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54화
왜 그녀와 마주쳐서 그 난리를 부렸는지 알 길이 없다.
내가 티오니스로 돌아가고 며칠 정도.
케인의 영향 때문인지 아니면 정신적 충격이 컸는지 아직 눈을 뜨지 못하는 한유나와 영혼과 육신의 분열로 인해 몸이 상당히 약해져 있는 윤지아는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한 박사님 말로는 몸에 이상은 없다고 했어요. 그런데 왜 못 일어나는 거죠?”
“별문제는 없어. 단순히 지친 것뿐이니까.”
담담하게 말한 나는 팔짱을 낀 채 그녀의 뒤편에 서서 두 여자를 바라보다 물었다.
“친구 사이라고?”
“지아 씨는 이번에 알았지만 유나와는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니까요.”
“친구가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소개팅을 나갈 정신머리가 있나?”
내 물음에 그녀가 인상을 찌푸린 채 나를 노려보았다.
“그쪽이 뭘 안다고 아까부터 이래라저래라 참견질인지 모르겠지만요.”
그녀는 천천히 일어나 내게 다가와 올려다보며 쏘아붙였다.
“사람마다 해야 하는 일이 있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있어요. 아, 뭐 저승사자라더니 그런 건 모르나?”
빈정거리는 그녀의 모습은 누군가와 닮아있었다.
“그러니까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가죠? 이거 주거침입죄에요.”
그녀의 말에 나는 픽 웃음이 나왔다.
“싫다면?”
“아오, 이걸 진짜 신고할 수도 없고…….”
그녀도 이미 나라는 존재를 보고 대화할 수 있는 건 내가 전부라는 사실을 인지했다.
사실 가장 신경이 쓰였던 점은 바로 이점이었다.
왜 그녀는 멀쩡한가.
초월적인 힘을 절대적으로 제한하는 이 땅이기에 케인도 일반인보다 조금 뛰어난 수준의 육체능력밖에 보이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 명백히 비정상적인 나와 페르세르크의 존재를 그녀는 보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했으며 저승사자라는 웃기지도 않은 명칭으로 붙여 속여넘겨도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과연 정말로 그런 것일까.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 나는 내 앞에서 손을 휙휙 흔들어 보이고 있는 현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봐요, 내 말 안 들려요?”
“할 말이…… 있나?”
“할 말이라…… 있죠. 내가 왜 당신을 볼 수 있는지 당신은 알 거 아니에요.”
그녀의 말에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살면서 내가 단 한 번도 신기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게다가 당신 이외에 유령을 본 적도 없고.”
“나도 몰라.”
담담하게 대답하자 그녀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냥 평소대로 말하면 그녀의 상태만 확인하고 한유나와 윤지아의 상태만 확인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에게서 떠나는 걸 망설인다.
“개인적인 일 이외에 지금부터 알아보려고 찾아온 거니까.”
어째서인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하…… 따라오든지 말든지. 분명히 경고하는데. 방해하면 절대 가만히 안 있을 거예요.”
그녀의 말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 *
현아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녀를 데리러 온 이들의 차에 올라 도심으로 향했다.
한국대학교.
한국의 서울에 있는 대학교 중 가장 잘났다고 소문나있던 sky와 더불어 수많은 수험생들이 입학하길 원한다는 한국대학교는 나로서도 잘 알고 있는 학교이기도 했다.
나는 이 학교에 대해 잘 기억하고 있는 편이었다.
몇 년이 지나도 여전하구나 싶을 정도로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특수 병실에서 나갈 수도 없었던 내가 이곳을 알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벌써 천년도 더 된, 너무도 오래된 기억 속에서.
동생 신현아가 매번 하던 말이 아직까지 뇌리에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국 의대라…….”
다름 아닌 현아가 노리던 대학교가 바로 한국대였다.
그녀의 꿈이 사실 의사였는지. 아니면 주변 상황이 그녀를 의사가 되도록 만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결국 노력했고 합격했다.
그리고.
그녀가 시험을 치르던 당시.
나는 병실에서 그녀에게 임종을 보여주지 못하고 그렇게 죽었다.
“…….”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나는 문득 내 머릿속에 울리는 청아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선택은 ----]
마치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린 기분이었다.
“기분 탓인가?”
단순히 헛들었다고 하기엔 너무 선명하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들었다고 하기엔 너무도 흐릿한 목소리였다.
이에 나는 눈을 감은 채 나지막이 중얼거리고는 몸을 띄워 올렸다.
영혼상태인 나는 허공에 떠오른 채 몇 가지 실험을 속행했다.
내가 영체로 있으면서 완전히 간섭할 수 없는가.
저승사자라는 웃기지도 않은 변명으로 지금 사태를 넘길 정도면 단순한 오한. 혹은 환각. 유령 빙의 같은 여러 요소도 틈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저 멀리 어디론가 향하는 신현아를 바라보면서도 멀찍이 앉아 짹짹거리고 있는 참새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숙련도는 새로울 것도 없었다.
