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52화
“지아 씨…… 유나야!”
다급한 목소리였다.
반사적으로 케인이 움직이려 하지만 그녀의 곁에 있던 검은 정장을 입은 이들이 순식간에 케인을 포위하듯 막아섰다.
“아가씨. 물러나십시오.”
“여기는 B팀입니다. 아가씨의 지인분들을 발견했습니다.”
마치 숙달된 경호원 같은 모습에 케인이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김 실장님! 유나와 지아 씨의 신변부터 확보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이봐. 당장 물러나.”
경계하듯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채 포위하는 사내들의 행동은 제법 익숙한 움직임이었다.
대통령 경호도 이토록 실용적일지는 사실 나로서도 알 길이 없다.
일국의 통수권자를 보호하는 경호원이니 실용적인 건 당연하겠다만은.
저항하면 무력이라도 불사할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케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들을 찾아온 겁니까?”
그 물음에 경호원들은 침묵했다.
대신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여성이 한발 나섰다.
“당신들은 누구죠? 두 사람을 저렇게 만든 게 당신인가요?”
“두 사람을 기절시킨 건 제가 맞습니다.”
당당한 케인의 답변에 그녀의 얼굴에 혼란이 서린다.
“어째서죠?”
그녀의 질문에 케인이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데이비 님?”
멍하니 서 있는 내 표정을 본 케인또한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왜.”
“왜 그러십니까?”
그의 질문에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이건 또 뭔 소리야.”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 케인과 페르세르크의 모습에 내가 의아해하던 찰나.
페르세르크가 나를 뒤에서 천천히 안았다.
“괜찮아 데이비. 괜찮아.”
조용히 다독이듯 말한 그녀가 내 뺨을 쓸어내렸다.
미묘하게 차가운 감촉이 들었다.
“우선은 오해부터 풀지요. 나는 이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기절시킨 것뿐이니까요.”
“그게 무슨 말이죠?”
“두 사람을 납치한 놈들이 있어서 구해온 겁니다.”
“그걸 믿을 수는 없어요. 두 사람을 풀어주세요.”
“반대로 이쪽에서 이 두 사람을 당신에게 보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케인의 날카로운 지적에 그녀가 움찔거렸다.
“유나와 지아 씨는 제 친구입니다.”
“그건 범죄자도 할 수 있는 말이지요.”
케인의 과한 지적과 동시에 페르세르크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이에 내가 의문스런 눈빛을 보내자 그녀의 표정이 찌푸려진다.
“데이비. 그대…….”
그녀의 특이한 행동거지에 내가 인상을 찌푸린다.
“데이비 님. 저도 목숨은 소중합니다.”
이윽고 쓰게 웃은 케인이 내게서 한발 물러났다.
그 말에 현아는 복잡한 표정으로 할 말이 많은 시선을 보냈다.
조용한 대치가 이어졌다.
그녀의 입장에서 케인을 경계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리한 행동으로 케인을 자극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녀의 대처는 제법 익숙해 보였다.
툭…… 투투투툭…….
그때였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빗방울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쏟아지는 폭우는 순식간에 일대에 있는 모두의 옷을 젖게 만들었다.
“실장님. 이분들을 데리고 와주시겠어요?”
“아가씨.”
“괜찮아요. 만에 하나엔 실장님이 지켜주실 거잖아요? 그리고 여기서 이렇게 대치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중요한 건 한유나와 윤지아의 상태를 확인하는 거니까.
“한 박사님 계시죠? 그분께 진찰을 부탁드릴게요.”
“곧바로 연락해놓겠습니다.”
반론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그들이 움직인다.
“언제까지 비를 맞고 계실 거죠? 당신이 정말 유나와 지아 씨를 구해준 게 맞다면 우선은 감사 인사부터 해야겠네요. 근처에 제가 지내는 곳이 있어요. 자초지종은 그곳에서 조금 들을 수 있을까요?”
그녀의 말에 케인이 내게 시선을 보내왔다.
“…… 그렇게 해.”
어차피 두 사람과의 일이 끝났으니까.
나는 왠지 모르게 착잡해진 심정을 뒤로한 채 그녀를 따라 날아올랐다.
* * *
육신을 구현한 케인은 경계를 받으면서도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100여 평은 되어 보이는 예쁜 한옥 가구의 집에 들어선 그는 착잡한 표정으로 기절한 한유나와 윤지아를 데려간 뒤 우아하고 단아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채 케인을 찾아왔다.
“늦어서 미안해요. 맞는 사이즈의 의상을 구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어요.”
그녀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세 벌의 남녀의상을 그에게 내밀었다.
“부담되지 않는다면 이걸로 갈아입어 주시겠어요? 자세한 이야기는 그 후에 듣기로 할게요.”
