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57화
합법적인 절차 없이 수술을 진행하는 건 불법이다.
그건 그녀가 가장 잘 아는 일이었다.
“사람을 살리는 데에 있어서 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애꿎은 일로 죽는 사람을 막기 위해서다.”
내 말에 그녀가 입술을 달싹였다.
그녀의 눈은 많은 생각을 품고 있었다.
대체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법의 보호를 받는 놈들이 못 살리고, 그렇지 않은 이들이 살린다면.”
그 법은 의미가 없다.
“보통은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치료법을 알고 있나요?”
“아니. 지금부터 찾아야지.”
내가 아는 것이라곤 이 병 또한 근원지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 크기가 너무 작고 구분하기 어렵긴 하지만.
의학에 관해선 그 어떤 존재도 따라올 수 없는 영웅의 제자이기에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건 내가 할 일이었다.
“아가씨…… 이게 대체 무슨…….”
한 박사는 내 말을 믿기로 한 현아가 연희를 퇴원시켜버리자 당황한 눈치를 보였다.
“한 박사님…… 저를 믿을 수 있나요?”
현아의 말에 한 박사는 눈이 떨리는 듯했다.
“아가씨…….”
“말씀해주세요. 이대로 가면 언니가 살 수 있는 기간은 얼마나 되나요?”
“연희 아가씨께서 특수 항생 치료를 원치 않으십니다. 길어야…… 석 달입니다.”
그 말에 현아의 눈에서 눈물이 한방을 뚝! 하고 흘러내렸다.
“그건 언니 생각이고. 나는 언니를 살릴 거에요.”
“하지만 어떻게 말입니까 아가씨.”
“다시는 의사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제게 딱하나 방법이 있어요. 그렇게 하기 위해선 직접 수술을 해야 해요.”
그녀의 말에 한 박사는 이를 악물었다.
의료사고로 사람이 죽는 건 다수 있는 일이지만 의사 자격도 제대로 없는 현아가 수술을 했다간 자칫 큰 문제로 잡혀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아가씨…….”
“박사님…… 도움이 필요해요. 제발…….”
현아의 말에 그는 조용히 침묵했다.
“수술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시겠군요.”
“믿어주시나요?”
“아가씨께서는 만용을 구분할 줄 아시는 분이셨죠. 아무리 급해도 갑자기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수술을 하겠다고 하시는 분은 아닐 겁니다.”
그가 그렇게 말했다.
“바깥에는 제가 수술한 것으로 공표해놓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잘못되더라도 현아가 뒤집어쓰는 건 없을 테니.
“하지만…….”
“괜찮습니다. 법이 생명을 지키지 못한다면 아무런 쓸모가 없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한 박사의 너털웃음에 현아는 고마움과 미안함에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리고.
한 박사의 도움으로 수술준비를 마친 현아는 긴장한 얼굴로 수술 장갑을 손에 쥔 채 나를 바라보았다.
“떨리나?”
“당연히 떨리죠. 실습은 해봤지만 실제로 사람을 수술해보는 건 처음이라구요.”
그녀의 말에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걱정 마라. 진짜 치료는 내가 하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며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동시에 내 영혼이 그녀에게 스며든다.
망령이 하는 방법.
빙의였다.
빙의를 함부로 하면 혼령이 망가질 가능성이 높지만. 그깟 망령과 비교하려 들지 마라.
나는 신성력의 가호를 내 영혼 한정으로 떡칠한 뒤 그녀를 바라보았다.
“요즘 저승사자는…… 수술도 할 줄 아나 봐요?”
“나를 믿나?”
“솔직히 불안하죠.”
그럼에도 그녀가 나를 믿는 건. 어째서일까.
나는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왜 믿지?”
“그건…… 나중에 말해줄게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곧 내게 몸을 맡겨왔다.
스르륵…….
그리고 내 영혼이 부서지듯 그녀에게 스며들었고 이내 시야가 낮아진 기분이 들었다.
익숙하진 않지만, 수술 장갑을 낀 희고 고운 손이 보였다.
“걱정 마라. 반드시 살려줄 테니.”
그렇게 말한 나는 마스크를 쓴 뒤 양손을 들며 수술실로 진입했다.
수술실엔 수술복을 입은 채 누워있는 누나가 보였다.
말없이 다가간 나는 그녀의 뺨에 손을 올렸다.
너무도 오랜만에 느껴보는 누나의 감촉이었다.
