중하지 못하고 마치 진짜 사람이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보다 몸은 괜찮아?”

윤지아의 물음에 한유나가 의아한 듯 그녀를 본다.

“그 질문은 내가 할 말 인 거 같은데.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살이 쏙 빠진 거 봐. 대체 얼마나 야윈 거야.”

“헤헤…….”

헤픈 웃음을 흘리는 그녀였지만 표정엔 씁쓸함이 어려있었다.

“그보다 공기 좋은 곳이 어디야?”

“그전에 나랑 같이 갈 곳이 있어.”

그렇게 말한 그녀는 점차 강하게 액셀을 밟았다.

“꺄아악!”

아무리 흔한 쿠페형 스포츠카라 해도 속도를 내면 그 가속도는 굉장한 편이다. 갑작스런 가속력에 놀란 윤지아가 비명을 지르거나 말거나 한유나는 신이 난 듯 소리치며 속도를 계속해서 올렸다.

“그…… 그만!! 속도 줄여!”

비명과도 같은 윤지아의 외침에 한유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부아아아아아앙!!!

그리고는 속도를 더 올려버렸다.

“꺄아아악!!!”

겁에 질린 비명의 메아리만이 그 자리에 두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남겨둘 뿐이었다.

* * *

“우욱…… 욱…….”

결국, 속이 뒤집혔는지 윤지아는 차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입을 틀어막고 헛구역질을 했다.

반대로 한유나는 오랜만에 느끼는 이 자유로움과 행복함에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아져 있었다.

“자자, 마음껏 토해!”

“우욱…… 너 진짜아…….”

불만을 잔뜩 토해내던 윤지아는 한유나를 째려보다 멈칫했다.

“여긴 납골당?”

그 말에 한유나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응. 여기에 꼭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

그 말에 윤지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가 납골당에 아는 사람도 있어?”

“여기 근무하는 사람은 아니구, 이 시기에 매번 찾아오거든.”

그렇게 말하며 익숙하게 납골당으로 들어서는 한유나를 보며 윤지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그녀를 따라 들어갔을 때 저 멀리서 옅은 갈색 머리칼을 가진 단아한 여성이 납골당의 유골함 앞에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유나는 마치 메아리치듯 손을 입가에 모은 뒤 아주 작은 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아가씨~”

아가씨라는 호칭이 효과적이었던 것일까.

가만히 있던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한유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윤지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유나야.”

“현, 언제 왔어?”

“조금 전에 왔어.”

부드러운 어조로 답하는 그녀를 보며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던 산소는 문득 그녀를 어디서 봤는지 깨달은 듯 눈을 크게 떴다.

“헙! 신성 그룹…….”

윤지아의 경악에 한유나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산소산소, 알고 있었어?”

“아…… 그…… 그게…….”

저도 모르게 외치긴 했지만, 수소가 그녀의 뒷조사를 했다는 말을 어찌할까.

“유…… 유명하잖아? 티비에도 자주 나오고…….”

“전 티비에 한 번도 출현한 적이 없어요."

“아…….”

“뭐 상관없으니 신경 쓰지 마세요.”

그녀의 말에 윤지아가 안절부절못하자 한유나가 그녀의 어깰 두드려주었다.

괜찮다는 시선과 함께 말이다.

“사실 현은 꼭 소개해주고 싶었거든. 내가 정말 힘들 때. 내 곁에 있어 준 유일한 두 사람.”

그 말에 윤지아는 낯간지러운지 시선을 피했고 현이라 불인 여인은 그저 침묵으로 일관했다.

대신 그녀는 조용히 양손을 모아 유골함에 기도를 올렸다.

“저기…… 소중한 사람이었나 봐요?”

조심스레 질문하는 산소 윤지아의 물음에 현이라 불린 여인은 대답 대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처했다.

“오빠래. 오래전에 죽은.”

그 말에 윤지아의 표정에 측은함이 어렸다.

“오…… 오빠를 많이 좋아하셨나 봐요.”

그 말에 현은 고개를 저었다.

“만나면 매번 싸우곤 했어요. 서로 오징어, 꼴뚜기라 부르고. 툭하면 싸우고. 윽박지르고.”