그렇게 말한 그녀가 돌아서려던 찰나였다.
“왜 세 벌입니까? 게다가 하나는 여성 복장 같은데.”
케인의 질문에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무슨 소리죠? 세분이잖아요.”
그녀의 말에 내 코를 꼬집으며 매력적인 웃음을 짓던 페르세르크가 움찔거렸다.
나 또한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그녀는 정확히 나를 담고 있었다.
“내가 보여?”
“그럼 보이지 안보여요?”
“그럴 리가.”
“지금 나랑 장난쳐요? 제가 당신들을 믿는 것도 저 아가씨 때문이니까 어서 갈아입어요.”
그렇게 말하고는 나가버리는 그녀의 모습에 케인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뭔가…… 이상한데요?”
영적인 존재를 체험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고는 하지만. 사령 마법을 익히지도 않은 이가 영혼을 선명하게 보는 건 이론상 불가능하다.
인간의 육신은 진화의 가능성을 품었지만 그게 만능이라는 뜻은 아니니 말이다.
“애초에 영혼인 본녀와 데이비가 저 옷을 손댈 수 있긴 한 게야?”
잠시간 침묵이 일었다.
케인으로써도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본래 당신들은 관찰할 뿐 일반적인 영체와도 달라요.”
“…….”
“아직은 이유를 알 수 없네요. 신께서도 답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일단 부딪혀보지. 어차피 이곳에 오래 있을 건 아니니까.”
내 말에 페르세르크가 내 팔을 잡았다.
“데이비. 정말로 괜찮아?”
“괜찮냐니.”
“그것이…….”
그녀가 내 눈치를 살폈다.
그럴 수밖에.
좀 전 옷을 건네주고 갔던 여인.
신현아는.
내가 천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잊지 못하고 아픈 손가락으로 남아있던 소중한 여동생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데이비 올 라운이야.”
“데이비.”
“나는 이제 신현수가 아니라고.”
죽은 오라비가 다른 인간으로 버젓이 살아있다 말하면.
그땐 뭐가 달라지나?
“적어도 말할 순 있잖아, 데이비. 오빠가 이렇게 버젓이 다른 삶을 산다고. 이렇게 잘 살아가고 있다고.”
“벌써 신현수가 죽고 몇 년이 지났어. 매번 싸우기만 하던 오빠를 잊기엔 충분한 시간이고 굳이 그걸 들쑤실 이유는 어디에도 없어. 페르세르크.”
“만약 그녀가 아직도 그대를 그리워한다면?”
“그리워하겠지. 하지만 시간은 사람을 변하게 해 페르세르크. 나의 존재가, 또 신현수의 존재가 녀석에게 알려지면 절대 좋게 끝나진 않을 거다.”
그러니까.
현아의 오빠였던 신현수는 죽었으니까.
아픈 기억을 들쑤실 바에는 차라리 모르는 게 나으리라.
나는 그녀에게 미안함과 미련을 가지고 있지만 체념하고 그녀의 존재를 내 안에서 지운다.
오빠로서 동생이 잘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는 소리였다.
물론, 아쉬운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녀는 지구에서 사는 신현수의 동생 신현아일 뿐이고.
지금의 나는 프리아 여신의 장기 말이자 언젠가는 신부가 될 영혼으로써 회랑에서 단련되어 돌아온 티오니스의 라운 왕국 제 1왕자. 데이비 올 라운일 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괜찮다.
그녀에게 아픈 감정이 있지만 미련 따윈 없다.
그녀도 이제 와서 신현수라는 존재를 들쑤셔 괜히 기분이 상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시간은 약이고.
나는 언젠가 잊혀질 것이며. 이제는 거의 아문 가족의 죽음에 대한 상처를 내가 들쑤셔 힘들게 할 이유는 없었다.
“그대를 그리워한다면?”
“내가 현아 그 년을 한두 번 본 줄 알아? 정은 많지만 몇 년이고 미련이 남아서 괴로워할 멍청한 성격은 아니야.”
내 그런 답변에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스르르륵…….
역시나 형체가 없는 나는 복장을 손댈 수 없었다.
아니, 의복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물체가 나와는 격리되어있으며 심지어 공기조차 내가 마실 수 없다.
모든 것이 이 세상과 나의 사이에 거대한 벽으로 가로막혀있는 것이다.
유일하게 닿는 것이라곤 시야와 귀가 전부였다.
스르륵.
말없이 의복을 쥐고 있던 나는 영체가 발현하는 힘을 살짝 이용해보았다.
동시에 빛이 머금어지며 내가 입고 있던 복장이 현아가 건네준 옷과 똑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뭐. 상관없겠지.”
내 말에 페르세르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 *
신현아는 말없이 커피를 따라주었다.