동생과 누나를 이렇게 재회하게 될 줄이야. 눈을 뜨지 않고 잠들어있는 그녀를 보며 나는 홀린 듯 조용히 중얼거렸다.
“반드시 살려줄게.”
신의의 제자로서.
나는 스승의 이름을 걸지는 않겠다.
책임을 내가 질 테니.
내 이름과 혼, 그리고 손을 걸도록 하마.
나를 죽였던 이 빌어먹을 병에게 또다시 소중한 사람을 잃을 순 없었다.
“아가씨…… 정말로 수술을…… 대체 어쩌시려고.”
“믿어주세요. 실패할 일 없을 테니.”
단호하면서도 자신감 서린 내 눈을 보며 그는 뭔가 이상함을 눈치챈 듯 보였다.
“아가…… 씨가 아니군요. 당신은 누굽니까.”
“그게 중요합니까?”
오래되지도 않았을 텐데.
그는 현아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은 듯 보였다.
“…….”
“제가 부탁드린 건 가져왔습니까?”
“당신이 누구인지 말씀해주십시오.”
“화타.”
내 말에 그가 눈을 부릅떴다.
“보다 더 대단한 양반 밑에서 배웠으니 걱정 마시라고.”
튕기듯 번뜩이는 장침을 들어 올린 내 눈이 번뜩였다.
실패는 없다.
비록 1할에 불과할지 모르는 수술이라도.
반드시 성공하리라.
* * *
한 박사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기묘하면서도 놀라운 수술장면을 보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신묘한 손놀림. 한의학과 양의학을 아무렇지도 않게 병행하는 그 모습은 실로 섬뜩할 정도였다.
그는 뛰어난 의사다.
아무리 아가씨를 믿는다지만 수술은 생명이 걸린 일이다.
그것도 현아에게 너무 소중한 언니의 목숨이.
그녀가 단순한 객기로 그런 일을 벌인 것이라면 차라리 현실을 깨닫게 해주는 것도 방법이라 생각하는 그였다.
그런데.
정신 차리고 보니 그는 현아의 수술을 말릴 생각도 못 한 채 멍하니 그녀가 원하는 대로 조력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 수술실에서 펼쳐지는 수술은 지금껏 수십 년 그가 쌓아온 의학의 모든 과정을 부정해버렸다.
“잡아요.”
단호하게 말한 현아가 손을 튕기듯 쇠관을 들고 망설임 없이 찔러넣었다.
조금만 비틀려도 곧바로 과 출혈을 일으킬 부위였지만 놀라울 정도로 바이탈 신호는 안정적이었다.
마치 기계가 고장 나거나 그가 꿈을 꾸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아무리 뛰어난 의사도 감각만으론 수술할 수 없다.
그런데.
그는 손을 몇 번 짚는 것으로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고름이 나올 겁니다. 그대로 받아내 주세요.”
그릇을 내민 뒤 그녀는 다시금 침을 들어 몸 곳곳에 찔러넣었다.
그리고는 메스를 들고 너무도 익숙하게 연희 아가씨의 몸에 칼집을 낸 뒤 수술을 시작하기 시작했다.
눈을 어지럽게 만드는 현란한 움직임에 한 박사는 그저 침묵했다.
“썩션! 뭐 하는 겁니까!!”
화를 내는 현아의 외침에 한 박사는 멍한 얼굴로 서 있다가 화들짝 놀라 움직였다.
“죄, 죄송합니다! 닥터.”
지금 순간만큼은 그녀가 대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라면 연희아가씨의 몸 안에 자리 잡은 아주 극소량의 종양을 찾아내고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위를 살짝 뒤집고 위험한 장기들을 휙휙 피해 들어간 그는 보이지 않는 곳을 그저 감각으로 짚으며 수술을 했다.
그리고 그가 꽂아 넣은 관에서 고름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말이다.
그리고.
그가 찔러넣었던 영문모를 침들이 마치 독이라도 감염된 것처럼 검게 변색되기 시작했다.
“신호 주면 하나씩 뽑아주세요. 우선은 가슴께 첫 번째 침부터.”
그녀의 말에 한 박사는 그가 아는 의학 지식을 반쯤 거부하는 이 기괴한 의술에 당황하면서도 오더를 따라 움직였다.
푸욱!! 푹!!!
그 와중에도 도저히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고름들이 관을 통해 빠져나왔다.