그렇게 말하는 여인의 모습에서 윤지아는 왜 이렇게 슬픔이 느껴지는지 몰랐다.

“그런데 끝까지 못 봤어요.”

“네?”

“언니도 저도 힘들었지만 사실 제일 힘들었을 우리 오빠…… 오빠가 죽어가던 그 순간…… 저는 없었거든요.”

그제야 윤지아는 여인의 분위기 속에서 풍기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후회와 슬픔.

눈물로써 드러나진 않지만, 그 두 가지 감정이 그녀에게서 솟구치듯 강렬하게 느껴졌다.

우아하고 고고한 공주님 같은 분위기의 아가씨이다.

입고 있는 옷만 봐도 정말 비싸 보이는 명품으로 겉으론 티가 나지는 않지만, 알만한 사람은 알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귀티가 났다.

애초에 신성 그룹의 아가씨라면 더 말해 무엇하겠느냐마는.

문득 윤지아는 그런 부잣집에서도 사람을 떠나보내야만 하는 일은 있구나 싶었다.

“저…… 힘내세요.”

“괜찮아요. 벌써 몇 년이나 지났으니까…… 유나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산소맛곰탕씨.”

진지한 얼굴로 산소맛곰탕이라고 부르니 웃음이 터져 나올뻔했지만, 윤지아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유나에게 이런 대단한 친구가 있다는 말은 처음 들었어요.”

“그…… 오빠분은 천국에서 잘 지내실 거에요. 현…….”

“현아라 불러주세요. 유나와 친구라면 저와도 동갑이니.”

“현아 씨가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하고 계실 거에요.”

“…….”

그 말이 지뢰였던 것일까.

윤지아는 자신이 말하고도 놀라 손바닥으로 자신의 입을 찰싹찰싹 때렸다.

“아…… 시작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눈치챈 한유나가 앓는 소리를 냈다.

“우리 오빠…… 꼴뚜기 등신 같던 우리 오빠…….”

말없이 유골함이 있는 유리를 매만지며 그녀가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가서 밥 좀 잘 챙겨 먹고…….”

벌써 몇 년이 지났는데.

저렇게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

윤지아는 눈앞의 현아라는 이 여성이 단순히 오빠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아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끔찍이 아끼고 챙겼던 가족끼리 만들 수 있는 그리움과 유대.

그 끈이 일편이나마 보였다.

“가서 밥 잘 챙겨 먹고…….”

침묵하던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떠나는 그 날 곁에 있어 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결국, 흐느낌이 스며들자 한유나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리고 윤지아는 이상하리만치 그녀에게서 슬픔과 함께 다른 어떤 감정이 느껴졌다.

누군가와 닮았다는 느낌이었다.

* * *

“그러니까. 흉신의 소재로 만든 이 치르바트 이어링을 달고 있으면 서로 간섭할 수 없는 영혼으로나마 지구로 진입할 수 있다는 건가?”

“그래. 갈 수 있는 인원은 귀걸이를 찬 둘 정도겠지.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상관없어. 양쪽에 차도 좋고, 한쪽에만 차도 좋아.”

“페널티는?”

과로로 인해 반 시체가 되어버린 포도를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 침대에 던져버린 베르단데는 나의 왼쪽 귀에 귀걸이를 걸어주며 말했다.

“딱히 없어. 하지만 만약 네 의지가 강해져서 실체화할 힘이 응축된다면 문제가 생기겠지. 한번 실험해보겠어?”

그러니까 혹여 지구로 가더라도 쓸데없는 간섭을 할 생각은 하지 말라는 소리였다.

“그럴 리 없겠지만 눈앞에서 누가 살해당해도 나서지 마.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는 거야. 거기에 갇히거나 산산이 박살 나고 싶지 않으면.”

그녀의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는 귀걸이를 왼쪽에 끼웠다.

반대로 페르세르크도 그녀에게서 남은 귀걸이를 받아 왼쪽에 끼었다.

“걱정 마. 내가 거기에 미련이 있을 거 같아?”

“그건 두고 볼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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