“따뜻한 것이라도 드세요. 박사님 말로는 두 사람 다 큰 외상이 없어서 다행이라더군요.”
신현아의 말에 케인이 무언가 말하려던 찰나였다.
내가 그를 제지하며 물었다.
“여기서 혼자 사나?”
“그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네요. 제가 당신에게 대답을 해야 하나요?”
“굳이 할 필요는 없지.”
“그럼 그런 질문은 필요 없다고 간주할게요. 실은 두 사람과 대화하던 중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누군가가 두 사람을 납치하는 모습이 CCTV에 찍혔어요.”
그녀의 말에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고진석은 누군가를 납치하는 데에 굉장히 익숙해 보였다.
그런 주제에 CCTV 하나를 처리하지 못했다니 웃길 따름이었다.
“CCTV라…….”
“일대가 일단은 제 사유지니까요.”
나름의 사정이 있겠거니 하지만 그녀도 말하지 않았고 나 또한 질문하지 않았다.
숨이 막히는지 페르세르크는 침묵할 뿐이다.
“그래서. 당신들은 누구죠? 두 사람을 납치한 이들과 무슨 관계이며 어떻게 구해온 거죠?”
“그걸 내가 말해야 하나?”
받은 그대로 되돌려준다.
하지만 그녀는 별말 하지 않았다.
“적어도 오해를 풀기위해선 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나는 굳이 오해를 풀지 않아도 상관없는데.”
“굳이 발뺌하시겠다면 저로선 사람을 납치한 이들이라 신고할 수도 있죠.”
“여기서 내가 네 입을 막는 방법도 있지.”
내 말에 그녀는 침묵했다.
“뭐가 마음에 안 드시는 건가요?”
“꼴이 그게 뭐야. 남들보다 잘 살고 있으면 표정이라도 편했어야지.”
“대체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싸늘하게 말한 그녀는 곧 케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설명해줄 수 있나요?”
내가 어깨만 으쓱여 보이자 케인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무언가 말하려던 찰나.
“아가씨.”
검은 정장을 입은 여성이 그녀에게 다가오더니 무언가를 속삭였다.
“무슨 말이죠? 여기 여성분도 계신 데.”
“예? 그게 무슨…….”
당황한 경호원의 행동에 신현아가 눈을 찌푸렸다.
“경계하는 건 당연하지만 불필요한 의심은 거두세요.”
그녀의 말에 경호원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아가씨. 지금 여기에 아가씨와 이 남성분을 제외하고 누가 있다고…….”
싸늘한 공기가 오간다.
그녀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와 페르세르크를 바라보았다.
“안보여요? 여기 이 남자분과 저기 아름다운 여성분.”
“…… 죄송합니다. 아가씨. 박사님께 연락하겠습니다.”
창백하게 질려서 후다닥 나가버리는 여성 경호원의 모습에 현아가 인상을 찌푸린다.
“대체 무슨…….”
“안 보이는 게 당연합니다.”
이윽고 케인이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리죠?”
“다른 분들의 시선에는 저 이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을 테니까요. 그들이 저를 경계한 건 두 여성분을 저 혼자서 데리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대체 무슨 말을…….”
“이 두 분을 볼 수 있는 건 아가씨 한 명뿐이라는 소리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마치 넌 지금 귀신을 보고 있는 거야. 라고 말하듯 태연하게 진실을 까발리는 케인의 모습에 그녀의 표정이 찌푸려진다.
“장난은 그쯤…….”
“방금전 경호원이 업무 중에 농담 따먹기나 할 성격은 아닌 듯 보였는데 말이죠.”
그렇게 말한 그는 마치 미리 준비해두었다는 것 마냥 자리에서 일어나며 명함을 내밀었다.
정상계 인솔차사. 케인.
기이한 이름이 붙은 명함에 그녀의 표정이 묘하게 찌푸려진다.
“다시 한 번 소개하겠습니다. 염라대왕님의 명을 받고 있는 저승차사. 케인입니다. 그리고 이쪽 두 분은 저를 관리 감독하시는 분이고요. 제가 두 여성분을 구한 건 단순히 두 분의 수명이 아직 다할 때가 아니었기에 구한 것뿐입니다.”
입에 침 한 번 안 바르고 구라를 치는 케인의 모습에 내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렇죠? 저승 차사님?”
나를 향해 빙그레 웃으며 공갈 포인트를 던지는 그의 모습에 나 또한 박자를 맞추어 빙그레 웃어주었다.
“차사는 얼어 죽을 멍청한 중2병이.”
“…….”
물론, 화답해준다고는 한마디도 한 적이 없다.
전생의 동생과의 기이한 재회.
하지만 나는 괜찮다고, 내가 조용히 있으면 그녀도 오래전 죽고 잊혀진 오라비의 그림자를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