끔찍한 냄새가 쏟아져 나온다.
식은땀을 흘리는 현아를 보며 한 박사는 반사적으로 처음 수술실에 진입했을 때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됐다…….”
이윽고 그녀는 무언가 확신한 듯 중얼거리며 눈을 크게 떴다.
수술의 난도는 점점 올라가기 시작했고 한 박사는 계속해서 홀린 것처럼 수술장면을 바라보았다.
* * *
고요한 납골당.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새카만 무언가가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빛 하나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공간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청년의 몸은 여기저기 멍이 든 것처럼 뒤틀리고 변색되어있었다.
“죽…… 인다…….”
그는 섬뜩하게 중얼거렸다.
동시에 그의 몸 전신에서 귀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본래라면 있을 수 없고. 있어선 안 될 망령의 강화.
망령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은 간단한 빙의나 혼란 정도다.
그건 초월적인 개념에 닿기 직전의 경계에 있기에 문제가 되지 않지만. 지금 청년이 내뿜는 힘은 망령의 힘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 정도의 힘이었다.
섬뜩할 정도로 붉은 눈동자를 빛내는 건 다름 아닌 망령이 된 고진석이었다.
스르륵…….
그리고.
그의 곁에는 정체 모를 눈동자가 박힌 살점 덩어리가 스멀거리고 있었다.
[가라…… 네 분노를 마음껏 토해내라. 우리를 배신한 우리의 창조주. 넬타리드의 파멸을 위하여. 이 세계의 규칙에 균열을 일으켜라.]
[죽…… 인다…… 죽여버릴 거다…….]
섬뜩하게 중얼거리는 고진석의 외침에 이곳을 경비하던 이들이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르륵 하며 검은 안개가 되어 스며든 고진석의 망령은 납골당 안에 보관된 단 한 명의 유골함에 손을 뻗었다.
[그 유골을 통해 네 힘을 키워라. 널 죽인 놈들을 찢고 널 무시한 이들을 모두 죽이고…… 이 세상을 뒤틀어버려라.]
속삭이는듯한 그 목소리는 증오가 서려 있었다.
* * *
“커헉?!!”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지구에 만들어진 균열은 넬타리드에게 가장 직격타로 전해졌고.
그 다음은 넬타리드가 가호를 내리고 있는 발키리아.
케인에게 영향을 끼쳤다.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린 케인은 비틀거리며 눈을 부릅떴다.
“아…… 안돼…… 아틀란티스가…… 아틀란티스가…….”
데이비에겐 금시초문이라 말했지만, 모를 수가 없다.
아틀란티스는 넬타리드의 가장 충실한 충복 중 하나였으며. 그의 무력이라 불릴 정도로 강대한 존재였다.
지금은 알프 온라인 내부에 모조리 12 흉신이라는 이름으로 봉인시켜놓았지만.
그중 하나가 아무래도 감옥을 빠져나간 듯 보였다.
그가 노리는 건 뻔했다.
넬타리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데이비. 그리고 넬타리드 신을 흔들 수 있는 지구의 규칙까지.
자신의 영혼을 불태우고 세상을 부술 작정인 존재가 힘까지 가지고 있다.
빨리 막지 않는다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제발 이놈이 데이비를 찾아 곧바로 이동하지 않았으면 했지만, 케인은 그렇게 낙관적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
“페르세르크 님.”
급히 페르세르크를 찾아온 그는 데이비의 방에서 말없이 책을 읽고 있던 그녀를 발견했다.
“무슨 일이 있는 게로고.”
아마 데이비를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겠지.
케인은 다급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지금 지구로 가야 합니다.”
“무슨 일이…… 생긴 게로구나.”
“잘못하면 모든 게 끝장입니다.”
그의 말에 페르세르크가 침묵했다.
“본녀가 거기서 할 수 있는 일은 없거늘.”
“아뇨. 지구에 생긴 이변을 감지하고 찾아낼 수 있는 건…… 오로지 당신뿐입니다.”
그 말인즉슨.
페르세르크를 위험에 노출시키겠다는 말과 같았다.
데이비가 들었다면 절대 가만히 두지 않겠지만 지금은 당장 영혼상태인 그를 보호할 수단이 필요한 케인이었다.
“할 수 있겠습니까?”
“데이비와 관련된 일에 본녀가 목숨을 가릴 것 같았는가.”
그녀가 옅게 웃어 보였다.