[영체가 가진 힘은 파고들면 기본적인 이 세상의 흐름이 가지는 구성과 같아요. 그러니까…… 오…… 오늘 수업은 영혼상태로 지내는 거로 해볼게요……. 이미 영혼상태지만 한 단계 더 분리할 거에요. 난이도가 어렵지만…… 혹시라도 누가 데이비를 함정에 빠뜨려 영체를 부…… 분리할지도 몰라요. 미안해요!]
그렇게 말하며 대뜸 에이션트 드래곤의 필살기나 다름없는 죽음의 단어, [파워 워드 킬]을 응용해 내 영혼을 두 단계로 분리시켜버린 전적이 있는 로 아이아스 덕분에 새로울 것도 없었다.
구현화 된 에이션트 드래곤조차 티끌만큼의 타격도 주지 못한 파워 워드킬이 그토록 무섭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던 것도 한쪽의 기억에 자리잡혀있다.
짹짹…… 찌익!!
세상만사에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참새는 내가 방출한 영력. 즉 냉기에 영향을 받은 듯 괴상한 소리를 내며 푸드득 날아올라 도망쳐버렸다.
오한을 느끼거나 불현듯 모를 불안함을 느끼는 정도.
나는 이 세상이 지배하고 있는 가호의 규칙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알기 위해 이번엔 대상을 인간으로 바꾸었다.
친구로 보이는 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대학생 여성의 목덜미에 손을 슬쩍 가져다 댄 뒤 아주 미약하게 영력을 끌어올린다.
“꺅!!”
콰작!!
동시에 손에 쥐고 있던 커피를 떨어뜨린 여성이 온몸을 파르르 떨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바로 앞에 내가 있음에도 그녀들은 나를 인지하지 못했다.
“왜 그래?”
“아…… 아니 방금 뭔가가 목 뒤에서…….스윽하고…….”
여성의 말에 그 친구는 의아한 듯 주변을 둘러보지만, 당연히 내가 보일 리 만무하다.
제법 만족스러워진 나는 곧 마지막 대상이자 장난기를 풀 대상인 신현아를 찾아 대학 내부를 헤맸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사라져버렸고 결국 한참을 헤맨 뒤에야 학교 내부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한 남자와 커피를 마시고 있는 그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으며 대화를 하는 현아의 모습을 보던 나는 사내의 미소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완전히 기생오라비 같은 놈이구만. 쯧……”
빈말로라도 듬직하다고 하기보단 호감형 인상을 지닌 미청년이었다.
순식간에 사내를 스캔하듯 돌아본다.
제법 잘사는 집안의 자제라도 되는지 하나같이 가지고 있는 액세서리가 상당해 보였다.
‘카xx에 에다가 저건 이탈리아 장인 메이커인 xx세공장인 작품인가? 제법 돈 좀 들였네.’
그렇다고 마냥 멍청이처럼 그런 것들을 드러내진 않고 은연중에 자신을 꾸미고 있다.
미소는 제법 호감형으로 나쁘진 않은 편이었고 배려심도 제법 있어 보였다.
잘생긴 외모까지 한몫하니 어지간한 여자라면 홀딱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어떻게 되든 사람은 유유상종이라고 했던가.
끼리끼리 만난다고 겉보기엔 소탈해 보여도 현아는 현재 세계 굴지의 기업 신성의 아가씨였다.
그녀가 한유나의 상황을 알면서도 자리를 파하지 못하고 이렇게 만난다는 건 나름대로 중요한 이유가 있기에 그와 만나는 것이기도 했다.
물론. 그게 어떤 인간인지는 한번 꼼꼼히 볼 필요가 있다.
한참을 하하호호 웃으며 좋은 시간을 보내던 현아는 잠시 자리를 비운다는 명목으로 스르륵 하며 카페를 잠시 벗어났다.
그리고는 좀전의 미소를 지우며 피곤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톡톡 두드렸다.
…….
내가 천천히 그녀의 뒤로 날아가 그녀의 목 뒤에 손을 뻗었다.
“개수작 부리지 말아요.”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하는 그녀는 내가 무엇을 하려 하는지 마치 안다는 듯한 태도였다.
“내가 뭘.”
“이상하지 하려 했던 거 아니에요? 지금 피곤해 죽을 거 같으니까 그런 거 하지 말라고요.”
그녀의 중얼거림에 나는 팔짱을 끼고 허공에 유영하며 물었다.
“마음에 들지도 않는데 왜 그러고 있는 거야.”
“언제부턴가 알게 되더라구요. 사람이…… 원하는 일만 하며 살 수 없다고.”
그렇게 말한 그녀는 자조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승사자면 다 알지 않나요? 삼촌을 방해하지 않으려면 이런 것쯤은 제가 해내야겠죠.”
“네가 해내야 한다고? 하하호호 웃으며 접대나 하는 일이?”
“저래 봬도 동신 물산 대표이사의 아들이에요. 이번에 제가 추진하는 대형 의료봉사 사업을 추진하려면 동신 물산이 가진 대량의 제약 물자를 제공 받을 필요가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제법 큰 기업이라 할지라도 개인적인 일인 만큼 큰 힘을 빌리진 않는다.
그녀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적당히 구슬리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었다.
“후우…… 그런데 생각보다 사람이 좋더라구요. 정말로 다 내버려 두고 교제 해볼까 봐.”
“웃기는 소리.”
그녀의 말에 나는 담담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전화하고 있는 사내에게 날아갔다.
“그렇다니까? 진짜 대박이야 x발.”
좀전의 부드러운 표정은 어디로 갔는지 스산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그의 모습은 괴리감이 굉장히 심하게 들었다.
“야. 굴지의 기업이라더니 뭐 별거 없더라. 그냥 몇 마디 구슬리니까 헤실헤실하면서 다 넘어오는 꼴이라니. 어쨌든 와꾸하며 몸매가 아주…….”
음탕하고 저속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어대는 그의 행동거지에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야, 걱정 마라. 내가 누구냐? 오늘 곧바로 모텔 직행한다. 안 그렇게 생겨서 신음도 끝내줄…… 히이이익!!!”
전화를 통해 조용히 대화하던 그가 비명을 지르며 온몸을 펄쩍거렸다.
그리고 그의 머리통에 손을 뻗었던 내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이 꼴이나 보려고 영체 상태로 있는 게 아닌데.
애초에 내가 왜 이런 꼴을 하고 있는 건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이었다.
‘모로 가든 이놈만 처리하면 되는거 아니야.’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건 몇 가지 없다.
저 이중인격 같은 놈을 처리하는 것조차 일이 쉽지 않다는 소리였다.
이윽고 볼일을 마친 듯 홍조 섞인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검지와 중지를 이용해 내 눈을 가리키고 그녀를 가리켰다.
내 행동에 놀란 그녀가 나를 바라보기가 무섭게. 손가락으로 그녀와 내 앞의 사내를 가리킨 뒤 이런저런 수화를 해 날렸다.
하지만 그녀는 갸우뚱 할 뿐이다.
[멍청한 것도 정도껏 하지. 이놈은 내가 거둬간다.]
힘을 발현하는 건 불가능. 하지만 내게 허용된 힘이 딱 하나 있다.
이곳을 오고 가는 것.
그리고.
차원 열쇠는 왕복이 아닌 편도도 가능한 물건이다.
“읍?”
내 손이 그의 몸을 통과하자 스산한 오한에 그가 푸르르 떨었다.
그리고.
나는 차원 열쇠를 뒤틀어 활성화 시켰다.
되든 안 되든 한번 해봐야 할 터.
츠츠츠츳!!!!
동시에 차원의 틈이 열리며 내 영혼이 다시 틈새로 빨려 들어갔고.
나는 그 흡입력을 그대로 그에게도 노출시켜 그의 영혼 중 일부만을 그대로 노출시켜보았다.
이러면 내가 힘을 쓴 게 아니라 넬타리드의 힘이 서린 차원 열쇠만 적용된 것이니까.
어디 이것도 문제 삼는지 한번 지켜보리다.
스팡!!!
순식간에 시야가 변한다.
그리고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던 무력감에서 영체 특유의 물컹물컹한 감촉이 내 손에 느껴진다.
“뭐…… 뭐야?! 너 뭐야!!”
갑작스런 비명에 고개를 천천히 들자 혼령 상태가 된 남성이 보였다.
완전한 영혼은 아니다.
하지만 자아 정도는 뜯어온 꼴이다.
지금 그의 육신은 죽지도 살지도 않은 식물인간 같은 모양새가 되어있으리라.
요지는.
실험이 성공적이라는 소리였다.
“어서 와.”
후웅!!!
빙그레 웃으며 나는 혼령 상태인 그를 그대로 허공에 집어 던진 뒤 사령 마나의 검은 밧줄을 이용해 놈의 영혼 일부를 결박했다.
그가 아무런 힘이 없는 인간이기에. 기가 생각보다 강하지 않았기에 이런 짓이 가능하지만 웬만해선 성공하기 힘들 도박이었다.
그러니.
그 기회를 나는 절대 놓칠 생각이 없다.
“지옥에 x자식아.”
-뭐…… 뭐야!! 당신 뭐냐고!
“뭐냐고? 저승사자 처음 들어보나?”
내 말에 그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아무리 꼴뚜기 세발낙지 같은 여자라도. 그 녀석을 등쳐먹고 놀려도 되는 건…….”
말끝을 흐린 나는 그의 영혼 일부를 그대로 찢어버렸다.
자비 따윈 하나도 없는 행위였다.
“나뿐이야 이 x자식아.”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처절한 영혼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